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R.L. Bernstein)

김용호2006.05.30
조회129

주제 넘게 몇 권의 철학책을 깔짝대면서
항상 궁금증을 키워 왔던 것이 있었다.

과연 진리란 무엇인가
또 절대적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그런 진리란 과연 있는것인가.
정말 막스가 중얼거렸던 진리들만이 확고 부동하게 내가 살아가는 그리고 내가 숨쉬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해답은 그 어느 책에도 없었다
당연하지, 그 해답을 찾기위해 발버둥 쳐온 기나긴 고뇌의 역사가
수백년 동안 아니 수 천년 동안 철학이란 학문이 짊어지고 온 숙명이었기 때문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 두글자를 걸고 빈대(?)붙어 밥을 벌어먹고 살고 있는 것이고....

언제나 "나는 진리를 발견했다"고 외치는 사람은 수도 없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옆에는 언제나 그 진리를 흔들어 놓기위해 노심초사하는 사람이 있어왔고

또 그런 사람들간 치열한 투쟁의 역사가 철학은 아니었는지....

이제 사람들은 말한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는 것"이라고
"진리란 기껏해야 내가 혼자서 떠드는 독백과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 말을 뇌까리고 있는 사람들 부터도 자기 스스로 뺕어 놓은 말을 두려워 하는것 그것이 철학의 딜레마요 우리 인생의 벼랑끝 묘미는 아닐는지....

이 책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는 이런 양극단의 줄타기를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한 사상가의 노작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놓으면서 과연 다시한번 묻게 된다.
그는 정말로 두개의 명제를 화해 시켰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일까
단지 나의 짧은 지식수준 때문의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쫏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몰론 위의 야그가 당연한 야그기는 하지만,
정말 단지 그것만이 다인가....

저자는 객관주의의 망령에 사로 잡히게된 가장 큰 원인 제공자로 데카르트를 지목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즉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야말로 절대적 진리만을 찾아
그렇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헤메이도록 만든 유혹이었다고.....

" 우리의 이성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순간 순간의 오류 때문에 우린 진리의 앞에서 주저 앉아 있을 뿐이다.
우리가 좀더 조심스럽게 그리고 좀더 세밀히 접근해 간다면
언젠가 진리라는 아름다운 여신은 우리의 눈앞에 자신의 찬란한 자태를 보여주리라..."

하지만 이런 믿음은 흄에 의해서 조롱된다
진리란 우연히 오늘 여기서 벌어지는 불완전한 인간의 감각적 채험에 지나지 않는다.
내일 또다시 태양이 떠오른다고 그 누가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인간 스스로가 확실하고 확고한 진리를 찾아낼수 있고
또 그럴 수 있는 충분힌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믿음은 땅바닥에 던져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 않을 것인가?
그 양극의 다리를 가까스로 이어준 것이 칸트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칸트 역시 이제 인간 자신의 불확실하고 주관적인 오감으로는 내 밖에있는 진리에 한발짝도 다가설 수 없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주장한다 진리는 단순히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물과 같은 것이 아니다
진리에의 탐구란 바로 불확실한 오감에의해 쏟아져 들어오는 물속에서 우리가 필요로하는 알맹이들을 찾아내어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능동적인 작업이라고...

다시한번 인간은 일어서게 된다
그저 널려있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우리에 의해 가공되고 훈육되어 우리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것 그것이 바로 진리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 의해서 알맹이를 건져낼 것인가
그저 퍼다만 담는다고 알맹이가 건져지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결국 무엇인가 필요한것은 아닌가,

칸트는 범주라는 말로 우리를 위로한다
선소여 즉 우리와 상관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신의 절대적인 선물로..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발견했을 때,
더이상 시간과 공간은 우리들에게 절대적인 그 무엇이 될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이젠베르그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주창했을때,
더 이상 인과관계는 절대적인 그 어떤 것으로서 자신의 위명을 뽐낼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그 어느 누구도 범주라고 꿋꿋하게 우길수 있는 것은,

