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연애시대> 한지승 감독 인터뷰 "살아가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anntown200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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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연애시대> 한지승 감독 인터뷰 "살아가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백은하 기자.

Q : 동진(감우성)이 유경을 떠나 다시 은호(손예진)와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는 결말에 대해서 의견들이 많다. 아주 개인적으로는 은호도 동진도 이별을 인정하고 따로 잘 살아가길 바랬다.

A : 은호와 동진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판단’ 보다는 ’선택’의 문제였다.
마지막 은호의 나레이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처럼 현재는 해피엔딩이지만, 그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라는 거다.
원래 찍었던 화면에는 동진과 은호가 집세, 주식 이야기 따위를 나누는 아주 일상적인 모습이 많았다. 그런데 마지막 편집과정에서 공원에서의 평온한 모습만이 강조되다보니 오해가 좀 있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이 헤어지는 것이 쿨한 선택이고, 각자 잘살 거라고 믿는 것 자체가 오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잠깐이라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자는 마음이 있었고, 사실 이 드라마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 마지막 결론에 반해서다.
노자와 히사시의 원작을 보면 "행복은 졸린 것과 비슷하다." 라고 했는데 이들이 헤어지고, 만나고 하는 것은 어쩌면 중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을 갈구하지만 막상 행복한 순간이 오면 그것은 그저 나른하게 졸리는 그 이상 별게 아닐 수도 있다.


Q : 그래도 유경이 이들 관계의 가장 큰 희생자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A : 결말에 대해, 동진의 선택에 대해, 칭찬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건 이 드라마의 ’한계’ 가 아니라 ’설정’ 이었다.
결말에 유경이 이들에게 취하는 입장이 시청자들의 입장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진을 "원망하겠다" 는 유경의 말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원망해도 어쩔 수가 없다.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희생을 당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맞다. 이기적이다.
그나마 앞으로는 잘살라고 격려라도 받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Q : 인물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꾸만 멀리 빠지는 카메라나 끊임없이 상황을 객관화하려는 나레이션 등은 유경이 마지막회에서 한 말처럼 "영혼이 빠져나와 이 상황을 보고 있는" 뭐. 그런 느낌이 든다. 기존 드라마들이 한 인물에 빙의에 가까운 동일화를 강요하는 데 비해 이러한 시도는 사실 위험부담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A : 그래서 시청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나보다.(웃음)
사실 기존 드라마의 법칙이랄까. 그런 걸 몰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각각의 스토리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을 보는 기쁨이었다.
은호와 동진은 이 드라마안에서 대표성을 띤 인물이지, 이 두사람에게만 집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조연들의 역할을 임팩트있게 가고 싶었다.
를 좋아하신 분들이라면 그 점때문일 거고, 안 좋아하셨다면 또 그 이유일 것이다.


Q : 흔들리는 심리상태의 동진 앞에 ’흔들리니까 사람이다’ 라는 ’북마스터 추천도서’ 푯말을 떡하니 배치한다거나, "아~ 이 바보야~" 같은 노래가 흘러나온다든지 배경음악과 엑스트라의 설정이 거의 비현실적일 만큼 상황을 직설화법으로 말하고 있다.

A : 원작의 밋밋함이 좋았던 거지만 그 때문에 드라마가 너무 심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 중 하나였다. 난데없이 주위를 환기시키는 설정이나, 그런 직설적인 문구나 음악을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또한 지호와 준표 커플의 만담에 가까운 코믹함과 비중있는 조연들의 설정으로 그 부분들을 채울 수 있었던 것 같고.


Q : 를 보다보면 브라운관에 비친 내가 보일 때가 있다. 홀로 있는 소파에 앉은 동진이나, 덩그런 방안같이 무언가 비워져 있는 공간을 쓸쓸하게 응시하는 긴 시간 때문인 것 같다.

A : 동진과 은호가 말없이 멍하니 있는 그 시간동안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상황과 사건에 몰입하기보다 그들을 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반추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소설의 행간의 느낌을 드라마에서 살리는 방식으로.


