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의 구슬-정미자

박희정200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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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미자의 광주일보 신춘문예 - 동화 부문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친구~!! 진심으로 축하한다. 너의 가능성.. 네 스스로가 믿어준다면 무한한 힘이 나오리라 믿는다~!!! 힘내~!!)

http://www.kwangju.co.kr/sectionview.asp?idx=235463

 

[신춘문예-동화] 알리의 구슬-정미자

    “알리?"
민구는 컴퓨터 자판을 재빠르게 눌러댔습니다. 부지런히 탱크도 만들고, 여러 대의 총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제 상대편 진영으로 들어가서 모조리 부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알리'라는 닉네임을 가진 녀석이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멈춰 있었습니다.
"무기도 안 만들고 뭐하는 거야? 어디 한 번 맛 좀 봐라!"
민구는 공격을 개시했고, 알리의 부대는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부대가 무너졌는데도, 알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욕지거리를 해대던가, 아니면 자존심 상해서 '핑' 나갈 텐데, 알리는 왜 가만히 있을까요?
민구는 메시지 창을 열었습니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게임 안 할 거면, 꺼져버려!]
메시지 전송을 누르자 ['알리'는 없는 회원입니다.] 라는 문구가 떴습니다.
민구가 한 번 더 전송 버튼을 눌렀지만, 같은 문구가 계속 나왔습니다. 분명히 '알리'라는 닉네임으로 싸웠는데, 왜 없는 회원으로 나올까요? 혹시 '버그'에 걸린 건가요?
민구는 이제 영어학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렸습니다. 엄마였습니다. 얼른 컴퓨터 전원을 끄고 책상 위에 펼쳐두었던 학습지를 보는 척 했습니다.
"영어학원에서 벌써 왔니? 이제 피아노 학원 가야지?"
민구가 시계를 힐끔 올려다보았습니다. 이럴 수가! 벌써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전쟁오락 을 하느라 영어학원에 빠진 걸 알면, 엄마가 호통을 칠 게 뻔했습니다.
민구는 얼른 가방에서 영어 학원 책을 꺼낸 후, 피아노 교본을 집어넣었습니다.
집에서 나온 민구는 왠지 멍했습니다. 고작 한 판만 한 건데, 어떻게 두 시간이 흘렀을까요? 어쨌든 엄마한테 들키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놀이터를 지날 때, 민구는 '뽑기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뽑기 할아버지는 민구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른 날과 다르게 황금국자에 설탕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황금국자가 멋지게 빛나자 민구가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정말 멋져요!"
"황금국자로 만든 뽑기에는 소원을 이루는 힘이 있단다."
할아버지가 별모양을 꾹 찍어주었습니다. 뽑기가 정말 황금처럼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뽑기를 들고 문방구를 지날 때였습니다. 진우가 태권도복을 입은 채로 문방구 앞에서 오락을 하고 있었습니다. 민구도 진우 옆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무슨 게임이야? 새로 나온 게임이네?"
"응. 이번 거는 비행기 안에서도 폭탄을 떨어뜨릴 수가 있어! 한 방이면 다 죽어!"
뽑기를 핥고 있는 민구에게 진우가 물었습니다.
"뽑기 어디서 났어?"
"뽑기 할아버지한테서 샀지."
"어, 정말? 나 방금 지나올 땐 없었는데? 뽑기 정말 먹고 싶었는데, 조금만 떼 주라!"
"침 묻혔어. 별모양 뽑으면 줄게!"
민구가 조심스럽게 별모양을 떼어 냅니다. 성공이었습니다.
"야호! 하나 더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진우는 오락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민구야, 너 이거 좀 잡고 조종 좀 해봐. 아주, 싹 쓸어버리자!"
"좋아."
민구는 별모양으로 뽑은 뽑기를 오락기 위에 살짝 올려놓고, 진우 옆에 바짝 앉았습니다. 진우가 공격버튼을 요란하게 눌러댑니다. 민구도 얼른 조종대를 잡았습니다.
"와, 이거 되게 재미있다."
한참을 신나게 공격하던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가 봐야겠다. 태권도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집으로 들어가야 하거든!"
민구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민구야말로 피아노 학원에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돼 버린 것입니다.
'피아노학원에서 전화했으면 어쩌지? 그 선생님은 꼭 전화를 하는데...'
민구는 울상이 되어 한숨만 '푹푹' 내쉬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별모양 뽑기를 손에 들고 놀이터로 갔습니다. 뽑기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벌써 가셨나?'
민구는 미끄럼틀에 앉아 있는 꼬마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뽑기 할아버지 어디로 가셨니?"
"뽑기 할아버지? 못 봤는데?"
