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유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뒤풀이되는 어머니의 녻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별도봉 오르니]060513
사는 이유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뒤풀이되는 어머니의 녻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