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로버트슨은 농장에 고용되어 일하는 젊은 여자였습니다. 이 안나는 자기처럼 농장에서 일하던 착실한 총각을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그 신랑의 이름은 탐 모세스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열심히 일해 마침내 자기들의 농장을 마련하게 되었고, 슬하에는 10남매를 두었습니다. 안나는 농가의 부인으로 또 여러 자녀들의 어머니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습니다. 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뜨개질이나 수를 놓았습니다. 그러던 중, 80세에 접어들면서 안나의 손은 관절염으로 점점 고통스럽고 둔해졌습니다. 그래서 안나는 손이 덜 고통스러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그래도 견딜만 했기 때문입니다. 안나의 그림은 대부분이 농장과 시골 풍경이었습니다. 하루는 뉴욕의 어떤 미술작품 수집가가 안나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한 상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벽에 걸려있는 몇 점의 그림이 그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물론 안나의 그림이었습니다. 이 후로 안나는 갑자기 유명한 화가로 데뷔하게 되었고, 모세스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역사적인 화가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안나가 80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도 무려 1,500 점의 그림을 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80세의 노인이 이렇게아름다운 성공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손에 관절염으로 인한 고통이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통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열심, 의욕, 추진력, 인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경과 고통이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일까? 「코끼리 남편」/ 윤영준
안나 로버튼
안나 로버트슨은 농장에 고용되어 일하는 젊은 여자였습니다.
이 안나는 자기처럼 농장에서 일하던 착실한 총각을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그 신랑의 이름은 탐 모세스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열심히 일해 마침내 자기들의 농장을 마련하게 되었고, 슬하에는 10남매를 두었습니다. 안나는 농가의 부인으로 또 여러 자녀들의 어머니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습니다.
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뜨개질이나 수를 놓았습니다.
그러던 중, 80세에 접어들면서 안나의 손은 관절염으로 점점 고통스럽고 둔해졌습니다. 그래서 안나는 손이 덜 고통스러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그래도 견딜만 했기 때문입니다. 안나의 그림은 대부분이 농장과 시골 풍경이었습니다.
하루는 뉴욕의 어떤 미술작품 수집가가 안나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한 상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벽에 걸려있는 몇 점의 그림이 그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물론 안나의 그림이었습니다. 이 후로 안나는 갑자기 유명한 화가로 데뷔하게 되었고, 모세스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역사적인 화가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안나가 80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도 무려 1,500 점의 그림을 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80세의 노인이 이렇게아름다운 성공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손에 관절염으로 인한 고통이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통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열심, 의욕, 추진력, 인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경과 고통이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일까?
「코끼리 남편」/ 윤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