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왜 서울 얘기 하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원글 저자님 꼭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제가 대학교 가기까지의 과정을 말씀 드리고 싶네요.
저랑 동생은 평범한 유치원에 1년을 다녔습니다.
주위에서는 보통 6살부터 유치원 가는 분위기 였지만.
6살까지는 어머니께 한글이랑 구구단, 덧셈, 뺄셈, 나눗셈 배우고 7살 되던 해에 유치원에 갔습니다.
(한글 배우고 나서는 초등학교 읽기책을 가져다가 받아쓰기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8살되서부터는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는 조금 일찍 일어나는 편이어서 아침 6시쯤에 일어나서 어머니와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에 풀 문제집을 적어놓으셨고 저는 일어나면 바로 씻고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매겨주시고 틀린거 확인하고 밥먹고 등교했습니다.
그 때 풀었던 문제집이 이달학습, 다달학습, 표준완전학습 이 세 권은 한달에 한 권씩 나오는데, 이런 문제집은 한 권당 보통 4~5일이면 다 풀 수 있습니다.
(적당히 공부하는 선에서..과한 양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과목별로 국어완성, 산수완성(나중에는 수학완성으로 바뀌었지만), 사회완성, 자연완성을 풀었고요(동아출판사, 나중에는 두산동아로 바뀌었음),
추가로 사회 백지도, 자연 탐구학습장 했습니다.
그리고 전과는 동아전과, 표준전과 두권 모두 봤구요.
어머니께서는 아침마다 정해진 계획대로 함께 공부해 주셨습니다.
(미리 공부하셨던거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학교 마치면 집으로 곧장 와서 씻고, 태권도 학원을 갔습니다.
(피아노 학원 한 달 다녔었는데, 제가 싫어해서 피아노 학원은 끊고 태권도 학원 다녔습니다. 당시에 한달에 4~5만원?)
태권도 학원 마치고 친구들이랑 6시까지 미친듯이 실컷 놀았습니다.
6시 되면 집에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그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집에 갑니다.
(부모님 말씀을 안 들으면 정해진 체벌량만큼 맞았습니다. 회초리로. 진짜 회초리로)
집에 오면 티비를 보다가 저녁을 먹고,
저녁을 먹고 나면 어머니와 아침에 틀린 것,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복습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독후감쓰기 했습니다.
(이 때 글짓기, 맞춤법 공부 했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때는 반에서 5~6등 정도 했습니다.
(당시에 학교에서 시험 칠때마다 전교석차 같은걸 적어서 보내곤 했는데,
전교석차는 생각이 안나고 반에서 대충 그렇게 했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는 서서히 등수가 오르기 시작해서 전교에서 10등 안에 늘 들었습니다.
저는 이 때부터 과학계열 과목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어머니와 자연책에 있는 실험(그 중에서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습니다.
배추흰나비 내용이 나오면 주말에는 시골에 배추흰나비 잡으러 갔었고,
개구리 내용이 나왔을 때는 어머니께서 시골에 시외버스 타고 가셔서 (어머니는 차가 없으셔서) 빠게쓰(죄송합니다.-_-;;;;;)에 개구리 알 퍼다가 집에서 길러도 봤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레고 대신에 과학 상자 사다 주셔서, 동생이랑 책에 있는대로 조립하면서 놀았습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과학 실험대회, 자연 관찰 탐구 대회, 과학상자 조립대회는 늘 1등을 휩쓸었고, 전국대회까지 나가서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때에는 논술 대회가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교육부 장관상까지 받았었습니다. (독후감 쓰기 습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동네 중학교에 들어가서 잘 지내다가, 저의 공부 라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가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영어에서였습니다.
저는 무조건 교과서랑 참고서만 공부했기 때문에 그 이외의 것이 나와서 당황해서 찍었는데 70점 가량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날 집에서 울었습니다. 처음으로 성적이란 것 때문에..
성적에 있어서는 어머니는 냉정하십니다. 그 성적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 때 처음으로 어머니께 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뒤, 중간고사가 끝난 후 어머니와 손을 잡고 동네 학원에 갔습니다.
학원 원장 선생님하고 상담을 하고 학원을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한달에 15만원이고 국영수사과를 가르치는 종합반에 들어갔습니다.(한 학년에 20명 정도 규모)
학원이 작아서 단과는 안한다고 해서^^;; 종합반에 들어갔습니다.
