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때 끼사고따미라는 여인이 사위성에 살고 있었다. 여인은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가서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겨우 걸음마를 할 무렵에 그만 죽고 말았다. 끼사고따미는 슬픔에 빠져 죽은 아기 송장을 안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며 묻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녀가 돌아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는 그 여인에게 도움을 주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부처님을 찾아뵙도록 하세요" 하고 일러 주었다. 여인은 그 길로 부처님께 찾아 가서는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
부처님께서는 여인에게 마을에 내려가서 겨자씨를 구해오면 그 방법을 말해주겠다고 하였다.
다만 그들의 가족 중에서 한사람도 상을 당하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여인은 그런 겨자씨를 얻으러 집집마다 돌아다녔다.
마을 사람들도 끼사고따미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죽은 가족이 없는 집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여인은 자기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것이 아니며 산사람보다도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인은 더 이상 죽은 아이 송장에 집착하지 않고 아이를 숲 속에 묻고 부처님께 돌아왔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했다. "고따미여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라네. 열반(깨달음)을 알지 못하는 이로서 백년을 사는 것보다, 열반을 아는 이로서 단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 는 게송을 남겼다.
죽음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당신을 낳아준 부모님의
그 부모님은 살아계시는지..
당신의 부모님은 언제까지 당신의 곁에 계실지..
그 마지막 순간에
당신에게 핸드폰으로 전화해
"두시까지 오너라 그때 가마.. " 하실수 있을지..
죽음은 태어남과 동시에 예약되어진다.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은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겠지만
병원이나 음식점의 예약처럼 죽음은
내가 원하는 시간과 방법을 선택할수가 없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 태어남을 결정할수없었던것 처럼 말이다.
잔인한 4월을 넘기지 못하고 가신 덕인행 보살님을 포함
법당에 위패가 세개 모셔졌다.
죽는사람.. 참 많다.
한시 조금 넘어 동산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신도분의 모친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어떤 의미로 죽음과 더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다.
어쩌면 내 어머니는 엄청나게 큰 가르침을
죽음으로써 내게 주려 하셨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내 머리와 가슴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것을 보면 말이다.
보살님은 나를 보자말자 손을 꼭 잡고 울을을 터트렸다.
이미 눈은 발갛고 핏기없는 얼굴이다.
처사님은 그래도 차분하셨다.
"스님 .. 내 꿈이 뭔줄아세요?
이제껏 고생만 하시고, 이제 좀 살만한데.. "라고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나는 어젯밤 꿈으로 가있었다.
나는 그 영안실에 가 있었다.
열흘 전 돌아가신 엄마의 영정앞에서
장삼을 입고 주저앉아있는 내 귀에
주지스님의 음성이 들렸다.
" 가자.. 죽었단다. 거기로 가자. "
" 스님. 왜 제가 가야해요.. 싫어요.. "
보살님이 돌아가셔서 내가 있어야 하는데
자꾸만 다른이의 시다림을 가자는 스님을 야속해하며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불길한 기운을 새벽엔 느꼈으나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순간, 소름끼친다.
주지스님께 살짝 말씀드렸더니
사망시간이 그때쯤 같다 하신다.
아!!!!
갑자기 입관이 정해졌다.
몇 년전 아버지의 모습은 벌써 잊었는데.
엄마의 몇일전이라 그런지 아직 생생하다.
명주 수의는 그 몸에 두른 옷 중에서
제일 비싼 것이어서인지 천사처럼 고왔다.
월급타서 옷한벌 해줄 생각 못했던 그 딸은
속이 시커멓게 탔다.
화장한번 안했던 얼굴에 희게 분칠하고
새색시처럼 연지곤지까지 찍었다.
어색하다시며 이건 내옷 아니다 .. 웃으며 일어날 것 같은데
끝내 팔다리 꺾어 묶고
삼베로 온몸 꽁꽁 묶어 나무 상자에 늬여드릴동안
아무말 못하신다.
아프지 않나요? 갑갑하지 않나요? ... 뜨겁지... 않나요?...
보살님.. 대답좀 해보소..
모르는 사람의 죽은몸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내 엄마와 마찬가지로 그도 마치 마네킹이나
인형처럼 누워있다.
그래도 내 어미의 거죽은 스무여덟해 나와 촉(觸)하여
착(着)이 생겨 도저히 눈물빼지않고 볼수 없었는데
이 이는 참을만 한것 보니
슬픔을 지배하는것은 우선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이다.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몸뚱이가 나인가?
내가 과연 이 몸뚱이를 움직이고 있는 주체인가?
그럼 나는 무엇인가?
내 뇌가 걸으라 해서 다리가 움직이고
먹으라 해서 손과 입이 움직이니
내 뇌가 나인가? 생각이 나인가?
저기 누운이의 외모 때문에
살아있는 이 모두 그 육신 붙들고 오열하지만
이미 육신은 뼈와 물과 피와 살과 고름과 오물을 담은
가죽주머니에 불과해 졌을뿐.
더 이상 누구의 무엇도 아닐터.
아프지 말라고 해도 아프고 맡지말라 해도 냄새맡고
죽지말라해도 죽는 육체인데
생각으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이 육신의 주인은 누구인가?
궁금해야 한다.
우리의 죽음도 오래전에 예약되어 있으므로,
꼭 궁금해야 한다.
그것을 궁금해 하는 과정은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줄 것이다.
... 장례식장을 나와 차에 시동을 걸며
룸미러로 보이는 내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표정없는 스님의 얼굴이.. 무척이나 슬펐다.
비가 온다.
오늘 죽은 모든이여...
부디 친한이의 염불소리 듣고 바른길 찾아
새옷 갈아입듯 헌육신 버리고
새몸 갈아입으소서.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뽀너스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때 끼사고따미라는 여인이 사위성에 살고 있었다. 여인은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가서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겨우 걸음마를 할 무렵에 그만 죽고 말았다. 끼사고따미는 슬픔에 빠져 죽은 아기 송장을 안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며 묻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녀가 돌아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는 그 여인에게 도움을 주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부처님을 찾아뵙도록 하세요" 하고 일러 주었다. 여인은 그 길로 부처님께 찾아 가서는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
부처님께서는 여인에게 마을에 내려가서 겨자씨를 구해오면 그 방법을 말해주겠다고 하였다.
다만 그들의 가족 중에서 한사람도 상을 당하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여인은 그런 겨자씨를 얻으러 집집마다 돌아다녔다.
마을 사람들도 끼사고따미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죽은 가족이 없는 집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여인은 자기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것이 아니며 산사람보다도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인은 더 이상 죽은 아이 송장에 집착하지 않고 아이를 숲 속에 묻고 부처님께 돌아왔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했다. "고따미여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라네. 열반(깨달음)을 알지 못하는 이로서 백년을 사는 것보다, 열반을 아는 이로서 단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 는 게송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