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맡 남자. (에릭 올데르) 상처나 아픔. 특정한 사건이나 사고 등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 중 대부분은 한 사람의 인생의 지침이나 가치관, 혹은 미래와 삶의 방향마저 바꾸어 놓는다. 청춘을 오로지 침대에 누워 보내게 된 장애 여인과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건장한 남자가 환자와 간병인으로서 일년을 함께 보낸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흔한 로맨틱 소설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들에게, 상처를 드러내고 인정하는데 서슴없이 행동할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진부함을 간신히 모면했다. 신체의 불편, 혹은 이상을 잃은 상실감이 남은 나날들에 끼치는 불행의 기운이란 실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그로 인해 무수히 펼쳐진 듯한 달력의 네모칸들은 삶을 무기력하게 하거나 순간적인 판단에 의존하며 채워진다. 신체 또는 감정의 비일상적 경험은 일상의 소중함을 더욱 낡은 것으로 만들고 급속한 노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함께할 누군가의 동반이다. 이 소설 역시 이러한 착실한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상처받은 두 영혼은 짙은 고독의 커튼을 열고 진실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으며, 서로의 고통의 흔적들을 함께 나눔으로서 새로운 한 장을 펼치게 되었다. 착한 결말로 독자를 기쁘게 함직도 하지만 한 스푼의 씁쓸함이 남는 것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내 안의 냉정 때문인지, 아니면 삶을 외로운 것으로 규정지은 자의 심술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의 두 남녀가 서로에게 치유가 되는 길을 택할 때, 조금은 무모한 시도를 매우 즐겁게 해낼 때, 그들의 청춘은 다행스레 여겨졌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활기 앞에서 한 노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들의 만남이 남은 인생에 대한 하나의 전환점이 된 동시에 종지부를 엿보게 하였기 때문이다. 삶이 무수한 순간과 감정과 사건으로 흘러가는 것이라면 한 사람을 무너뜨리는 상황 앞에서도 희망 혹은 전환은 있으니 실로 인생에의 집착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은 이 소설을 또 하나의 성장 소설로 각인시킨다. 하지만 실상, 나의 모든 생각과 관념들을 지배하는 두뇌의 구조는 언제나 새로운 사실과 깨달음에 호의적이다. 이 소설은 강렬하거나 필연적 감동을 동반하지는 않았지만, 굳게 닫힌 문 뒤에 누군가가 하염없이 앉아있기를 기다려보게 하였다. 넘치던 생명력이 비워져 가고 더이상 꿈꾸지 않는 스스로에게 관대해 질 때, 여전히 마주 잡을, 조금은 여위고 따스한 손을 만나고 싶다. 1
침대 맡 남자.
침대 맡 남자. (에릭 올데르)
상처나 아픔. 특정한 사건이나 사고 등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 중 대부분은
한 사람의 인생의 지침이나 가치관, 혹은 미래와 삶의 방향마저
바꾸어 놓는다.
청춘을 오로지 침대에 누워 보내게 된 장애 여인과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건장한 남자가
환자와 간병인으로서 일년을 함께 보낸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흔한 로맨틱 소설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들에게,
상처를 드러내고 인정하는데 서슴없이 행동할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진부함을 간신히 모면했다.
신체의 불편, 혹은 이상을 잃은 상실감이
남은 나날들에 끼치는 불행의 기운이란
실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그로 인해 무수히 펼쳐진 듯한 달력의 네모칸들은
삶을 무기력하게 하거나 순간적인 판단에 의존하며 채워진다.
신체 또는 감정의 비일상적 경험은
일상의 소중함을 더욱 낡은 것으로 만들고
급속한 노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함께할 누군가의 동반이다.
이 소설 역시 이러한 착실한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상처받은 두 영혼은 짙은 고독의 커튼을 열고
진실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으며,
서로의 고통의 흔적들을 함께 나눔으로서
새로운 한 장을 펼치게 되었다.
착한 결말로 독자를 기쁘게 함직도 하지만
한 스푼의 씁쓸함이 남는 것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내 안의 냉정 때문인지,
아니면 삶을 외로운 것으로 규정지은 자의 심술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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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의 두 남녀가
서로에게 치유가 되는 길을 택할 때,
조금은 무모한 시도를 매우 즐겁게 해낼 때,
그들의 청춘은 다행스레 여겨졌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활기 앞에서
한 노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들의 만남이
남은 인생에 대한
하나의 전환점이 된 동시에 종지부를 엿보게 하였기 때문이다.
삶이 무수한 순간과 감정과 사건으로 흘러가는 것이라면
한 사람을 무너뜨리는 상황 앞에서도 희망 혹은 전환은 있으니
실로 인생에의 집착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은
이 소설을 또 하나의 성장 소설로 각인시킨다.
하지만 실상, 나의 모든 생각과 관념들을 지배하는
두뇌의 구조는 언제나 새로운 사실과 깨달음에 호의적이다.
이 소설은 강렬하거나 필연적 감동을 동반하지는 않았지만,
굳게 닫힌 문 뒤에 누군가가 하염없이 앉아있기를
기다려보게 하였다.
넘치던 생명력이 비워져 가고
더이상 꿈꾸지 않는 스스로에게 관대해 질 때,
여전히 마주 잡을,
조금은 여위고 따스한 손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