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진느 앗제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활약한 작가로서 '카메라의 시인'이라 불릴 만큼 그의 생애가 다분히 전설적인 데다가 사진마다 시적 정감이 풍긴다. 1856년 프랑스의 항구도시인 보르도에서 태어난 그는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뱃사람의 잔
심부름이며 스무살 때는 떠돌이 극단의 배우로 언제나 가난에 허덕이는 삶의 밑바닥 생활로 어둡고 고달픈 청춘을 다 보냈다. 정상적이지 못한 생활형편으로 인해 열 살 연상인 과부와 동거생활을 하는 등 불우한 나날을 보내다가 마흔 살이 갓 넘었을 때 파리로 와 사진가로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그는 광학렌즈가 달린 낡은 카메라를 마련하여 파리 시내를 두루 다니면서 촬영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화가들에게 팔았다. 달리 돈벌이 할 것이 없었던 그는 죽을때 까지 그렇게 연명해갔다.
그의 사진은 화가들이 정확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자료로 쓰였는데, 그는 파리의 몽빠르나스의 빈민 아파트에서 '화가를 위한 자료'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라져가는 파리 시내의 건물과 많은 장소를 찍었다. 제 1차 세계대전 후 정부의 기록보관소가 그의 사진들을 사 주었다.
앗제는 한 편생을 세상과 떨어져 고독하게 살았다. 우울증과 자폐증으로 여러사람 앞에선 주눅이 들어 뒷전에서 혼자서만 시간을 보냈다. 이런 앗제를 발견한 것은 미국의 화가이며 사진가인 만 레이였다. 앗제가 사망하기 일 년 전인 1926년 그는 앗제의 사진 넉 점을 초현실주의자들의 기관지에 실어 주었고, 그의 조수인 미국의 여류 사진작가 애보트에게 그를 소개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 되었고, 앗제가 남긴 2천 여장의 원판과 1만 여장의 사진들을 찾아내어 1968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영구 보존하게 되었다.
Jean Eugene Auguest Atget
Jean Eugene Auguest Atget (프랑스 1857~1927)
으진느 앗제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활약한 작가로서 '카메라의 시인'이라 불릴 만큼 그의 생애가 다분히 전설적인 데다가 사진마다 시적 정감이 풍긴다.
1856년 프랑스의 항구도시인 보르도에서 태어난 그는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뱃사람의 잔
심부름이며 스무살 때는 떠돌이 극단의 배우로 언제나 가난에 허덕이는 삶의 밑바닥 생활로 어둡고 고달픈 청춘을 다 보냈다.
정상적이지 못한 생활형편으로 인해 열 살 연상인 과부와 동거생활을 하는 등 불우한 나날을 보내다가 마흔 살이 갓 넘었을 때 파리로 와 사진가로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그는 광학렌즈가 달린 낡은 카메라를 마련하여 파리 시내를 두루 다니면서 촬영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화가들에게 팔았다. 달리 돈벌이 할 것이 없었던 그는 죽을때 까지 그렇게 연명해갔다.
그의 사진은 화가들이 정확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자료로 쓰였는데, 그는 파리의 몽빠르나스의 빈민 아파트에서 '화가를 위한 자료'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라져가는 파리 시내의 건물과 많은 장소를 찍었다.
제 1차 세계대전 후 정부의 기록보관소가 그의 사진들을 사 주었다.
앗제는 한 편생을 세상과 떨어져 고독하게 살았다.
우울증과 자폐증으로 여러사람 앞에선 주눅이 들어 뒷전에서 혼자서만 시간을 보냈다.
이런 앗제를 발견한 것은 미국의 화가이며 사진가인 만 레이였다.
앗제가 사망하기 일 년 전인 1926년 그는 앗제의 사진 넉 점을 초현실주의자들의 기관지에 실어 주었고, 그의 조수인 미국의 여류 사진작가 애보트에게 그를 소개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 되었고, 앗제가 남긴 2천 여장의 원판과 1만 여장의 사진들을 찾아내어 1968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영구 보존하게 되었다.
사진은 어렵다....
하지만 암실에서 작업을 하면....
무섭다기 보다는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