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은 조선의 반도체였다’의 저자 옥순종씨
150년 전에도 인삼 둘러싼 무역전쟁 치열… 종주국 자부심 갖고 서양삼 도전에 맞서야
인삼(人蔘)의 우리 고유어는? 겉이 붉은 홍삼(紅蔘)은 뭐고, 흰 백삼(白蔘)은 뭔가? 인삼의 영어표기인 진셍(ginseng)은 일본어인가, 중국어인가? 150년 전 한국산 인삼과 미국산 삼이 무역전쟁을 벌였다….
한국사람이면 으레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인삼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최근 ‘교양으로 읽는 인삼이야기-인삼은 조선의 반도체였다’(출판사 이가서)라는 흥미로운 책을 펴낸 옥순종(47)씨는 “우리나라 사람이 인삼에 대해 좀더 많이 알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 네덜란드의 튤립 등 나라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있습니다. 상징물은 외국인에게 그 나라를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자국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줍니다. 우리나라에선 인삼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인삼을 알게 되면 인삼을 사랑하게 되고, 인삼 종주국민으로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한국인삼공사 홍보실장으로 있는 그가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료 수집에 나선 것이 3년 전. 퇴근하면 인터넷과 씨름하며 정보를 모으고, 주말이면 국립도서관, 국학연구소 등을 찾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지난해 수출 2000억달러 중 270억달러(10.5%)를 차지한 반도체처럼 인삼은 조선시대 대외무역의 대표 상품이었습니다. 인삼은 무게나 부피가 작으면서 가격이 높은 고부가가치 상품이란 점도 반도체와 유사합니다.” 그는 “인삼은 중국의 비단, 일본의 은과 함께 조선시대 동북아 무역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다”면서 “일본에선 조선인삼을 구입하기 위해 순도가 높은 특별은화를 제조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고려, 조선의 대외 이미지는 인삼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요즘 한국이 반도체 등으로 ‘IT강국’ 이미지를 구축한 것과 흡사하죠.”
인삼은 서양에 전해지면서 일부 상류층에선 귀하게 사용했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루소의 일화도 전해집니다. 루소는 제자가 당시 비싼 물건이던 커피 원두 한 포대를 선물하자 받을 수 없다며 되돌려주려고 했습니다. 제자가 선물을 돌려줄 것이 아니라 그만한 값어치 있는 물건을 주면 될 것 아니냐고 역제의하자 루소가 인삼 한 뿌리를 보냈다고 합니다. 또 러시아 문호 고리키도 인삼즙을 마시면서 정력적인 창작활동을 했다는군요.”
인삼 값은 예나 지금이나 비싸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인삼 가운데 최상품인 홍삼 ‘천삼 10지 600g’은 308만1000원으로 1g당 5135원입니다. 이를 금속단위 돈(3.75g)으로 환산하면 인삼 1돈은 은 1돈(850원)의 23배 가량 비쌉니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조 13년(1737)에 공물로 인삼 대신 쌀을 바치는 가격이 인삼 1냥(37.5g)당 쌀 2석10두였다. 이를 현재 가격과 비교하면 인삼은 현재 은 시세의 54배, 금 시세의 0.8배입니다.” 옥씨는 “조선시대에 외국인들의 조선 풍물을 전한 저술을 보면 인삼을 금과 맞바꾸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했다.
이런 인삼이기에 슬픈 사연도 담겨있다. 조선시대 각 고을에 인삼 할당이 떨어지면 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을을 도망치기도 했다고 한다. 옥씨는 백성의 아픔을 전한 한시(漢詩)도 책에 소개했다.
