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축구팬 가슴에 영원히 남는가
월드컵은 선수들만의 격전장이 아니다. 그들이 4년 동안 익힌 전술과 단단하게 조인 근육을 그라운드에서 맘껏 풀어낼 때 경기장 밖에서도 수많은 경기들이 동시에 펼쳐진다.
국제 스포츠계를 좌우하는 권력자들의 팽팽한 신경전을 비롯하여 미디어, 스포츠용품, 음료, 의류, 기술 등 각 산업 분야가 동시에 피 말리는 연장전까지 벌이는 것이다.
축구는 현대 사회가 빚어낸 아주 매혹적인 경기이지만 그러나 ‘월드컵’은 단순한 국가 대항전 이상의 거대한 난타전인 것이다.
국제축구연맹이 주심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들은 공식 후원사를 제외한 기업들이 이른바 ‘엠부시 마케팅’, 즉 은근슬쩍 월드컵을 빌려 홍보하는 ‘매복’ 마케팅을 단속함으로써 공식 후원사에게 막대한 수익을 약속하기 위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지난 2002년 때는 관중들이 들고 온 온갖 종류의 음료수를 공식 후원사의 로고가 찍힌 종이컵에 옮겨 마시게 하였는데 이로써 6만여 명이 똑같은 맥주와 청량음료를 마시는 듯한 효과를 낳기도 하였다.
축구보다 더 뜨거운 '번외 경기'
그럼에도 ‘번외 경기’는 오히려 축구 그 자체보다 더욱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특히 다국적 스포츠용품사들의 혈전은 누가 궁극의 승리자가 될 것인가 하는 마케팅의 관점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축구 스타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그들의 각종 광고와 이벤트가 매우 역동적이어서 경기 외적인 흥미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애국심’에 호소하는데 비해 특정 국가의 역사나 애국심에 호소할 필요가 없는 이 ‘다국적 기업’들의 글로벌한 감성 마케팅은 축구팬의 시선을 독점하는 듯한 인상이다.
그런 판국에 국내에서는 월드컵 ‘응원’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그 많은 기업과 미디어가 월드컵으로 한몫을 보려는 것은 인지상정의 일이면서도 그 과열 양상과 여러 해프닝들이 오히려 쓴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나는 월드컵을 두고 ‘인류의 제전’이니 ‘평화의 한마당’이니 하는 공허한 문자로 포장하는 것을 늘 마땅치 않게 여겼거니와 국내 기업들이 온갖 계산법으로 짜낸 노회한 마케팅 전략이 밖으로 드러날 때는 왜 그토록 어이없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일관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국위 선양'의 낡은 패러다임
이는 해당 기업이나 미디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 ‘국위 선양’의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반영하는 셈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시민적 감성에 있어 아주 매혹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월드컵을 기대하는 이 마당에 오로지 ‘나가자 이기자 대한건아’ 식의 프로그램과 마케팅이 도를 넘쳐 흐르는 것은 미디어와 기업의 ‘공격적’ 마케팅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들은 공격할 줄만 알았을 뿐 지금 이 순간, 이 대도시의 시민적 감성이 어떠한 것인가는 섬세하게 읽지 않는 듯하다.
나는 장외의 모든 ‘경기’는 그라운드 안에서 벌어지는 축구의 미학과 감성에 다가갈수록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이런 질문이 가능한 것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의 공식 노래는 무엇일까. ‘오 필승 코리아’? 아니다.
‘공식’이라는 타이틀이 들어간 음악은 그리스의 영화음악가 반젤리스의 ‘Official Anthem’, 미국 팝 가수 아나스타샤의 ‘boom’, 그리고 한·일의 젊은 가수들이 부른 ’Lets get together now‘이다.
'애국심 마케팅'의 한계
1968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 ‘World Cup Willie’라는 공식 음악이 사용된 뒤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는 에도아르도 베나토의 ‘Un'estate italiana’,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대릴 홀과 사운드 오브 블랙니스가 부른 ‘Glory land’ 등이 있었다.
이 많은 곡 중에서 여전히 우리 귀에 남아 있는 것은 ‘오 필승 코리아’. 그리고 범세계적으로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공식 주제가인 리키 마틴의 ‘La Copa de la Vida’. 바로 이 두 곡은 월드컵이 다름 아닌 축구경기이며 한밤중의 축구경기에 응축된 강렬한 아름다움을 매혹적으로 담아내 지금도 수많은 축구팬의 심장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바로 이런 곡이 영원히 남는 것이다. 2002년의 공식 마스코트였던 아토, 니크, 케즈라는 가상 인형들이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던 것처럼 장외의 모든 이벤트와 마케팅이 축구의 열정과 미학에서 벗어나게 되면 팬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월드컵 장외 경기에서 우세승을 노리는 국내 기업들은 ‘애국심’ 보다는 변화하고 발전한 시민의 문화 감수성을 새로 읽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 정윤수 : 2002 월드컵 당시의 날카로운 해설로 주목을 받은 문화평론가이자 축구평론가. 현재 문화비평지 ‘리뷰’ 편집위원 및 문화단체 ‘풀로엮은집’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축구장을 보호하라’가 있다.
