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All In)한 간디

송희선200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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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홈에서 퍼왔어요 인도에 계신 마틴선교사님이 쓰신 칼럼이에요... 좀 길어도 인내하시고 읽어보세요~ 후회없을 겁니다^^ ========================================================= 간디의 고향 아메다바드에서 160키로 정도 떨어진 곳에 바로다라는 도시 왕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도 미술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이 1년에 한명을 뽑는 치열한 경쟁을 치루고 힘겹게 공부하는 바로다 왕립 미술대학이 있습니다. 4년전 중국 벽화를 섭렵하고 인도 대륙의 미술을 배운 후 고국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계신 서모 화백이 올 연초 유명세를 탔던 ‘올인’이라는 미니드라마 시리즈를 보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다루었는가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한국인으로 라스베가스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한 갬블러의 삶을 토대로 하여 각색한 이야기였습니다. 사랑과 인생을 위하여 한판에 전부를 걸어 버리는 주인공의 삶을 보며 조국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매순간 올인하였던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의 생애가 떠올랐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 떠나 나그네 된 인생을 품어준 너그러운 인도가 이제는 내 집 마냥 정이 들어 지나치는 사람과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는 지금에도 마하트마 간디의 삶은 경이롭기만 합니다. 자서전을 읽어보면 보통 사람과 별 다른 점이 없는 그의 생애가 10억 인도 인구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자기탐구가 낳은 결과였습니다. 간디는 부단한 자기 성찰을 통하여 인도의 독립이라는 현실 문제에 샤따그라하(진리파지)와 아힘사(비폭력)란 정신적 방법을 도입하여 식민제국과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됩니다. 무식하고 용감하게만 보였던 그의 지도 철학은 독립의 여망을 가졌지만 사분오열되었던 지식인층과 전혀 독립운동과 관련이 없어 보이던 농민층까지도 하나로 만들어 한 민족의 사활을 건 승부를 하게 하였습니다. 간디를 시해하고 그를 폄하하는 몇몇 부류들은 반드시 간디가 아니더라도 인도는 독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지나간 역사를 평가하지만 인도의 힘을 하나로 묶어 독립이라는 한 판 승부를 하게한 간디의 삶은 그렇게 한 마디로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면 어쩌면 간디가 태어나 살던 그 시대가 그를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15세기 말엽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한 후 인도는 여러 가지 목적에서 나라들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 통상로 확보를 위해 고아에 거점을 마련하고 네덜란드와 영국이 향료 무역을 위해 무갈제국 제항기르시대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자바등지에서 네덜란드 세력에 밀린 영국은 인도와의 무역에 전념하게 되고 곧 후발한 프랑스와 대립하게 됩니다. 그들의 경쟁은 1757년 플랏시 전투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 마무리짓게 됩니다. 승리한 영국이 인도를 상대로 한 독점권을 행사하게 되다가 1857-9년에 걸친 세포이반란으로 마침내 무갈제국이 무너지고 영국이 인도를 전권 통치하게 됩니다. 먼 섬나라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게 된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는 지도자 문제였습니다. 국제정세에 눈이 어두웠던 이들은 고도의 정보망과 정치, 군사조직을 가지고 접근하는 영국앞에서는 골목대장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그만 자기 왕국을 지키기 위해 이웃 왕국과 다투다가 결국에는 어부지리를 노린 영국에게 삼켜져 버렸습니다. 간디는 이런 비운의 조국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습니다. 13세의 동갑내기 결혼, 18세의 영국 유학, 그리고 봄베이에서 개업한 변호사 생활의 실패, 남아프리카로 직장을 따라 이동한 것이 그의 삶을 바꾸어 놓게 됩니다. 마차와 역구내에서 유색인종이라고 당한 차별은 깊이 잠자고 있던 그의 오기를 불타오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 기회를 깊은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나아가 남아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한 사랑과 봉사에 자기 인생을 걸었습니다. 이 봉사에 몰두하기 위하여 세속적인 소유욕을 포기하고 단순, 검소한 생활을 하며 심지어 부부생활마저 이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여 36세 때는 부부 합의 하에 이를 금하였습니다. 56세가 될 때까지도 불일 듯 이는 정욕감정에 고통하면서도 그는 이를 지키며 동포 봉사에 전념하였습니다. 이런 투쟁은 결국 20년만에 남아에 살고 있는 인도인들에게 부당하게 부과되었던 인두세를 폐지시키는 성과를 얻게 하였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의 한판승부에서 승리한 그의 경험은 조국인 인도에 와서 더욱 심화되고 발전하였습니다. 사땨그라하로 통칭되는 그의 투쟁방법은 성경적으로 표현한다면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었습니다. 