일본락의 전설이자, 일본 비쥬얼락의 효시인 엑스(X)의 두 중심축이었던 그들의 만남은 20년전 아니 그 그보다 더 한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시절 처음 만나게 된 그들은 사실은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어울릴만한 사이는 아니 었다. 토시는 성적 우수한 착실한 모범생인 반면에 요시키는 주변에서도 싸이코 소리를 자주 듣는 불량아였다. 이 둘역시 서로를 처음 만났을때 앞으로 20여년 이상 우정을 나누 게 될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요시키는 착실한 모범생인 토시를 불량한길(?)로 끌어내는데 재미가 있었던듯 하고 토시는 토시나름대로 요시키를 통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나 한다. 어쨋던 어떤 이유에서간에 그들은 그렇게 20년 넘게 지속되온 우정과 꿈을 시작하게 된다.
1982년, 그들은 레드제플린, 키스의 영향을 받은 엑스라는 그룹을 만들게 되고, 이스트 웨스트 락콘테스트에서 요시키가 베스트 드럼상, 토시가 베스트 보컬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게 된다. 사실 토시가 맡은 포지션은 보컬이 아니었다. 기타를 연주했던 토시가 보컬에 남다른 소질이 있다는걸 안 요시키는 그에게 보컬을 권했고 토시는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말로 탁월한 것이었다.
그뒤, 여러번의 멤버교체를 겪으며 히데, 타이지, 파타를 영입 확실한 라인업을 갖춘 엑스는 1988년 인디에서 첫앨범을 낸다. 그뒤 그들은 계속되는 성공으로 계속 새로운 전설을 써내려갔고 엑스의 명성은 점점 하늘을 높아져만갔다.
하지만 점점 성공을 거듭해가며 갈수록 화려해지고 눈부셔져 가는 엑스에서의 활동을 토시는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비록 공연때는 짙은 화장을 하고 머리에는 스프레이를 잔뜩 발라 삐죽삐죽 하늘높이 세우고 표호하긴 했지만 공연장을 내려오고서의 그는 엑스 멤버중 가장 정상인에 가깝다고 불릴만큼 - 엑스 멤버들의 인터뷰에 의하면 - 소탈한 사람이었다. 무언가 광기어린 천재인 요시키나 재기발랄한 히데와는 달리 이런 화려한 무대와 거친 복장과 화장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엑스가 하는 음악이 토시가 하고자 하는 음악과는 거리가 먼 음악 이었다. 요시키가 추구한 화려하고 또는 거친 음악과는 달리 토시는 좀더 편안한 음악을 하기를 원했다. 요시키는 토시에게 완벽한 목소리를 내기를 원했으며 그렇기에 앨범 레코딩은 토시에게는 너무나도 지옥같은 시간들이었다. 계속되는 앨범 레코딩과 계속되는 다시 사인, 그런 무리한 앨범 레코딩으로 토시는 성대를 크게 다치게되고 성대수술을 하게 된다. 토시는 요시키에게 엑스에서 탈퇴하고 싶다고 말을 했지만 요시키는 아무리 토시라도 그런 요구는 절대로 들어줄수가 없었다. 엑스는 그들의 꿈이자 전부였으며 토시의 목소리는 엑스에는 없어서는 안될 엑스 그 자체였으니까
간신히 요시키는 토시를 설득하고 엑스는 그뒤 타이지가 나간뒤 엑스저팬으로 팀을 개명하여 계속 활동을 한다. 성대수술을 하고 토시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다시 엑스저팬의 보컬리스트로 우뚝설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토시의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97년, 토시는 다시 엑스에서의 탈퇴를 요구하고 이번에는 전과는 달리 토시도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요시키는 끝까지 토시를 설득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토시를 빼고 다른 보컬을 찾아볼까도 생각했으나 그것역시 포기하고 말았다. 엑스의 음악은 토시의 보컬이 아니면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었고 토시의 보컬이 없는 엑스의 음악은 상상할수도 없었으니까
결국 97년 12월 31일, 엑스재팬은 도쿄돔에서 라스트 라이브를 하고 정식해체를 하게된다. 이 공연에서 요시키는 달려오는 토시를 부둥켜 안게 되는데 사실은 뛰어오는 토시를 향해 주먹을 한대 치려고 했었다고 한다. 해체를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토시였기 때문에.. 하지만 막상 토시의 얼굴을 보니 그럴수 없어 뼈가 으스러지도록 안아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체를 하게되고 토시는 몇몇 엑스팬들로 하여금 엑스의 해체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비난을 받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 98년, 엑스 멤버들중 솔로로 데뷔해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히데가 의문의 사고사로 죽는다. 토시는 엑스 멤버들의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들지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린다. 마치 히데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인양 스스로를 질책했던 것이다.
