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3월12일 서산군 부석면 지산리에서 부친 임진호씨와 모친 김씨 사이의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임형재 후보는 어린 시절 가정형편으로 말미암아 항상 진학을 고민해야만 했다. 임 후보의 유년시절 진학에 대한 고민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시작됐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학비를 걱정해야만 했던 임 후보에게 중학교 진학은 장학금 획득이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 당시 장학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탓에 수석과 차석에게만 주어지던 장학제도는 임 후보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임 후보는 “호롱불의 연료를 아끼기 위해 한방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나랑 똑같은 상황이었고 같은 학교를 지원해 다행히 그 친구가 수석을 하고 내가 차석을 해서 중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어”라고 말했다.
장학금으로 어렵게 서령중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 임 후보에게 고등학교 진학은 역시 쉬운 선택만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천안에서 살고 계시던 이모님의 학비지원으로 천안고를 진학할 수 있었던 임 후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천안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하지만 임 후보의 학창시절은 여기까지였다. 마찬가지 이유로 대학진학을 엄두도 내지 못한 임 후보는 공무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임 후보는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공무원의 길을 경제적 이유로 선택했지만 뒤돌아보면 단순히 핑계가 아닐까, 하는 후회 섞인 얘기도 했다.
“노동을 하던 가, 과외를 하던 가, 돈을 벌면서 충분히 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는데 그 때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시퍼런 칼 날 위에서 평생을 춤추다’
면서기에서 1급 부지사까지 공직 39년
대학을 포기하고 형님의 권유로 시작한 공무원 생활은 고졸 출신의 임 후보에게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임 후보의 첫 공직생활 발령지는 1967년 고향인 서산군 부석면사무소. 이후 서산읍사무소를 거쳐 서산군청으로 발령을 받은 임 후보는 군청에서 도청으로 갈 수 있는 공무원소양고사에 응시해 보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공무원소양고사에 응시한 임 후보는 이 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으나 도청으로 발탁되지 않았다. 당시 도지사는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다시 시험을 치르라는 지시를 내렸고 임 후보는 재차 시험을 보게 됐고 결과는 1등이었다. 하지만 역시 도청 발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임 후보는 이때 도지사에게 시험결과에도 불구하고 도청 발령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을 성토하는 내용의 편지를 발송하는 수고(?)를 거친 끝에 도청 발령을 받게 된다. 이때가 1972년으로 공무원생활 5년만의 일이었다.
도청근무시절 임 후보에게 또 한번 인생의 전환기가 찾아온다. 내무부 입성을 판가름하는 공개능력테스트가 바로 그것으로 1977년 전국 단위 평가에서 임 후보는 당당히 3명의 합격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이 당시 3명의 합격자는 공교롭게 모두 고졸 출신이었다. 또한 이 시험을 주관한 인물도 고졸출신이었다.
이들은 대졸자 일변도인 내무부 조직사회에서 고졸 출신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논의한 끝에 ‘4명 모두 대학에 진학하지 말자’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합의를 한다. 당시 내무부 출신에게는 대학진학의 문이 활짝 열려있었던 제도에 비추어볼 때 이들의 합의는 어처구니없는 무모한 합의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임 후보의 충청남도부지사를 비롯해 각각 경남도부지사, 강원도 기획관리실장, 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활약하며 고졸신화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현 국민중심당 공동대표)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임 후보가 충남도의회 사무처장으로 발탁되면서 시작된다. 이어 심 전 도지사가 임 후보의 통합 및 조정능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기획관리실장직을 맡기게 됐고, 국민중심당 입당과 천안시장 후보 출마로 이어진다.
임 후보는 39년의 공직생활을 ‘시퍼런 칼 날 위에서 평생을 춤췄다’고 평가했다.
내무부 시절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서해훼리호 침몰, 중국민항기 추락, 경남 의령 순경총기난동사건 등 대형사건 진화에 투입됐다. 위기관리능력과 상황수습능력을 발휘하면서 영원한 상황실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천안군수 재직시절 시군통합을 이루었고, 충남도청 재직시절 계룡시 승격, 내포문화권 사업, 행정수도 사수 등 쉽지 않은 일이 끊임없이 임 후보의 몫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치입문 역시 시퍼런 칼날의 연속이기는 마찬가지. 1급 공무원인 충청남도부지사로 화려하게 퇴임하고 편안한 여생을 향유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천안시장으로 일종의 하향 지원을 선택함으로서 내무부시절 ‘대학교에 진학하지 말자’와 비교되는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을 다시 한번 단행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임후보는 “1백만도시의 기틀인 시군통합을 이뤄낸 장본인으로써 천안의 발전상을 꿈꿨지만 그렇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 안타깝다”며 결단의 배경을 설명한다.