정윤수 (prague@naver.com)
무엇이 축구팬 가슴에 영원히 남는가
무엇이 축구팬 가슴에 영원히 남는가 월드컵은 선수들만의 격전장이 아니다. 그들이 4년 동안 익힌 전술과 단단하게 조인 근육을 그라운드에서 맘껏 풀어낼 때 경기장 밖에서도 수많은 경기들이 동시에 펼쳐진다. 국제 스포츠계를 좌우하는 권력자들의 팽팽한 신경전을 비롯하여 미디어, 스포츠용품, 음료, 의류, 기술 등 각 산업 분야가 동시에 피 말리는 연장전까지 벌이는 것이다. 축구는 현대 사회가 빚어낸 아주 매혹적인 경기이지만 그러나 ‘월드컵’은 단순한 국가 대항전 이상의 거대한 난타전인 것이다. 국제축구연맹이 주심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들은 공식 후원사를 제외한 기업들이 이른바 ‘엠부시 마케팅’, 즉 은근슬쩍 월드컵을 빌려 홍보하는 ‘매복’ 마케팅을 단속함으로써 공식 후원사에게 막대한 수익을 약속하기 위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지난 2002년 때는 관중들이 들고 온 온갖 종류의 음료수를 공식 후원사의 로고가 찍힌 종이컵에 옮겨 마시게 하였는데 이로써 6만여 명이 똑같은 맥주와 청량음료를 마시는 듯한 효과를 낳기도 하였다. 축구보다 더 뜨거운 '번외 경기' 그럼에도 ‘번외 경기’는 오히려 축구 그 자체보다 더욱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특히 다국적 스포츠용품사들의 혈전은 누가 궁극의 승리자가 될 것인가 하는 마케팅의 관점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축구 스타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그들의 각종 광고와 이벤트가 매우 역동적이어서 경기 외적인 흥미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애국심’에 호소하는데 비해 특정 국가의 역사나 애국심에 호소할 필요가 없는 이 ‘다국적 기업’들의 글로벌한 감성 마케팅은 축구팬의 시선을 독점하는 듯한 인상이다. 그런 판국에 국내에서는 월드컵 ‘응원’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그 많은 기업과 미디어가 월드컵으로 한몫을 보려는 것은 인지상정의 일이면서도 그 과열 양상과 여러 해프닝들이 오히려 쓴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나는 월드컵을 두고 ‘인류의 제전’이니 ‘평화의 한마당’이니 하는 공허한 문자로 포장하는 것을 늘 마땅치 않게 여겼거니와 국내 기업들이 온갖 계산법으로 짜낸 노회한 마케팅 전략이 밖으로 드러날 때는 왜 그토록 어이없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일관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국위 선양'의 낡은 패러다임 이는 해당 기업이나 미디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 ‘국위 선양’의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반영하는 셈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시민적 감성에 있어 아주 매혹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월드컵을 기대하는 이 마당에 오로지 ‘나가자 이기자 대한건아’ 식의 프로그램과 마케팅이 도를 넘쳐 흐르는 것은 미디어와 기업의 ‘공격적’ 마케팅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들은 공격할 줄만 알았을 뿐 지금 이 순간, 이 대도시의 시민적 감성이 어떠한 것인가는 섬세하게 읽지 않는 듯하다. 나는 장외의 모든 ‘경기’는 그라운드 안에서 벌어지는 축구의 미학과 감성에 다가갈수록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이런 질문이 가능한 것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의 공식 노래는 무엇일까. ‘오 필승 코리아’? 아니다. ‘공식’이라는 타이틀이 들어간 음악은 그리스의 영화음악가 반젤리스의 ‘Official Anthem’, 미국 팝 가수 아나스타샤의 ‘boom’, 그리고 한·일의 젊은 가수들이 부른 ’Lets get together now‘이다. '애국심 마케팅'의 한계 1968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 ‘World Cup Willie’라는 공식 음악이 사용된 뒤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는 에도아르도 베나토의 ‘Un'estate italiana’,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대릴 홀과 사운드 오브 블랙니스가 부른 ‘Glory land’ 등이 있었다. 이 많은 곡 중에서 여전히 우리 귀에 남아 있는 것은 ‘오 필승 코리아’. 그리고 범세계적으로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공식 주제가인 리키 마틴의 ‘La Copa de la Vida’. 바로 이 두 곡은 월드컵이 다름 아닌 축구경기이며 한밤중의 축구경기에 응축된 강렬한 아름다움을 매혹적으로 담아내 지금도 수많은 축구팬의 심장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바로 이런 곡이 영원히 남는 것이다. 2002년의 공식 마스코트였던 아토, 니크, 케즈라는 가상 인형들이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던 것처럼 장외의 모든 이벤트와 마케팅이 축구의 열정과 미학에서 벗어나게 되면 팬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월드컵 장외 경기에서 우세승을 노리는 국내 기업들은 ‘애국심’ 보다는 변화하고 발전한 시민의 문화 감수성을 새로 읽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 정윤수 : 2002 월드컵 당시의 날카로운 해설로 주목을 받은 문화평론가이자 축구평론가. 현재 문화비평지 ‘리뷰’ 편집위원 및 문화단체 ‘풀로엮은집’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축구장을 보호하라’가 있다. 정윤수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