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머리에 (1728년 무신사태 고찰, 2003년, 아이올리브)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가야산, 황강, 남명 조식, 내암 정인홍, 무신사태(이인좌란, 무신란), 사필귀정. 내 가슴의 한 자락을 붙잡아 매어 놓은 화두(話頭)들…
나는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긴자들의 역사논리와 왕조사관에 의해 왜곡 폄하된 역사적 인물과 역사적 사태에 대하여 새롭게 재조명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고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잘 것 없는『1728년 무신사태 고찰』이라는 책을 감히 발간하게 된 것은 나의 고향이 합천이기 때문이며, 또한 나의 7대(8세)祖인 조성좌(曺聖佐) 선조께서 영조 4년인 1728년 무신년 3월에 발발한 소위 무신란(戊申亂) 때 핵심적 인물로서 합천에서 기병(起兵)을 한 필연적 운명적 관계 때문이다.
나의 선친인 휘 재연(再然)께서는 농업과 운수업을 함께 했던 관계로 어릴 적에 나는 화물자동차를 타고 집에서 100여리나 떨어져 있는 합천 봉산의 석가산에 소재한 성좌 선조의 묘소에 성묘를 가면서, 이른바 무신란에 대하여 선친으로부터 단편적인 얘기를 듣곤 하였다. 1969년에 선친께서 무신사(戊申事)에 대한 재평가와 문중의 정체성 및 시원(始原)에 대하여 복원을 시도하였으나 자료의 부족 등으로 난관에 봉착하고, 설상가상으로 1973년에 선친께서 만52세로 별세함으로써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1996년 5월에 부록으로 펴낸『1728년 조성좌의 기병과 무신사태에 관한 고찰』중, 오기 오류 부분을 정정하고 보완하여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다시 발간하게 된 것은 외람되지만 개인적으로 의미가 적지 않다.
나 자신이 조선시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는 문외한이었던 관계로, ‘내암 정인홍(來庵 鄭仁弘)’ 선생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합천 가야 야천리와 ‘동계 정온(桐溪 鄭蘊)’ 선생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거창 위천 강천리와 합천 봉산 노곡리, 그리고 나의 선대 때 거주했던 창녕 고암 간상리, 상주 사벌 매호리와, ‘도촌, 오계, 도계’ 公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합천 봉산 압곡리, 묘산 도옥리 및 안성리, 합천 용주 월평리, 부산 광안리 등지를 방문하거나 전화 및 서신 등을 통하여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을 수집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조선왕조 500년 동안 사회 정치 사상적 측면에서 합천을 비롯한 경상우도에 큰 족적을 남긴 역사적 인물은, 現 합천 삼가 및 가야에서 각각 출생한 ‘남명 조식(南冥 曺植)’선생과 ‘내암 정인홍’선생이며,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태는 1728년 영조4년 3월에 現 합천 거창 함양 등에서 일어난「무신사태(戊申事態)」라고 하는 사실을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남명은 공리공담의 사변적 철학으로 현실과 유리(遊離)되어 있었던 보수적 사림들과는 달리, 경의(敬義)로 대표되는 의리철학 실천궁행과 문무겸전을 강조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명의 문인들이 대거 창의(倡義)하여 국가의 위기를 수수방관하지 않고 직접 참여하는 투철한 선비정신을 보여준 것도 남명의 사상적 영향에 기인한 것이다.
남명의 수제자인 ‘내암 정인홍’선생 역시 민본과 이용후생의 개혁적 정치철학으로 내치와 외교 양면에서 역사적 역할을 다한 인물이다. 임진왜란 때는 합천에서 창의하여 많은 공을 세웠고, 특히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을 왜적의 침탈로부터 보호 보전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 때 창의한 인물로는 의병대장 정인홍을 필두로 전치원 이대기 전제 이흘 허자대 정질 윤탁 윤선 박사제 박엽 권양 송희순 노순 노흠 하혼 문경호 안극가 박이장 윤담손 이동로 문홍도 조응인 등이다. 그 후 내암은 임진왜란으로 피폐된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정치를 혁신하는데도 일조를 하였으며, 1618년(광해10)에는 경상우도 출생으로 영의정에 제수된 불세출의 인물이었다.
이와 같이 조선왕조 500년 동안 합천을 비롯한 경상우도 사림(士林)은 선조, 광해 때에 최고의 번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광해 말년인 1623년 3월 ‘율곡 이이’를 모집단으로 하는 서인들이 주도하고 ‘퇴계 이황’ 문인들의 남인들이 동조하여 일으킨 이른바「인조반정」으로 내암이 죽임을 당하고, 1694년(숙종20) 서인 분파인 노론에 의해 경상좌우도 남인들이 축출되는「갑술환국」등을 거치면서, 특히 합천을 비롯한 경상우도의 사림(士林)들은 집권 세력인 노론으로부터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매도되는 등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후 부패하고 무능한 집권 노론(老論) 세력에 의한 불평등 인사 등 경상우도에 대한 지역차별이 더 한층 심화되자 이러한 현상들을 타파하기 위한 강력한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무신사태」다.
