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및 변천사

서주영200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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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및 변천사 영국의 프란다스 페트리(Flinders petrie)교수가 이집트의 고분을 발굴하는 도중 BC 5000여년경의 어린아이 무덤에서 현재의 볼링과 비슷한 대리석 볼과 핀이 나왔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긴 것을 무덤에 같이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으므로, 고대 이집트에서 볼링이 어떠한 형태로 행하여 졌는가에 대해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현대 볼링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볼링이 고대이집트에서 어떠한 경로로 해서 중세유럽에 전해졌는가는 명확하지 않지만, 볼링이 역사상에 나타난 것은 13 - 14 C의 중세 유럽에서이다. 그러나, 중세의 볼링은 현재와 같이 게임을 유쾌하게 즐긴 다기 보다 종교상의 의식이나 점을 치는데 이용되었다. 신을 받드는 승려들의 신앙 도를 공을 굴려 실험했는가 하면, 장군이나 귀족이 원정을 앞에 두고 운을 점치곤 하였던 것이다. 1) 케겔(Kegel)넘어뜨리기 독일의 교회에서 성행하는 종교적 의식으로서, 케겔(막대기)을 악마로 간주하여 복도 구석에 세워 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둥근 물체를 굴려 케겔을 넘어뜨리는 것으로써, 케겔이 잘 넘어지면 신앙심이 두텁고, 잘 넘어뜨리지 못하면 신앙심이 부족하다고 여겼으므로 단순한 놀이가 아니고 자신의 운명을 점치는 신중한 의식으로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케겔 넘어뜨리기가 재미가 있어서, 점차 신앙심과는 관계가 없이 취미로 즐기게 되었고, 흥미본위의 놀이로 되어 교회 밖으로 나와 널리 보급되었다 한편, 볼링을 하는 사람(Bowler)을 '케구'라고도 하는데, 이는 케겔에서 파생된 독일어의 흔적이다. 2) 나인 핀즈 (Nine Pins) 1571년 마르틴 루터(Luther, M, 1483-1546)의 종교개혁 이후에 케겔 넘어뜨리기는 옥외에서 성행하게 되었는데, 루터 자신도 볼링을 무척 즐겼으며, 현대의 10핀 볼링의 모체가 된 나인 핀즈는 루터가 발명한 것이다. 당시 여러 가지 형태로 행해지면 볼링을 루터는 핀 수를 9개로 정하고 다이아몬드(Diamond)형으로 세우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 경기규칙을 만들어 게임을 하고 보니 재미가 있어서 대단한 인기가 일어, 곧 독일,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든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나인 핀즈가 유행함에 따라 경기장소도 초기에는 맨땅 위에서 볼을 굴리던 것을 바닥에 석탄재를 뿌리기도 하다가 판을 깔아 만든 투구대도 사용하게 되었으며, 울타리와 지붕도 만들어서 실내경기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3) 텐 핀즈 (Ten Pins) 유럽 각지에서 유행한 나인핀즈는 1625년 네덜란드의 이민인이 미국에 들여와 개척민의 오락으로 행하게 되어 미국 전지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1800년대에 들어오면서 나인 핀즈 게임이 도박으로 유행하게 되어 청교도인들의 맹렬한 반대 부딪혀서, 1841년 뉴욕 주를 시초로 코네티컷주에서도 금지령이 내렸으며, 곧 미국 전 연방이 나인 핀즈 금지령을 선포함으로서 미국에서 나인 핀즈는 한동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따라서 나인 핀즈 게임을 건전한 오락으로 즐겼던 사람들의 이 금지령이 너무 부당하여 참을 수가 없어서 고심을 하다가, 핀의 수를 하나 더 늘려 정삼각형으로 늘여놓는 나인 핀즈가 아닌 텐 핀즈를 창안해 내게 되었다 이 텐 핀즈가 나인 핀즈의 애호가들의 압도적인 열광을 받아, 1841년에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의 지하실에 최초의 볼링센터가 개설되기에 이르렀다 다음해에는 NBA(National Bowling Association)가 설립되어, 레인의 길이와 볼의 크기 등 여러 가지경기규칙을 통일하였다. 그 후 1890년에는 아메리카 아마추어 볼링연맹이 발족하여, NBA의 업무를 이관하였고, 1895년에는 ABC(America Bowling Congress)가 창립되었다. 4) 현대의 볼링 현대의 볼링은 유럽과 미국에서 스포츠로 전파되어 19세기말 동남아 각 국에 널리 보급되었다. 