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도현 소령님 친구분이 쓰신 글

Ryan Lee2006.05.08
조회190
고 김도현 소령님 친구분이 쓰신 글

고 김도현 소령님의 동창 친구분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http://econostory.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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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으로 어린이날이던 어제 수원 비행장에서 에어쇼 도중 추락사한 공군 블랙이글팀 소속 고 김도현 대위는 저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오랜 친구입니다. 2학년 때는 같은 반이었고, 3학년 때는 학생회 일을 함께 했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 친구는 사관학교로, 저는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 뒤로도 꾸준히 만나던 사이였습니다. 대위를 달고 난 뒤에 엘리트 장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이 친구도 모 대학교의 경영학과 대학원에 위탁교육을 2년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가 다니던 학교가 그 무렵 제가 다니던 연구소 바로 옆이었고, 집도 근처였던지라 가끔 술도 한 잔씩 하고 그랬었죠. 그의 지도교수가 제 대학교 과 선배라는 인연도 있었고. 그가 결혼을 한 것도 이 시절이고, 제가 유학을 나온 것도 이 때였죠. 그 뒤로는 몇 년간 본 적이 없군요.

 

그가 블랙이글팀에 있다는 것은 얼마전 [기술은 누구 것?]이라는 포스팅을 써놓고 여기에 첨부할 만한 적당한 사진을 얻으러 블랙이글팀 웹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당장이라도 달려가 축하를 해 주고 싶었지만 제 처지가 처지인지라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죠. 다음에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불러서 술 한 잔 해야겠다면서 말이죠.

그에게 블랙이글팀은 각별한 것이었을 겁니다.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했던 가까운 친구들은 대충 아는 얘긴데, 그가 공군사관학교로 진로를 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이 시절 그가 인상깊게 봤던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탑 건]이었기 때문이죠. 그 영화에 나오는 엘리트 조종사들의 모습이 그렇게도 근사해 보였던지 2학년 말 무렵부터 그는 자신은 공군사관학교를 가서 탑건이 되고야 말겠다며 노래를 부르고 다니더군요. 그리고 결국은 정말로 공군사관학교에 가서 조종사가 되었지요.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그가 대한민국 공군 최정예 조종사들로만 구성된 블랙이글팀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그가 얼마나 기뻐했을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죠. 그리고 이거야말로 위인전에나 나오는 "어릴 적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인간 승리의 스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직접 축하는 못해줬지만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녔죠. 내 친구 중에 이런이런 놈이 있다고. 저도 신이 났었거든요. 녀석이 대견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걸 채 축하해주기도 전에 그가 먼저 가 버렸군요.

 

고3 때 이 친구는 학생회장을 했죠. 우리가 2학년 때는 제가 학년장 비스무리한 개념인 학생회 부회장을 했었는데(그 무렵 3학년이 회장을, 2학년과 3학년 각 1명씩이 부회장을 맡았음), 3학년이 되면서 학생회장단을 새로 뽑는 선거를 하게 되었을 때 저는 선거관리위원장이었고 이 친구랑 다른 한 친구가 출마를 했죠.

전교생이 지켜 보는 앞에 유세를 하는데 연설 원고를 허공에 냅따 집어 던지는 이벤트성 퍼포먼스를 한 끝에 이 친구가 당선이 되었죠. 그 전에도 이 비슷한 퍼포먼스를 했던 후보가 당선된 적도 있었고 해서, 그 뒤로 우리들 사이에서는 "학생회장이 되려면 원고를 집어던지면 된다"는 우스개가 돌기도 했죠.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 다음 해 학생회장 선거 때는 몸에다 물을 퍼붓는 놈에, 연설대에 식칼을 꽂아 놓고 연설하는 놈까지 나왔다고 하더군요.)

선거가 끝나고 난 뒤 이 친구와 부회장이 된 또 다른 친구가 저를 찾아와서는 임기 끝났다고 그냥 손 떼지 말고 같이 한 번 멋지게 학생회를 꾸려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더군요. 결국 한 번 잘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되었죠. 그래서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학생회 간부진을 인선하고 하나하나 영입을 하기 시작했지요. 비평준화 학교였던 모교의 특성 상 고3들을 학생회 간부로 끌어들이는 것이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그럴 듯한 학생회가 구성되었죠. 우리는 이걸 [드림팀]이라고 불렀죠.

전교조 직후 세대였던 우리는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그 전까지만 해도 모교의 학생회 역사를 통털어 개념도 없던 온갖 일들을 벌리고 다니기 시작했죠.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말이 들어맞을 정도로, 한번도 제대로 된 걸 본 적도 없었던 고등학교 학생회 활동의 전범을 우리는 하나씩하나씩 만들어가기 시작했죠. 그 중 하이라이트는 캠프파이어에 축하공연까지 동원한 학교 축제였죠.

