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님의 또다른 해석

곽현영200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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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님의 또다른 해석


 

* 방랑
아무런 행선지도 없이 떠도는 일이다. 떠돌면서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는 일이다. 외로운 목숨 하나 데리고 낯선 마을 낯선 들판을 홀로 헤매다 미움을 버리고 증오를 버리는 일이다. 오직 사랑과 그리움만을 간직하는 일이다.

* 망각
세월의 무덤 깊이 과거에 대한 기억의 시체들을 완벽하게 암장시켜 버리고 마침내 일체의 번뇌와 무관해져 버리는 상태.

* 시계
하루를 시간별로 스물네 토막씩 절단하는 기계.

* 그을음
빛의 죽은 미립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멸의 그림자.

* 모래
주로 해변에 많이 산재해 있는 최소 단위의 금빛 혹성.

* 시간
탄생과 소멸의 강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 강에서 태어나고 그 강에서 죽는다. 그러나 흐르지는 않는다. 흐르는 것은 시간의 강이 아니라 그 강에 빠져 있는 물질들이다.

* 수면제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외로움은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일용하는 밤의 양식. 불면의 세월 속에 무성하게 자라오르는 허무의 수풀을 잠재우고 허약해진 육신의 아픔을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안식의 초대자. 꿈의 동반자. 소음 제거제.

* 자살
자신의 목숨이 자기 소유물임을 만천하에 행동으로 명확히 증명해 보이는 일. 피조물로서의 경거 망동. 생명체로서의 절대비극. 그러나 가장 강렬한 삶에의 갈망.

* 출발점.
과거를 끊어낸 자리. 미래의 생장점. 현재 바로 그 자리. 운회의 매듭점.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자리. 시간과 공간의 소실점. 인생의 모든 새벽.

* 불행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 나무만한 크기의 그늘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그 그늘까지를 나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 절망
혼수상태에 빠져버린 희망.

* 날개
산을 넘고 싶은 소망이 날개를 가지게 만든다. 바다를 건너고 싶은 소망이 날개를 가지게 만든다. 인간은 육신의 날개는 없지만 영혼의 날개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인간들은 한평생 자신에게 그런 날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산다. 욕망에 눈이 가리워져 소망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 표절
타인의 창조물을 부분적으로 절취하여 자신의 창조물인양 위장함으로써 자신의 창의성이 결핍되고 양심조차 결여된 인간으로 인정받도록 노력하는 행위.

* 행복
모든 인간들의 최대 희망사항이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인간은 사랑을 주고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을 유발시키는 것은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아름다움에는 내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이 있으며 작은 아름다움과 큰 아름다움이 있다. 스스로가 신의 크기와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신의 크기와 같은 사랑을 관조하는 것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들이 욕망에 눈이 멀어 진실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진실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므로 진실한 사랑도 할 수가 없으며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없으므로 진실한 행복도 느낄 수가 없다.

* 사랑
반드시 마음 안에서만 자란다. 마음 안에서만 발아하고 마음 안에서만 꽃을 피운다. 사랑은 언제나 달디단 열매로만 결실되지는 않는다. 사랑에 거추장스러운 욕망의 덩굴식물들이 기생해서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를 비우고 너를 채우려 할 때 샘물처럼 고여든다. 그 샘물이 마음 안에 푸르른 숲을 만든다. 푸르른 낙원을 만든다. 온 천지를 둘러보아도 사랑의 반대말이 없으며 온 우주를 살펴보아도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는 낙원을 만든다. 사랑은 바로 행복 그 자체다.

* 하루살이
하루 만에 한평생을 사는 벌레.

* 공중전화
동전 몇 푼을 집어 넣으면 그리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 컵씩 마실 수 있는 음성자판기. 전신 전화국에서 관리하며 주로 사람들이 많이 내왕하는 장소에 설치되어 있다. 약속의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후진국에서는 고장을 빙자하여 서민들의 땀내 나는 동전을 갈취하는 노상강도로 둘변해 버리기도 한다.

* 재
불에다 살과 뼈를 모두 주었다. 자신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을 때는 존재의 아름다움도 알지 못한다. 지금은 실낱 같은 바람 한 가닥에도 환희로 전율하는 존재의 미립자로 남았다. 비로소 무소유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 안개
떠도는 물의 혼백.

* 실연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반의 칼을 맞고 피흘리는 영혼으로 절망의 터널에 내팽겨쳐지는 상태. 믿음도 백지화되고 소망도 거품화되고 사랑도 사막화된 상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나 제정신을 되찾음으로써 홀로 비탄의 강물 속에 수장되는 상태. 사랑과 증오의 전환점. 그러나 이성간의 전형적인 사랑은 대게 실연까지가 그 사랑의 완성단계다.

* 일기장
신이 하루종일 시간에 멱살을 잡혀 끌려다닌 흔적들을 날마다 문자로 정직하게 실토해 놓은 고백록.

* 눈물
지상에서 가장 투명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