간디는 식민통치를 하고 있는 식민통치자들이 비록 일시적으로 심지가 흐려져서 어긋난 길로 가고 있지만 아힘사(사랑)로 자진하여 고난을 당함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인간적인 감정을 환기시킬 때 이들이 변화되고 종래는 진리가 승리할 것을 믿었습니다. 1907년 남아에서 시작한 이 사땨그라하 운동은 30여년만에 인도의 독립을 쟁취케하였습니다. 그 이후 무슬림과 힌두의 하나됨을 위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이던 마하트마 간디는 1948년 1월 30일 힌두 극우파 비밀결사의 단원이었던 청년 고드세의 총탄에 숨지게 됩니다. 인도의 독립과 민족의 하나됨에 올인했던 간디의 생애, 그리고 그 죽음은 자칫 공산화의 발길에 짓밟힐 뻔했던 인도를 구했으며 인도를 공산화의 위험에서 구해내었습니다. 간디의 사땨그라하는 죽어서도 말하였습니다. 이 간디의 삶과 죽음은 이길 확률이 없는 승부의 갈림길에서 패배 그리고 파산을 감지하며 남아있는 모든 것을 걸고 전부 아니면 전무를 외쳐야하는 선택, 그 선택은 처절하지만 지극히 아름답고 위대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에게 있어 진정한 올인의 의미였고 그의 생애 속에서 가장 높이 평가될만한 진리에 대한 시도였습니다. 이는 또한 이미 영원한 생명으로 올인의 댓가를 보장받고 있는 우리에게 사뭇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직시해야합니다. 그가 한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승리의 올인의 쾌거와 업적을 이루었던 자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 앞에 진정한 올인을 거부한자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도덕률의 위대함을 발견하였지만 그 것을 지으신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모든 민족과 열방의 대 주재시요, 전능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 우리 삶의 올인의 승패의 Key를 쥐고 계신 구원자 되신 분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거부하였습니다. 결국 거룩한 진리 속에서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취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올인을 포기함으로 말미암아 최후의 심판에 가라지의 운명에 처해지는 비운을 맛볼 수 밖에 없는자가 되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가치있고 확신한 일에 올인했던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창세기 12:1-3절 말씀에 노년의 안락한 삶을 올인하고 본토 친척아비집을 떠났던 아브라함, 극심한 흉년중에서도 약속의 땅 그랄에서 올인한 이삭, 한여인 라헬에 올인했던 야곱, 상천하지의 하나님에 올인했던 기생 라합이며 시어머니의 하나님에 올인했던 룻 ‘죽으면 죽으리라’로 올인한 에스더 등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진정한 올인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단편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올인하신 올인의 완성자요 대가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상 유래 없는 최대의 갬블러의 삶을 사신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기 얼마전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요 17:4)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인류구원의 사명을 완성하시는 데 올인하셨습니다.. 이 인류구원의 사명은 끊임없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어야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창조주의 영광을 벌레보다 못한 인생을 구원하는데 올인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33년간의 생애는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창조주로서의 명예를 건 도박이었고 하나님의 올인은 이 사실을 받아 들여 인생의 판돈을 모두 건 이들에게 확실한 보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올인의 자세를 요구하십니다. 적당히 눈치보며 뒷자리에 물러앉아 꽁지돈이나 심부름값이나 챙기는 그런 삶을 살기보다 한번뿐인 이 인생 전부를 “예수”라는 스트레이트 플러시에 거는 삶을 살기를 촉구하십니다. 물론 이 삶은 한 순간의 결단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10년이 걸릴 수도 2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회적인 이 인생을 예수에 올인할 때 얻어지는 축복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언저리에 갔지만 예수님을 거절하였던 간디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안타까운 이들은 진리되신 예수님을 알고 그 풍성함을 맛보았으면서도 생애 순간 순간을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올인하지 못하고 순간적인 쾌락과 세상의 부와 명예에 판돈을 거는 이들입니다. 10년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는 선교사의 삶에 오늘 다시 이런 어정쩡한 모습으로 선 자신에 대해 깊은 회개를 하며 다시금 ‘예수님께 올인’하는 삶을 살고자 결단합니다. (2003년 11월 12일) 올인(All-in): 올인은 포카를 치면서 패가 좋게 나왔을 때 한 판에 판 돈 모두를 걸고 외치는 소리. 오링이라고 발음됨. 카드의 일종인 게이트를 본 따 만들어 파월장병들이 즐겼다는 월남뽕의 아도와 같은 의미. 어처구니 없는 패를 들고 오링을 외치는 뻥카도 있음. (이상 허영만의 ‘타짜’에서) * 그러나 노름은 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