축제 준비를 위해 이런저런 구상을 할 때 교장선생님이 이걸 허락하시겠냐고 지레 겁을 먹고 있던 제게, 이 친구와, 부회장을 맡고 있던 다른 한 친구는 "퇴학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원안대로 성사시키겠다"며 의지를 불태웠죠. 결국 교장선생님과의 담판 끝에 우리는 학교 측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았고(리더의 "추진력"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하는 걸 전 이 때 배웠습니다.), 결국 축제는 전례없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죠. 그 때부터 학교 안에서, 그리고 선후배들 사이에서, 그리고 인근 여학교들에서까지 우리들은 유명인사가 되기 시작했죠. 거기다 그 해 학생회 간부진은 유례없이 성공적인 입시성적을 거두었고, 그 때부터 우리들은 모교의 역사에 "전설"로 남기 시작했죠.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고 김도현 대위, 이 친구가 있었죠. 그리고 저로서는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 1년을 그와 동고동락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셈이죠.

 

"관중석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비상탈출을 포기하고 끝까지 조종간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는 게 공군 관계자의 추측이라는군요. 충분히 그럴 놈이죠. 바보같은 자식.

이런 순간에 멀리서 속만 태우고 있어야 한다는게 정말 못할 짓이군요. 휴...나중에 다시 씁니다.
 

 
"...like a shooting star..."

오늘 가까운 외국 친구 녀석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가만히 듣던 이 녀석이 저런 얘기를 하더군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짧고 굵게" 살다 갔다 정도. 어린 시절의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그 꿈을 결국에는 이루었고, 순식간에 산화했고. 가장 화려할 때에 스러져가는 유성처럼 말이죠.

하지만 유성도 가장 화려할 때에 우리 눈에서는 사라지는 건 맞지만 간혹은 그 잔해가 지상까지 날아와 쳐박히기도 하죠. 그 때는 더 이상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이 아니죠. 저 친구가 인생이 황금기까지 유감없이 맛보고 사라져간 것은 맞지만, 그 뒤로 남은 것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옵니다.

어제가 마침 이 친구의 결혼기념일이었군요. 그러고 보니 기억 나는 것이, 이 친구가 결혼할 때 그 무렵 다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우리들은 꽤나 투덜거렸지요. 대놓고 "아 시방새, 하필이면 간만에 노는 날(어린이날)에 꼭 장가를 가야겠나!!!" 하기도 했으니깐 말이죠. 그러면 이 친구는 특유의 그 유들유들함으로 얼렁뚱땅 상황을 모면하곤 했죠. (실제로 우리들 사이의 대화는 저것보다 훨씬 험악했죠.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싸우는 줄 안다는 경상도 사내들 특유의 대화법이죠.)

이 친구가 남겨놓고 간 제수씨와 애기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앞으로 이들이 헤쳐나가야 할 험난한 길을 생각하면, 그 놈의 잘난 군인정신 때문에 조종간을 놓지 않고 게기다 혼자서 저 세상으로 간 이 친구한테, 고등학교 때 으레 그랬듯이, 쌍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은 심정입니다, 정말.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서는 그의 사고 소식을 제가 제일 먼저 안 축에 들겁니다. 어제 간만에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이곳 시간으로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와서 여느때처럼 인터넷에 접속해서 네이버 뉴스에 들어갔더니 갓 올라온 사고 뉴스가 몇 개 전면에 올라와 있더군요. "블랙이글"이라는 이름이 눈을 잡아 끌길래 클릭해 봤더니 "33살 김모 대위"가 사망했다는 얘기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조종사 몇 명 안 되는 블랙이글팀에 성도 같고, 나이도 같고, 계급도 같은 사람이 더 있을 것 같지는 않더군요. 블랙이글 공식 싸이트와 팬싸이트는 트래픽 과다로 이미 막혀있는 상황이고...도무지 확인이 안 되더군요. 혹시나 싶어 한국의 몇몇 친구놈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어린이날이랍시고 여기저기 놀러나가 있느라 다들 금시초문이더군요. 그 때가 사고난 지 두 시간쯤 지난 뒤였죠.

결국 그 "김모 대위"가 우리 친구 "김도현 대위"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는 30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모 중앙부처 공무원으로 있는 녀석이 명함을 팔아서 여기저기 쑤셔본 결과 "그 놈이 그 놈"이라는 걸 확인했더군요. 혹시나 혹시나 하다가 역시나가 된 것이죠.