그리고 토시와 요시키, 이 둘은 서로 다른 음악의 길을 걸어간다. 요시키가 일레트로닉한 음악을 추구하며 음악 프로듀서, 사업에 몰두했다면 토시는 예전 에 자신이 하길 원한 편안하고 차분한 음악을 하게 된다. 한때 메이저에서 그것도 가장 화려한 조명과 가장 큰 주목을 받는 무대 한가운데에 있었던 그는 철저히 인디로 돌아와 방송출연을 자제하고 그저 자신의 음악을 여러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2000년, 토시는 한국의 창원 락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공연을 하는데 이때 그는 엑스재팬의 곡은 한곡도 부르지않는다.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토시는 예전 엑스시절의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했다.
그뒤, 토시는 일본 전국의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돌아다니며 불우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는 음유시인이 되었다. 과거의 전 일본열도를 뒤흔들었던 락밴드의 보컬 리스트로서는 전혀 상상할수 없던 그런 소탈하고 친근해진 모습으로 그는 한손에 기타를 들고 자신의 음악을 듣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간다. 그리고 몇만명이 모인 도쿄돔에서 공연을 하던 그는 이제 단지 몇백명 아니 몇십명이 있더라도 그들을 위해 마이크를 꺼내 노래를 한다. 전국을 돌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예전의 짙은 눈화장을 하고 머리를 노발대발 세운 화려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지만 소탈하고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그의 모습이 더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것은 왜일까?
이제 일본에선 엑스는 점점 잊혀져가는 이름이다. 일본의 10대들중 토시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엑스라고 해도 요시키나 히데의 이름만을 알뿐 엑스의 보컬리스트 토시는 점점 잊혀져가는 이름중 하나다.
하지만 사람의 행복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높은 명성은 아니지 않을까? 예전보다도 더 작은 무대, 더 적은 관객들, 초라한 공연장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모습이 더 편안하고 즐겁게 보이는 것을 볼때 사람의 행복이라는것은 눈에보이는 겉모습, 화려한 겉치장만은 아니라는것을 느낀다.
그리고 음유시인 토시의 모습을 보며 한국의 대중음악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음악이라는건 결코 돈을 위해서 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해야 더욱더 행복하고 보람된 것이라고
토시 인터뷰 中
"오만명의 팬을 앞에 두고 멋진 장소에서 노래하고 있는 동안에, 잃어 버린 것 이 소생해 왔습니다. 지위나 명예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요시키와 토시
요시키와 토시
일본락의 전설이자, 일본 비쥬얼락의 효시인 엑스(X)의 두 중심축이었던 그들의 만남은 20년전 아니 그 그보다 더 한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시절 처음 만나게 된 그들은 사실은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어울릴만한 사이는 아니 었다. 토시는 성적 우수한 착실한 모범생인 반면에 요시키는 주변에서도 싸이코 소리를 자주 듣는 불량아였다. 이 둘역시 서로를 처음 만났을때 앞으로 20여년 이상 우정을 나누 게 될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요시키는 착실한 모범생인 토시를 불량한길(?)로 끌어내는데 재미가 있었던듯 하고 토시는 토시나름대로 요시키를 통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나 한다. 어쨋던 어떤 이유에서간에 그들은 그렇게 20년 넘게 지속되온 우정과 꿈을 시작하게 된다.
1982년, 그들은 레드제플린, 키스의 영향을 받은 엑스라는 그룹을 만들게 되고, 이스트 웨스트 락콘테스트에서 요시키가 베스트 드럼상, 토시가 베스트 보컬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게 된다. 사실 토시가 맡은 포지션은 보컬이 아니었다. 기타를 연주했던 토시가 보컬에
남다른 소질이 있다는걸 안 요시키는 그에게 보컬을 권했고 토시는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말로 탁월한 것이었다.
그뒤, 여러번의 멤버교체를 겪으며 히데, 타이지, 파타를 영입 확실한 라인업을 갖춘 엑스는 1988년 인디에서 첫앨범을 낸다. 그뒤 그들은 계속되는 성공으로 계속 새로운 전설을 써내려갔고 엑스의 명성은 점점 하늘을 높아져만갔다.
