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내용은 스포일러의 요소가 매우 다분함. 그러나 연극이라는 것은 극을 이끌어 나가는데 영화처럼 스토리만의 힘보다도 다른 요소들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 글이 극의 재미를 떨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함.
-여흥이 가시기 전에, 이 꿈을 채 잊어 버리기전에 글을 마무리 해야 할 듯 하여 서두른다.
이 공연을 보게 된 데에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인터넷에서 미실 연극을 한다며 맛보기로 나온 사진들을 보곤 완전 홀려 버려서 24일 프리뷰 공연이 나오기 2주전에 이미 예매를 해버렸으나 레포트 제출 시기와 맞물려 금전상황이 '심히' 좋지 않아 눈물을 뿌리며 취소해버렸었다. 그런 것을, 진혜가 교양과목으로 듣는 '공연예술의 이해' 에서 남상식 선생님이 싼값에 단체 관람을 시켜주신다고 하는데다가 연출님과의 대화도 있다는 말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보러 가기로 단단히 결정해버렸다. 그에 따른 여러가지 기회비용이 나름 심하긴 했다만은..
그리하여, 수요일부터 그 엄청나게 히트를 쳤다는 김별아 장편소설을 찾았다만, 역시나 중도에 제대로 들어올리가 없다. 그런데 2006년 초반에 미실의 제목으로 나오 <색공지신 미실>이란 책이 있더랬다. 셍각에 미실이 뜬다니깐 이름을 빌려 뜨려는 책이 나오누나 싶어 끌끌 댔다만, 꿩대신 닭이라고 아쉬운 김에 그걸 빌려와서 읽었다. 이에 대해선 이종욱 선생님께 조금 미안하였다. 오히려, 이번 공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색공지신 미실>이 더 좋았는데, 알고보니 양정웅 연출님께서는 2002년에 이미 화랑세기에 나오는 미실의 애기를 토대로 한번 미실을 올렸던 것이었다. 당연히 그 후에 나온 소설 미실 보다 원전인 화랑세기의 미실 관련 부분만 따로 따서 역사적 사실로 엮어낸 <색공지신 미실>이 연극에 더 가까울 수밖에. 아르코에서도 <색공지신 미실>을 7000원(!)에 팔고 있다.(<색공지신 미실>에 대한 감상평은 짧게 따로 올리겠삼)
연극 미실은, 미실과 그녀를 둘러싼 남자와 여자가 주 인물들이다. 김별아 소설로 많이 유명해졌지만 어찌보면 미실은 팜므파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무리 암묵적으로 공인된 '색공'이라는 정치적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하나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거나,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라도, 길지 않은 인생동안 6-7명의 남자를 시기 때때 마다 갈아치울 수 있는지. 혹은 '갈아치운다'는 말이 속되고, 미실이 몇 십년을 정분을 유지해오거나 마음을 품었던 이가 있었음에 조금 어폐가 된다 할지라도 그녀가 색공을 바친 대상들이 왕이나 왕족, 혹은 신분 높은 귀족들이었다는 점, 그로써 그녀가 꽤 오랬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2006년에 연극으로 돌아온 미실은 애처롭고, 가늘었다. 처음 신문기사로 나오는 초록색 머리의 김호정과, 배경의 남신 상같은 남성들 덕분으로 어쩐지 미실은 강하고 요염한 여자일 듯 싶었는데, 이번 미실은 사람들에게 차라리 위로하고 달래줬어야만 할, 안타까움이 일게 만들었다.나중에 연출님과의 대화에서 학생의 물음에 대한 연출님의 답에서도 그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2002년도 판이나, 요즘 그려지고 있는 '요부'의 이미지와는 달리 오히려 본능과 운명에 순응하는 미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더라고.
어떤 학생은 미실이 불쌍한, 운명에 휘둘리는 여인네라고 표현했다만 그것은 또 미실의 작은 한 모습에 불과하였다. 미실은, 사다함을 떠나보내고도 굳건히 살았고, 진흥제에게 색공을 바쳐야 했을 때도 당당했으며, 그래서 세종을 떠날 때에도 미안함을 크게 내색하거나 돌아온다고 말하기 보단 세종의 체념과 아픔을 담담히 받아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마지막 비오는 와중 엉컹퀴를 보며 하는 말이나, 색공지신의 가야할 길을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가장 역력히 드러났는데 마치 부러뜨리려는 힘에 대해 휘어지면서도 부러지지는 않는 가는 대나무나 갈대 같았다.