과연 그 무엇인가.....
아무런 검증의 대상이 되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타인의 머리꼭대기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가치판단의 잣대를 들이밀 수 있는것은 그 무엇이란 말인가.....
과학적 방법론????
하물며 그렇게 신봉하던 과학적 발전의 역사마저 이기적 집단 간의의 화해할수 없는 투쟁에 의하여 주관적으로 변해온 것이라고 쿤은 주장하지 않았던가...
(물론 저자는 쿤이 말한건 그런게 아니라고 야그하지만...)
이제 단 한 알의 먼지도 묻히지 않고 이 땅의 흙을 딛고 설 수 있는것은 그 무엇도 없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어쩌자는 것인가
다시 인간의 삶을 짐승들처럼 가진놈과 못가진 놈의 살륙의 투쟁장으로 돌리자는 것인가....
그러기엔 이제는 너무 멀리온 것은 아닌가....
현대 철학, 미술, 음악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파열음을 우리는 똑똑히 듣고있다.
훵한 백지 한장 걸어 놓고 작품이라고 우기고, 원숭이가 지 맘대로 색칠해논 도화지를 가지고 심오한 작품이라 감탄하고 있는 인간들을 비웃으며.....
깡통을 두두리는 소리도 심오한 음악이 되는 판에 무엇하러 우리는 비싼돈을 퍼질러가면서 콘서트 장을 찾아 다녀야 되는가....

이제껏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을 그 누군가에 미루고 오만방자하게 행동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를 대신해 이 무거운 짊을 지어줄 그리고 우리를 인도해 줄 그 누군가는, 그 무엇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니체가 초인을 갈망했지만

더이상 우리앞에 초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결국 이 책의 저자는 여기서 또 칸트가 그랬듯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자고 제안한다....
기준이 없는 삶, 가치 척도가 없는 삶, 그것이 곧 모든 것들은 가능하게 하는건 아님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더이상 우리의 책임을 다른 그 무엇에 돌리지 말자는 것이다.
가디머가 말했듯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라는 숙명에서 한치 앞도 나아갈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역사는 즉 전통은 우리가 있기전에 우리를 형성하고 우리를 우리로서 있게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진리가 왜곡된 것은 아니라고 가디머는 주장한다

이제 투명하고 그 어느 때묻지 않는 진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진리란 먼곳에 있는것이 아니다 진리가 우리를 만들어 왔듯 우리는 진리가 말하는 소리를 들어야한다.
내가 듣는 소리 니가 듣는 소리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진리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진리의 모습임을 조용히 받아들이자.
우리는 외떤 섬에 떠 있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더 멀리 올라갈수록 우리의 지평은 넓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염려하듯 이 책의 저자 또한 공하한 말장난 보다는 우리는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에 보다 굳건히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하버마스를 주목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거대한 하지만 이루어 질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를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시도를 하고있는 그에 대해 다시한번 기대를 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제 진리란 주제넘게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수 있는 그런 주어진 어떤것이 아니다....
진리란 불확실한 세상에 발을딛고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자각한 우리들이 서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만들어서는 결코 안되는 우리를 있게하는 그 어떤 것이다.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나갈것인가?

그것 만큼은 우리 불완전한 인간들에게나마 주어져 있다고 하버마스는 주장한다..
주관적인 불완전한 존재들이라도 우리는 서로 깨어지지 않는 합리적이고 확인 가능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리라는 확신과 믿음이 우리에겐 주어져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깨어질수 없는 믿음을 지켜 나가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간 주간적 주체들의 보편적 의사 소통에의 믿음"

이것이야 말로 우리를 진리 앞으로 한갈음씩 다가갈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것이다.
하지만 예전 선배들이 그랬듯 하버마스 또한 결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둣하다.
과연 그러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득 시킬수 있을 것인가.

결국 시계추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인가?
저자는 여기서 얼버무리고 있다.
단지 실천, 실천, 실천만 강조하면서.......

과연 이것이 끝이었나???

"너는 그렇게 생각해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직도 혼란스러움이 남는다 로티가 말한대로 데리다가 말한대로.....
그리고 푸코가 마지막으로 선언한 대로 이제 인간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서 그러니 우리 같이 한번 노력해 보자고 쉽게 한다디 던져 놓고 나서....
그리고 나서 도대체 그 다음은 무엇인가.....
아니 우리는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할 것인가?
또 어떤식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인가?

그럼 다시 원점이란 말인가?

머저리 같으니라고 저자가 그렇게 이야그 했건만,
그것이 아니라나까......

이런 젠장할, 진리여 그 찬란한 이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