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후시간에 맞추어, 근 1년여 만에 오래전 함께 하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평소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상황과는 다르게 좀 느긋하게 평일과는 다른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예전에 그러니깐 자가용을 이용할 때에는 그곳이 그렇게 멀리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대중교통이란 것이 탑승객들의 마음과 같이 지름길로 후다닥 가지는 않습니다. 간혹 버스기사분들은 배차간격을 맞추거나 당겨 종점에서 담배 한 대 태우는 달콤한 휴식을 갖기 위하거나 식사를 할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함을 갖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신호를 무시하며 와일드한 운행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버스운전기사가 운전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마음은 원하든 원치않든 이중성에 시달려야 합니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수 있음과 스릴을 느낄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있는 반면 생명에 대한 불안감에 신호를 준수하고. 속도를 정속으로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을 누구나 가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평일에는 그런 운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차량에 막혀 버스기사분은 신호무시, 와일드한 운전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량이 한가한 주5일제가 시행되는 요즘에는 그런 것을 실제적으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 귀중한 몸을 온전히 내 맡은 버스는 앞서의 상황을 실제적으로 그렇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러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목격하고 접했던 4가지의 상황을 엮어 몇 자 적어봅니다.
<1>동심의 세계에 빠져들다
주말의 대중교통은 멀리 나들이를 하는 가족의 모습이 많이 눈이 띄입니다. 그날도 멀리 타지에 있는 아빠를 만나기 위함인지 자녀(남매)를 대동하고 버스에 오른 젊은 여성분을 만났습니다. 주말 오후시간의 버스안의 상황은 자리가 듬성듬성 비워있는 관계로 버스에 오르기만 하면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서 목적지에 갈수 있는 여유를 부릴수 있습니다. 버스에 승차한 어린남매와 젊은 엄마는 내 뒤에 셋이서 함께 앉았습니다. 한 6살정도의 남자아이는 창가로 4살정도의 동생인 여자아이는 오빠 바로 옆으로 그리고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젊은 엄마가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시 두 남매는 껌을 맛있게 씹으며 도란도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마음으로 나들이를 한것 같았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동생인 여자아이가 오빠인 남자아이가 껌 공기를 주입하여 풍선처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해보려고 노력을 기울였지만, 잘 안되자 자신이 씹고 있는 껌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하고, 오빠에게 껌을 하나씩 교환하자고 제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빠의 반응은 묵묵부답이었고, 풍선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약이 잔뜩 오른 동생은 더욱더 애교스럽게 “오~~~빠, 우리 하나씩 바꾸자~~으~~응” 그러나 역시 오빠는 목석과 같은 모습입니다. 점점 더 애교의 톤을 높이는 동생 버스안을 울리는 상황을 직감한 엄마는 이대로 방치해선 안되겠다 싶었는지 개입합니다. “아무개야 빨리 껌 하나씩 교환해” 라는 말에도 오빠는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자 더욱 강경한 어조로 말합니다.
“이젠 껌 안 사준다.” 잠시후 마지못해 껌 하나를 교환하는 오빠, 그러나 오빠가 건네준 껌을 받아든 동생은 껌이 찌그러졌다며 반듯한 껌으로 교환을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빠는 반응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풍선을 만듭니다. 엄마가 다시 개입하며 동생에게 “그냥 씹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엄마의 말에 포기와 함께 안정을 찾은 동생은 껌을 씹으며 오빠와 같은 풍선을 만들려고 노력을 하지만 잘 안됩니다. 그러자 엄마에게 “왜 나에게 건네준 껌은 풍선이 안 만들어 지느냐고”고 말합니다. 그러자 엄마는 껌에 아직 단물이 빠지지 않았고 좀더 오래 씹으면 껌이 말랑말랑 해진다. 그때에 풍선을 만들면 된다고 조언을 해줍니다.
