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 또한 행복하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상태가 악화되기 전 자신을 알현한 폴란드 신부와 수녀들에게 남긴 작별 메모의 내용이다.서민적이고 겸손하면서도 용기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았던 교황의 면면은 그의 발언을 통해 나타나곤 했다.●“전쟁은 항상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인류의 패배다.” 2003년 1월13일 이라크 개전 직전에 외교관들에게 이같이 말하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다. 이후 바티칸과 미국은 불편한 관계가 됐다.●“두려워 마라. 그리스도에게로 문들을 활짝 열어라.” 1978년 10월16일 교황선출 뒤 첫 대중연설서.●“기독교도와 무슬림은 과거에 서로를 비난하며 전쟁 지경까지 갔었다. 이같은 습관을 고치라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1985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종교간 대화를 강조했다.●“마하트마 간디는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1986년 인도 방문 중.●“여러분은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이다.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은 우리의 형이다.” 1986년 로마 시나고그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대교도들에게 한 말.●“나는 83세의 젊은이” 2003년 5월 마드리드에서 젊은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황은 “젊은 교황을 원한다고요. 사실 나도 젊은 교황이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농담을 던졌다.●“오늘날까지 유대인 대학살 사건은 반유대주의가 인류에 큰 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1994년 출간한 저서 ‘희망의 문지방을 넘어’에서●“교황은 바티칸 안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초원의 유목민들로부터 수도원 수사, 수녀들까지 만나고 싶다. 또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싶다.” 취임 초기 기자들에게.●“모든 종교가 지구촌에 정의, 평화, 용서 그리고 생명을 가져 올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미국의 9·11테러 이후 2002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회의 연설.▲"두려워 말아라. 그리스도에게로 문들을 활짝 열어라"- 1978년 10월16일 교황선출 후 첫 대중연설에서 ▲"육체적 상태 혹은 나이를 먹는 것이 완전한 삶에 방해물이 아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영혼을 보신다"-2003년 83세 생일날에 ▲"나는 83세의 젊은이"- 2003년 5월 마드리드에서 젊은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나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면 내 건강을 언급한 신문을 읽어요"- 1998년 쿠바행 기내에서 기자들과 농담하면서▲"교황은 바티칸 안에 죄인처럼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 나는 초원의 유목민들로 부터 수도원의 수사.수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만나고 싶다.또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싶다"- 취임 초기에 기자들에게 ▲"전쟁에 반대한다. 전쟁은 항상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인류의 패배이다"- 2003년 1월 13일 이라크 개전 직전에 외교관들에게 ▲"폭력과 전쟁 그리고 테러가 또다시 있어서는 안된다. 모든 종교가 지구촌에 정의, 평화, 용서 그리고 생명을 가져 올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미국에서의 9.11테러 이후 2002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회의 연설에서 ▲"이 나라에 개혁해야 할 것이 있다"- 1983년 아이티에서 열린 대중집회에서 굳은 표정의 쟝 클로드 뒤발리에 대통령을 면전에 두고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다. 마피아 혹은 어떤 그룹도 하나님의 이같은 가장 거룩한 법을 유린해서는 안된다"- 1993년 시실리에서 마피아를 비난하면서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대체적으로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과거에 우리는 서로 반대했으며 때로는 서로를 비난하며 전쟁의 지경에 까지 갔었다. 이같은 습관을 고치라고 하느님이 오늘 우리에게 명령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1985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여러분은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러분은 우리의 형입니다"-1986년 로마 시나고그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대교도들에게▲"그(마하트마 간디)는 기독교도가 아니었으며 그런 척도 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로 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1986년 인도방문중에 ▲"오늘 날까지 유대인 대학살 사건은 반(反) 유대주의가 인류에 큰 죄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1994년 출간한 저서 '희망의 문지방을 넘어'에서 ▲"자식들을 죽이는 국가는 장래가 없다"-1996년 폴란드에서 낙태 자유화 논의가 한창일 때 ▲"모든 비난을 모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1979년 미국 여행중에 ▲"복음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전체를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987년 미국 가톨릭교도들에게 ▲"(로마로) 가기 싫어. (I hate to go.)"- 2002년 8월19일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후 로마로 출발하기에 앞서 ▲"나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2005년 2월24일 기관절제 수술을 받은 후 쓴 메모에서
교황의 어록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상태가 악화되기 전 자신을 알현한
폴란드 신부와 수녀들에게 남긴 작별 메모의 내용이다.
