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체세포 공여자 기록에 관한 의혹

장명화200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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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경과를 걸쳐서 2004년 논문에 실린 체세포 공여자(A)와 현재 서울대 조사위가 1번 줄기세포 공여자로 밝혀낸 공여자(B)가 달라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 당시 황우석 연구팀은 류영준, 이유진 연구원이 미즈메디 병원으로부터 난자 및 난자 제공자의 성명과 난자 개수 등을 기재한 메모지를 받아 서울대로 가져와 이유진이 실험일지를 기재하고 전반적인 실험상황은 류영준이 관리하였음

 ○ 2003. 2.경 난자가 제공된 것은 2. 3.과 2. 9. 두 차례인데 당시 류영준과 이유진이 핵이식에 불참한 관계로 2. 3.에는 박종혁, 김선종이 이○○(난자제공자 A)의 난자를 가져와 박을순이 핵이식하였고, 2. 9.에는 구자민이 노○○(난자제공자 B)의 난자를 가져와 박을순이 핵이식하였음

 ○ 이후 류영준은 2003. 2. 3.에 난자를 제공한 이○○의 인적사항만 전달받고 2. 9.에 난자를 제공한 노○○의 인적사항은 전달받지 못해 자신의 컴퓨터에 2. 9. 난자제공자에 대해 ‘이름 모름’이라고 기재하였음

 ○ 2003. 4. - 5.경 NT-1번이 확립되어 가면서 DNA 지문분석을 위한 체세포가 필요하였는데, 황우석이 체세포 제공자의 인적사항을 류영준에게 물어보자 류영준은 2. 3.과 2. 9. 두 차례의 핵이식 작업 중 어느 것이 NT-1번이 된 것인지 명확하게 확인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설날(2003. 2. 1.) 이후에 핵이식하였다는 막연한 기억에 의존하여 사실은 NT-1번이 2. 9. 제공된 노○○의 난자를 핵이식하여 생성된 것임에도, 2. 3. 제공된 이○○의 난자를 핵이식한 것으로 잘못 알고 NT-1번의 난자제공자를 위 이○○라고 황우석에게 알려줌

 ○ 또한, 류영준이 MBC PD수첩팀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더라도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 이전까지는 NT-1번의 난자 및 체세포 제공자가 이○○라고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점이 확인됨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설명들이 가능한 것인지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PD수첩에 제보한 당사자들인 이유진과 류영준 연구원이 난자 제공자의 인적 정보를 관리했음이 밝혀졌다.그런데 왜 유독 2003년 2월 사용된 난자만 이들이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를 이들이 핵이식에 불참한 관계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들이 핵이식을 하지 않았던 것은 검찰도 확인했던 사실이다. 다른 난자들의 핵이식에는 이들이 참여했다는 뜻인지도 불분명하고 분업이 철저했던 실험실에서 난자 관리를 다른 이들에게 미룬 이유로서 합당하지 않다.

그리고 설령 다른 연구원들이 체세포와 난자를 가져 왔다고 해도 인적 정보가 담긴 메모지를 건네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 류영준이 자신의 컴퓨터에 2월 9일 난자 제공자에 대해 이름 모름이라고 기재했다는 데 이것을 그대로 믿기  힘들다. 당연히 다른 연구원들에게 물어서 인적 정보를 기재했어야 한다.


특히 류영준이 관리한 목록 이외에 이유진 연구원이 실험 일지를 기재했다. 그럼 이유진등이 관리한 실험 일지가 그렇게도 허술하게 난자 제공자들의 인적 사항을 관리해 온 것이 사실일까?

다음은 PD 수첩에서 보여준 난자 제공자 정보를 관리해온 실험 일지로 보이는 화면의 내용이다.

2004년 체세포 공여자 기록에 관한 의혹 2004년 체세포 공여자 기록에 관한 의혹

실험 일지로 보이는 서울대학교 마크가  찍혀 있던 이 노트에는 각 난자 제공자의 자세한 정보가 담겨져 있었다. 미즈메디측 실험 일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PD 수첩이 미즈메디의 실험 노트를 가지고 있다면 미즈메디와 협조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고 PD 수첩 제보자가 류영준, 이유진 부부임을 감안하면 이들이 관리하던 실험 일지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또한 PD수첩에서 보여준 미즈메디 병원의 난자 기증자 명단을 보면

2004년 체세포 공여자 기록에 관한 의혹

2003년 2월 경에 난자를 제공한 이씨와 노씨에 대한 정보가 전산화되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류영준과 이유진 등이 2003년 2월 체세포와 난자 기증자의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뿐더러 설령 그 당시 인적 정보 메모지를 받지 못했다하더라도 구자민 연구원이나 혹은 미즈메디 병원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었고 그것을 하지 않았다 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2003년도 4월에 체세포 제공자 인적 상황을 물어 보았을 당시 막연한 기억에 의존하여 대답했다고 했는데 2달이 지난 당시 많은 난자 제공자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을 가능성도 떨어지고 적어도 2월 난자 제공자 명단을 파일로 확인했다면 2명이 제공했고 한 명은 이름 모름이라고 적었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이를 확인했어야 맞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류영준, 이유진, 구자민 등이 체세포 공여자의 정보를 모두 놓치고 기록을 하지 않았거나 그 정보를 분실했으며 박을순 연구원 역시 실험일지에 정확한 기록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인데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 기술한 검찰 보고서는 신뢰하기 힘들다.  

요약

1. 류영준과 이유진 두사람이 2004년 논문의 난자 제공자 명단을 관리했다.

2. 구자민 연구원이 체세포 인적 사항을 주지 않고 류영준은 이를 확인하지

않았으며 이유진은 이를 실험일지에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3. 난자 제공 2개월이 지난 2003년 4월에 단순히 기억에 의존해서 난자

제공자의 이름을 말했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4. 컴퓨터 화일에 이름 모름이라고 기록한 것이 사실이라도 실험 일지와

미즈메디 병원측을 통해서 당연히 체세포 제공자 정보는 확인 되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