하지만 점점 성공을 거듭해가며 갈수록 화려해지고 눈부셔져 가는 엑스에서의 활동을 토시는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비록 공연때는 짙은 화장을 하고 머리에는 스프레이를 잔뜩 발라 삐죽삐죽 하늘높이 세우고 표호하긴 했지만 공연장을 내려오고서의 그는 엑스 멤버중 가장 정상인에 가깝다고 불릴만큼 - 엑스 멤버들의 인터뷰에 의하면 - 소탈한 사람이었다. 무언가 광기어린 천재인 요시키나 재기발랄한 히데와는 달리 이런 화려한 무대와 거친 복장과 화장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엑스가 하는 음악이 토시가 하고자 하는 음악과는 거리가 먼 음악 이었다. 요시키가 추구한 화려하고 또는 거친 음악과는 달리 토시는 좀더 편안한 음악을 하기를 원했다. 요시키는 토시에게 완벽한 목소리를 내기를 원했으며 그렇기에 앨범 레코딩은 토시에게는 너무나도 지옥같은 시간들이었다. 계속되는 앨범 레코딩과 계속되는 다시 사인, 그런 무리한 앨범 레코딩으로 토시는 성대를 크게 다치게되고 성대수술을 하게 된다. 토시는 요시키에게 엑스에서 탈퇴하고 싶다고 말을 했지만 요시키는 아무리 토시라도 그런 요구는 절대로 들어줄수가 없었다. 엑스는 그들의 꿈이자 전부였으며 토시의 목소리는 엑스에는 없어서는 안될 엑스 그 자체였으니까
간신히 요시키는 토시를 설득하고 엑스는 그뒤 타이지가 나간뒤 엑스저팬으로 팀을 개명하여 계속 활동을 한다. 성대수술을 하고 토시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다시 엑스저팬의 보컬리스트로 우뚝설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토시의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97년, 토시는 다시 엑스에서의 탈퇴를 요구하고 이번에는 전과는 달리 토시도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요시키는 끝까지 토시를 설득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토시를 빼고 다른 보컬을 찾아볼까도 생각했으나 그것역시 포기하고 말았다. 엑스의 음악은 토시의 보컬이 아니면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었고 토시의 보컬이 없는 엑스의 음악은 상상할수도 없었으니까
결국 97년 12월 31일, 엑스재팬은 도쿄돔에서 라스트 라이브를 하고 정식해체를 하게된다. 이 공연에서 요시키는 달려오는 토시를 부둥켜 안게 되는데 사실은 뛰어오는 토시를 향해 주먹을 한대 치려고 했었다고 한다. 해체를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토시였기 때문에..
하지만 막상 토시의 얼굴을 보니 그럴수 없어 뼈가 으스러지도록 안아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체를 하게되고 토시는 몇몇 엑스팬들로 하여금 엑스의 해체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비난을 받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 98년, 엑스 멤버들중 솔로로 데뷔해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히데가 의문의 사고사로 죽는다. 토시는 엑스 멤버들의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들지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린다. 마치 히데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인양 스스로를 질책했던 것이다.
그리고 토시와 요시키, 이 둘은 서로 다른 음악의 길을 걸어간다.
요시키가 일레트로닉한 음악을 추구하며 음악 프로듀서, 사업에 몰두했다면 토시는 예전 에 자신이 하길 원한 편안하고 차분한 음악을 하게 된다. 한때 메이저에서 그것도 가장 화려한 조명과 가장 큰 주목을 받는 무대 한가운데에 있었던 그는 철저히 인디로 돌아와 방송출연을 자제하고 그저 자신의 음악을 여러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2000년, 토시는 한국의 창원 락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공연을 하는데 이때 그는 엑스재팬의 곡은 한곡도 부르지않는다.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토시는 예전 엑스시절의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했다.
그뒤, 토시는 일본 전국의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돌아다니며 불우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는 음유시인이 되었다. 과거의 전 일본열도를 뒤흔들었던 락밴드의 보컬 리스트로서는 전혀 상상할수 없던 그런 소탈하고 친근해진 모습으로 그는 한손에 기타를 들고 자신의 음악을 듣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간다. 그리고 몇만명이 모인 도쿄돔에서 공연을 하던 그는 이제 단지 몇백명 아니 몇십명이 있더라도 그들을 위해 마이크를 꺼내 노래를 한다. 전국을 돌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예전의 짙은 눈화장을 하고 머리를 노발대발 세운 화려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지만 소탈하고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그의 모습이 더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것은 왜일까?
이제 일본에선 엑스는 점점 잊혀져가는 이름이다. 일본의 10대들중 토시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엑스라고 해도 요시키나 히데의 이름만을 알뿐 엑스의 보컬리스트 토시는 점점 잊혀져가는 이름중 하나다.
하지만 사람의 행복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높은 명성은 아니지 않을까? 예전보다도 더 작은 무대, 더 적은 관객들, 초라한 공연장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모습이 더 편안하고 즐겁게 보이는 것을 볼때 사람의 행복이라는것은 눈에보이는 겉모습, 화려한 겉치장만은 아니라는것을 느낀다.
그리고 음유시인 토시의 모습을 보며 한국의 대중음악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음악이라는건 결코 돈을 위해서 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해야 더욱더 행복하고 보람된 것이라고
토시 인터뷰 中
"오만명의 팬을 앞에 두고 멋진 장소에서 노래하고 있는 동안에, 잃어 버린 것 이 소생해 왔습니다. 지위나 명예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