얼마후 오빠가 동생이 본 이전 것보다 더 크게 풍선을 만들었나 봅니다. 그러자 동생은 “와 ~~크다”하며 환호성을 지르며 오빠의 능력에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으쓱해진 오빠는 더욱더 크게 만들려고 노력을 하지만 재차 그런 크기에 풍선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내 포기하고 예전의 상황으로 돌아간 오빠와 동생사이에 긴 침묵(?) 흐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가 개입하여 버스 밖의 상황을 설명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엄마가 만든 상황은 건물에 붙어있는 “공룡 코딱지 노래방”이라고 쓰인 간판 이름이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공룡 코딱지 노래방”이란 말이 낯설었던지 “공룡 코딱지 노래방이래”하며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공룡 코딱쥐가 어떻게 노래를 할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잠깐이었지만 새롭게 접하는 말과 상황에 대해 마냥 신기해하는 어린이들 같습니다. 얼마후 그들은 목적지인 버스터미널에 다달아 갑니다. 그러자 엄마는 “다음다음이 우리들의 목적지인 버스터미널이다.” 라고 말하자 남자아이는 “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엄마는 “그래 뻥이니까 너는 내리지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한마디 거듭니다. “오빠 다음이 진짜 버스터미널이야”라고 말하는 동생의 말에 수긍하는 듯 말이 없는 오빠, 잠시후 그들 일행의 목적지인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어린 두 남매와 이들을 기르는 엄마의 정겨운 대화를 들었던 정겨운 시간은 끝이 났습니다.
<2>어른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개인적인 볼일을 마감하기 위해 다른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위하여 버스를 갈아탔습니다. 그러면서 접했던 상황입니다. 주말시간에 그동안 못한 일을 함께 처리하느라 버스를 장시간 이용을 하였더니, 버스창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영향 때문인지, 피곤함으로 인한 몸의 긴장감이 풀렸는지, 기운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내가 앉아 있던 곳은 버스 뒷바퀴, 다음의 좌석이라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날도 그러한 마음으로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서인가 좀 나이가 지긋해보이고 머리에는 고바우영감이 쓰는 모자를 쓴 연륜이 있는 분이 승차를 한후, 앞자리에 서지 않고 버스 맨 뒷자리로 와서 내 옆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손님을 만나기 위해 머리를 깎고, 염색을 하였기에 해당 어른이 보기에 내가 제일 나이도 어리고,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해줄 것으로 생각을 했나 봅니다. 일전에도 그런 모습에 대한 글을 게재한 경험이 있어서 상황을 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잠시후 그는 자리를 양보해줄 것을 요구하는 진한 압력성 눈초리를 주었습니다. 그때 주변의 상황을 보면 나보다 한참이나 젊은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왜 이양반이 나에게 와서 그런 고통을 주나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한 나 자신도 머리에 염색을 하지 않으면 해당인과 형님 동생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잠시후 버스가 여느 정류장에 정차하자 승객들이 많이 하차하며 앞 좌석의 공간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그는 얼른 자리에 가 앉더니만, 두 사람이 앉을 자리를 혼자 독식하며 편안하게 가겠다는 심정으로 길게 앉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줄곧 그 어른의 상황을 주의 깊게 살폈습니다. 얼마 후 승객들이 밀리면서 버스 안은 만원이 되었지만, 누구하나 어른의 앞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 어른이 누구도 자신의 영역에 범접하지 못하게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압력성으로 주문하던 당사자가 상황이 바뀌고, 자신에게 상황이 유리해지자 이를 혼자 독단하려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요즈음의 버스와 지하철에서 접하는 풍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줌마,아저씨란 타이틀이 특혜라도 되는 것처럼 자리 쟁탈을 위해선 인격도 품위도 모두 내 팽겨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즘은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직장에서 각종 일에 시달린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어른들보다 더 피곤할수 있습니다. 고로 무조건 양보만을 바라는 것보다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어른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은 무리일까요, 또한 자리를 양보 받으면 고맙다는 따스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는 어른들을 보았으면 합니다. 허리가 휘고, 움직임이 둔하고, 몸이 불편한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반면에 머리가 백발이지만 두 팔과 두 다리 등 사지가 말짱하여 건강한 어른들은 자리를 오히려 피곤한 손녀와 아들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혼쾌히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십시오. 그래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어른대접을 받습니다.
