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보카트호의 복병 '피로'

선명수2006.05.12
조회50

“솔직히 힘이 듭니다. 하지만 경쟁 때문에 드러내 놓고 말할 수도 없고...” 요사이 만나는 선수들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유럽파와 국내파가 다르지 않다.

 

 적지 않은 선수들이 피로누적을 호소한다. 피로는 월드컵의 변수로 작용해 왔다. 클럽과 대표팀 경기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상관관계는 보다 밀접해 왔는데 2002월드컵에서 유럽 강호들의 잇단 탈락 이유 중 하나가 주전 선수들의 피로누적에 따른 부진이었다

 

. ▶ 2002월드컵에 대한 회상

 

개막 2주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른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가 주축이었던 국가들, 지단과 마켈렐레의 프랑스, 피구의 포르투갈, 라울과 모리엔테스의 스페인 등이 중도에 고배를 들이켰다. 지단이 허벅지에 붕대를 두르고 고투하던 장면이 아직도 선하다. 반면 부상, 감독과의 불화 등의 이유로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던 ‘3R’ 호나우딩요, 호나우도, 히바우도의 브라질은 절정의 전력을 과시하며 통산 5회 우승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특정 선수들의 컨디션만으로 잣대를 삼을 수는 없겠으나 중요 변수인 것은 분명했다.

 

▶ 유럽 강호들의 침몰이 남긴 것

 

FIFA(국제축구연맹)가 2006월드컵 준비의 일환으로 유럽의 전 리그를 5월15일 이전에 종료할 것을 권고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사전에 일정이 확정된 관계로 5월18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예외로 했다. 흥미로운 것은 결승전에 진출한 아스날에 독일월드컵에서 우리와 만나는 프랑스(앙리) 스위스(센데로스) 토고(아데바요르)의 주축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 지난겨울 이적하기 전에 AS모나코 소속으로 챔스에 나선 아데바요르는 ‘한 시즌 두 팀 소속 유럽클럽대항전 출전 불가’ 규정에 따라 결승전에 출전치 못한다. ▶ 긍정적 변화와 현실적 과제 사실 이처럼 피로와 월드컵의 상관관계는 유럽의 이야기로만 느껴져 왔다. 겨울 휴지기가 상대적으로 길고 대표팀을 위해 프로리그 일정을 조정하는 등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유럽과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반길 수만은 없었던 것은 유럽의 경우가 잘못된 길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4년마다의 이벤트를 위해 일상의 축구축제를 저버리는 모습이 외려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 아닐까. 선수들의 피로를 월드컵의 변수로 걱정해야 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변화는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역대 최다이고 대표 선수들이 소속팀에 합류해 K리그를 소화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긍정적인 흐름인 것은 분명하나 체력적 부담에 가쁜 숨을 내쉬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현실적 과제다.

 

▶ 박지성 등 강행군에 체력적 부담 우려 박지성의 경우 지난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과 오프시즌 아시아 투어, 프리미어리그, FA컵, 칼링컵, 국가대항전 등 숨 돌릴 새 없는 강행군을 이었다. 이영표 이을용 등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K리거들도 휴식기였던 지난겨울 중동, 아시아, 북미로 이어진 6주간의 전지훈련으로 체력적 부담감을 안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문제는 피로자체가 아닌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의 조성이라는 점이다. 피로는 유럽과 남미 등 32개 본선 진출국 모든 선수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복병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걱정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 주전 경쟁의 심적 압박과 문화적 편견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간의 일종의 괴리가 우려된다. 이 같은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은 자신의 체력 등 현실적 준비 정도를 정확히 말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주전 경쟁에 대한 심리적 압박과 개인 사정에 대한 언급을 핑계쯤으로 치부하는 문화적 편견 등에 따른 걱정이다. 유럽을 거점으로 활동해 왔던 아드보카트 감독이 월드컵을 앞둔 선수들의 피로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해도 현실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확한 진단과 처방전은 가능하지 않다. 더욱이 월드컵을 9개월여 앞두고 부임,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아드보카트 감독 입장에서는 다소 무리해서라도 전술적 완성도를 끌어올리려 할 것이라는 점에서 선수단에 대한 면밀한 파악과 이에 따른 로드맵 제시는 성공 귀결의 전제라 할 수 있다.

 

 ▶ 스스럼없는 대화로 적절한 처방전 제시해야 때문에 스스럼없이 말해야 한다. 대화해야 한다. 피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지 못해 적절치 못한 처방전을 꺼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해를 위한 소통은 전진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다. 홍명보 코치의 역할이 보다 요구되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선수들이 감독에게 건네기 쉽지 않은 부분과 상황을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 까닭이다. 잘 먹고 잘 쉬면서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훈련과 실전을 병행해 경기 감각과 전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2006월드컵을 한 달여 남겨둔 우리대표팀의 현실적 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