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어떤학교 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올라 온 글입니다. 두발규제에 대한 단상... 난 요즘 수염을 기른다, 기계를 대지 않으면 수염이 자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볼 때마다 식욕의 거대한 입구인 입 주변으로 수북하게 자라난 내 욕망의 무게를 가늠하며,,, 난 내 수염이 누군가의 행복을 해칠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수염에 대한 외부의 규제는 폭력이라 판단한다. 학생들의 두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머리가 길다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길 리 없다, 염색이 두피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백번을 양보해도, 머리 길이나 머리 염색이 타인의 건강을 해치지는 않는다. 깨끗하게 잘 손질하면 위생상태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학교 사회는 이를 통제한다. 아니 한곳이 더 있군 군대는 더 엄격하게 통제한다. 머리가 짧은 건 전 세계 군인들의 공통점인 것만 같다. 학교와 군대, 많이 닮아있다. 확일화된 외모의 강제는 명백한 폭력이다. 신이 만드신 자연물을 보라, 그 어느것도 똑같은 것은 없다, 작은 돌 하나, 이슬 하나라도 조금씩 다르다. 그게 순리고 섭리이다. 오직 인간이 만든 것만이 똑같을 수 있다. 확일화는 신이 부여한,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인권 유린이다. 작년 1학년 생활 지도를 담당하면서 두발규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고, 더 귀를 열긴 하지만 규제의 명분이 너무 초라하다, 메니큐어도 각종 장신구도 마찬가지이다. 내 취향과 다르다고해서 규제하는건 옳지 않다. 귀를 뚫건 혀를 뚫건 그건 그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욕구일 뿐이다. 남과 다르고 싶어하는 또 다른 인간 본능의 표출이다, 인간에게 소속의 욕구만 있으리라 단정해서는 안된다. 미성년자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아이들이 쓰레기를 버리거나 실외화/실내화를 구분해서 신지 않는 것도 명백한 폭력이다. 이미 피투성이로 쓰러져 가는 환경 문제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 계단과 복도 곳곳에서 발견하는 종류 다양한 쓰레기를 볼 때 마음이 아프고, 걸레질과 비질을 하는 친구들 사이를 뚫고 신발을 신은 채 유유히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들을 볼 때도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는 그 쓰레기를 주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 흙먼지를 마셔야 한다. 익명의 타인에게 불편과 고통을 줄 것이 자명한 일임에도 아이들은 아무 의식이 없다. 의식하지 않고 휘두르는 폭력이 더... 고질적인 법이다, 아예 모든 학생들의 실내화를 없애고 청소를 더 깨끗이 하는쪽으로 교칙이 바뀌지 않는 한 난 이 규제를 환영한다. 교사라 하더라도 이는 규제 받아야 한다. 나는 규제를 반대한다, 그러나 인간을 억압하기위한 규제를, 특히 반대할 뿐 공동체의 행복을 위한 아름다운 규제는 적극 찬성한다 그럼에도 난 오늘도 두발검사를 하러다닌다. 흰색이 아니라고 아이들의 속옷을 압수하러 다닌다. 왜? 난 학생과 선생이니까. 그렇게 읊조리며 오늘도 내 모순의 걸음은 슬프게만 휘청거린다.2
두발자유,,,
이 이야기는,
어떤학교 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올라 온 글입니다.
두발규제에 대한 단상...
난 요즘 수염을 기른다, 기계를 대지 않으면 수염이 자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볼 때마다 식욕의 거대한 입구인
입 주변으로 수북하게 자라난 내 욕망의 무게를 가늠하며,,,
난 내 수염이 누군가의 행복을 해칠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수염에 대한 외부의 규제는 폭력이라 판단한다.
학생들의 두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머리가 길다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길 리 없다, 염색이 두피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백번을 양보해도,
머리 길이나 머리 염색이 타인의 건강을 해치지는 않는다.
깨끗하게 잘 손질하면 위생상태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학교 사회는 이를 통제한다. 아니 한곳이 더 있군
군대는 더 엄격하게 통제한다. 머리가 짧은 건 전 세계 군인들의
공통점인 것만 같다. 학교와 군대,
많이 닮아있다.
확일화된 외모의 강제는 명백한 폭력이다.
신이 만드신 자연물을 보라, 그 어느것도 똑같은 것은 없다,
작은 돌 하나, 이슬 하나라도 조금씩 다르다. 그게 순리고
섭리이다. 오직 인간이 만든 것만이 똑같을 수 있다.
확일화는 신이 부여한,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인권 유린이다.
작년 1학년 생활 지도를 담당하면서 두발규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고, 더 귀를 열긴 하지만 규제의 명분이 너무 초라하다,
메니큐어도 각종 장신구도 마찬가지이다.
내 취향과 다르다고해서 규제하는건 옳지 않다.
귀를 뚫건 혀를 뚫건 그건 그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욕구일 뿐이다. 남과 다르고 싶어하는 또 다른 인간 본능의
표출이다, 인간에게 소속의 욕구만 있으리라 단정해서는 안된다.
미성년자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아이들이 쓰레기를 버리거나 실외화/실내화를 구분해서
신지 않는 것도 명백한 폭력이다.
이미 피투성이로 쓰러져 가는 환경 문제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 계단과 복도 곳곳에서
발견하는 종류 다양한 쓰레기를 볼 때 마음이 아프고,
걸레질과 비질을 하는 친구들 사이를 뚫고
신발을 신은 채 유유히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들을 볼 때도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는 그 쓰레기를 주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 흙먼지를 마셔야 한다.
익명의 타인에게 불편과 고통을 줄 것이 자명한 일임에도 아이들은 아무 의식이 없다. 의식하지 않고 휘두르는 폭력이 더...
고질적인 법이다,
아예 모든 학생들의 실내화를 없애고 청소를 더 깨끗이 하는쪽으로
교칙이 바뀌지 않는 한 난 이 규제를 환영한다.
교사라 하더라도 이는 규제 받아야 한다.
나는 규제를 반대한다, 그러나 인간을 억압하기위한 규제를,
특히 반대할 뿐 공동체의 행복을 위한 아름다운 규제는 적극 찬성한다
그럼에도 난 오늘도 두발검사를 하러다닌다. 흰색이 아니라고
아이들의 속옷을 압수하러 다닌다. 왜?
난 학생과 선생이니까. 그렇게
읊조리며 오늘도 내 모순의 걸음은 슬프게만 휘청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