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춘기-윈스턴 처칠

김희달200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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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기-윈스턴 처칠나의 청춘기-윈스턴 처칠 김희달 나의 청춘기-윈스턴 처칠2006.02.04 22:26나의 청춘기-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기-윈스턴 처칠0

세상에 이런 엄마는 처칠엄마, 재클린 케네디, 그리고 울엄마당.....ㅋㅋㅋ

 

......나는 더블린의 총독 관저에서 부인을 처음 뵈었던 때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부인은 입구의 왼편에 서 있었다.  총독은 기라성 같은 막료들에 에워싸여 응접실의 저편 쪽 대좌위에 있었지만 거기 운집한 사람들은 총독이나 총독 부인이 아니라 좀 외톨로 떨어져 있던, 주위 사람들과 살빛도 다르고, 약간 가무잡잡한 데다 몸매가 부드러운 여성- 그것은 찬란하도록 투명하고, 그러면서도 앙증스러운 면이 있는-에게로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머리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별 모양의 다이아몬드로 된 악세사리가 빛을 내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영롱한 눈빛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자태는 여성이라기 보다 어딘지 표범 같은 면이 강했다.  그러나 밀림에서는 찾아보지 못할 교양과 지성이 있었다.  그녀의 용기는 부군 못지 않았으며, 실지로 위대한 공작의 후예를 낳을 어머니로서의 자격이 충분했다.  이처럼 넘치는 재치와 상냥스러운 마음씨, 그리고 기력이 넘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다른이들이 인생을 즐기고 또 자신도 즐거움을 찾고, 더우기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행복을 나누어 갖고자 원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서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경애의 중심이 되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의 눈에도 이처럼 찬란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9

 

나는 샌드허스트에서 세상으로 나왔다.  그것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알라딘)의 동굴처럼 열렸다.  1895년 초부터 이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 나는 과거를 돌이켜 볼 시간이 없었다.  나에게 일이 없었던 날은 거의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였다.  중단이 없는 영화에서 나는 배우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대단히 즐거웠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요 부분을 이루는 1895년에서 1900년에 이르는 세월은 그 생기와 다양성과 노력이라는 점에서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느 것보다도 뛰어나 있었다.  다만 제1차세계대전 당초의 소개월 만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당시를 회상할 때 나는 생존의 선물에 대해서 마음으로부터 신에게 감사를 올려야만 하겠다.  나는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그 즐거움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파란, 모험과 여행, 그리고 항상 행동의 감각과 희망의 그림자, 모든 청년이여, 온 세계의 청년이여, 나서라.  이제 전쟁에 의해서 빼았긴 한 세대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지금이야 말로 여러분이 필요한 것이다.  여러분은 한 시간인들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생명의 전선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20세에서 25세까지다.  그 시기야말로 인생의 꽃이다.  단연코 현상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지상은 여러분의 것이고 지상의 풍요는 여러분의 것이다.  자진해서 유산을 물려받고 자진해서 여러분의 책임을 받아들여라.  빛나는 깃발을 다시 받들고 새로운 적을 향해 전진하라.  적은 끊임없이 인간의 군대가 있는 전선에 집결하는 것이다.  그것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오직 공격이 있을 뿐이다.  대답을 노우로 해서는 안 된다.  결단코 실패에 굴해서는 안된다.  단순한 개인의 성공이나 당파에 속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온갖 종류의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관용과 성실한 마음을 갖고 더우기 용맹하기도 하는 한은 여러분은 세계에 상처를 주지도 않을 것이며, 또 세계를 깊이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다.  세계는 청혼되어야 할것이고, 청년에 의해서 획득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세계는 정복을 되풀이 하는 것으로서만 살고 그리고 번영하는 것이다.-70-71

 

아버지는 1월24일 새벽에 돌아가셨다...나의 모든 꿈, 즉 아버지의 동지가 되어 의회에서 옆자리의 의석에 앉아 아버지를 지원한다는 것은 끝장이 나고 말았다.  나에게 남겨진 것은 오직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의 명성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나의 운명과 혼자서 맞서야 할 그 주인공이 되었다.  어머니는 늘 옆에서 도와주고 충고해 주었지만 나는 이제 벌써 21세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더이상 간섭은 일절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어머니는 곧 나의 열렬한 협력자가 되어 온갖 영향력과 무한한 에너지를 갖고 그의 계획을 돕고 나의 이익을 지켜 주셨다.-73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나는 평생을 통해서 그런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해 왔다.  수년 뒤의 일이지만 웰든 씨가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내가 아루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하루 중에 사람들과의 약속을 차례로 10분씩 늦추어가는 것을 습관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나도 그 명언에 전면적으로 동감이다 그것의 유일한 솔직한 해결책은 약속중의 하나나 두 가지를 아주 그만둠으로써 다른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할 만큼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주 드물다.  한사람의 명사에게 변명을 해서 정물에서 돌아가게 하는 것이 10분씩 때문에 9명의 정당한 대표들을 노여웁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106

 

인간은 불운을 만났을 때는 앞으로 더 큰 불행에서 구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또 어떤 일이든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충분히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심했을 때보다도 더 이상으로 그것이 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생이라는 것은 전체로 보아야 할 것이며 행운도 전체로서 보아야 한다.  그것은 다른 것과 분리시킬 수 없는 일부인 것이다.-114

 

나는 만 22세의 해를 보내게 된 1896년 겨울이 되어 비로소 공부를 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었다.  나는 자신이 많은 사상의 분야에 관한 막연한 지식도 제대로 갖지 못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널리 말을 찾고 말 그 자체와 말의 적부적의 느낌.  그리고 그 말을 마치 슬러트 머신에 동전을 넣듯 적응시키는데 정신을 썼다.  나는 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여러가지 훌륭한 말을 쓰게 되었다.  나는 그런 말들에 경의를 표시했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식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121

 

모든 창조물은 꿈에 불과하고 모든 현상은 공상의 만물이다.  우리는 걸어감에 따라 우리 자신의 우주를 창조한다.  그 공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주도 또한 다종다양으로 풍부한 변화를 갖는다.  그리고 그 꿈을 버릴 때는 우주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