<3>키스 좋지만, 남도 생각하세요,
얼마후 자리를 독식하던 어른이 내리고, 한명의 여성과 두명의 남자로 구성된 젊은이들이 버스에 승차를 하였습니다. 아마 그들의 연령으로 보아 30대를 전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중에 한명은 직장동료이고, 다른 두 남녀는 사랑하는 연인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직장에서의 있었던 상황을 재미있게 얘기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내 귀를 번쩍이게 하는 말이 여성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이빨이 아프다고 하자 “야스리(줄)로 갈아주어야 한다” 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해당용어가 그리 낯설지 않은 업종에 근무하다보니 낯이 익은 용어가 들리는 것도 반가운 마음도 있었겠지만 해당용어가 항공사 승무원같이 단아하게 틀이 갖추어진 여성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얼른 내 옆에 서있던 여성을 보았습니다, 정말 인격과 품위가 틀에 배어있는 듯 한 단정한 여성이었습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여성은 가벼운 웃음으로 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나의 반응과 무관하게 여성과 남성의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이빨이 아픈 사람의 입을 바이스에다 물려 야스리로 북북 갈아주어야 한다”는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두 젊은 남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거친 용어는 나를 혼돈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나를 더욱더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이후의 상황이었습니다. 버스 안내방송이 다음은 여느 지하철이라고 말하자, 한꺼번에 내리려는 승객들로 인해 입구가 혼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여성은 버스 맨 뒷쪽에 있는 기둥을 잡는 것으로 위치를 바꾸어 남성과 마주하였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해당 여성과 나의 시야가 일치하는 상황이 되어 그들의 일탈 행위가 나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아마 그 짦은 시간에 두 젊은 청춘들은 “버스안의 키스”를 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더욱이 키스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적극적이어서, 남성이 키스를 하려고 키스에 장애가 되는 안경을 벗으며 여성에게 키스를 시도하였지만, 남의 이목이 신경쓰였는지 몇 차례나 망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나와 시야를 마주하고 서있는 여자쪽에서 “괜찮아 어서해” 라고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시야를 어디에다 고정할지를 몰라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렇게 말로만 들었던 젊은이들의 애정행각을 직접 목도하는 격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연륜을 얘기할수 없지만, 젊은이들의 대화중에 튀어나온 93학번이라고 말하며 33세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선 나는 그들보다 한참이나 연배일 텐데, 개의치 않는 애정행각이라... 나는 그 순간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습니다. 적극적인 여성과 망설이는 남성, 두 젊은 청춘들은 결국 “버스안 키스”를 실패하고 함께 하차하였습니다.
<4>오랜만에 방문하여 만난 사람들의 모습
그곳을 거래상으로 방문한지가 근 1년여가 좀 못 미친 어제에 시간을 내어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설레임과 반가움 마음도 있었지만, 그들과의 만남을 용기내어 먼저 시도한 나 자신이 일견 자랑스럽게 생각도 되었습니다. 그동안에는 서로 안부전화나 방문하여 만남을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서로가 먹고사는 문제로 인하여 시간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서로가 섭섭한 마음을 먼저 풀고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나이 들면서 더 사소한 일로 인해 의를 상하는 상황을 접하며 “난 저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곤 했지만, 나 자신도 나약한 인간의 허점을 보이는 것 같아 매우 부끄럽습니다. 어제의 만남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근 2년여 간을 함께 고생하며 한 솥밥을 먹고 우정을 돈독하게 나누었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들과 좋은 만남을 위해 근처에 있는 가게에 들러 드링크제를 한 박스 사들고 공장 문이 열려있는 곳을 들여다보니 제일먼저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안면이 있는 젊은 친구였습니다. 자신의 하던 일을 멈추고 반갑게 두 손을 덥석 잡으며 “그동안 왜 연락한번 없었느냐고” 하고 물었습니다. 나의 대답은 그냥 “먹고 사는 일에 바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친구와 대화를 중단하고, 공장 사무실 안을 들어가니 사장이 나를 반갑게 마주하며 굳은 악수를 건넸습니다.