인삼은 지금 한국이 반도체, 자동차 등을 갖고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18세기에 무역전쟁을 치렀다. “18세기 중반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동양으로 인삼을 수출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인디언을 동원해 캐나다와 미국의 산속을 뒤졌습니다. 이곳에서 발견한 삼을 헐값으로 사들여 중국으로 수출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1893~1896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인삼가격은 조선산 1등품을 100으로 했을 때 만주산 40, 일본산 25, 북미산 20, 중국산 10이었습니다. 상류층만 접할 수 있던 중국 인삼시장에 값싼 서양삼이 몰려오자 조선의 인삼값은 폭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전쟁은 지금도 홍콩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삼 종주국에 대한 서양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옥씨의 얘기다. “최근 미국에서는 미국 삼에 인삼의 국제어인 진셍(ginseng)을 붙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 삼은 우리 인삼과 종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셍(ginseng)으로 일원화하려는 것은 우리 인삼과 미국 삼을 동일시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인삼의 역사를 시급히 정립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옥씨가 인삼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당시 새로 출범한 한국인삼공사에 홍보실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동국대 사학과를 나와 전남일보에서 사회부, 정치부를 거쳐 사회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엔 1년간 청와대를 출입한 베테랑 기자 출신. 전남지역의 오지를 탐방한 ‘오지를 찾아서’라는 시리즈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장작불 때고 호롱불 켜고 살아가는 모습을 30회 정도 썼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신문사를 떠난 것은 IMF 위기 때문. “새로운 길을 찾다가 홍보 쪽으로 인연이 닿았습니다. 솔직히 당시엔 인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아내도 걱정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옥씨는 “대외적인 활동이 많은 기자생활과 다른 직장 생활에 적응하는 데 처음엔 꽤 힘들었다”면서 “전직 등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을 때 새로운 환경에 몰입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역시 ‘홍보맨’을 제2의 천직으로 알고 홍보전문가로 변신하기 위해 서강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제가 인삼과 인연을 맺을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새삼 인생은 우연으로 점철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옥씨가 당장 하고픈 일은 책의 내용을 보완하고 외국어로 번역해 외국에서 출간하는 것. 옥씨는 “국제화 시대에 한국인이 인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것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거산 주간조선 차장(bigmt@chosun.com)
“밭에서 나는 金, 인삼을 지킵시다”
‘인삼은 조선의 반도체였다’의 저자 옥순종씨 150년 전에도 인삼 둘러싼 무역전쟁 치열… 종주국 자부심 갖고 서양삼 도전에 맞서야 인삼(人蔘)의 우리 고유어는? 겉이 붉은 홍삼(紅蔘)은 뭐고, 흰 백삼(白蔘)은 뭔가? 인삼의 영어표기인 진셍(ginseng)은 일본어인가, 중국어인가? 150년 전 한국산 인삼과 미국산 삼이 무역전쟁을 벌였다…. 한국사람이면 으레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인삼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최근 ‘교양으로 읽는 인삼이야기-인삼은 조선의 반도체였다’(출판사 이가서)라는 흥미로운 책을 펴낸 옥순종(47)씨는 “우리나라 사람이 인삼에 대해 좀더 많이 알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 네덜란드의 튤립 등 나라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있습니다. 상징물은 외국인에게 그 나라를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자국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줍니다. 우리나라에선 인삼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인삼을 알게 되면 인삼을 사랑하게 되고, 인삼 종주국민으로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한국인삼공사 홍보실장으로 있는 그가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료 수집에 나선 것이 3년 전. 퇴근하면 인터넷과 씨름하며 정보를 모으고, 주말이면 국립도서관, 국학연구소 등을 찾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지난해 수출 2000억달러 중 270억달러(10.5%)를 차지한 반도체처럼 인삼은 조선시대 대외무역의 대표 상품이었습니다. 인삼은 무게나 부피가 작으면서 가격이 높은 고부가가치 상품이란 점도 반도체와 유사합니다.” 