서민적이고 겸손하면서도 용기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았던 교황의 면면은 그의 발언을 통해 나타나곤 했다.
●“전쟁은 항상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인류의 패배다.” 2003년 1월13일 이라크 개전 직전에 외교관들에게 이같이 말하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다. 이후 바티칸과 미국은 불편한 관계가 됐다.
●“두려워 마라. 그리스도에게로 문들을 활짝 열어라.” 1978년 10월16일 교황선출 뒤 첫 대중연설서.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과거에 서로를 비난하며 전쟁 지경까지 갔었다. 이같은 습관을 고치라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1985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종교간 대화를 강조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1986년 인도 방문 중.
●“여러분은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이다.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은 우리의 형이다.” 1986년 로마 시나고그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대교도들에게 한 말.
●“나는 83세의 젊은이” 2003년 5월 마드리드에서 젊은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황은 “젊은 교황을 원한다고요. 사실 나도 젊은 교황이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농담을 던졌다.
●“오늘날까지 유대인 대학살 사건은 반유대주의가 인류에 큰 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1994년 출간한 저서 ‘희망의 문지방을 넘어’에서
●“교황은 바티칸 안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초원의 유목민들로부터 수도원 수사, 수녀들까지 만나고 싶다. 또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싶다.” 취임 초기 기자들에게.
●“모든 종교가 지구촌에 정의, 평화, 용서 그리고 생명을 가져 올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미국의 9·11테러 이후 2002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회의 연설.
▲"두려워 말아라. 그리스도에게로 문들을 활짝 열어라"
- 1978년 10월16일 교황선출 후 첫 대중연설에서
▲"육체적 상태 혹은 나이를 먹는 것이 완전한 삶에 방해물이 아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영혼을 보신다"-
2003년 83세 생일날에
▲"나는 83세의 젊은이"- 2003년 5월 마드리드에서 젊은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나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면 내 건강을 언급한 신문을 읽어요"- 1998년 쿠바행 기내에서 기자들과 농담하면서
▲"교황은 바티칸 안에 죄인처럼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 나는 초원의 유목민들로 부터 수도원의 수사.수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만나고 싶다.또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싶다"
- 취임 초기에 기자들에게
▲"전쟁에 반대한다. 전쟁은 항상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인류의 패배이다"
- 2003년 1월 13일 이라크 개전 직전에 외교관들에게
▲"폭력과 전쟁 그리고 테러가 또다시 있어서는 안된다. 모든 종교가 지구촌에 정의, 평화, 용서 그리고 생명을 가져 올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 미국에서의 9.11테러 이후 2002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회의 연설에서
▲"이 나라에 개혁해야 할 것이 있다"
- 1983년 아이티에서 열린 대중집회에서 굳은 표정의 쟝 클로드 뒤발리에 대통령을 면전에 두고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다. 마피아 혹은 어떤 그룹도 하나님의 이같은 가장 거룩한 법을 유린해서는 안된다"
- 1993년 시실리에서 마피아를 비난하면서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대체적으로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과거에 우리는 서로 반대했으며 때로는 서로를 비난하며 전쟁의 지경에 까지 갔었다. 이같은 습관을 고치라고 하느님이 오늘 우리에게 명령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 1985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여러분은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러분은 우리의 형입니다"
-1986년 로마 시나고그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대교도들에게
▲"그(마하트마 간디)는 기독교도가 아니었으며 그런 척도 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로 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1986년 인도방문중에
▲"오늘 날까지 유대인 대학살 사건은 반(反) 유대주의가 인류에 큰 죄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 1994년 출간한 저서 '희망의 문지방을 넘어'에서
▲"자식들을 죽이는 국가는 장래가 없다"
-1996년 폴란드에서 낙태 자유화 논의가 한창일 때
▲"모든 비난을 모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1979년 미국 여행중에
▲"복음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전체를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987년 미국 가톨릭교도들에게
▲"(로마로) 가기 싫어. (I hate to go.)"- 2002년 8월19일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후 로마로 출발하기에 앞서
▲"나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 2005년 2월24일 기관절제 수술을 받은 후 쓴 메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