연배도 나와는 3~4년 아래인 사장은 제작년에 딸을 해외로 보낸 기러기아빠였습니다. 그래서 딸의 상황을 묻고, 공장운영의 전반적인 상황을 물었고, 그는 나의 개인상황에 대해 물으며 잠깐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잠시 후 공장의 일을 마감한 젊은 친구가 들어와 커피를 건네며 함께 이러저러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공장의 설비 상황을 둘러보기 위하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설비는 예전보다 증설되었고, 해당인원도 충원되어 좋은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내년에는 공장을 이전하는 것을 검토중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들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잠시후 사장의 처남과 당시 사장이 데려온 차장이 원청업체에 납품을 갔다고 돌아왔습니다.
가장 나를 반갑게 맞은 처남은 전형적인 어느 양반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나의 두 손을 마주잡으며 “왜 그렇게 연락도 없고, 한번 놀러오지 않았느냐며 섭섭했다”라고 진심어린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늘 남을 배려할줄 아는 정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매형과 함께 고생을 하며 지금까지 이렇게 공장을 번성하게 만든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그들과 헤어짐의 시간은 다가왔고, 주말이면 늘 함께하는 친선 볼링을 하기 위하여 인근의 볼링장으로 가기 위해 채비를 서두르는 그들과 나는 형식적인 멘트인 “평일에 한번 와서 식사라도 하자”란 말을 나누며, 잠깐의 만남을 끝마치고 기약없는 이별을 하며 “Home Sweet Home”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기었습니다.
주말만남과대중교통안풍경
주말의 만남과 대중교통안 풍경
어제는 오후시간에 맞추어, 근 1년여 만에 오래전 함께 하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평소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상황과는 다르게 좀 느긋하게 평일과는 다른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예전에 그러니깐 자가용을 이용할 때에는 그곳이 그렇게 멀리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대중교통이란 것이 탑승객들의 마음과 같이 지름길로 후다닥 가지는 않습니다. 간혹 버스기사분들은 배차간격을 맞추거나 당겨 종점에서 담배 한 대 태우는 달콤한 휴식을 갖기 위하거나 식사를 할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함을 갖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신호를 무시하며 와일드한 운행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버스운전기사가 운전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마음은 원하든 원치않든 이중성에 시달려야 합니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수 있음과 스릴을 느낄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있는 반면 생명에 대한 불안감에 신호를 준수하고. 속도를 정속으로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을 누구나 가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평일에는 그런 운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차량에 막혀 버스기사분은 신호무시, 와일드한 운전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량이 한가한 주5일제가 시행되는 요즘에는 그런 것을 실제적으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 귀중한 몸을 온전히 내 맡은 버스는 앞서의 상황을 실제적으로 그렇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러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목격하고 접했던 4가지의 상황을 엮어 몇 자 적어봅니다.
