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병궁복음서

조민재200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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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12~30세의 행적 신약성서의 3대 공관복음서(「마태」․「마가」․「누가」)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는 『보병궁복음서』의 가장 큰 특징은 신약성서에 빠져 있는 예수의 생애, 특히 12세부터 30세에 이르는 삶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예수가 전한 가르침의 연원(배경)과 진수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제 『보병궁복음서』를 통해 예수가 걸은 구도(求道)의 과정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원래,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러 왔던 세 명의 동방박사(호르, 룬, 메르)는 페르시아의 마기(magi, 사제)들이었다(『보병궁의 성약』 5장, 38장). 그 후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자벳과 마리아 성모가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아기 예수와 요한을 안고 이집트로 피난갔을 때, 조안(zoan)이라는 곳에서 엘리후와 살로메라는 현자를 만나게 된다.

 

 엘리자벳과 마리아는 이 두 현자의 성림(聖林)의 구도장에서 사랑, 생명의 통일, 두 개의 자아, 삼위일체의 신(神), 도신(道神), 브라만교, 유대의 성서, 석가부처의 교훈, 페르시아의 종교 등에 대하여 3년간의 영적 교육을 받은 후 다시 유대로 귀국한다

.(『보병궁의 성약』, 7~12장)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후 소년시절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유대의 여러 예언을 명쾌하게 해석하고 또한 진리에 두루 정통하여 율법학자들과 막힘 없이 논하기도 하자, 어떤 이들은 소년 예수를 하느님이 보낸 예언자이거나 그리스도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자라 12세가 된 예수는 목수가 되어 아버지 요셉을 돕고 있었다. 이 때 남부 인도 오릿사 주(州)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의 제례(祭禮)에 참석하러 왔다가 성전에서 만난 예수의 총명함에 반하여, 예수의 부모를 찾아가 그에게 동양의 지혜를 배우도록 인도 유학을 청원한다(『보병궁의 성약』, 21장).

 예수가 동양의 지혜를 배웠다는 구도의 편력은 『보병궁복음서』 외에도, 러시아의 역사가이며 고전학자인 니콜라스 노토비치(Nicholas Notovitch, 1858~?)가 인도 북부의 케시미르 지방에 있는 헤미스 사원에서 라마승으로부터 전해 받은(1887년) 예수에 관한 두 권의 기록을 바탕으로 출간한 『이사전』*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해뜨는 방향을 향해 떠난 예수 이사(예수)가 아버지의 집을 은밀히 빠져 나와 예루살렘을 떠나 상인들과 함께 신드(Sind)로 향했던 게 바로 그 때였으니 이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스스로 자신을 완전히 하고 대붓다(the great Buddha)의 법을 연구하기 위함이라.(『이사전』 4:12~13 /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180쪽 재인용)

 

 󰡐해뜨는 방향󰡑을 향해 떠난 예수는 남부 인도 오릿사 지방의 쟈간나스의 절에 들어가 4년간 수행하면서 『베다』성전과 『마니』법전을 배우고 승려 라마스와 깊은 우정을 나눈다

. 쟈간나스의 광장을 걸으면서 라마스가 󰡒유대의 선생, 진리란 무엇이라 생각하오?󰡓라고 물었을 때, 예수가 말한다. 예수-진리는 변치 않는 유일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진리와 허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진리란 있는 그대로의 것이고, 허위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진리는 유(有)로 원인은 없지만 일체의 것의 원인이 됩니다. 허위는 무(無)이면서 유(有)의 표현을 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시작된 것은 끝나야 합니다. 모든 눈에 보이는 것은 유(有)의 표현이지만 본래는 무(無)이므로 사라져 버려야 합니다

. 눈에 보이는 것은 에테르가 진동하는 동안만 반영의 표현을 하고 사정이 변하면 소멸합니다. 성스러운 기(氣)는 진리입니다. 과거․현재․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화될 수도 소멸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라마스-과연 그렇겠구나. 그럼 인간이란 무엇인가? 예수-인간이란 진리와 허위의 이상한 혼합체입니다. 이 양자가 싸웁니다.