영어에 기초가 워낙 없었기 때문에, 1시간 일찍 학원에 와서 원장 선생님과 따로 수업을 했습니다. (추가 수강비 없이..진짜 고맙게 생각함;)
1~100까지 숫자쓰기, 주격-소유격-목적격, 이런 생기초들부터 차근차근 했습니다.
어느새 다른 애들과 영어 진도가 맞아 들어가서 함께 공부를 하고 기말고사때는 드디어 영어를 100점을 맞았습니다.
그렇게 5월말부터 8월까지 학원을 다니고, 영어 공부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과서는 철저하게 정독을 하고, 참고서에 나오는 문법 사항들은 교과서 내용을 일일이 체크를 하고, 이해를 하고, 무엇보다도 본문을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 그런 방식으로 학교 공부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부르셔서 갔더니 국립대 영재센터 영재선발 시험을 치러 가보라고 하셔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영재센터 시험을 치러 갔습니다.
당시에 공부를 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그냥 평소 실력으로 쳤습니다.
그 때 쳤던 과목은 수학,과학,국어.(다행히 영어는 안쳤음. 수학, 과학은 보통 생각을 깊이 해야지 푸는 논리적 문제 정도였고, 국어는 맞춤법 내용이 주를 이루었음. )
영재 센터에는 추가로 합격해서 영재센터에 다녔는데, 주말에 영재센터에 가야하는데,
학교 수업 시간이랑 안 맞아서 학교 끝나고 영재센터에 가다보니 지각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래서 담당 교수님하고 마찰이 있어서 영재센터는 안 다니기로 하고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1말에 교육청에서 100명 가량 심화교실 참가자 선발을 한다고 해서 또 학교에서 10명 뽑아서 교육청 가서 시험을 쳤습니다.
시험 치기 전에 어머니와 시내에 있는 서점에 가서 중학생 수준의 올림피아드 문제집을 한권 샀습니다.
그리고 올림피아드 문제집을 쭉쭉 풀었습니다.
그 중 틀린 것 80% 맞는 것 20% 정도, 약간 절망감이 들기도 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계속 풀었습니다.
풀다가 안 풀리면 계산 과정도 외웠습니다.
시험 내용은 수학과 과학(각 10문항씩, 100점 만점, 문제당 10점)인데, 수학은 지극히 중1 수학 교과서 내용이었고, 몇 문제는 증명이었는데, 교과서에 있는 증명은 다 외우고 있어서 수학은 무리 없이 쳤고 과학은 그야말로 고등학교 내용이었는데, 알고 있는 것만 풀고, 나머지는 찍었습니다.
대단한분...
글이 아마도 상당히 길어질 것입니다. 그래도 읽어 주세요.
큰애는 외고, 작은애는 과고.
저희집은 반대로 제가 과고 나왔고, 동생은 외고 나왔습니다.
(올해 대학교 3학년이 됩니다.동생은 1학년 되고요.)
제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은 지방 대도시입니다.
지방에서 왜 서울 얘기 하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원글 저자님 꼭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제가 대학교 가기까지의 과정을 말씀 드리고 싶네요.
저랑 동생은 평범한 유치원에 1년을 다녔습니다.
주위에서는 보통 6살부터 유치원 가는 분위기 였지만.
6살까지는 어머니께 한글이랑 구구단, 덧셈, 뺄셈, 나눗셈 배우고 7살 되던 해에 유치원에 갔습니다.
(한글 배우고 나서는 초등학교 읽기책을 가져다가 받아쓰기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8살되서부터는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는 조금 일찍 일어나는 편이어서 아침 6시쯤에 일어나서 어머니와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에 풀 문제집을 적어놓으셨고 저는 일어나면 바로 씻고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매겨주시고 틀린거 확인하고 밥먹고 등교했습니다.
그 때 풀었던 문제집이 이달학습, 다달학습, 표준완전학습 이 세 권은 한달에 한 권씩 나오는데, 이런 문제집은 한 권당 보통 4~5일이면 다 풀 수 있습니다.