<1>동심의 세계에 빠져들다
주말의 대중교통은 멀리 나들이를 하는 가족의 모습이 많이 눈이 띄입니다. 그날도 멀리 타지에 있는 아빠를 만나기 위함인지 자녀(남매)를 대동하고 버스에 오른 젊은 여성분을 만났습니다. 주말 오후시간의 버스안의 상황은 자리가 듬성듬성 비워있는 관계로 버스에 오르기만 하면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서 목적지에 갈수 있는 여유를 부릴수 있습니다. 버스에 승차한 어린남매와 젊은 엄마는 내 뒤에 셋이서 함께 앉았습니다. 한 6살정도의 남자아이는 창가로 4살정도의 동생인 여자아이는 오빠 바로 옆으로 그리고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젊은 엄마가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시 두 남매는 껌을 맛있게 씹으며 도란도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마음으로 나들이를 한것 같았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동생인 여자아이가 오빠인 남자아이가 껌 공기를 주입하여 풍선처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해보려고 노력을 기울였지만, 잘 안되자 자신이 씹고 있는 껌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하고, 오빠에게 껌을 하나씩 교환하자고 제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빠의 반응은 묵묵부답이었고, 풍선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약이 잔뜩 오른 동생은 더욱더 애교스럽게 “오~~~빠, 우리 하나씩 바꾸자~~으~~응” 그러나 역시 오빠는 목석과 같은 모습입니다. 점점 더 애교의 톤을 높이는 동생 버스안을 울리는 상황을 직감한 엄마는 이대로 방치해선 안되겠다 싶었는지 개입합니다. “아무개야 빨리 껌 하나씩 교환해” 라는 말에도 오빠는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자 더욱 강경한 어조로 말합니다.
“이젠 껌 안 사준다.” 잠시후 마지못해 껌 하나를 교환하는 오빠, 그러나 오빠가 건네준 껌을 받아든 동생은 껌이 찌그러졌다며 반듯한 껌으로 교환을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빠는 반응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풍선을 만듭니다. 엄마가 다시 개입하며 동생에게 “그냥 씹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엄마의 말에 포기와 함께 안정을 찾은 동생은 껌을 씹으며 오빠와 같은 풍선을 만들려고 노력을 하지만 잘 안됩니다. 그러자 엄마에게 “왜 나에게 건네준 껌은 풍선이 안 만들어 지느냐고”고 말합니다. 그러자 엄마는 껌에 아직 단물이 빠지지 않았고 좀더 오래 씹으면 껌이 말랑말랑 해진다. 그때에 풍선을 만들면 된다고 조언을 해줍니다.
얼마후 오빠가 동생이 본 이전 것보다 더 크게 풍선을 만들었나 봅니다. 그러자 동생은 “와 ~~크다”하며 환호성을 지르며 오빠의 능력에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으쓱해진 오빠는 더욱더 크게 만들려고 노력을 하지만 재차 그런 크기에 풍선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내 포기하고 예전의 상황으로 돌아간 오빠와 동생사이에 긴 침묵(?) 흐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가 개입하여 버스 밖의 상황을 설명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엄마가 만든 상황은 건물에 붙어있는 “공룡 코딱지 노래방”이라고 쓰인 간판 이름이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공룡 코딱지 노래방”이란 말이 낯설었던지 “공룡 코딱지 노래방이래”하며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공룡 코딱쥐가 어떻게 노래를 할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잠깐이었지만 새롭게 접하는 말과 상황에 대해 마냥 신기해하는 어린이들 같습니다. 얼마후 그들은 목적지인 버스터미널에 다달아 갑니다. 그러자 엄마는 “다음다음이 우리들의 목적지인 버스터미널이다.” 라고 말하자 남자아이는 “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엄마는 “그래 뻥이니까 너는 내리지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한마디 거듭니다. “오빠 다음이 진짜 버스터미널이야”라고 말하는 동생의 말에 수긍하는 듯 말이 없는 오빠, 잠시후 그들 일행의 목적지인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어린 두 남매와 이들을 기르는 엄마의 정겨운 대화를 들었던 정겨운 시간은 끝이 났습니다.