학생들과 인터넷으로부터 극중 대사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이 많았는데 아마도 화랑세기에서 직접 인용하거나 맥락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보단 현대어로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줬기 떄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간 덕에 직접 인용한 대사나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그 외의 것들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많이 남았더랬다. 또, 사실, 그 외의 것들이 줄거리 보단,진짜 이번 연극 미실의 정수들이었다.
처음으로 등장한 회전 무대. 전면에 빨간 융단이 깔려 있었고 약간 높은 무대 뒤쪽은 양쪽으로 밀거나 닫는 커다란 문이 달려있었다. 빨간 색부터가 미실의 붉은 면과 맞는다 싶었는데 미실의 탄생 또한 하얀 옷의 무희들과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팔랑팔랑 빨간 꽃잎들로 적절하게 묘사되었다. 무대는 한쪽이 높게 경사져서 뒤쪽 문과 같은 높이였는데 때때마다 회전하도록 되어있어 돌아가는 공간 속에서 인물들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게 하였다. 무대는 진흥제의 뒷모습을 보여주다 돌아가며 앞모습을 보여 주게 되거나 그런 진흥제와 미실에게 절을 하려고 하다가 울부짓는 동륜태자의 모습을 360도로 보여주는 등 인물의, 혹은 인물 간의 혼돈,갈등,역전의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뒷문 장치를 이용한 장면이었는데 바로 미실이 화랑의 우두머리로 원화가 되는 때였다. 회전 무대 위에서 낭도들과 낭주들(원화를 따르는 여자 낭도들을 따로 지칭하는 말이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의 춤이 격렬하게 이어지고 그들의 유쾌하고 방탕한 파티는 궁궐 안의 sex party로 끝이 나는데 그 때의 무대 앞쪽은 어두은 조명이고 뒷문 안쪽만 환하고 쏟아질 듯 눈부신 하얀 조명이었다. 그들만의 유흥은 미실을 중심으로 점점 농밀해져가고 그에 따른 몸짓과 표정은 더욱 젖어가며 꿈틀대는데 이때 문이 스르륵 닫히는 것이었다. 닫혀져 가는 문, 사이의 하얀 빛을 받은 빛나는 육체들의 향연, 그 몸짓에 홀려서 엿보는 천국, 그것은 마치 신들의 성지같이 오히려 신성해보이는 것이었다. 뒷문이 실오라기 만큼의 빛을 던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짓들은 나의 시선을 완벽히 궁궐 안으로 잡아 가둬버렸다.
그러나 연극 미실에서, 내가 연출에게 놀란 장면은 배우들의 몸을 쓰는 방법이었다. 미실이 사다함과 만난 동산에서 날아다니던 손 나비(!)들도 하느작거리는 것이 영락없이 나비들이었지만, 그 이후 술잔으로 나온 배우에 더 더 놀랐다. 전혀 그런식으로 표현될지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신선한 사물 표현들이 내 머리를 땡땡 치고 가는 것이었다. 세종의 출정이 결정되는 장면에서 포석정에서 도랑을 타고 흐르던 잔을 마임 처리 한 것이 아니라 한 흰 무희가 들고 회전무대를 돌아오는 것으로 처리하였는데 그 움직임은 무희가 아니라 말그대로 물을 따라 돌돌돌 굴러오는 술잔의 모습이었다.작년 극단 목화에서 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무생물을 연기한 배우들이 하나 둘 있었는데 그것이 연상되면서 동시에 '사람','생물'이 아닌 무생물 자체를 표현하도록 한 연출의 아기자기한 씀씀이가 재밌었다.
