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하고 필기도구를 안 가져와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독립문 맞은 편 길가에 앉아서 연필을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연필 한 자루 사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 자루는 안 파는 것 같았다. 한자루만 깎아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연필 하나 가지고 땡전 나오겠소? 1다스 사기 싫으면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열받게 하는 노인이었다. 열받아서 가려고 했더니 농담도 못하냐면서 바지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시험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점점 시험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돌아버릴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돈만 더 주면 이러고 있겠냐 ! ! !'
나도 어이가 없어서,
'학생이 돈이 어딨단 말이오. 노인장, 왕고집이시구려. 수능 봐야 한다니까. . .'
노인은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팔겠소.'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가래침을 퉤~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시험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작년 대입점수가 80점이라서 애당초 포기한 몸인지라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 동전은 없고 회수권은 있소.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노인은 회수권을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더니
'글쎄, 웃돈이 없으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공룡 풍선껌을 씹고 있지 않은가. 나도 고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깎기 시작한다. 또, 얼마후에 연필을 들고 이리저리 던져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연필이다.
수능을 2교시부터 봐야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개판일 수 밖에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그래가지고 돈만 엄청 밝힌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치질이 도졌다.
수능을 포기하고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기지개를 펴면서 독립문을 바라보고 드러누워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치사해 보이는, 그 누워있는 모습, 그리고 쭈글한 눈매와 콧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 해진 셈이다.
재수학원에 와서 연필을 내놨더니, 사람들이 기차게 잘 깎았다고 야단이다. 연필굴리기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연필과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과학만은 만점을 받는 섬배의 설명을 들어보면 (다른 과목은 개판임), 심이 너무 길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E=mc²에 의거 질량이 폭증하여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깎인 자리의 모가 반듯하지 않으면 공기저항 계수가 0.4이상으로 증가, 주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킴으로써 낙하지점의 오차가 생김으로 인하여 겐또가 안맞는다는 것이다. 정말 요렇게 꼮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컨닝페이퍼는 침으로 겉을 닦고 곧 뜨거운 밥풀로 붙이면 선생님 등에 붙여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컨닝페이퍼는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컨닝페이퍼에 밥풀을 붙힐 때, 질 좋은 껌을 잘 씹어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선생님 등에 붙인다. 이것을 등쳐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하기사, 요새는 시험 잘 치는게 배아파서 며칠씩 걸려 가며 등쳐 먹을 사람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던지는 컨닝페이퍼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던지는 것을 사면 10m짜리는 얼마, 20m짜리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백발백중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백발백중이란 한 번 마음 먹은 곳을 던지면 정확히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개중에는 붙는 기능도 있어서 멀리서도 등칠수가 있었다. 하지만 눈으로 봐서는 백발백중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백발백중하게 만들 리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주는 녀석도 시험당일만 되면 들켜서 끌려가게된다.
옛날 우리 선배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점수는 점수지만, 컨닝페이퍼를 만드는 순간만은 오직 최고의 컨닝페이퍼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대작을 만들어냈다. 이 연필도 그런 심정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연필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얻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해 대입시험때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충격이었다. 내 마음은 연필을 얻지 못해, 그리고 추탕에 탁주를 얻어먹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쓰러졌다.
맞은편 독립문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을 가로지르며 독립문 밑으로 육교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육교 위에 지나가는 여자 치마를 훔쳐 보고 있었다. 열심히 연필 깎다가 누워서 육교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자를 쳐다보는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내 입에선 '무슨동 XX하다가 견육교!' 하는 도언명의 싯귀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동생이 주관식 컨닝용 무전기와 객관식용 삐삐를 넣고 있었다. 전에 컨닝페이퍼를 만들다 들켜서 먼지나도록 방망이로 두들겨 맞던 생각이 난다. 컨닝페이퍼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얻어맞던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제발 한 문제만 ! !' 혹은 '한 번만 봐주이소' 하던 애수를 자아내던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2년전, 연필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 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竹器(죽기)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藥材(약재)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熟地黃(숙지황)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길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 깎다가 우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採菊東籬不(채국동리불)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 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 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만호도의성’이니, ‘위군추야도의성’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연필 깎던 노인 (패러디)
연필 깎던 노인 (패러디)
벌써 2년전의 일이다. 내가 대입시험을 치러 서울 여관방에 살 때다.
