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름 황제

송승회200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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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름 황제


 

싸늘했던 날씨가 은근슬쩍 포근해지고 있다.

스쳐지나간 것 같은 칼바람 부는 겨울이 그리워지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른채 바삐 지내다보면

사방의 암내에 코를 막게 되는 후덥지근한 여름이 금방 올게다.

사시사철 때를 가리지 않지만 특히 여름은, 개기름의 계절이다.

 

 

 

나의 모공은 쉬지 않고 개기름을 생산해내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제조해 낼 수 있는 이 개기름의 정의는

'기름 성분으로 이루어진 피지의 과다 분비물'이란다.

물론, 모공을 통해서 나와야만 한다.

자동차 머플러에서 나오는 기름은 차가 고장난거지

'오오.. 자동차에서 개기름이 나오네..' 라고 감탄할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에 취한 채로 씻으러 갈 때마다

거울을 보고 화들짝 놀라게 되는 내 얼굴을 자세히 보면

모공의 크기가 콧구멍보다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거 보통일이 아니다.. 싶었다.

 

얼굴에 여드름 빼면 남는게 눈동자 밖에 없었던 고등학교 때 이후로

장마가 올 때마다 '수마가 할퀴고 갔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여드름이 쓸고 간 내 얼굴에는 오픈 모공이 훈장처럼 남아있다.

이 모공을 통해서 피부가 숨을 잘 쉰다는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남들 보기에 죄송한 이 블랙홀을 막아보려고 별 짓을 다 했었다.

 

조인성이가 붙여서 그렇게 말끔한 피부가 되었다는 마스크 팩부터

코가 너무 커서 한개로는 택도 없이 부족한 코팩도 수없이 해봤다.

015B의 장호일이 광고했던 것 같은 아젤리아는 기본 옵션이었고

민간 요법 같은건 VAT 별도 부과 같은 개념이 필요가 없었다.

 

오만가지 처방을 모두 내려본 결과..

아닌건 아닌거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 됐다.

내 모공은 그런 요법따위에 굴할 놈들이 아니었나보다.

 

 

 

그냥 이렇게 살자..

가끔 인터뷰에서 '내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모공이 꽉 막힌 남자 연예인들의 기분을 이해해주기로 했다.

모공이 뻥 뚫려있지 읺으면 결코 잘 생긴게 아니거든.

 

 

 

생긴대로 살자고 마음먹고 지내다가 보니, 인류에 위기가 닥쳤다.

고갈되어 가는 원유를 대체 할 에너지를 찾아야 할 지경이 됐고,

안그래도 심난한데 물까지 부족해져서 몇년 지나지 않아서는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면 양동이 들고 뛰어나가야 할 때가 왔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인류의 위기는 나의 개기름과 직결된다.

 

여름에 미친듯이 땀을 흘리다가 턱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땀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땀방울들이 개기름과 기가막히게 잘 섞여서 물과 기름이 혼합된..

다시 말해서, 천연 이멀젼 용액이 되어서 줄줄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내 모공 곳곳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바람에

미카엘라가 심심하면 있는 힘껏 짜내는 노오란 기름덩어리들은

오직 인간의 신체에서만 만들수 있는 고농축 오일 알맹이들이다.

인체의 신비 같은 다큐멘터리를 대충 감상해도 알 수 있을게다.

우리 몸은 필요한 성분을 쏙 빼먹고 남은 것만 버리는

AAA급 여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과학의 총체와 다를바 없다.

결국, 이 농축 개기름 알맹이는 100% 천연 오일 덩어리인거지.

 

 

 

음.. 그렇군..

 

 

 

30년만 지나면 세상이 달라질게다.

GS 칼텍스의 오일 탱크들은 내 개기름으로 가득 채워질테고,

리튬마저 간당간당 해지면 핸드폰의 배터리에도

개기름과 땀이 혼합된 이멀젼 용액을 훌륭하게 응용해서

물과 기름의 반발력 에너지를 이용한 배터리를 쓰게 될게다.

그 때에 핸드폰 배터리를 흔들어보면 그 안에서 출렁이는

내 개기름과 땀으로 만들어진 수용액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껄.

 

어디 그뿐이랴.

각종 전자제품의 기판은 농축 개기름 트랜지스터로 채워질테고

콧구멍의 개기름을 이용하는 플러그가 생산될 날이 멀지 않았다.

머리에 바르는 포마드 내지 왁스도 개기름 100%가 될테고,

개기름의 장력을 이용한 온도계는 없어서 못 팔 때가 올게다.

 

물부족 현상을 개기름으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그냥 고이 간직하기만 하고 물어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걸 설명하려면 논문 100장으로도 어림없다.

 

 

 

빌게이츠가 안부럽다.

다들 시간이 지나면 바가지 하나씩 들고 내 앞에 오게 되어있다.

그 때에는 개기름 한방울, 농축 개기름 알맹이 하나에 기절할만큼

비싼 값을 불러팔아도 누구하나 큰 소리 내지 못하게 되리라.

 

옥동자가 경쟁 상대이긴 했지만, 결혼했단다.

벌써부터 집사람이 피부관리 확실히 해줄테니

더 이상 그 양반 모공에서 개기름이 생산될리는 없다.

혹시나 선견지명이 있어서 그 부부가 개기름을 방치하고 있다면

담합을 해야할 경우를 대비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영화 홀리데이 덕분에 행적이 재발견 된 지강혁씨가

결코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인질극을 저질렀던게 아니다.

 

" 油田無罪! "

 

글을 거의 다 읽은 지금쯤에는

이 말씀이 가슴속에 깊이 와 닿아야 한다.

 

 

 

오십견이 찾아올 때쯤 경제 전문 매거진을 보고

세계 5대 부호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더라도 놀라지 마시라.

 

 

 

나는 인간 오일뱅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