<2>어른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개인적인 볼일을 마감하기 위해 다른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위하여 버스를 갈아탔습니다. 그러면서 접했던 상황입니다. 주말시간에 그동안 못한 일을 함께 처리하느라 버스를 장시간 이용을 하였더니, 버스창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영향 때문인지, 피곤함으로 인한 몸의 긴장감이 풀렸는지, 기운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내가 앉아 있던 곳은 버스 뒷바퀴, 다음의 좌석이라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날도 그러한 마음으로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서인가 좀 나이가 지긋해보이고 머리에는 고바우영감이 쓰는 모자를 쓴 연륜이 있는 분이 승차를 한후, 앞자리에 서지 않고 버스 맨 뒷자리로 와서 내 옆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손님을 만나기 위해 머리를 깎고, 염색을 하였기에 해당 어른이 보기에 내가 제일 나이도 어리고,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해줄 것으로 생각을 했나 봅니다. 일전에도 그런 모습에 대한 글을 게재한 경험이 있어서 상황을 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잠시후 그는 자리를 양보해줄 것을 요구하는 진한 압력성 눈초리를 주었습니다. 그때 주변의 상황을 보면 나보다 한참이나 젊은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왜 이양반이 나에게 와서 그런 고통을 주나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한 나 자신도 머리에 염색을 하지 않으면 해당인과 형님 동생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잠시후 버스가 여느 정류장에 정차하자 승객들이 많이 하차하며 앞 좌석의 공간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그는 얼른 자리에 가 앉더니만, 두 사람이 앉을 자리를 혼자 독식하며 편안하게 가겠다는 심정으로 길게 앉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줄곧 그 어른의 상황을 주의 깊게 살폈습니다. 얼마 후 승객들이 밀리면서 버스 안은 만원이 되었지만, 누구하나 어른의 앞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 어른이 누구도 자신의 영역에 범접하지 못하게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압력성으로 주문하던 당사자가 상황이 바뀌고, 자신에게 상황이 유리해지자 이를 혼자 독단하려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요즈음의 버스와 지하철에서 접하는 풍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줌마,아저씨란 타이틀이 특혜라도 되는 것처럼 자리 쟁탈을 위해선 인격도 품위도 모두 내 팽겨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즘은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직장에서 각종 일에 시달린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어른들보다 더 피곤할수 있습니다. 고로 무조건 양보만을 바라는 것보다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어른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은 무리일까요, 또한 자리를 양보 받으면 고맙다는 따스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는 어른들을 보았으면 합니다. 허리가 휘고, 움직임이 둔하고, 몸이 불편한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반면에 머리가 백발이지만 두 팔과 두 다리 등 사지가 말짱하여 건강한 어른들은 자리를 오히려 피곤한 손녀와 아들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혼쾌히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십시오. 그래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어른대접을 받습니다.
<3>키스 좋지만, 남도 생각하세요,
얼마후 자리를 독식하던 어른이 내리고, 한명의 여성과 두명의 남자로 구성된 젊은이들이 버스에 승차를 하였습니다. 아마 그들의 연령으로 보아 30대를 전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중에 한명은 직장동료이고, 다른 두 남녀는 사랑하는 연인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직장에서의 있었던 상황을 재미있게 얘기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내 귀를 번쩍이게 하는 말이 여성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이빨이 아프다고 하자 “야스리(줄)로 갈아주어야 한다” 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해당용어가 그리 낯설지 않은 업종에 근무하다보니 낯이 익은 용어가 들리는 것도 반가운 마음도 있었겠지만 해당용어가 항공사 승무원같이 단아하게 틀이 갖추어진 여성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얼른 내 옆에 서있던 여성을 보았습니다, 정말 인격과 품위가 틀에 배어있는 듯 한 단정한 여성이었습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여성은 가벼운 웃음으로 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나의 반응과 무관하게 여성과 남성의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이빨이 아픈 사람의 입을 바이스에다 물려 야스리로 북북 갈아주어야 한다”는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두 젊은 남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거친 용어는 나를 혼돈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나를 더욱더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이후의 상황이었습니다. 버스 안내방송이 다음은 여느 지하철이라고 말하자, 한꺼번에 내리려는 승객들로 인해 입구가 혼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여성은 버스 맨 뒷쪽에 있는 기둥을 잡는 것으로 위치를 바꾸어 남성과 마주하였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해당 여성과 나의 시야가 일치하는 상황이 되어 그들의 일탈 행위가 나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아마 그 짦은 시간에 두 젊은 청춘들은 “버스안의 키스”를 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더욱이 키스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적극적이어서, 남성이 키스를 하려고 키스에 장애가 되는 안경을 벗으며 여성에게 키스를 시도하였지만, 남의 이목이 신경쓰였는지 몇 차례나 망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나와 시야를 마주하고 서있는 여자쪽에서 “괜찮아 어서해” 라고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시야를 어디에다 고정할지를 몰라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렇게 말로만 들었던 젊은이들의 애정행각을 직접 목도하는 격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연륜을 얘기할수 없지만, 젊은이들의 대화중에 튀어나온 93학번이라고 말하며 33세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선 나는 그들보다 한참이나 연배일 텐데, 개의치 않는 애정행각이라... 나는 그 순간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습니다. 적극적인 여성과 망설이는 남성, 두 젊은 청춘들은 결국 “버스안 키스”를 실패하고 함께 하차하였습니다.