확인 결과를 알려 주던 친구 녀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면서 간혹 코 훌쩍거리는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렸다는 게 저의 공연한 환청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제가 다시 이쪽저쪽에 중계해 주었을 때 전화를 받던 친구놈들의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제가 생생히 떠올렸던 것도 저의 쓸데없는 오버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 직후에 네이버에 이 친구의 사진과 이름이 떴죠. 이름도 비슷한, 한겨레신문 김도형 기자의 기사가 그것입니다.

 

"친구의 죽음"이라는 건 그런 것이죠. 나이를 한살 두살 더 먹어가면 갈수록, 그리고 세상의 찌든 때에 쩔어가면 갈수록, "친구", 그것도 "어린 시절 친구"의 무게는 한없이 크게 다가오죠.

몇 년 전에 저와 제 고등학교 동기들은 이미 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저와는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를 함께 한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는데, 대학교 5학년때 일찌감치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군 법무관으로 가 있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죠.

그 때에 비해 이번에 제가 몇 배 더 비통함을 느끼는 것이, 비단 제가 먼저 죽은 친구보다는 김도현 대위와 더 친했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그 보다는, 그 때는 "친구"의 소중함이나 "어릴 시절 친구의 죽음"의 의미를 제가 잘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이지 싶습니다. 쉽게 말해, 저는 이 두 사람의 죽음 사이에 나이를 훌쩍 먹어버렸고, 세상에 더 많이 치어 버렸고, '어린 시절 친구"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삶"이라는 것에 대해 더 많은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겠죠.

앞으로 저의 "친구들"은 하나씩 하나씩 죽어나가겠죠. 어쩌면 제가 먼저 죽어나갈 지도 모르고 말이죠. 그리고 졸업앨범에서 얼굴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갈 때마다 그것으로부터 느끼는 슬픔의 크기는 2배, 3배로 늘어나겠죠. 그것이 사람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겠죠. 세상의 험난함은 점점 더 절실하게 느끼는데, 같이 할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나가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이겠죠.

옛말에 "욕 많이 먹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하죠. 이게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정도는 진실을 담고 있는 것도 같아요. "좋은 사람들" 중에 일찍 간 사람들이 많죠. 김 대위도 그렇고 말이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죽어나갈 때마다 우리는 더 불안해 질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이 친구는 무척 솔직담백한 스타일이었어요. 말을 한 마디 하더라도, 이것저것 재고 머리 굴리며 영리떠는 스타일이 아니었죠. 그리고 그는 "불의"에 익숙하지 못했죠. 뭔가 그의 도덕적 기준에서 찜찜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그게 얼굴 표정에 나타나곤 했죠. 참 순수하고 올곧고, 어떤 의미에서는 참 고지식한 친구였죠. 그것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것 땜에 예전에 같이 일하면서 저로서는 참 갑갑한 순간이 많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기기도 하지만.

어쨌건...
"관중석을 덮치지 않기 위해 비상탈출을 포기하고 끝까지 조종간을 지켰다"는 공군 관계자의 말에 대해 이거 너무 오바질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블랙박스 분석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제가 보기엔 그의 평소 스타일을 생각했을 때 저게 설사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만일 관중석 덮치는 것과 자기가 죽는 것,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 친구는 분명히 후자를 골랐을 겁니다. 이 친구는 그런 친구였어요.

그래서 제가 더 화딱질이 나는 것이죠. 신문기사들을 봤더니 비행기가 좀 시원찮았던 모양이던데, 이런 애들한테 비행기라도 좀 쓸만한 걸 줘놓고 쑈를 시키든 미친 지랄을 시키든 하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아놔...

 

멀리 있다는 핑계로 분향소도 못 가고, 영결식에도 못 가고, 시차 안 맞아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전화도 못하고, 괜히 전후 모르는 주변 사람들만 하루종일 괴롭히다가 그냥 이것저것 주절거려봤습니다. 어제 한국 들어가는 비행기 티켓을 알아봤더니 1,200불이 넘어가더군요. 저한테는 2달치 생활비죠. 결국 포기하고 혼자서 분통터져하고 있는 중입니다. 있다가 한국 친구들한테 전화질이나 해야겠어요.

p.s.: 영결식이 5월8일 어버이날이라더군요. 어린이날, 그것도 결혼기념일에 죽어서 어버이날에 관에 실려 나간다니...내 참...날이라도 좀 골라서 죽든가...어휴...씨* 새*..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고 김도현 소령님 같은 분이 있기에 학성인으로서 자랑스러웠습니다. 선배님 부디 좋은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