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 때까지[굉장히오래되었다] 25대 472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역사서다.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여러 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왕조의 상세하고도 철저한 기록이다. 실록의 편찬은 사관이라는 관직을 둬 독립성을 보장하고, 기술에 대한 비밀성을 철저하게 보장했다. 왕도 함부로 실록을 열어볼 수 없을 정도였다.[이렇게 우리에게는 상당히 귀중하고 가치있는것이였다]
사료가 완성되면 특별히 설치한 사고(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었다. 그러나 1900년대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 전해져 왔고, 정족산,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1910년 경성제국대학(오늘날 서울대)으로 이관되었다가 해방 뒤 서울대 규장각에 그대로 소장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적상산 사고는 옛 황궁 장서각에 소장되었다가 한국 전쟁 당시 북한이 가져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이 보관하고 있는 사본은 국가기록원 부산기록정보센터(옛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로 이관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 등 총 2077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세계적으로도 인정해 주고 있다] 오대산 사고본은 태조부터 명종까지 실록은 전주사고본을 모본으로 새로 인출한 교정본을 보관하고, 선조부터 철종까지 조선왕조의 역사를 담고 있다.
조선총독부 취조국은 1911년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 사고본을 강제로 접수하였고[그것도 인근마을의 우리 민족의 손으로 하였다고한다.] 이중 가장 완전한 오대산 사고본은 1912년 도쿄대 교수였던 시로도리가 도쿄대로 강제로 이송했다. 일본으로 간 오대산본은 1923년 9월1일 관동대지진으로 불에 탔는데[가져가놓고 가치를 모른다], 다행히 연구실에 대출했던 73책이 남았다. 이 가운데 46책은 도쿄대가 그대로 소장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문화재청의 조사와 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의 현지 조사로 밝혀졌고, 나머지 27책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알수 없으나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고 있다. 도쿄대에 보관된 오대산본은 중종실록 29책, 선조실록 8책, 성종실록 9책 등이다.
박한남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은 “흩어진 오대산본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오대산본은 교정본으로 가필이나 교정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 실록 편찬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일본 도쿄대까지 흘러가게 되었을까?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 때까지[굉장히오래되었다] 25대 472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역사서다.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여러 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왕조의 상세하고도 철저한 기록이다. 실록의 편찬은 사관이라는 관직을 둬 독립성을 보장하고, 기술에 대한 비밀성을 철저하게 보장했다. 왕도 함부로 실록을 열어볼 수 없을 정도였다.[이렇게 우리에게는 상당히 귀중하고 가치있는것이였다]
사료가 완성되면 특별히 설치한 사고(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었다. 그러나 1900년대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 전해져 왔고, 정족산,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1910년 경성제국대학(오늘날 서울대)으로 이관되었다가 해방 뒤 서울대 규장각에 그대로 소장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적상산 사고는 옛 황궁 장서각에 소장되었다가 한국 전쟁 당시 북한이 가져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이 보관하고 있는 사본은 국가기록원 부산기록정보센터(옛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로 이관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 등 총 2077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세계적으로도 인정해 주고 있다] 오대산 사고본은 태조부터 명종까지 실록은 전주사고본을 모본으로 새로 인출한 교정본을 보관하고, 선조부터 철종까지 조선왕조의 역사를 담고 있다.
조선총독부 취조국은 1911년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 사고본을 강제로 접수하였고[그것도 인근마을의 우리 민족의 손으로 하였다고한다.] 이중 가장 완전한 오대산 사고본은 1912년 도쿄대 교수였던 시로도리가 도쿄대로 강제로 이송했다. 일본으로 간 오대산본은 1923년 9월1일 관동대지진으로 불에 탔는데[가져가놓고 가치를 모른다], 다행히 연구실에 대출했던 73책이 남았다. 이 가운데 46책은 도쿄대가 그대로 소장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문화재청의 조사와 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의 현지 조사로 밝혀졌고, 나머지 27책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알수 없으나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고 있다. 도쿄대에 보관된 오대산본은 중종실록 29책, 선조실록 8책, 성종실록 9책 등이다.
박한남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은 “흩어진 오대산본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오대산본은 교정본으로 가필이나 교정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 실록 편찬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전 느낌표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진짜 분노에 차오를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민족으로써 , 자존심이고 머고 그런것보다는
우리가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것이 일본인들에게
망가졌다는게 너무나 ... 안타까웠다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것이다.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기었다.
근데 그것을 그것도 우리 민족의 손으로, 조금만 제대로 안해도
화풀이용인듯양 사람을 마구잡이로 패고, 죽이고, 어른공경따위정
도는 바닥에 내다 버린지 오래였을것이다.
아니 그들은 잘 몰랐겠지, 그것이 예의라는것 조차도
그저 힘쎈 자들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보다 약한자들에게는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상상?)
느낌표에서 재현을 하는데, 어떤 나이 먹으신 분이
막으실려고 몸을 내던지셨는데 그걸 발로 밟고...(그렇게
연기를 잘하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화가 났다)
더 웃긴건, 가져갔으면 보존이라도 좀 제대로 해주던지 ?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자꾸 우기는데
과연 일본인 전체가 그렇게 말할수 있을까 ?
우리 한국인은 모두 그렇게 말할수있다 허나,
일본일들 중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게 일본과 우리 대한민국의 차이다 ?
나는 우리 민족 모두가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할수있음을
굳건히 믿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