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수가 아니다.

임창수200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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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수가 아니다."

드래곤 로드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나는 질겁했다.  그렇군. 그는 알고 있었군. 드래곤 로드는 차갑게 말했다.

"그 간악한 녀석의 말이로군."

드래곤 로드의 목소리의 울림은 스산했다. 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예.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에요.  당신이 아까부터 우리 일행에게 던져온 질문, 아마 당신은 우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셔서 그렇겠지요. 무례하다고 꾸짖지 않으시겠다면 설명드리겠습니다.  나는 하나가 아니에요.

따라서 당신은 아까부터 얼빠진, 죄송하지만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돼요.
예. 얼빠진 질문을 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가슴이 쾅쾅거리는걸?  다행히도 드래곤 로드는  초장이의 맛이 어떨지 심사숙고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차분히 말했다.

"나의 실수를 설명해주겠나?"

"당신은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눠놓고는 선택하라고 질문하셨어요."

"나눌 수 없는 것?"

제레인트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고  네리아는 두 손을 곽 쥔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샌슨은 파랗게 질려있었고 이루릴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카알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요. 당신은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어서 질문하셨어요. 당신 보시기에는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드래곤 로드께서는 샌슨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지요."

샌슨은 덜커덩하는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그 외에는 심장이 내려앉은 사람의  모든 징후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계속 말했다. 손바닥에 땀이 나는걸? 난 슬쩍 그것을 바지에 닦아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으면서 말했다.

"샌슨의 가족들을 죽이겠는가, 샌슨을 죽이겠는가. 조금 달랐을지 몰라도 대충 그런 의미였지요. 하지만 그건 나눌 수 없어요."

"어째서지?"

"샌슨은 하나가 아니니까.  샌슨은 헬턴트의 경비대장 샌슨이고,  나의 좋은 동료 샌슨이고,  샌슨의 아버지 조이스씨의  사랑하는 장남이에요.
카알의 신뢰받는 길앞잡이고, 그리고 그 아가씨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인 샌슨이에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샌슨이지요. 이런 식의 이야기도 들어보셨겠지요?  어쨌든 당신은 샌슨 하나를 살려주는 대신 그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말했지만, 그 가족들을 죽이면 샌슨도 죽는 셈이에요."

난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 이마에 열기가 올라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도저히 말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요. 그 모든 것이 샌슨이에요. 당신이 헬턴트 영지를 파괴하면 헬턴트 경비대장 샌슨은 죽는 셈이에요. 당신이 날 죽인다면  후치의 동료 샌슨을 죽이는 셈이고요. 당신이 조이스씨를 죽인다면  조이스씨의 아들인 샌슨은 죽는 셈이에요. 당신이 카알을 죽인다면  카알의 길앞잡이 샌
슨이 죽지요, 그리고, 그리고 그 아가씨를 죽인다면 그 아가씨의 연인인 샌슨을 죽이는 셈이라고요."

"샌슨은 하나가 아닌가?"

난 기가 막혀서 고함을 빽 질러버렸다.

"하나가 아니에요!"

그리곤 곧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계속 다물 수가 없었다.

"영원의 숲,  영원의 숲 아시죠?  거기서는 자신이 자신을 죽이게 되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드래곤 로드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건 안다만, 그것이 이 이야기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 말해주겠나?"

"나가면 그 사람은 사라져버려요! 나라는 존재가 아무리 남아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잊어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아직까지 그걸모르세요?  나라는 것은, 나라는 것은 이 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모든 것들에 다 내가 있어요.

그것이라고요!  그 모든 것을 모았을 때 내가 있는 거라구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요. 그것이 인간이에요!"

말을 마치고나자 숨이 찼다. 너무 흥분해 버렸나봐. 난 목을 타고 흘러 내리는 땀을 닦아 내었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차가운 냉수 한 잔만 준다면 그를 위해 노래 100곡을 바치겠어.

농담이 아니라고.
드래곤 로드는 침울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랬었군… 그럴 거라고 짐작했지. 이제야 확신을 얻게 되었군."

드래곤 로드는 뭔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거기에는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