즉 1890년 영국의 웨일즈와 빅토리아에 초대 볼링협회가 탄생되었고, 1915년 미국에서는 잔디볼링협회가 생겨났으며, 1938년에는 국제 볼링연맹이 조직됨으로서 현대볼링의 기수가 되었다 1952년에는 수동식에서 자동식으로 핀세터가 발명되어 볼링이 폭발적인 인기를 받아 퍼져 나갔고, 같은 해에 국제주기자연맹(國際柱技者聯盟, Federation Internationale des Quilleurs, FIQ)이라는 국제조직이 창설되어 볼링경기가 정식 스포츠로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마추어 볼링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는 볼링대회중 가장 규모가 큰 FIQ토너먼트(세계선수권대회)가 각 가맹국을 중심으로 해마다 개최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1978년 제 8회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던 볼링경기는 1982년 제 9회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제외되었다가 1986년 제 10회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전시종목으로 채택되었던 볼링경기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전시종목으로 채택이 거의 확실시됨으로써 전망을 한층 밝게 해주고있다. 5) 한국 볼링의 발전사 우리 나라에 볼링이 처음 전해진 것은 한국전쟁이후. 한미 방위조약에 의해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1960년대 초 미군기지에 20레인의 볼링경기장이 생긴 것을 시초로 1967년 워커힐 호텔 지하에 4레인 경기장이 생김으로서 우리 나라에도 볼링을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국내 볼링이 점차 대중화된 시기는 1969년 8월 16일 코리아 볼링센터(KBC : Korea Bowling Center)가 4층에 20레인을 개장하고 부터이며, 이어서 1971년에 같은 장소 3층에 22레인을 개장하였고, 또한 1971년 10월에 센추럴 호텔에 20레인이 개장되면서 볼링인구는 급격히 증가하여 당시의 시설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 후 1972년 4월에는 명동 신즈볼링장, 동년 10월에는 라이프 볼링장(동대문),낙원 볼링장, 한강 볼링장이 7번째로 개장하면서 최대의 확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에 제 1차 유류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국내에서도 그 여파로 전력소비가 많은 볼링장을 유기장법에 의하여 유락시설로 인정, 영업 부가가치세와 특별소비세로 엄청난 세금에 경영수지가 맞지가 않아 여러 볼링장이 도산하기에 이르렀다. 침체에 빠져있던 한국볼링계는 당시 한국일보 사장이었던 장 기영씨가 국내볼링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뜻에서 1974년 한강볼링장에 자동 핀세터로 재 개장하면서 다시 볼링 붐을 일으키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1974년 4월 문교부 승인을 받은 대한볼링협회는 1978년 7월 아시아 볼링연맹에 가입하였고, 1979년 11월 국제 볼링연맹(FIQ)에 62번째로 가입하여 국제적인 지위향상을 도모하였다 1980년 2월 대한체육회 준 가맹단체로, 이듬해인 1981년 9월에 정 가맹단체로 승인 받아 1983년 전국체육대회에 시범종목으로 채택이 되었으며, 1984년 제 65회 전국 체육대회부터는 정식 경기 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한 것은 볼링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이 된, 1978년 제 8회 아시안게임이었으며, 이 대회부터 우리 나라는 개인 종합 경기에서 안 병구 선수가 금메달, 개인전에서 이성진 선수가 은메달, 남자 5인조와 여자 5인조 전에서 가가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1982년 제 9회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볼링이 정식종목에서 제외되었다가 1986년 제 10회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되어 금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획득하였으며, 1988년 제 24회 서울올림픽의 전시종목에서는 권 종률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 국위선양에 기여하였다 특히, 1991년 싱가폴에서 개최된 FIQ(세계볼링연맹)토너먼트에서는 서 범석 선수가 남자 개인전 및 개인 종합에서 동메달을, 여자 5인조 전에서는 FIQ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함으로서 세계대회로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1980년대 이후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한 볼링경기는 최근 몇년동안 더욱 급진적으로 발전하여 1985년도에 약 200만이었던 볼링동호인이 현재에는 약 500만명 이상을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와 더불어 증가하기 시작한 볼링 경기장도 전국적으로 약 450여개소가 설치, 운영됨으로써 볼링경기가 국민 생활체육으로부상, 발전하는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