(적당히 공부하는 선에서..과한 양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과목별로 국어완성, 산수완성(나중에는 수학완성으로 바뀌었지만), 사회완성, 자연완성을 풀었고요(동아출판사, 나중에는 두산동아로 바뀌었음),
추가로 사회 백지도, 자연 탐구학습장 했습니다.
그리고 전과는 동아전과, 표준전과 두권 모두 봤구요.
어머니께서는 아침마다 정해진 계획대로 함께 공부해 주셨습니다.
(미리 공부하셨던거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학교 마치면 집으로 곧장 와서 씻고, 태권도 학원을 갔습니다.
(피아노 학원 한 달 다녔었는데, 제가 싫어해서 피아노 학원은 끊고 태권도 학원 다녔습니다. 당시에 한달에 4~5만원?)
태권도 학원 마치고 친구들이랑 6시까지 미친듯이 실컷 놀았습니다.
6시 되면 집에 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그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집에 갑니다.
(부모님 말씀을 안 들으면 정해진 체벌량만큼 맞았습니다. 회초리로. 진짜 회초리로)
집에 오면 티비를 보다가 저녁을 먹고,
저녁을 먹고 나면 어머니와 아침에 틀린 것,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복습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독후감쓰기 했습니다.
(이 때 글짓기, 맞춤법 공부 했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때는 반에서 5~6등 정도 했습니다.
(당시에 학교에서 시험 칠때마다 전교석차 같은걸 적어서 보내곤 했는데,
전교석차는 생각이 안나고 반에서 대충 그렇게 했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는 서서히 등수가 오르기 시작해서 전교에서 10등 안에 늘 들었습니다.
저는 이 때부터 과학계열 과목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어머니와 자연책에 있는 실험(그 중에서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습니다.
배추흰나비 내용이 나오면 주말에는 시골에 배추흰나비 잡으러 갔었고,
개구리 내용이 나왔을 때는 어머니께서 시골에 시외버스 타고 가셔서 (어머니는 차가 없으셔서) 빠게쓰(죄송합니다.-_-;;;;;)에 개구리 알 퍼다가 집에서 길러도 봤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레고 대신에 과학 상자 사다 주셔서, 동생이랑 책에 있는대로 조립하면서 놀았습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과학 실험대회, 자연 관찰 탐구 대회, 과학상자 조립대회는 늘 1등을 휩쓸었고, 전국대회까지 나가서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때에는 논술 대회가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교육부 장관상까지 받았었습니다. (독후감 쓰기 습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동네 중학교에 들어가서 잘 지내다가, 저의 공부 라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가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영어에서였습니다.
저는 무조건 교과서랑 참고서만 공부했기 때문에 그 이외의 것이 나와서 당황해서 찍었는데 70점 가량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날 집에서 울었습니다. 처음으로 성적이란 것 때문에..
성적에 있어서는 어머니는 냉정하십니다. 그 성적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 때 처음으로 어머니께 학원에 가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뒤, 중간고사가 끝난 후 어머니와 손을 잡고 동네 학원에 갔습니다.
학원 원장 선생님하고 상담을 하고 학원을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한달에 15만원이고 국영수사과를 가르치는 종합반에 들어갔습니다.(한 학년에 20명 정도 규모)
학원이 작아서 단과는 안한다고 해서^^;; 종합반에 들어갔습니다.
영어에 기초가 워낙 없었기 때문에, 1시간 일찍 학원에 와서 원장 선생님과 따로 수업을 했습니다. (추가 수강비 없이..진짜 고맙게 생각함;)
1~100까지 숫자쓰기, 주격-소유격-목적격, 이런 생기초들부터 차근차근 했습니다.
어느새 다른 애들과 영어 진도가 맞아 들어가서 함께 공부를 하고 기말고사때는 드디어 영어를 100점을 맞았습니다.
그렇게 5월말부터 8월까지 학원을 다니고, 영어 공부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과서는 철저하게 정독을 하고, 참고서에 나오는 문법 사항들은 교과서 내용을 일일이 체크를 하고, 이해를 하고, 무엇보다도 본문을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 그런 방식으로 학교 공부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부르셔서 갔더니 국립대 영재센터 영재선발 시험을 치러 가보라고 하셔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영재센터 시험을 치러 갔습니다.
당시에 공부를 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그냥 평소 실력으로 쳤습니다.