Q : 이미 에서 예견된 바이지만 손예진의 비약적인 발전이 느껴지는 드라마였다. 
캐릭터의 일관화라는 강박 아래 단선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과 달리 손예진은 각기 다른 상황에 맞는 목소리, 연기 톤을 잡아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A :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작업하기 전까지는 손예진이란 배우를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를 통해 얻은 걸 하나만 꼽으라면 정말 대성할 만한 여배우를 내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빈말이 아니다. 15회에 술먹고 통닭 사가지고 오는 장면은 손예진의 아이디어였다. "왜 어릴 때 아빠가 술먹고 통닭 같은 거 사오면 그 뒷모습이 참 슬프잖아요." 라고.
내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감지하기 힘들 정도의 배우인데 너무 정확한게 매력없어 보일 만큼 연기의 디테일이나 상황분석, 이해능력이 뛰어나다.
그것이 훈련된 것인지 천성적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 친구의 행보가 너무나 궁금하다.


Q : 이하나는 너무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놀라운 신인이었다.

A : 공형진 소속사에서 오디션장에 놀러온 친구였는데 연기를 시켜보니 전혀 새로운 연기를 하더라.
어릴 때 육상을 해서 그런지 주늑 들어 있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연기 경험이 전무한 배우라 처음엔 어디로 튈지 몰라서 많이 힘들었다.
내가 야단도 많이 치고 본인도 고생을 많이 했다. 손예진, 감우성, 공형진 같은 굵직한 배우들 사이에 끼어 하도 NG를 내니까 나중엔 자기들이 이하나 연기하는 걸 돕더라.
중반엔 스텝들 사이에 "지호 그냥 유학보내자"는 말까지 나왔다. (웃음) 하지만 이후로는 연기에 감을 잡더니 무서운 속도로 적응을 했다.
마지막회에 동사무소에서 영어로 떠드는 부분은 순전히 이하나의 애드리브였는데 현장에서 스텝들이 웃겨서 쓰러질 정도였다.


Q : 나 때도 그랬지만 에서의 박연선 작가의 대사는 잔잔한 드라마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

A : 원작과 대본을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기본 설정만으로 갈 수 없는 부분들, 촌철살인의 유머나 일상의 디테일은 박연선 작가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부분이다.
그리고 매회 의도한 방향을 정확하게 표현해준 나레이션 부준에 대해서는, 우리끼리 그러는건 우습지만, 정말 칭찬이 모자랄 정도다.


Q : 완제품을 만들고 나서 반응을 기다리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진행되는 동안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무시하기 힘든 구조다. 꽤나 생경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A : 어떤 반응이 나오든 간에 처음 결론과 다르게 갈 거라는 생각은 한번도 안했다.
다만 하나의 드라마에 이렇게 열렬히 반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는 것이 정말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시청자들 의견을 들어보면 내가 모르는 부분, 간과한 부분을 귀신같이 잡아낸다.
반응들과 함께 생겨난 약간의 변화라면 지호와 준표 커플의 비중이 늘어났고, 그러면서 동진과 은호의 사랑과 대치되는 느낌으로 진행되었다는 거다. 주방장은 팬클럽까지 생겼다더라. (웃음)


Q : 예전에 과의 인터뷰에서 "내 화두는 사랑과 가족" 이라고 했는데 2006년에 그 화두는 한지승 감독에게 어떻게 정의될 수 있나.

A : 여전히 잘 모르겠고, 여전히 확신이 안 들고, 그래서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다만 예전처럼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사랑’ 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아름답게만 생각하는데 고난도 추한 것도 악한 것도 다 사랑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건 ’사랑’ 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지만 사랑에 관한 정의와 폭이 넓어지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졌다.
사랑은 그냥 호흡과 같은 거라 살아 있으니까 사랑해야 하고 이 시간에 죽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랑하고 있다는 거다.


Q : 한 감독의 이전 영화를 보면 사랑에 대한 달콤함이나 낙관 같은 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조금 날이 섰달까, 조금 더 냉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A : 그렇게 변한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동진과 은호를 공원 풀밭에서 아이와 함게 놀면서도 웃지 않기를 바라게 되더라.
이제 웃지 않는 모습도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Q : 혹시 "사는 게 참 지루하다" 고 느껴본 적 있나?

A : 너무 많다. 안 지루하려고 일도 하는 것 같고. 안 지루하려고 사랑도 하는 것 같다.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