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이 될 사람은

정수정2006.05.15
조회104
내 남편이 될 사람은

월급은 많지 않아도 너무 늦지않게 퇴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퇴근길에 동네 슈퍼 야채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쳐 '핫~' 하고 웃으며
저녁거리와 수박 한 통을 사들고 집까지
같이 손잡고 걸어갈 수 있었음 좋겠다.

......월급도 많아야 한다. 절대 너무 늦게 퇴근해도 안된다. 내가 야자지도할지도 모르니까.
동네 수퍼에서 절대로 만날 일 없을거다. 내가 가서 사오던지 그사람 시킬거니까. 같이 손잡을 일? 큭. 집에서나 하자.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 날 있었던
열받는 사건이나 신나는 일들부터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을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 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 얘기 다 듣고 '시끄러' 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가끔 이야기 못알아들어서 말똥말똥 보면서 '뭐래~'라고 해도
아주 인내심 좋게 다시 이야기해 줄 만한..
크크..부처님 가운뎃 도막이군.

그렇게 들어와서 같이 후다닥 옷 갈아입고 손만 씻고,
한 사람은 아침에 먹고 난 설겆이를 덜그럭덜그럭 하고
또 한 사람은 쌀을 씻고 양파를 까고
"배고파~" 해가며 찌게 간도 보는
싱거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빨리 빨리..뭐든 빨리 빨리..바빠 죽겠는 세상에 놀지 말자. 저녁먹고 할일 많다.

다 먹고나선 둘 다 퍼져서 서로 설겆이를 미루며
왜 니가 오늘은 설겆이를 해야하는지...
서로 따지다가 결판이 안 나면 가위바위보로
가끔은 일부러, 그러나 내가 모르게 져주는...
너그러운 남자였으면 좋겠다.

... 빨리 해라.

주말 저녁이면 늦게까지 TV 채널 싸움을 하다가
오 밤중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약간은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같이 비디오 빌리러 가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
떡볶이에 오뎅국물을 후룩후룩~
"너 더 먹어~" "나 배불러~" 해가며 게걸스레 먹고나서는
비디오 빌리러 나온 것도 잊어버린 채
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가끔은 나처럼 단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파리의 연인 아니면 티비 보지 말자. 저녁에 먹지 말자. 살찐다.
내 남편도 나의 다이어트에 적극 동참하길 바란다.
나 정말 단순한데,
내 남편도 나처럼 단순하면..
세상 다 살았다.

어떤 땐 귀찮게 부지런하기도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침잠에 쥐약인 나를 깨워 반바지 입혀서
눈도 안 떠지는 나를 끌고 공원으로 조깅하러가는
자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나 좀 부지런하다. 나보다 더 부지런하면 그거 좀 곤란한데...
내가 깨울 때 술마셨다고 신경질 안내고
자기 몸 걱정 알아서 하면서 즐겁게 일어나는 사람이길 바란다.

오는 길에 베스킨라빈스에 들러
피스타치오 아몬드나... 체리 쥬빌레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콘을 두 개 사들고
"두 개 중에 너 뭐 먹을래?"
묻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 단순하다. 아이스크림 이름따윈 묻지 마라.
그냥 알아서 때론 달콤한 걸로, 때론 새콤한 걸로..
때론 몸에 좋~은 인삼으로 사와라.

약간은 구식이거나 촌스러워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어머님의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친 엄마한테하듯 농담도 하고,
장난쳐도 버릊없다 안 하시고,
당신 아들때문에 속상해하면 흉을 봐도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그런 시원시원한 어머니를 가진 사람.
피붙이같이 느껴져 내가 살갑게 정 붙일 수 있는
그런 어머니를 가진 사람.

...나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시어머니한테는 진~짜 예쁨 받을 것 같다. 남편이 문제다...저런..

나 처럼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를 닮은 듯 나를 닮고 날 닮은 듯 그를 닮은 아이를
같이 기다리고픈 그럼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의견을 끝까지 참고 들어주는
인내심만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어른이 보기엔 분명 잘못된 선택이어도
미리 단정지어 말하기 보다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

...애 키우면 그거 뜻대로 안되지...내가 오바할 때, 내손 잡고 방에 들어가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아내와 둘이 동네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소주 따라놓고 앉아
아직껏 품고있는 자기의 꿈 얘기라든지
그리움 담김 어릴적 이야기라든지
십 몇년을 같이 살면서도 몰랐던
저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이젠 눈가에 주름잡힌 아내와 두런두런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는 늘 강한 아버지이길 바란다. 그 사람의 약한 모습은 좀 감추어두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이었음 좋겠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사람.
술 자리가 이어지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줄 아는 사람.

...내가 술마실때 좀 말리지.

내가 그의 아내임을 의식하며 살 듯,
그도 나의 남편임을 항상 마음에 세기며 사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렵군.. 정말 나 성격 괴팍한 것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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