그 때 쳤던 과목은 수학,과학,국어.(다행히 영어는 안쳤음. 수학, 과학은 보통 생각을 깊이 해야지 푸는 논리적 문제 정도였고, 국어는 맞춤법 내용이 주를 이루었음. )
영재 센터에는 추가로 합격해서 영재센터에 다녔는데, 주말에 영재센터에 가야하는데,
학교 수업 시간이랑 안 맞아서 학교 끝나고 영재센터에 가다보니 지각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래서 담당 교수님하고 마찰이 있어서 영재센터는 안 다니기로 하고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1말에 교육청에서 100명 가량 심화교실 참가자 선발을 한다고 해서 또 학교에서 10명 뽑아서 교육청 가서 시험을 쳤습니다.
시험 치기 전에 어머니와 시내에 있는 서점에 가서 중학생 수준의 올림피아드 문제집을 한권 샀습니다.
그리고 올림피아드 문제집을 쭉쭉 풀었습니다.
그 중 틀린 것 80% 맞는 것 20% 정도, 약간 절망감이 들기도 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계속 풀었습니다.
풀다가 안 풀리면 계산 과정도 외웠습니다.
시험 내용은 수학과 과학(각 10문항씩, 100점 만점, 문제당 10점)인데, 수학은 지극히 중1 수학 교과서 내용이었고, 몇 문제는 증명이었는데, 교과서에 있는 증명은 다 외우고 있어서 수학은 무리 없이 쳤고 과학은 그야말로 고등학교 내용이었는데, 알고 있는 것만 풀고, 나머지는 찍었습니다.
운 좋게도 합격을 했습니다. 그것도 상위 고득점자 30명 안에 들 정도로.
그래서 중2 1년동안(공휴일 빼고, 방학에도 운영했음)평일에 5일동안 5시부터 7시까지 심화교실에 다녔습니다.
합격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원저자님의 말대로 합격자 상당수가 소위 잘나가는 몇몇 학원에서 고액을 들이고 족집게로 찍은 문제를 공부해서 합격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과목이 벅차보였습니다.
상당수가 XX학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왠지 뒤쳐지는 기분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어머니께 떼써 보았습니다. 나도 저학원에 다니면 안되냐고.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결국엔 심화교실을 위한 학원을 다니려고 심화교실 다니냐고 다그치셨습니다. 그럴거면 심화교실 다니지 마라고..
그때 정말 아차! 싶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심화교실은 학원을 안 다니는 저로서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말 그대로 학교 공부 외에 다른 내용을 배울 수 있다는 것.
과목은 수학, 영어, 물리, 화학을 배웠고, 내용은 모두 고등학교 수준이었습니다. (수학은 고1~2수준, 물리와 화학은 물리2, 화학2 수준, 영어는 난이도는 모르겠는데 암튼 수능 수준 비슷합니다. 단어가 어려웠던걸로 기억)
수학, 물리, 화학 이런거는 처음엔 벅차긴 했지만 차근차근 배웠기 때문에 무난하게 따라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영어가 문제였습니다.
영어가 너무 벅차서 동네 학원 원장 선생님이 추천하신 학원에 가서 4개월동안 주말에 배웠습니다. (하루에 2시간씩, 일주일에 두 번, 성문기본영어, 수강료 8만원)
어머니도 영어도 어차피 배워야 하니까 미리 배워서 나쁠 것 없다고 흔쾌히 보내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무난하게 1년을 마치고 중간에 한번식 심화교실 자체 평가 시험에서도 상위권이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과학기능장 나가서 기능장 따고 그랬습니다.
중3 때는 수학, 과학 시대표 시험이 있었는데, 시에서 30명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합격하게 되면 시경시대회 나갈때 예선을 안봐도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 때가 생애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했던 때)
중2 때 심화교실에서 배웠던 내용을 철저히 복습해서 과학부문에서 합격을 했습니다.
시대표가 되고 나서 과학교육원에서 배웠던 내용은 심화교실에서 배웠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심화교실 다닐때 배웠던 분들과 같은 선생님이었죠. 시에서 가장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가르치러 오십니다. 학원 선생님들이 더 실력있다고 하면 할말 없습니다;;)
추천하는 책들은 반드시 공부하고, 복습했더니 과학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과고에도 특별전형으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저기 다닌다고 학교 공부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1학년때 영어에서 날린 점수만 빼면 거의 퍼펙트할 정도로 내신을 받았기 때문에 일반전형 내신으로 가도 충분히 합격 가능했습니다. 보통 30% 정도는 미리 특별전형으로 뽑습니다.)