그런데 연출님이 진정 내가 그린 상상의 환벽한 구현(!)해냈다고 생각하게 한 장면은 무생물 표현 부분이 아니라, 극 전체에 빠질 수 없는 요소로 등장하는 무희들의 존재, 그리고 무희들과 등장인물들을 관통하는 '특정한' 움직임의 표출이었다. 특히나 군무, 극 중에서의 남/녀 무용수들의 어지러운 얽힘들이 현기증나도록 아랫배를 간지럽혔다. 미실과 진흥제가 교합하는 장면이라든지, 미실이 원화가 되었을 때 화랑,낭도,낭주들이 뒤얽혔을 때라든지, 미실과 미생, 설원랑이 얽혀서 놀 때라든지, 마지막 동륜태자의 죽음이후 진흥제의 분노 때 무대 전면에서의 고문 장면이라든지, 전반적인 극 하중을 탄탄히 받춰준 다양한 '움직임'은 격렬하고 관능적이었다. 특히나 보는 내내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러한 이유는 그러한 움직임이 여성의 육체에서 비롯됬다기 보단 상대적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남성들의 노출된 몸체와 그에서 비롯된 강렬하고 미끈한 힘이 '움직임'의 밑바탕이 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것은 여성편의 시각으로서 단순이 멋지구리한 남우들이 빛나보였다는 헛소리일 수 있다;;)
한국적인 것, 그리고 거기에 기초를 둔 색다른 빛과 색, 움직임, 소리. 이렇게 2시간 반 동안의 소리/색과 어우러지는 향연을 관람하고 세상밖으로 나오니 왜이렇듯 바깥 세계의 햇빛이 시들시들한지. 연극을 보고 난 뒤 연출님과의 대화 이후 터질 듯한 심장이 아직도 두근거리는데, 아직 나는 나른한 꿈길 속을 헤매는 듯하고, 그저 먼먼 옛날- 정치와, 욕망과 꿈이 신화와 종교인 채로 뒤엉켜 있던-신라 시대를 걷고저만 하였다.
이것은 그저 덧붙이는 말이지만, 연출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회에 그저 던져놓아야 할 연극이 많으실 듯 하다. 다른 이들처럼 진흥제&동륜태자의 전라씬과 미생&설원랑의 성애장면이 절대절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책을 읽고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민망해 해버렸던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예의 바르다.(?) 특히나 진흥제의 노출씬까지는 잠잠하던 관객들이 미생과 설원랑의 성애장면에서는 적잖이 동요하더라; 거기가 둘이 키스를 하는 즈음에 와서는 남자들은 말할 거 없이 고개를 돌리면서 '미친놈들 변태아냐??'막 이러고 도처에선 여자들의 꺄아꺄악(?)거리는 소리가 미친듯이 들려댔다;;(물론 절대 고개 안돌리는 사람도 있었다ㅎ)
숨가쁜 꿈을 꾸다-2005.4.29 <미실>
* 본문 내용은 스포일러의 요소가 매우 다분함. 그러나 연극이라는 것은 극을 이끌어 나가는데 영화처럼 스토리만의 힘보다도 다른 요소들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 글이 극의 재미를 떨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함.
-여흥이 가시기 전에, 이 꿈을 채 잊어 버리기전에 글을 마무리 해야 할 듯 하여 서두른다.
이 공연을 보게 된 데에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인터넷에서 미실 연극을 한다며 맛보기로 나온 사진들을 보곤 완전 홀려 버려서 24일 프리뷰 공연이 나오기 2주전에 이미 예매를 해버렸으나 레포트 제출 시기와 맞물려 금전상황이 '심히' 좋지 않아 눈물을 뿌리며 취소해버렸었다. 그런 것을, 진혜가 교양과목으로 듣는 '공연예술의 이해' 에서 남상식 선생님이 싼값에 단체 관람을 시켜주신다고 하는데다가 연출님과의 대화도 있다는 말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보러 가기로 단단히 결정해버렸다. 그에 따른 여러가지 기회비용이 나름 심하긴 했다만은..
