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박한결2006.05.14
조회173
박정희 대통령...

해방후 우리나라는 임정의 김구선생님이 아닌

이승만이 대통령이되는 커다란 실수를
하게됩니다 이승만은 내가아니면 안되라는

권력욕에 사라잡힌 인물로 그는 무장투쟁은
야만적인방법이며 외교적인 방법 즉 미국에

의존하는것이 조선의 독립을 얻을수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엇습니다

그는 또한 미국에 의한 신탁통치만이 국가를 운영하는게 아직
부족한 조선으로서는 유일한 방법이며

미국에 오래있었던 자신만이 미국과조선의
중간에서 도움을 받을수잇다고 생각하엿습니다

그런주제에 신탁통치는 오직 미국만이
할수잇으며 소련은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사람이기도합니다

 

신탁통치는 소련에서 나온것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주장했습니다

소련은 그에 완전히 반대한것은 아니고

길어야 5년, 그 이상은 안된다고 주장하죠...

북한에서도 처음부터 신탁통치를 찬성한건 아닙니다

오히려 여운형 등 사회주의 쪽의 독립운동가들은

반대를 했죠, 그러나 소련의 지시를 받은

김일성 등이 찬성을 하여

북한의 여론은 신탁통치 찬성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몽양 여운형 선생님의 좌우합작운동이 아쉽죠...

잠시 몽양 여운형 선생님에 대해서 쓰자면

제가 본 만화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은 모습이 인상깊군요...

어쨋건 그분은 김구선생님과 같은,

민족을 위해서 노력한 분 중 대표자 격이란거죠,

약간 고집이 세긴 하셨지만, 그점도 민족을 위하여 돌아갔으니

멋진분이라 할 수 있겠군요,

이분은 일제가 회유하려 노력하나 오히려 실패,

일제가 이분을 소환하여 회유하려했으나

오히려 그곳에서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주장,

그들이 설득당할 정도였다합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8월 15일 항복선언을 하기 직전

일제는 여운형선생님을 불러서 항복 선언 후에

통치(?)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후에 여운형선생님은 암살당하죠,1974년

좌우합작운동이 한창일때

좌우합작을 반대하는 극우파 한지근에 의하여 암살당합니다.)

 

이승만은 확실히 친일파는 아니엇습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반공 반일파였죠 문제는 그가 미국에
너무 의존하면서. 미국의 정치간섭에 너무

무책임하게 대응하다보니 한민당이나
기타 친일파에 힘을 실어주는 미국의 행위에

아무런 제재를 하지 못햇다는것입니다
결국 그당시 친일파 척결에 실패함으로서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친일파가 잘사는 나라 독립군의

후손이 더욱 못사는 나라를 만든거죠

참고로 친일이 대한민국에 득세하게 된건 물론

이승만의 권력욕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도 한 몫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을 통치하기

위해서 기득권 세력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고
그때 신탁을 반대했던 공산주의(공산당)세력이나

항일투쟁을 했던 독립투사들 보다는
친일파가 아무쪼록 등용하고 이용하기 편리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자기들 만의 똥개가 필요했고
그래서 친일파를 이용한 거죠..여하튼 이부분에서

이승만의 역할도 꽤 한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승만의 권력욕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참고로 종전 전후 배상을 위해 전승국중에 역할이 컸던
미국과 소련은 사실 패전국인 일본을 분할통치 했어야 맞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미국은 한반도인 대한민국을 선택합니다.
그때 한창 공산주의 진영의 당시소련과

자유주의 진영의  미국이 팽팽하게 이데올로기
전쟁을 할때였고, 냉전의 시작이였을 때였습니다.
미국입장에서는 일본보다 대륙에 더 근접하고

지리적 요충지인 대한민국을 분할해야
자국에 더 큰 이익이 있다고 판단을 한거죠..

그래서 대한민국이 분단 됩니다.