과고에 특별전형으로 합격한 후에는 미리 합격한 친구들이랑 같이 놀기도 하고, 몇몇은 같이 공부도 했습니다.
방학 때는 과고 교재로 쓰이는 영어책을 구해다가 철저하게 공부했습니다.
영어가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때까지 제가 공부를 위해서 지출한 학원비는 100만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기숙사에 살았습니다.
주말에는 외출이 가능합니다.
과고에 가면 원저자님 말씀대로 그룹지어서 과외하곤 합니다. 주말에.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지켜봤을때, 장기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드뭅니다.
원저자님, 과외 안하는 애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은 알고 계신지요?
과고에서의 생활은 참 다양합니다.
카이스트, 포항공대를 가기 위해서 조기졸업 하는 아이들.
특정 분야에서 아주 뛰어나서 경시대회, 올림피아드에 나가서 입상을 하는 아이들.
중간에 자퇴를 내고 검정고시 치는 아이들.
그리고 평범하게 수능 공부를 하는 아이들.
목표는 주로 의대, 공대 입니다.
원저자님의 자녀는 어떤 길을 택하려고 하시는지는 아십니까?
진정 아이의 꿈이 뭔지는 알고 계십니까?
아이가 이것저것 해달라고 할 때, 뭐라고 말씀해 주셨는지요?
저는 과학, 수학이 좋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수학, 과학이 좋아서 과학고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과학고에 가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처음부터 과학고에 가려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주위에서 과학고에 보내려고 바리바리 짐 싸들고 쫓아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어렸을적에 공부 습관을 가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참고로 저희 어머니는 고등학교까지 나오셨습니다.
그냥 평범한 주부이십니다. 아버지는 회사원이시고요.
제가 중학교 가서부터는 일절 공부에 손도 안 대셨습니다.
오로지 스스로 해결하고, 스스로 고민하고, 정말 자기 자신의 힘으로 안될 때 말하라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누구누구는 어느 학원 다닌다더라, 누구는 이번에 몇등 했더라 이런 소리도 안 들어보고 자랐습니다.
심지어 제가 대학을 갈 때에도 제가 가고 싶은 곳(사대) 진학하도록 힘써주셨습니다.
제동생도 저랑 거의 비슷하게 자랐습니다.
영어 학원 다닌다고 돈을 쪼금 더 쓰긴 했지만
그래서 문득, 가끔씩 티비에서 사교육 얘기하면서 돈 많이 든다고 하소연하는 학부모님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눕니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이 말에 저희 어머니는 이런 내용으로 말씀하십니다.
- 공부는 습관, 어릴적에 습관만 기르면 된다.
- 습관만 길러지면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한다.
- 어릴적부터 애들 좋은 학원 보내겠다고 고액 써가면서 애들 이리 데리고 저리 데리고 다니면 애들이 요령만 찾으려고 한다.
- 학원도 중독이다. 계속 학원 다니기 시작하면 대학 가서도 학원 다닌다.
- 남들이랑 비교하면 안된다.
이게 저희 어머니의 교육철학입니다.
저랑 제동생은 단 한번도 개인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둘다 수능에서는 상위 1% 안에 드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저는 잠시, 학원(돈 많이 드는)에 정말 가고 싶었던 적, 과외를 받고 싶었던 적이
바로 중2때 심화교실 가서였습니다.
다른 애들이 유명학원 다니면서 자기보다 앞서 나가는 것 같고,
더 쉽게 공부하는 것 같고,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안될 것 같고,
괜시리 어딘가 의지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거 어디까지나 자기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큰 발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찾도록 도움을 주세요.
벌써 아이들이 학원에 중독된 건 아닌지, 뭔가에 의지하려고 하는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원저자님 아이들 정도되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단지 부모의 마음이라서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장기적으로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공교육이 부실한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 한몫하는 교사가 되고 싶은 것도 사실이고요.
아직 나이도 어린게, 이런 말 한다고 건방지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제가 사교육문제가 나오면 하고 싶은 말이고, 그리고 교육쪽에 관심이 많아서 한마디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