<4>오랜만에 방문하여 만난 사람들의 모습
그곳을 거래상으로 방문한지가 근 1년여가 좀 못 미친 어제에 시간을 내어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설레임과 반가움 마음도 있었지만, 그들과의 만남을 용기내어 먼저 시도한 나 자신이 일견 자랑스럽게 생각도 되었습니다. 그동안에는 서로 안부전화나 방문하여 만남을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서로가 먹고사는 문제로 인하여 시간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서로가 섭섭한 마음을 먼저 풀고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나이 들면서 더 사소한 일로 인해 의를 상하는 상황을 접하며 “난 저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곤 했지만, 나 자신도 나약한 인간의 허점을 보이는 것 같아 매우 부끄럽습니다. 어제의 만남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근 2년여 간을 함께 고생하며 한 솥밥을 먹고 우정을 돈독하게 나누었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들과 좋은 만남을 위해 근처에 있는 가게에 들러 드링크제를 한 박스 사들고 공장 문이 열려있는 곳을 들여다보니 제일먼저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안면이 있는 젊은 친구였습니다. 자신의 하던 일을 멈추고 반갑게 두 손을 덥석 잡으며 “그동안 왜 연락한번 없었느냐고” 하고 물었습니다. 나의 대답은 그냥 “먹고 사는 일에 바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친구와 대화를 중단하고, 공장 사무실 안을 들어가니 사장이 나를 반갑게 마주하며 굳은 악수를 건넸습니다.
연배도 나와는 3~4년 아래인 사장은 제작년에 딸을 해외로 보낸 기러기아빠였습니다. 그래서 딸의 상황을 묻고, 공장운영의 전반적인 상황을 물었고, 그는 나의 개인상황에 대해 물으며 잠깐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잠시 후 공장의 일을 마감한 젊은 친구가 들어와 커피를 건네며 함께 이러저러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공장의 설비 상황을 둘러보기 위하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설비는 예전보다 증설되었고, 해당인원도 충원되어 좋은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내년에는 공장을 이전하는 것을 검토중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들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잠시후 사장의 처남과 당시 사장이 데려온 차장이 원청업체에 납품을 갔다고 돌아왔습니다.
가장 나를 반갑게 맞은 처남은 전형적인 어느 양반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나의 두 손을 마주잡으며 “왜 그렇게 연락도 없고, 한번 놀러오지 않았느냐며 섭섭했다”라고 진심어린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늘 남을 배려할줄 아는 정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매형과 함께 고생을 하며 지금까지 이렇게 공장을 번성하게 만든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그들과 헤어짐의 시간은 다가왔고, 주말이면 늘 함께하는 친선 볼링을 하기 위하여 인근의 볼링장으로 가기 위해 채비를 서두르는 그들과 나는 형식적인 멘트인 “평일에 한번 와서 식사라도 하자”란 말을 나누며, 잠깐의 만남을 끝마치고 기약없는 이별을 하며 “Home Sweet Home”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기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