임 후보의 고향이며 1967년 첫 공무원 발령지인 부석면에서 친구처럼 지냈던 김애숙(58)씨와 1974년 3월 결혼한 임 후보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지난해에는 장남 임승협씨가 결혼을 해 며느리를 보기도 했다.
가족들은 임 후보가 예정된 평온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고된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지만 이제는 아버지이자 남편의 선택을 존중하며 임 후보의 건승을 기원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모든 걸 던질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관계가 없던 내가 천안시장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것은 후배 공직자와 가족들에게 전하는 저의 마지막 교육이 될 것입니다.”
시퍼런 칼 날 위에서 춤을 춘 39년의 공직생활 끝에 또 다시 새로운 칼 날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임 후보는 요즘 선거활동을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과대포장으로 나를 세일하는 것이 아니라 꾸밈없는 진솔함으로 천안시민에게 다가서는 시간’이라고 자평했다.
임형재 후보를 돕는 사람들
국민중심당은 천안을 당차원의 전략지구로 지정하고 공격적인 선거진용을 갖출 태세다.
중앙당의 전문인력이 대거 투입돼 전면전에 돌입할 예정으로 조직구성은 5월 초순 마무리된다고 선거캠프 관계자는 설명했다.
4월28일 현재까지 천안시 가선거구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김민기 시의원이 조직관리업무를 맡고 있으며 전 충남도지사이자 현 국민중심당 심대평 공동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이창수씨가 전면 배치돼 선거캠프의 축을 이루고 있다.
이창수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기획전략팀이 조직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로 측근들에 의하면 상당한 수준의 파괴력을 갖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요 참모진은 국민중심당 천안시당원협의회 도병수 협의회장 사람들로 구성됐으며 수행비서인 유진수씨 역시 도병수 협의회장의 추천인물.
임 후보의 일정 운영은 천안시청 공무원이었던 박문규씨가 발탁돼 꼼꼼한 선거일정을 관리하고 있으며 류철희 전 천안시장이 정책발굴이나 기획에 도움을 주는 주요 인사로 꼽히고 있다. 국민중심당의 입당에 앞서 쌍용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한 임 후보는 현재 부인 김애숙씨와 천안살이를 시작했으며 두 아들은 회사원으로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가족들은 직접적인 선거활동 보다는 내조와 격려의 말로 임 후보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공직사회 고졸신화 이룬 성공한 행정가 천안시장 도전
공직사회 고졸신화 이룬 성공한 행정가
천안시장 도전
생계난으로 대학진학 포기, 공직선택
9급 면서기에서 직업공무원 최고봉인 1급 부지사로 퇴임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버거웠던 학창 시절
학비부담으로 대학포기, 공직자의 길 선택
▲ 임형재 예비후보 가족 사진1948년 3월12일 서산군 부석면 지산리에서 부친 임진호씨와 모친 김씨 사이의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임형재 후보는 어린 시절 가정형편으로 말미암아 항상 진학을 고민해야만 했다. 임 후보의 유년시절 진학에 대한 고민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시작됐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학비를 걱정해야만 했던 임 후보에게 중학교 진학은 장학금 획득이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 당시 장학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탓에 수석과 차석에게만 주어지던 장학제도는 임 후보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임 후보는 “호롱불의 연료를 아끼기 위해 한방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나랑 똑같은 상황이었고 같은 학교를 지원해 다행히 그 친구가 수석을 하고 내가 차석을 해서 중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어”라고 말했다.
장학금으로 어렵게 서령중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 임 후보에게 고등학교 진학은 역시 쉬운 선택만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천안에서 살고 계시던 이모님의 학비지원으로 천안고를 진학할 수 있었던 임 후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천안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하지만 임 후보의 학창시절은 여기까지였다. 마찬가지 이유로 대학진학을 엄두도 내지 못한 임 후보는 공무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임 후보는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공무원의 길을 경제적 이유로 선택했지만 뒤돌아보면 단순히 핑계가 아닐까, 하는 후회 섞인 얘기도 했다.
“노동을 하던 가, 과외를 하던 가, 돈을 벌면서 충분히 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는데 그 때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시퍼런 칼 날 위에서 평생을 춤추다’
면서기에서 1급 부지사까지 공직 39년
대학을 포기하고 형님의 권유로 시작한 공무원 생활은 고졸 출신의 임 후보에게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임 후보의 첫 공직생활 발령지는 1967년 고향인 서산군 부석면사무소. 이후 서산읍사무소를 거쳐 서산군청으로 발령을 받은 임 후보는 군청에서 도청으로 갈 수 있는 공무원소양고사에 응시해 보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공무원소양고사에 응시한 임 후보는 이 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으나 도청으로 발탁되지 않았다. 당시 도지사는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다시 시험을 치르라는 지시를 내렸고 임 후보는 재차 시험을 보게 됐고 결과는 1등이었다. 하지만 역시 도청 발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임 후보는 이때 도지사에게 시험결과에도 불구하고 도청 발령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을 성토하는 내용의 편지를 발송하는 수고(?)를 거친 끝에 도청 발령을 받게 된다. 이때가 1972년으로 공무원생활 5년만의 일이었다.