꼬마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민구는 꼬마아이가 오기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진작 바꿨어야 했는데 후회가 됐습니다. 민구는 별모양 뽑기를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었습니다. 순간, 무언가가 번쩍하고 민구 앞을 지나갔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민구가 주변을 살폈습니다. 놀이터는 조용했습니다. 하지만, 놀이터 앞에 [시작]이라고 쓰인 처음 보는 문이 나타났습니다.
'어? 이건 뭐야?'
호기심에 가득 찬 민구가 그 문을 살짝 열어봤습니다. 거울이 가득한 골목이 보였습니다. 민구는 천천히 골목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아까 진우와 오락을 하던 그 문방구 앞이었습니다.
'어 이렇게 가는 방법도 있었네?'
오락실 앞에는 황금으로 칠해져 있는 오락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방금까진 없었는데,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민구는 황금 오락기 앞에 앉았습니다. 여기에도 [시작]이라고 쓰인 버튼이 보였습니다. 민구는 버튼을 눌렀습니다. 전쟁오락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전투기가 놓여 있습니다. 민구는 그 중에 하나를 골랐습니다. 이제 장소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우리 동네]라고 쓰여 있는 버튼이 있었습니다. 민구는 그 버튼을 선택했습니다. 거짓말처럼 민구가 사는 동네와 똑같은 장소가 오락기 안에 있었습니다.
'와-! 진짜 똑같다.'
그때 메시지 하나가 떴습니다.
[당신은, 공격을 원하십니까?]
민구가 신이 나서 [공격]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건물 하나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어딘가로 달려가며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이게 뭐야! 갑자기?'
문방구 아저씨가 허겁지겁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민구는 황금 오락기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저씨 왜 그러세요?"
"전쟁이 났다. 전쟁이 났어! 어서 피해라! 어서!"
문방구 아저씨가 급하게 자전거를 몰고 골목을 빠져 나갔습니다. 하늘에선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줄줄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민구는 갑자기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 무서웠습니다.
"엄마! 엄마!"
놀란 얼굴로 달려가는 민구 앞에 군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집 앞을 가로 막은 군인들이 민구를 잡아 세웠습니다.
"여긴 우리 집이에요. 우리 집이라고요!"
"이 녀석도 끌고 가!"
지휘자의 명령에, 군인 두 명이 민구를 비닐포장으로 가려진 트럭으로 끌고 갔습니다.
"안돼요. 우리 엄마한테 가야 해요! 우리 엄마가, 저기 우리 집에 있다고요!"
민구는 울면서 소리를 쳤습니다. 눈썹이 치켜 올려진 군인들이 무서운 얼굴로 민구를 트럭에 실었습니다. 트럭 안에는 낯선 아이들이 많이 타고 있었습니다. 민구가 겁에 질린 얼굴로 트럭에 오르자, 아이들은 울음을 뚝 그치고 민구를 바라보았습니다.
"너희들은 누구야?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나는 왜 여기에 있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민구가 계속 질문을 해대자, 구석에 잠자코 앉아있던 곱슬머리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그건 우리도 몰라. 우리 같은 어린애들이 어떻게 어른들 하는 일을 알겠니?"
민구가 곱슬머리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넌 누구니?"
"나? 내 이름은 알리!"
"알리?"
알리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습니다. 민구가 잠시 생각을 모으고 있을 때, 갑자기 '끼익' 트럭이 멈췄습니다. 군인들은 자기들끼리 다리가 폭파되었기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민구는 숨이 막혀 왔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뺨을 꼬집어 봤습니다. 따끔했습니다. 알리가 민구를 보며 '피식' 웃었습니다. 민구는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너, 왜 웃어? 나한테 맞아볼래?"
"왜? 너도 어른들처럼 한 판 붙어보게? 전쟁게임에 빠지더니, 정말 전쟁이 하고 싶은 건 가?"
순간, 민구에게 무언가가 떠올랐습니다. 학원가기 전에 전쟁게임에서 한 판 붙었던 닉네임이 '알리'였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너, 그때 나랑 게임했던 그 알리?"
알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도 너를 공격할 수 있었어. 하지만, 안 했어. 전쟁은 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야!"
"넌 알고 있지? 난 왜 여기에 있어? 나 지금 나쁜 나라에 실려 온 거야?"
"아직은 아니야. 앞으로 죽음의 나라로 가게 될지 모르지만!"
"뭐라고?"
"여긴 전쟁터야. 총알이 날아다니고 대포알이 퍼부어지는 지옥과 다름없는 곳! 지금껏 한 번도 전쟁 그친 날이 없었어. 전쟁터에선 누구라도 죽을 수 있어!"
민구는 답답했습니다.
“그러니깐, 내가 왜 전쟁터에 왔냐고!"
"네가 원했잖아! 네가 공격을 원했던 거야. 그게 바로 네 소원이 아니었어?"
"뭐?"
민구는 황금 오락기에서 '공격을 원하느냐'는 메시지를 떠올렸습니다.
"그건 그냥 오락일 뿐이었어."
"넌 언제나 죽이고 부수는 전쟁오락을 좋아했어. 이렇게 직접 당해보니깐 어때?"
"무서워!"