1728년 무신년(戊申年)에 現 합천 거창 함양 청주 안성 문경 상주 정읍 부안 서울 평양 경흥 등지에서 봉기한「무신사태」(무신란, 이인좌란)는, 특히 합천 등 경상우도인 우리 고장에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現 합천 거창 함양 등지의 지역민은 대부분 가담하였는데, 합천지역에는 조성좌(曺聖佐), 정좌, 덕좌, 명좌와 정상림 권만항 배중도 윤종영 이성동 임한성 허련 백세달 등이 주도하였고, 거창에는 정희량(鄭希亮), 세유, 관유 등이, 함양에는 신수헌(愼守憲) 최존서 등이 주도하였다. 진주의 이덕일, 창녕의 조세신(曺世新), 고성의 박필이․선이 형제와, 하동의 이명근, 산청의 조철(曺澈) 정의원(鄭宜瑗) 등의 지역민도 가담하여 경상우도에서만 7만명이나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 7만명이 기병(起兵)에 참여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적 모순과 갈등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무신란의 역사적 성격은 조선후기 정치체제와 권력구조가 지니고 있던 모순에 의하여 일어난 소계층의 변혁운동이다"라고 평가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다.
무신거사에 가담한 이인좌 정희량 박필현 조세추 이사성 신천영 민관효 조성좌 권만항 정상림 등 수백명에 대한 신문 내용과 그 처리결과를 기록한『영조무신역옥추안』등이 15권이나 되고,『조선왕조실록』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기록되어 있으며, 공신록권을 받은 사람이 9,000여명이나 된다는 사실에서 무신사태의 정치적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합천 봉산, 묘산, 대양지역의「석가산의 쇠갓」,율곡지역의「이수대(李秀大)와 장기판」이라는 전설과, 합천읍금양리의「말밀들」, 서산리의「보림마을」지명(地名)은「무신사태」와 조성좌의 영향에 기인한 것이다.
전설과 신화는 그 시대 사람의 의식을 엿볼 수 있고 역사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으며, 편협되고 왜곡된 역사책보다는 더 공정한 사실을 말해준다는 점에서「무신사태」가 우리 고장과 민중(지역민)에게 끼친 영향이 지대했음을 잘 알 수 있다 하겠다.
무신란 즉,「무신사태」는 국민 통합없이 일방적으로 자행되는 지역차별은 국론이 분열되고 갈등이 증폭된다고 하는 역사적 교훈을 일깨워 준 사태였으며, 또한「무신사태」로 인하여 형성된 부농층과 소빈층(小貧層)이 봉건 왕조사회 해체의 주도적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고, 그 후 일어난 평안도 농민전쟁, 진주 거창 단성 임술 농민항쟁, 동학혁명 등 조선후기 민중운동이 비약적으로 촉발하게 되는 단초를「무신사태」가 제공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무신사태」후 합천을 비롯한 경상우도는 50년 동안 과거조차 보지 못하게 하는 정거(停擧)에 처해지기도 하는 등「반역향(反逆鄕)」으로 매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조반정 후 명맥만 유지해 오고 있던 남명학파(南冥學派)가 결정적으로 몰락하게 되었다. 따라서 남명학파의 개혁적인 정치적 업적과 위민위국(爲民爲國)의 정치철학은 집권 노론 세력들에 의해 250년간 철저하게 조직적으로 날조 폄하되었고,「무신사태」의 역사적 의미도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
일부 대학과 남명학 연구 단체 등에서 재평가 작업이 시도되고 있지만,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도래한 지금에도 과장 미화나 왜곡 폄하없이 객관적 실체적 자료에 의거한 재조명 작업은 아쉽게도 미미한 실정이다.
이제는 인식과 발상의 대전환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연례 행사처럼 개최되고 있는 전시행정적인 문화예술 행사는 지양하고, 잘못 알려진 채 잊혀져 가고 있는 우리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적극 발굴 복원하는데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시점이다. 문화관광 정책 역시 우리 고장 선현(先賢)들의 발자취와 역사적 사건 사태를 하나로 묶는「테마 여행」으로의 과감한 정책적 전환도 절실히 요구된다.
세계화 지방화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삶의 모습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역사 인식과 해석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어려운 때일수록 근본과 원칙을 고수했던 우리 고장 선현들의 지행합일의 정치철학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대다.
끝으로『1728년 무신사태 고찰』이라는 이 한 권의 책이 그동안 날조되고 폄하된 남명학파와「무신사태」의 역사적 의미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전설과 신화, 그리고 역사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계백 죽죽 정도전 성삼문 조식 정여립 정인홍 허균 전봉준 김옥균 안중근… 그들 역시 다수의 민중과 정의를 위해 온 몸으로 헌신하고 저항했기에 지금 우리 곁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지 않는가.
합천 삼가 이부마을 고향집에서
조 찬 용
책 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