 라마스-힘(power)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힘(power), 그것은 무(無)에 지나지 않는 환영(幻影)입니다. 진기(眞氣, force)는 변치 않지만, 힘은 에테르가 변하면 변합니다

. 절대적인 기(氣, force)는 신의 의지이며 전능한 것입니다. 힘은 성기(聖氣)에 이끌려 나타난 신의 뜻이죠. 바람에도 힘이 있고, 파도, 전기, 인간의 팔, 눈에도 힘이 있습니다

. 에테르는 이와 같은 힘(power)을 일으키고, 엘로힘․천사․인간 그 밖에 사고하는 것의 사상을 진기(眞氣, force)가 지도합니다. 라마스-예지(叡智)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예지란 인간이 이것을 토대로 삼아 그 위에 자기자신을 세우는 바위입니다

 

. 그것은 유(有)나 무(無), 진리와 허위를 구별하는 영지(靈知)입니다. 라마스-신앙이란 무엇인가? 예수-신앙이란 하느님과 인간이 전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며, 인간이 신적인 생활에 도달할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인간의 마음에서 신의 마음에 이르는 사다리로, 구원에는 삼단계가 있습니다

. 첫째는 신념으로 이것은 인간이 아마 그것이 진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둘째는 신앙으로 그것은 인간이 진리를 아는 것, 셋째는 완성 즉 인간 자신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 신념은 신앙 속으로 승화되고, 신앙은 완성으로 열매맺고 그럼으로써 자기와 신이 하나가 될 때 인간은 구원을 받습니다.(『보병궁의 성약』 22:1~31) 예수는 라마스와 함께 갠지스 강 주변 마을의 노예(수드라), 농부(바이샤)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그들에게 인류는 한 동포라는 것과 만민평등, 인간의 절대평등을 가르친다.(『보병궁의 성약』 23~25장) 이사(예수)께서 주거나웃, 라자그리하, 베나레스 그리고 다른 성지에서 6년을 지내셨더라. 그가 바이샤와 수드라에게 경전을 가르치시고 또한 그들과 함께 평화롭게 거하시니 모든 이들이 그를 사랑하였더라.(『이사전』 5:5/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181쪽 재인용)

우도라카로부터 의도(醫道)를 전해 받다 갠지스 강변의 마을 베나레스는 브라만교의 성지로서 문화와 학술이 고도로 발달된 곳이었다. 예수는 인도의 의술(醫術)을 배우기 위해서 당시 인도 최고의 의원이었던 우도라카의 제자로 입문한다

. 우도라카의 한 줄기 시 같은 가르침의 요지는 이러하다. 자연의 법칙은 건강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대로 살면 결코 병에 걸리는 일이 없습니다. 이 법칙을 어기는 것은 죄이며, 죄를 범하면 병에 걸립니다.(『보병궁의 성약』 23:5~6)

인간은 현악기와 같아서 그 줄이 너무 느슨하거나 너무 팽팽하게 되면 악기는 정상적인 소리를 내지 못하듯 인간은 병이 들게 됩니다.

(『보병궁의 성약』 23:9) 한편 자연계의 물상(物像)은 모름지기 인간의 요구에 응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모두 의료의 비약(秘藥)이 됩니다.(『보병궁의 성약』 23:10)

 물론 인간의 의지는 최고의 의약이니까 …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병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보병궁의 성약』 23:12) 인간이 󰡐하느님과 자연과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권능(power)의 거룩한 말씀을 알게 됩니다.

 이 성언(聖言)은 모든 상처의 진정제가 되고, 생명의 온갖 병을 치료합니다.(『보병궁의 성약』 23:13)

 치료인이란 신앙심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영혼이 위대한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으로, 그는 다른 사람의 영혼 안에 들어가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하느님, 자연,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에게 믿음을 심어줍니다.(『보병궁의 성약』 23:14~15)

 

예수는 우도라카, 승려, 학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우주신(본체신)은 한 분이고, 신(인격신)은 󰡐한 분 이상󰡑이어서 모든 것은 신(개체화된 인격신), 모든 것은 하나이다(본체신과의 관계).(『보병궁의 성약』 28:4) 하나님의 향기로운 숨결에 의하여 생명 전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보병궁의 성약』 28:5)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한 분의 하나님을 모시지만 아무도 하나님(우주자체의 조화신)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보병궁의 성약』 28:13)

 이 우주신은 지혜, 의지, 사랑이시다.(『보병궁의 성약』 28:14)

 성현 멘구스테를 만나다 인간의 절대평등을 주장하던 예수는 인도의 신분제도(카스트)를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정죄하려는 승려들을 피해, 라마스의 도움으로 네팔로 피신하였다.