그때, 어디선가 수류탄 한 개가 날아와 트럭 가까이로 떨어졌습니다. 모두 아우성을 치며 트럭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알리가 재빨리 뛰쳐나가 수류탄을 걷어찼습니다. 수류탄은 멀리 널찍한 공터로 날아가 '펑' 하고 터졌습니다. 민구는 눈을 크게 뜨고 봤습니다. 알리는 한 쪽 팔이 없었습니다. 알리가 여유 있게 트럭에 올라탔습니다. 민구는 알리에게 물었습니다.
“넌, 전쟁이 안 무섭니?"
알리는 또 '피식' 웃었습니다.
"전쟁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 있니?"
트럭은 다시 덜컹거리며 어딘가로 달렸습니다. 곳곳에 폭탄에 맞아 쓰러진 건물들이 보였습니다. 검은 연기도 여기저기서 피어올랐습니다. 갑자기 트럭이 멈춰 섰습니다. 주변이 조용해졌습니다. 트럭에 있던 아이들은 무서움을 잊으려고 했는지 모두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군인들도 총을 든 채로 그대로 멈춰 있었습니다. 민구는 알리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뭐야? 트럭이 왜 멈춰 섰어? 그리고 왜 다 조용한 거야?"
"우린 곧 죽어."
"거짓말! 거짓말이야.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단 말이야! 엄마한테 보내 줘! 살려 줘!"
"그래. 우린 아무 잘못도 안 했어. 전쟁터에서 잘못해서 죽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 가족도 아무 잘못 없이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어. 오락기처럼 버튼 하나만 누르면, 건물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 잿더미로 사라지고 있어. 우리 같은 어린이들이 많이 다치면서 목숨까지 잃고 있다는 것, 너도 알고 있지?"
그때, '타당타당' 하는 요란한 소리가 귓전에 울려 퍼졌습니다. 민구는 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것 같았습니다.
"들리지? 생명이 꺼지는 소리야."
잔뜩 겁에 질린 민구가 알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알리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민구는 얼떨결에 알리가 건넨 것을 받아들었습니다. 구슬이었습니다.
"구슬을 햇빛에 비춰 봐. 그러면 예쁜 빛이 나와. 그 빛으로 세상을 봐봐!"
"빛으로?"
구슬을 건넨 알리의 눈이 무척 편안해 보였습니다. 민구는 구슬을 햇빛에 비춰보았습니다. 빛으로 반사된 구슬 안 세상이 참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밝게 빛나고 있어. 사람들은 모두 웃고, 모든 게 다 평화로워 보여!"
"그래, 빛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게 다 평화롭지. 그 구슬 네게 줄게. 우린 이제 가봐야 해."
"어디로?"
"각자 살던 곳으로! 너도 구슬에서 나오는 빛을 따라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세상에서 우린 만났어. 앞으로는 더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보자. 어서 가! 시간의 문이 닫히기 전에, 어서!"
민구는 알리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민구를 바라보는 알리의 눈이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민구는 구슬에서 나오는 빛을 따라 열심히 뛰었습니다. 저 멀리, 민구가 살던 동네가 보였습니다. 온 힘을 다해 뛰어서 드디어 문방구 앞에 섰습니다. 숨이 차 헐떡이는 민구 앞에 [나가기]라고 쓰인 커다란 문이 열렸습니다. 민구가 '후다닥' 문에 들어서자 문이 '쾅'하고 닫혔습니다.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구슬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길을 비춰주었습니다. 빛을 따라 유리로 된 복도를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어디선가 민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였습니다. 민구가 얼른 소리 나는 쪽을 돌아다 봤습니다. 놀이터 입구에 엄마가 서 있었습니다. 민구는 쏜살같이 뛰어 엄마에게 와락 안겼습니다. 그때, 무언가가 민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곧 주변이 환해 보였습니다.
"민구야! 어디 갔었어?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니?"
"엄마, 보고 싶었어!"
엄마가 민구를 힘껏 안았습니다.
"뭐 하느라 이렇게 흠뻑 젖었어? 피아노 학원에도 안 가고, 갑자기 없어져서 얼마나 놀 랐는지 알아?"
엄마는 민구를 한참동안 안아주었습니다. 엄마랑 다시 만나다니, 민구는 꿈만 같습니다.
"어서 가서 밥 먹자"
"엄마, 잠깐만요! 뽑기 할아버지한테 물어볼 게 있어요."
"뽑기 할아버지? 그 아저씨 뇌졸중으로 얼마 전에 쓰러지셨대. 병원에 계신다지, 아마?"
민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방금 전에도 봤는데요? 아까 뽑기도 사먹었어요. 할아버지 때문에 전쟁터도 갔다 오고, 알리가 구슬도 줬단 말예요!"
엄마는 무슨 소리냐는 듯 민구를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오락하지 말랬지. 매일 전쟁오락만 하니깐, 그런 공상만 하지! 어서 가자!"
민구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손바닥을 들여다봤습니다. 알리가 건네 준 동그란 구슬이 그 자리에 따뜻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전쟁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에 있니? 빛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게 다 평화로워 보여!"
눈부신 햇살이 민구의 눈에 가득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