어쨋던 이와같은 실수외에도 자유당의 독주의 문제도많습니다
어쨌든 이기붕과 자유당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 권력의 근본적인 힘인
이승만을 어떻게든 대통령자리에 유지시키고자

하였고 이승만 역시 내가 아니면안되 하는마음에

계속적으로 대통령자리에 앉아 있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유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것입니다
자기 주변에 자기와비슷할정도로 힘을

가진자들도 없었고 최고권력자는 자신들이
그 기반이고 자유당의 독주인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라 전체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정치 권력자란것들이 하나같이

개판이데다가 깡패들마저 설치고댕기고
그걸 자유당이 비호하면서 정치깡패라는게 생기기까지하고...
그러다 보니 사회는 혼란해져가고 그에대한 여파로

물가는 상승하고 가만있으면
정치는 계속적으로 부패해져만 갈것같고

그나물에 그밥이라고 민주당역시 그다지
기대하기는 힘들것같고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기대한다는건 무리인상태에서
나타난게 바로 박정희를 필두로한 군부입니다

자 메인이슈로 들어가자면

일단 당시의 상황은 여러가지로 안좋앗습니다

최고권력자의 돌이킬수없는 실정이
불러온 최악의 상황에서 박정희는 군부를 필두로한 쿠테타

즉 5.16 쿠테타를 일으킵니다

(가끔 5.16혁명이라는 분들도잇는데 한숨만 나옵니다)
확실히 그 시대적상황이 혼란했기에 그러한 상황을

정리해준점은 박정희의 업적(?)
이라고 해도 좋을정도였습니다

그시대가 조금 아니 많이 안좋았으니까요
어쨋던 문제는 그가 쿠테타라는 선례를 남겼다는 겁니다 ㅡㅡ+
그 이유하나만으로도 그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하고 세조가 되어

수많은 업적을 남겻었도 그가 비난받는것처럼
그 시작이 안좋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의 쿠테타로 인한 군사정권이라느 선례는

전두환이라는 후계자를 낳습니다
또한 박정희는 이승만이 남긴 선례인 계속적인

대통령되기운동의 후계자가 됩니다
7대 8대 9대 대통령이 되죠

그가 남긴 선례의 후계자인 전두환은 그 선례를
본받아 역시 계속적인 대통령되기 운동을 하고요
물론 그가 대통령이 됨으로해서 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그가 대통령이되기전
그러니까 이승만때는 앞에서 다뤘듯이 사회는 불안정하고

물가는 상승하는듯
경제적으로 오히려 후퇴하다시피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됨으로해서
우린 단 36년만에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할수있게됩니다

저 일본이 100년 걸렸고
미국은 180년이 걸렷으며

영국은 200년이 걸린일을 말이죠

이건 박정희가 남긴
최대의 업적입니다 그가 싫은건 사실이지만

그가 이룬 이업적많큼은 역대 대통령중에
그 어떤대통령도 할수없었던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 세대 이 나라 국민으로 태어나서 평생의 소원이 있다면

우리 세대에 우리의 조국을 근대화해서 선진 열강과 같이

잘사는 나라를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가 국방대학원 졸업식에서 남긴말입니다
또한 그는 국내의 엇갈린 평가와는 다르게

타국에서의 시각은  호평일색입니다
그가 분명 독재자였다고는 하지만

그 독재자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메울정도의
업적을 남긴것또한 사실입니다

그가한 업적은 위대할지 모르나 그의 시작은 최악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그를 부른건지도 모르나 그어떠한 이유에서도
그가 남긴 군사쿠테라는 선례는 비난받아야만 한다고생각합니다

 

당시의 시대상에서 그가 일으킨 쿠테타는

사실 크게 욕먹을많큼은 아닙니다
분명 쿠테타는 욕먹을 일이지만

그가 쿠테타를 일으켰을때의 시대상을 보건데

그는 자유당의 독재를 막은
위대한 인물이 될수도잇엇을것입니다

그의 가장큰실수는 대통령을 연임한것입니다

단 한번 다한번의
대통령으로서 7대 대통령으로서만 남았다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그의 쿠테타가 더없이 욕먹는 가장큰이유는

