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누나의 갑작스러운 죽음...

김근용2006.05.25
조회192

제목을 보셨으면 여러분들도 누나가 죽었구나... 저세상 사람이구나 하실겁니다.

하지만 저희 집에서는 너무나도 소중한 한 식구였습니다.

 

2006년 5월 24일 3시 39분  사망.... [부산 좋은 문화 병원] 산부인과...

지루하서더라도 밑에까지 꼭 일어봐주세요.

 

저희 집은 7남매로 부모님이 경남 밀양에서 농사지으시면서

7남매를 대학까지 보내셨습니다.

 

아버지는 옛날 정미소에서 일을하시다 다친 관계로 오른쪽 발이 왼쪽발바도 5cm나 더

짧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남매(2남 5녀)를 키우셨습니다. 어머니 또한 자식들 앞에서 아프다는

내색 한번 못 하시면서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서론이 길었나 모르겠습니다. 저희 가족은 7남매와 부모님으로 살았습니다.

현제는 6번째 장남인 저 하나 빼고는 다들 시집 장가를 갔습니다.

 

둘째 누나는 일찍 결혼한것이 아닙니다.

나이 36살에 국제 결혼을 했습니다.

 

잠깐 둘째누나의 과거를 생각해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안좋아서 경남 전문대(현 경남정보대학) 건축가를 진학하여

낮에는 일 밤에는 공부,주경야독을 하면서 생활하였습니다.

 

남달리 공부 욕심이 많았던 누나는 전문대 졸업후 다시 4년째 부산공대 건축과

(현 부산부경대학교)를 진학 주경야독은 끝나지 않았고 장학금 또한 한번도 전액은 아니지만

노쳐본적 없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둘째누나의 꿈인 하늘을 나는 꿈을 위해 아끼고 아껴 모아 두었던 돈과

부모님께 도와달라고 하면서 까지 호주로 유학을 갔습니다.

 

경비행기 면허증을 따기위해서 말입니다.

4년간 호주 멜번에서 공부와 일을하면서 보냈으며 결국 꿈이 경비행기 항공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후 한국에와서 그꿈을 실현 시킬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그당시 우리나라에는 여비행사가

항공사중에 유일하게 1명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나는 다시 호주 멜번으로가서 경비행기 조교를 하면서 그쪽에서 꿈을 이루려고하였으나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비행사의 꿈을 접었습니다.

둘째누나 또한 얼마나 고민하고 결정 것 였겠습니까...  그만큼 노력한것을 부모님이 보류를

말씀하셨으니... 그래도 누나느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뜻을 따랐습니다.

 

그후 다시 결정을 내리 누나는  부산 부경대학교 석사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교수의 꿈을 다시 새로이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 나이 벌써 30살이 넘었습니다.

 

결혼은 2003년도 5월에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석사 박사 학위과정을 발으면서 국제 펜팔로 알고지내든 분이랑 말입니다.

 

결혼 후 두사람은 너무나 금술이 좋았습니다.

처음 외국인 밥 매형을 만났을때... 외국인이라는 말이 안통한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친해 질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어는 하지 못합니다. 겨우 몇단어 알아들을정도)

지금 또한 마찬가집니다. 제가 영어가 많이 딸려서 조금 서툴게 알아듣고 아는 단어,

바디 랭귀지로 대화를 가끔할정도였으니깐요.

그래도 부모님은 누나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혼을 한다고해서 반대도없이

바로 성사시킨 결혼이였으니까요.

결혼한지 2년 되었을때, 나나와 매형은 얘기를 같고 태어나면 미국가서 살자고 합의하였답니다.

누나 나이가 있어서 쉽게 임신은 어려웠습니다.

몇번의 인공수정에 의해 겨우 임신을했습니다.

작년 말경에...

임신하고서도 누나는 입덧이 심해서 잘 먹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밥 매형은 굶고 살수는 없지 않습니깐.

밥 매형은 누나를 위해서 다른방으로 밥을 들고가서 먹고 설거지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누나를 사랑해주었고 헌신적이였습니다.

누나는 임신해서 입덧이 심해지고해서 하던 시간 강사와 조금하게 만든 색체연구소 사무실도

다른이에게 넘기고 집에서 요양했습니다.

조금 많은 나이에 얘기를 임신해서인지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전 경기도쪽이 직장이라서 자주는 아니지만 한번씩 보는 둘째누나의 얼굴을 그때봤을때는

반쪽이라는 말이 정말 맞았습니다.

엎친데 덮쳤다고들 하죠  임신한 와중에 물혹이 생겨서 자궁안에서 자라고있었답니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인공수정할때 그런것도 미리 조사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임신한 상태라 자궁에 생긴 혹을 어떻게 하지도못하고 지켜만볼뿐이였습니다.

얘기에게 잘못이라 될까.

한날은 너무아파서 병원에갔습니다.

자궁속에 혹이 터져서 그 이무질을 끄집어내는 수술을했습니다.

그후에 누나는 병원을 자주 입신했다 퇴원했다 했습니다.

얘기는 그때가 겨우 5개월...

너무나 위험했습니다...

겨우 겨우 병원에 입원해서 30주만  얘기를 키우자고 의사들과 합의를 했답니다.

자궁속에 혹을 안고. 갈수록 아픔은 심해지고 진통도 빨리와서 너무나 힘들어했습니다.

 

참다 참다 결국 31주 되던 2006 5월 24일 수요일 아침에 갑자스럽게 수술한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달려간 큰누나.

수술실 들어갈때 잘 낳고 올께 까지 말했던 누나가.

이제 이새상 사람이 아닙니다.

 

인공수정하고 얘기 낳을때까지 있었던 병원은 바로  [ 부산 좋은 문화병원 ]입니다.

 

몇번의 인공수정과 입원 그리고 자궁속 혹...

 

병실에 같이 입원한 환자 그랬답니다.

 

부원장이...  환자 수술하는게 어려울것같으니깐 대학병원으로 보내자고했답니다.

원장은...  왜 우리병원에 온 환자를 딴 병원으로 보내냐구 했답니다.

 

참 저렇게 말해놓고 결국은 어제 누나는 수술실 들어가서 나오지도 못하고 저새상으로갔습니다.

8개월된 얘기는 무사합니다. 지금 인큐베이트안에서 잘살아있답니다.

문제는 그뒤...

제왕 절개후 얘기는 무사히 나왔으며, 누나의 자궁안에있는 혹을 수술하다

갑자기 쇼크로 누나의 심장은 멈추어버렸답니다.

 

수술실 들어간지 5시간...

병원에서는 혹뛰는것은 쉬운일이라고했답니다.

근데 5시간 너무나 오랜시간이 걸린겄입니다.

 

저는 경기도에서 누나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서울역으로달려가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도중 전화가 왔습니다.

재수씨한테서 말입니다.   울먹이면서  지금 영안실로 내려간다고...

얼마나 듣기싫었던 말이였는데...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빌었는데요. 제 목숨 반을 때줄수도있다고 누나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죽음....

 

너무나 슬픔니다.

 

지금 누나가 수술받다 죽은 " 부산 좋은 문화 병원 " 으로 항의하러갑니다.

더 많이 적을께 많은데 눈물이나네요...

제가 시간날때 또 다시 이 이야기으 후편을 올릴까합니다..

 

5월 25일 kbs 뉴스에 잠깐 보도가 되었답니다.

30대 얘기낳다 죽음이라고...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부산 좋은 문화병원 제가 꼭 진실을 밝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