그리하여, 수요일부터 그 엄청나게 히트를 쳤다는 김별아 장편소설을 찾았다만, 역시나 중도에 제대로 들어올리가 없다. 그런데 2006년 초반에 미실의 제목으로 나오 <색공지신 미실>이란 책이 있더랬다. 셍각에 미실이 뜬다니깐 이름을 빌려 뜨려는 책이 나오누나 싶어 끌끌 댔다만, 꿩대신 닭이라고 아쉬운 김에 그걸 빌려와서 읽었다. 이에 대해선 이종욱 선생님께 조금 미안하였다. 오히려, 이번 공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색공지신 미실>이 더 좋았는데, 알고보니 양정웅 연출님께서는 2002년에 이미 화랑세기에 나오는 미실의 애기를 토대로 한번 미실을 올렸던 것이었다. 당연히 그 후에 나온 소설 미실 보다 원전인 화랑세기의 미실 관련 부분만 따로 따서 역사적 사실로 엮어낸 <색공지신 미실>이 연극에 더 가까울 수밖에. 아르코에서도 <색공지신 미실>을 7000원(!)에 팔고 있다.(<색공지신 미실>에 대한 감상평은 짧게 따로 올리겠삼)
연극 미실은, 미실과 그녀를 둘러싼 남자와 여자가 주 인물들이다. 김별아 소설로 많이 유명해졌지만 어찌보면 미실은 팜므파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무리 암묵적으로 공인된 '색공'이라는 정치적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하나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거나,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라도, 길지 않은 인생동안 6-7명의 남자를 시기 때때 마다 갈아치울 수 있는지. 혹은 '갈아치운다'는 말이 속되고, 미실이 몇 십년을 정분을 유지해오거나 마음을 품었던 이가 있었음에 조금 어폐가 된다 할지라도 그녀가 색공을 바친 대상들이 왕이나 왕족, 혹은 신분 높은 귀족들이었다는 점, 그로써 그녀가 꽤 오랬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2006년에 연극으로 돌아온 미실은 애처롭고, 가늘었다. 처음 신문기사로 나오는 초록색 머리의 김호정과, 배경의 남신 상같은 남성들 덕분으로 어쩐지 미실은 강하고 요염한 여자일 듯 싶었는데, 이번 미실은 사람들에게 차라리 위로하고 달래줬어야만 할, 안타까움이 일게 만들었다.나중에 연출님과의 대화에서 학생의 물음에 대한 연출님의 답에서도 그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2002년도 판이나, 요즘 그려지고 있는 '요부'의 이미지와는 달리 오히려 본능과 운명에 순응하는 미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더라고.
어떤 학생은 미실이 불쌍한, 운명에 휘둘리는 여인네라고 표현했다만 그것은 또 미실의 작은 한 모습에 불과하였다. 미실은, 사다함을 떠나보내고도 굳건히 살았고, 진흥제에게 색공을 바쳐야 했을 때도 당당했으며, 그래서 세종을 떠날 때에도 미안함을 크게 내색하거나 돌아온다고 말하기 보단 세종의 체념과 아픔을 담담히 받아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마지막 비오는 와중 엉컹퀴를 보며 하는 말이나, 색공지신의 가야할 길을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가장 역력히 드러났는데 마치 부러뜨리려는 힘에 대해 휘어지면서도 부러지지는 않는 가는 대나무나 갈대 같았다.
학생들과 인터넷으로부터 극중 대사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이 많았는데 아마도 화랑세기에서 직접 인용하거나 맥락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보단 현대어로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줬기 떄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간 덕에 직접 인용한 대사나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그 외의 것들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많이 남았더랬다. 또, 사실, 그 외의 것들이 줄거리 보단,진짜 이번 연극 미실의 정수들이었다.
처음으로 등장한 회전 무대. 전면에 빨간 융단이 깔려 있었고 약간 높은 무대 뒤쪽은 양쪽으로 밀거나 닫는 커다란 문이 달려있었다. 빨간 색부터가 미실의 붉은 면과 맞는다 싶었는데 미실의 탄생 또한 하얀 옷의 무희들과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팔랑팔랑 빨간 꽃잎들로 적절하게 묘사되었다. 무대는 한쪽이 높게 경사져서 뒤쪽 문과 같은 높이였는데 때때마다 회전하도록 되어있어 돌아가는 공간 속에서 인물들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게 하였다. 무대는 진흥제의 뒷모습을 보여주다 돌아가며 앞모습을 보여 주게 되거나 그런 진흥제와 미실에게 절을 하려고 하다가 울부짓는 동륜태자의 모습을 360도로 보여주는 등 인물의, 혹은 인물 간의 혼돈,갈등,역전의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뒷문 장치를 이용한 장면이었는데 바로 미실이 화랑의 우두머리로 원화가 되는 때였다. 회전 무대 위에서 낭도들과 낭주들(원화를 따르는 여자 낭도들을 따로 지칭하는 말이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의 춤이 격렬하게 이어지고 그들의 유쾌하고 방탕한 파티는 궁궐 안의 sex party로 끝이 나는데 그 때의 무대 앞쪽은 어두은 조명이고 뒷문 안쪽만 환하고 쏟아질 듯 눈부신 하얀 조명이었다. 그들만의 유흥은 미실을 중심으로 점점 농밀해져가고 그에 따른 몸짓과 표정은 더욱 젖어가며 꿈틀대는데 이때 문이 스르륵 닫히는 것이었다. 닫혀져 가는 문, 사이의 하얀 빛을 받은 빛나는 육체들의 향연, 그 몸짓에 홀려서 엿보는 천국, 그것은 마치 신들의 성지같이 오히려 신성해보이는 것이었다. 뒷문이 실오라기 만큼의 빛을 던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짓들은 나의 시선을 완벽히 궁궐 안으로 잡아 가둬버렸다.