그는 “인삼은 중국의 비단, 일본의 은과 함께 조선시대 동북아 무역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다”면서 “일본에선 조선인삼을 구입하기 위해 순도가 높은 특별은화를 제조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고려, 조선의 대외 이미지는 인삼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요즘 한국이 반도체 등으로 ‘IT강국’ 이미지를 구축한 것과 흡사하죠.” 인삼은 서양에 전해지면서 일부 상류층에선 귀하게 사용했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루소의 일화도 전해집니다. 루소는 제자가 당시 비싼 물건이던 커피 원두 한 포대를 선물하자 받을 수 없다며 되돌려주려고 했습니다. 제자가 선물을 돌려줄 것이 아니라 그만한 값어치 있는 물건을 주면 될 것 아니냐고 역제의하자 루소가 인삼 한 뿌리를 보냈다고 합니다. 또 러시아 문호 고리키도 인삼즙을 마시면서 정력적인 창작활동을 했다는군요.” 인삼 값은 예나 지금이나 비싸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인삼 가운데 최상품인 홍삼 ‘천삼 10지 600g’은 308만1000원으로 1g당 5135원입니다. 이를 금속단위 돈(3.75g)으로 환산하면 인삼 1돈은 은 1돈(850원)의 23배 가량 비쌉니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조 13년(1737)에 공물로 인삼 대신 쌀을 바치는 가격이 인삼 1냥(37.5g)당 쌀 2석10두였다. 이를 현재 가격과 비교하면 인삼은 현재 은 시세의 54배, 금 시세의 0.8배입니다.” 옥씨는 “조선시대에 외국인들의 조선 풍물을 전한 저술을 보면 인삼을 금과 맞바꾸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했다. 이런 인삼이기에 슬픈 사연도 담겨있다. 조선시대 각 고을에 인삼 할당이 떨어지면 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을을 도망치기도 했다고 한다. 옥씨는 백성의 아픔을 전한 한시(漢詩)도 책에 소개했다. 인삼은 지금 한국이 반도체, 자동차 등을 갖고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18세기에 무역전쟁을 치렀다. “18세기 중반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동양으로 인삼을 수출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인디언을 동원해 캐나다와 미국의 산속을 뒤졌습니다. 이곳에서 발견한 삼을 헐값으로 사들여 중국으로 수출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1893~1896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인삼가격은 조선산 1등품을 100으로 했을 때 만주산 40, 일본산 25, 북미산 20, 중국산 10이었습니다. 상류층만 접할 수 있던 중국 인삼시장에 값싼 서양삼이 몰려오자 조선의 인삼값은 폭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전쟁은 지금도 홍콩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삼 종주국에 대한 서양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옥씨의 얘기다. “최근 미국에서는 미국 삼에 인삼의 국제어인 진셍(ginseng)을 붙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 삼은 우리 인삼과 종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셍(ginseng)으로 일원화하려는 것은 우리 인삼과 미국 삼을 동일시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인삼의 역사를 시급히 정립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옥씨가 인삼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당시 새로 출범한 한국인삼공사에 홍보실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동국대 사학과를 나와 전남일보에서 사회부, 정치부를 거쳐 사회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엔 1년간 청와대를 출입한 베테랑 기자 출신. 전남지역의 오지를 탐방한 ‘오지를 찾아서’라는 시리즈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장작불 때고 호롱불 켜고 살아가는 모습을 30회 정도 썼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신문사를 떠난 것은 IMF 위기 때문. “새로운 길을 찾다가 홍보 쪽으로 인연이 닿았습니다. 솔직히 당시엔 인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아내도 걱정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옥씨는 “대외적인 활동이 많은 기자생활과 다른 직장 생활에 적응하는 데 처음엔 꽤 힘들었다”면서 “전직 등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을 때 새로운 환경에 몰입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역시 ‘홍보맨’을 제2의 천직으로 알고 홍보전문가로 변신하기 위해 서강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제가 인삼과 인연을 맺을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새삼 인생은 우연으로 점철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옥씨가 당장 하고픈 일은 책의 내용을 보완하고 외국어로 번역해 외국에서 출간하는 것. 옥씨는 “국제화 시대에 한국인이 인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것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거산 주간조선 차장(bigm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