그가 일으킨 5.16때문인 아니라 바로 그가 남긴 선례의
후계자인 전두환때문입니다
쩝 그는 또한 미국의 속국이다시피햇던

(당시에 타국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것이다라는
여론도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회복하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햇습니다 이것역시 경제부흥만큼이나
그가 남긴 업적중 하나입니다 이승만이라는 최악의 지도자가 남긴 많은 선례를 깨기 위해 노력했던 분이기도
합니다  정치깡패척결이라던가 미국의 속국이다시피햇던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회복했다던가 하는 점에서요
하지만 그역시 많은 잘못을 하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그는 비난과 칭송을 모두 받는 일을 한사람입니다

 

박정희 암살은 당시 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암살했죠
문제는 당시 비서실장이엇던 김계원과 차지철

경호실장과의 암투상황이엇습니다
박정희는 경호실에 큰힘을 실어줍니다

경호실장이라는건 박정희정권하에서 2인자가 되었죠
그런데 이때 나타난게 경호실장이라는 존재입니다

비서실장과 경호실장 둘다 측근이었지만
점점 비서실장의 힘은 약화되고 경호실장의

힘은 강해졌습니다 어쩌면 박정희자신이 비서실장의 힘이
너무 강해지자 견제할려는 의도였을지는 모르지만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의 보이지않는 암투는
경호실장쪽으로 기울어져만 갔습니다 이런상황에서

김재규가 대통령을 암살하닙니다
김재규는 비서실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웠던 자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마치 비서실장이 배후 인물인것처럼

되버린것이죠 어쨋던 그 비서실장은 살아남았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게 있습니다 김재규

즉 정보부장이라는건 엄청난 자리에 있다는것입니다
김재규가 가진 힘은 거의 비서실장이나 경호실장에

육박할정도로 대통령의 측근중의측근이었던 사람들중
한명이엇죠 설명했다시피 김재규는 일단 경호실장 입장에서는 비서실장의 계열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경호실장에게 많은 견제를 당햇고 불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암살당일날 경호실장에게 크게 혼이납니다
그가 만일 암살을 계획햇거나 쿠테타를 계획했엇더라면 정보부장이라는 이름상 권총을 휴대햇을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경호실장에게 혼이난후 옆집에가서 총을 가져옵니다 그의직위라면 설사 권총을 안가져갔더라도
식당2층 자신의 사무실에 얼마든지 총을 나둘수잇엇을텐데도 굳이 그먼길을 가서 가져옵니다
50m나 떨어져있는곳까지요 재밌는점은 오히려 쿠테타를 일으킨 전두환은 경호실장의 계열이엇다는점입니다
즉 정보부장인 그에게 쿠테타를 할정도의 군사적배경도 없었고 오히려 적이라고 할수있는 경호실장에게는
전두환이라는 군사적 배경이있었다는점입니다 이점으로 보아 그가 사전에 쿠테타를 일으키기 위해서나
혹은 암살을 계획했다거나 하는게 아닌 평소 유감이 많았던 경호실장이 갈구자(-0-) 홧김에 저지른
정말이지 어이없는 사건이라 할수 있습니다 ㅡㅡ 비서실장은 사건후 사형선고를 받지만 몇일만에 무기징형으로
감형되죠 그리고 1982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납니다
당시 상황은 김재규는 먼저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한발 쏩니다 오른쪽 팔목을 관통당한 차지철은 경호실장이라는
명함이 무색하게 화장실로도망가버립니다 ㅡㅡ 이어 앉은자리에서 김재규는 박정희를 쏩니다
그후 비서실장이 김재규의 총을 손으로 쳐버리고 그로인해 김재규의 총이 고장나 버립니다 김재규가 사용했던
총 종류가 예민한 총이었다고 합니다 어쨋던 그덕으로

비서실장은 살아남지만 재판에 회부당하죠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의 암투가 불러온 정말 어이없는 죽음입니다


박정희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