그러나 연극 미실에서, 내가 연출에게 놀란 장면은 배우들의 몸을 쓰는 방법이었다. 미실이 사다함과 만난 동산에서 날아다니던 손 나비(!)들도 하느작거리는 것이 영락없이 나비들이었지만, 그 이후 술잔으로 나온 배우에 더 더 놀랐다. 전혀 그런식으로 표현될지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신선한 사물 표현들이 내 머리를 땡땡 치고 가는 것이었다. 세종의 출정이 결정되는 장면에서 포석정에서 도랑을 타고 흐르던 잔을 마임 처리 한 것이 아니라 한 흰 무희가 들고 회전무대를 돌아오는 것으로 처리하였는데 그 움직임은 무희가 아니라 말그대로 물을 따라 돌돌돌 굴러오는 술잔의 모습이었다.작년 극단 목화에서 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무생물을 연기한 배우들이 하나 둘 있었는데 그것이 연상되면서 동시에 '사람','생물'이 아닌 무생물 자체를 표현하도록 한 연출의 아기자기한 씀씀이가 재밌었다.
그런데 연출님이 진정 내가 그린 상상의 환벽한 구현(!)해냈다고 생각하게 한 장면은 무생물 표현 부분이 아니라, 극 전체에 빠질 수 없는 요소로 등장하는 무희들의 존재, 그리고 무희들과 등장인물들을 관통하는 '특정한' 움직임의 표출이었다. 특히나 군무, 극 중에서의 남/녀 무용수들의 어지러운 얽힘들이 현기증나도록 아랫배를 간지럽혔다. 미실과 진흥제가 교합하는 장면이라든지, 미실이 원화가 되었을 때 화랑,낭도,낭주들이 뒤얽혔을 때라든지, 미실과 미생, 설원랑이 얽혀서 놀 때라든지, 마지막 동륜태자의 죽음이후 진흥제의 분노 때 무대 전면에서의 고문 장면이라든지, 전반적인 극 하중을 탄탄히 받춰준 다양한 '움직임'은 격렬하고 관능적이었다. 특히나 보는 내내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러한 이유는 그러한 움직임이 여성의 육체에서 비롯됬다기 보단 상대적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남성들의 노출된 몸체와 그에서 비롯된 강렬하고 미끈한 힘이 '움직임'의 밑바탕이 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것은 여성편의 시각으로서 단순이 멋지구리한 남우들이 빛나보였다는 헛소리일 수 있다;;)
한국적인 것, 그리고 거기에 기초를 둔 색다른 빛과 색, 움직임, 소리. 이렇게 2시간 반 동안의 소리/색과 어우러지는 향연을 관람하고 세상밖으로 나오니 왜이렇듯 바깥 세계의 햇빛이 시들시들한지. 연극을 보고 난 뒤 연출님과의 대화 이후 터질 듯한 심장이 아직도 두근거리는데, 아직 나는 나른한 꿈길 속을 헤매는 듯하고, 그저 먼먼 옛날- 정치와, 욕망과 꿈이 신화와 종교인 채로 뒤엉켜 있던-신라 시대를 걷고저만 하였다.
이것은 그저 덧붙이는 말이지만, 연출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회에 그저 던져놓아야 할 연극이 많으실 듯 하다. 다른 이들처럼 진흥제&동륜태자의 전라씬과 미생&설원랑의 성애장면이 절대절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책을 읽고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민망해 해버렸던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예의 바르다.(?) 특히나 진흥제의 노출씬까지는 잠잠하던 관객들이 미생과 설원랑의 성애장면에서는 적잖이 동요하더라; 거기가 둘이 키스를 하는 즈음에 와서는 남자들은 말할 거 없이 고개를 돌리면서 '미친놈들 변태아냐??'막 이러고 도처에선 여자들의 꺄아꺄악(?)거리는 소리가 미친듯이 들려댔다;;(물론 절대 고개 안돌리는 사람도 있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