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은 사랑을 왜곡시킨다

윤주형200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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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빠짐없이 챙겨 본 첫 번째 드라마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또 재벌이냐?'라는 냉소적 생각을 가졌지만 회가 진행될수록 숱한 드라마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중 조인성은 재벌가의 아들이다. 소지섭은 가난하고 불우한 집안 출신의 엘리트이다. 하지원은 하루벌어 하루 먹기 힘든 가난한 젊은 여성이다. 드라마의 결말은 조인성이 소지섭과 하지원을 죽이고 자신도 권총자살을 하는 것으로 맺었다.

 

  하지원과 조인성, 소지섭 사이의 감정들이 과연 사랑인가, 소유욕인가, 경쟁심리인가를 두고 드라마는 끊임없이 긴장을 보여주다가 결말에서 결국 하지원과 조인성의 사랑이 진실임을 밝힌다. 총에 맞아 죽으면서 하지원은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다. 혹자는 하지원이 왜 사랑한다고 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하지원의 마지막 대사야말로 이 드라마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회과학적이다.

 
  흔한 드라마들은 계급 혹은 계급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려도 보여주지 않거니와 혹여 보여준다 하더라도 천박하기 그지없다. 대체로 한국 드라마에서는 계급을 초월한 사랑이 그려진다. 혹은 계급을 탈출하는 사랑만이 그려진다. 이는 계급사회에 사는 한국인에게 환상적 대리만족을 안겨줄지는 모르지만 진실과는 인연이 없다. 계급은 사랑마저 왜곡시킨다.

  이는 같은 계급이라야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서로에 대한 계급적 이해가 있거나 같은 계급의 사상을 가져야 사랑은 생명력을 갖는다. 하루벌이의 절박함에 일상을 채우는 사람과 수백만원짜리 핸드백 선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안겨주는 사람 사이에는 반짝 사랑은 가능할지 몰라도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한 쪽이 자기 계급을 포기해야 한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자신의 주제의식을 거칠게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극중 중반쯤에 소지섭은 하지원에게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들려준다. 오늘날에는 계급이 사라진 것 같지만 저들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뒤에 숨어서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말을 들려준다. 그리고 하지원은 소지섭에게 그람시의 '옥중수고'를 빌려 읽는다. 조인성은 소유욕과 사랑 사이에서 스스로 방황하다가 결국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결말은 파국적이다. 현실에서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발리에서 시작된다.
  발리여행중에 극중 네 명의 인물, 소지섭, 하지원, 조인성, 박예진은 모두 동행하게 되고 하지원은 여행 가이드를 맡는다. 소지섭과 박예진은 대학선후배 사이로 서로 연인이다. 조인성과 하지원은 발리에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는다. 물론 조인성은 그녀를 기억도 하지 못한다. '발리'는 계급구조가 강력하게 지배하는 한국이 아니다. 네 명의 연정과 관계맺기는 발리에서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발리는 계급구조를 벗어난 일종의 환상적 공간이다.

 

  소지섭은 회사의 돈을 횡령해서 하지원과 발리로 달아난다. 조인성을 둘을 좇아 발리로 가서 이들을 쏘아 죽인다. 발리 또한 계급적 모순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발리에서 생긴 조우'로 시작된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계급구조속에서 철저히 왜곡되고 비극적으로 종결되었다. 어쩌면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모험을 목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드라마가 처음인 것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