도청근무시절 임 후보에게 또 한번 인생의 전환기가 찾아온다. 내무부 입성을 판가름하는 공개능력테스트가 바로 그것으로 1977년 전국 단위 평가에서 임 후보는 당당히 3명의 합격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이 당시 3명의 합격자는 공교롭게 모두 고졸 출신이었다. 또한 이 시험을 주관한 인물도 고졸출신이었다.
이들은 대졸자 일변도인 내무부 조직사회에서 고졸 출신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논의한 끝에 ‘4명 모두 대학에 진학하지 말자’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합의를 한다. 당시 내무부 출신에게는 대학진학의 문이 활짝 열려있었던 제도에 비추어볼 때 이들의 합의는 어처구니없는 무모한 합의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임 후보의 충청남도부지사를 비롯해 각각 경남도부지사, 강원도 기획관리실장, 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활약하며 고졸신화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현 국민중심당 공동대표)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임 후보가 충남도의회 사무처장으로 발탁되면서 시작된다. 이어 심 전 도지사가 임 후보의 통합 및 조정능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기획관리실장직을 맡기게 됐고, 국민중심당 입당과 천안시장 후보 출마로 이어진다.
임 후보는 39년의 공직생활을 ‘시퍼런 칼 날 위에서 평생을 춤췄다’고 평가했다.
내무부 시절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서해훼리호 침몰, 중국민항기 추락, 경남 의령 순경총기난동사건 등 대형사건 진화에 투입됐다. 위기관리능력과 상황수습능력을 발휘하면서 영원한 상황실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천안군수 재직시절 시군통합을 이루었고, 충남도청 재직시절 계룡시 승격, 내포문화권 사업, 행정수도 사수 등 쉽지 않은 일이 끊임없이 임 후보의 몫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치입문 역시 시퍼런 칼날의 연속이기는 마찬가지. 1급 공무원인 충청남도부지사로 화려하게 퇴임하고 편안한 여생을 향유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천안시장으로 일종의 하향 지원을 선택함으로서 내무부시절 ‘대학교에 진학하지 말자’와 비교되는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을 다시 한번 단행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임후보는 “1백만도시의 기틀인 시군통합을 이뤄낸 장본인으로써 천안의 발전상을 꿈꿨지만 그렇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 안타깝다”며 결단의 배경을 설명한다.
임 후보의 고향이며 1967년 첫 공무원 발령지인 부석면에서 친구처럼 지냈던 김애숙(58)씨와 1974년 3월 결혼한 임 후보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지난해에는 장남 임승협씨가 결혼을 해 며느리를 보기도 했다.
가족들은 임 후보가 예정된 평온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고된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지만 이제는 아버지이자 남편의 선택을 존중하며 임 후보의 건승을 기원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모든 걸 던질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관계가 없던 내가 천안시장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것은 후배 공직자와 가족들에게 전하는 저의 마지막 교육이 될 것입니다.”
시퍼런 칼 날 위에서 춤을 춘 39년의 공직생활 끝에 또 다시 새로운 칼 날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임 후보는 요즘 선거활동을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과대포장으로 나를 세일하는 것이 아니라 꾸밈없는 진솔함으로 천안시민에게 다가서는 시간’이라고 자평했다.
임형재 후보를 돕는 사람들
국민중심당은 천안을 당차원의 전략지구로 지정하고 공격적인 선거진용을 갖출 태세다.
중앙당의 전문인력이 대거 투입돼 전면전에 돌입할 예정으로 조직구성은 5월 초순 마무리된다고 선거캠프 관계자는 설명했다.
4월28일 현재까지 천안시 가선거구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김민기 시의원이 조직관리업무를 맡고 있으며 전 충남도지사이자 현 국민중심당 심대평 공동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이창수씨가 전면 배치돼 선거캠프의 축을 이루고 있다.
이창수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기획전략팀이 조직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로 측근들에 의하면 상당한 수준의 파괴력을 갖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요 참모진은 국민중심당 천안시당원협의회 도병수 협의회장 사람들로 구성됐으며 수행비서인 유진수씨 역시 도병수 협의회장의 추천인물.
임 후보의 일정 운영은 천안시청 공무원이었던 박문규씨가 발탁돼 꼼꼼한 선거일정을 관리하고 있으며 류철희 전 천안시장이 정책발굴이나 기획에 도움을 주는 주요 인사로 꼽히고 있다. 국민중심당의 입당에 앞서 쌍용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한 임 후보는 현재 부인 김애숙씨와 천안살이를 시작했으며 두 아들은 회사원으로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가족들은 직접적인 선거활동 보다는 내조와 격려의 말로 임 후보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 천안신문 2006.04.29 유창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