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옆에서....

임성연200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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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옆에서....

국화옆에서

2004년 좋은생각 11월호





온상에서 기른 국화를 사다가 길가에 놓았습니다.

누가 키웠는지 참으로 곱고 탐스러웠습니다. 화분에는 흙이 별로 없는데도 건강해 보였습니다.국화 화분이 놓여진 정원을 바라보며 며칠 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따가운 태양 빛이 쏟아지자 모든 국화가 힘을 잃고 시들기시작했습니다.물이 부족해 그런가 보다,하고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었지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흙이 모자라 그런가 보다,하고 재빨리 화분을 비우고 땅으로 옮겨 심었지만 온갖 정성에도 국화는 시들어 버렸습니다. '꽃은 시드는 거야!' 하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시든 국화를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온상에서 자란 꽃은 약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국화를 무방비 상태의 초원에 옮겨 심었으니 제가 어리석었지요.국화는 처음부터 태양 빛 가득한 초원에 심었어야 합니다. 씨앗이 싹트고,어린 잎이 나왔을 때부터 따가운 햇빛을 맞았어야 합니다. 비바람과 소나기와 천둥의 무서움도 느끼며 자랐어야지요.하지만 요즈음 대부분의 국화는 온상에서 자랍니다.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온상에서 자란 국화는 화려하고 아름답긴 하지만아주 연약합니다.사제로서 교회안에 몸담고 살면서 제 자신도 어쩌면 온상 속에 머물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까맣게 말라비틀어지는 국화를 바라보며 굶주림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미사를 봉헌할 사제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프리카 수단의 어린이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봅니다. 동료 사제 한 분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출국 준비를 앞두고 있는 사제를 생각하며 그분의 앞날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문명의 온상 속에서 살아온 나도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그들을 위해 달려갈 수 있을까?그러나 아직 이 온상을 떠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문명을 벗어나 광활한 원시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나에게 어쩌면 그 자체로 고통이요,죽음의 길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두렵지만,혹시 그곳에 가서 죽을 수도 있지만,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기쁘게 받아들여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더 큰 사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