수험장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독립문에서 일단 걸어가야 했다.
깜빡하고 필기도구를 안 가져와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독립문 맞은 편 길가에 앉아서 연필을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연필 한 자루 사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 자루는 안 파는 것 같았다. 한자루만 깎아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연필 하나 가지고 땡전 나오겠소? 1다스 사기 싫으면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열받게 하는 노인이었다. 열받아서 가려고 했더니 농담도 못하냐면서 바지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 시험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점점 시험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돌아버릴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돈만 더 주면 이러고 있겠냐 ! ! !'
나도 어이가 없어서,
'학생이 돈이 어딨단 말이오. 노인장, 왕고집이시구려. 수능 봐야 한다니까. . .'
노인은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팔겠소.'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가래침을 퉤~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시험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작년 대입점수가 80점이라서 애당초 포기한 몸인지라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 동전은 없고 회수권은 있소.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노인은 회수권을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더니
'글쎄, 웃돈이 없으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공룡 풍선껌을 씹고 있지 않은가. 나도 고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깎기 시작한다. 또, 얼마후에 연필을 들고 이리저리 던져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연필이다.
수능을 2교시부터 봐야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개판일 수 밖에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그래가지고 돈만 엄청 밝힌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치질이 도졌다.
수능을 포기하고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기지개를 펴면서 독립문을 바라보고 드러누워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치사해 보이는, 그 누워있는 모습, 그리고 쭈글한 눈매와 콧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 해진 셈이다.
재수학원에 와서 연필을 내놨더니, 사람들이 기차게 잘 깎았다고 야단이다. 연필굴리기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연필과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과학만은 만점을 받는 섬배의 설명을 들어보면 (다른 과목은 개판임), 심이 너무 길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E=mc²에 의거 질량이 폭증하여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깎인 자리의 모가 반듯하지 않으면 공기저항 계수가 0.4이상으로 증가, 주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킴으로써 낙하지점의 오차가 생김으로 인하여 겐또가 안맞는다는 것이다. 정말 요렇게 꼮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컨닝페이퍼는 침으로 겉을 닦고 곧 뜨거운 밥풀로 붙이면 선생님 등에 붙여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컨닝페이퍼는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컨닝페이퍼에 밥풀을 붙힐 때, 질 좋은 껌을 잘 씹어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선생님 등에 붙인다. 이것을 등쳐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하기사, 요새는 시험 잘 치는게 배아파서 며칠씩 걸려 가며 등쳐 먹을 사람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던지는 컨닝페이퍼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던지는 것을 사면 10m짜리는 얼마, 20m짜리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백발백중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백발백중이란 한 번 마음 먹은 곳을 던지면 정확히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개중에는 붙는 기능도 있어서 멀리서도 등칠수가 있었다. 하지만 눈으로 봐서는 백발백중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백발백중하게 만들 리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주는 녀석도 시험당일만 되면 들켜서 끌려가게된다.
옛날 우리 선배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점수는 점수지만, 컨닝페이퍼를 만드는 순간만은 오직 최고의 컨닝페이퍼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대작을 만들어냈다. 이 연필도 그런 심정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연필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얻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해 대입시험때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충격이었다. 내 마음은 연필을 얻지 못해, 그리고 추탕에 탁주를 얻어먹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쓰러졌다.
맞은편 독립문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을 가로지르며 독립문 밑으로 육교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육교 위에 지나가는 여자 치마를 훔쳐 보고 있었다. 열심히 연필 깎다가 누워서 육교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자를 쳐다보는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내 입에선 '무슨동 XX하다가 견육교!' 하는 도언명의 싯귀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동생이 주관식 컨닝용 무전기와 객관식용 삐삐를 넣고 있었다. 전에 컨닝페이퍼를 만들다 들켜서 먼지나도록 방망이로 두들겨 맞던 생각이 난다. 컨닝페이퍼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얻어맞던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제발 한 문제만 ! !' 혹은 '한 번만 봐주이소' 하던 애수를 자아내던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2년전, 연필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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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방망이 깎던 노인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세간 난 지 얼마 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竹器(죽기)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藥材(약재)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熟地黃(숙지황)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길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 깎다가 우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採菊東籬不(채국동리불)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 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 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만호도의성’이니, ‘위군추야도의성’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