 농부, 노예, 상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히말라야의 큰 봉우리에 있는 가빠비츄 사원에 들어간 예수는 그곳의 주지 비쟈빠찌 성자와 함께 앞으로 오는 시대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다시 예수는 험난한 고원을 넘어 티벳의 랏사에 있는 사원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요동(遼東)의 최고 성현으로 이름이 나있던 멘구스테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이 사원에 소장되어 있던 수많은 고전(古典)을 읽었다.

 예수는 이 곳을 떠날 때 󰡐광명의 부처󰡑, 󰡐살아있는 신탁(神託)󰡑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조국으로 향하는 길에 페르시아에 들러 자신이 태어날 때 찾아준 마기(magi)들을 만난다

. 이 때 예수의 나이는 24세였다. 그 후 예수는 유프라테스 강까지 페르시아의 성자 카스파아의 배웅을 받은 후, 자신의 선조 아브라함의 고향인 앗시리아의 갈데아 우르로 찾아가서 그곳 최고의 성자인 아시비나와 함께 야산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다가오는 시대에 어떻게 봉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보병궁의 성약』 43:16)

 다시 희랍․이집트로 구도의 길을 떠나는 예수 이윽고 요단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온 예수는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어머니의 애정어린 환대를 받았으나, 동생들로부터는 혼자 잘난 체하며 헛된 명성을 구하는 자로 비난을 받았다.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와 여동생 미리암에게만 지난 날 구도의 과정에서 겪었던 사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곧 희랍으로 떠났다.

 아테네에 이르러, 희랍의 성자인 󰡐아폴로󰡑의 인도로 다른 현인들을 만나 희랍의 정신세계에 대해 듣고, 또한 희랍의 여러 교사들을 가르치기도 했다.(『보병궁의 성약』, 44장, 46장)

 그리스도라는 법명(法名)을 받다 이듬해에는 이집트 조안에 가서 엘리후와 살로메를 만난 뒤, 󰡐헬리오폴리스(해의 도시)󰡑로 가서 성자들의 모임인 형제단 입회를 허락받았다

. 예수는 이들 성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지상생활의 길을 널리 더듬을 생각입니다. 널리 학문적으로 추구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오른 높은 곳에 저도 오르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고통받은 일을 저도 경험하고, 이것으로 내 동포의 비애, 실망, 시련, 유혹을 알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보병궁의 성약』 47:12~13)

 이 󰡐비밀 형제단󰡑의 서약을 받아 󰡐성실, 공정, 신앙, 박애, 의열, 성애(聖愛)󰡑라는 여섯 단계의 시험을 진실과 용기로써 극복하고 거룩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애굽 밀교의 비밀과 생사의 문제 그리고 태양계 바깥 세계에 대한 비밀을 배웠다(『보병궁의 성약』, 47~54장).

예수는 사자의 방에서 시험을 마친 뒤에 보랏빛 방에서 일곱 번째의 마지막 시험을 이겨내고 마침내 󰡐그리스도(하느님의 사랑)󰡑라는 최고의 법명(法名)을 받았다.

 당신은 천지의 큰 저택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이다.(『보병궁의 성약』 55:6) 이어 당시 사상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파일로의 집에 세계의 일곱 성현이 모였는데, 예수도 이 모임에 참가하여 명상에 잠겼다. 중국의 멘구스테, 인도의 비쟈빠찌, 페르시아의 카스파아, 앗시리아의 아시비나, 희랍의 아폴로, 이집트의 맛세노, 희랍사상의 대가 파일로, 이렇게 모인 7인의 성자들은 세계의 근본원리에 대해 토론하고 예수도 이들에게 진리를 설하였다.

 다음은 멘구스테의 말이다. 때의 바퀴는 한 번 돌아 인류는 󰡐보다 높은 사상의 단계󰡑에 서 있습니다.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인류를 위하여 알맞은 옷을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자들은 좀더 커다란 빛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보병궁의 성약』 56:9, 56:13, 56:11)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 나는 죽음에서 살아난 사랑의 표현이로다.(『보병궁의 성약』178:26) 그리스도란 말의 어원은 희랍어의 크리스토스(Kristos)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데, 그 의미는 히브리말의 메시아(Messiah)와 같다.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는 특정한 사람만을 부르는 고유 호칭이 아니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면 모두 그리스도가 된다.

 즉, 그리스도의 진정한 뜻은 󰡐인간을 영원히 구원하려고 하는 신(하느님)의 사랑󰡑을 말하며, 그러한 󰡐사랑을 구현시킬 수 있는 인격자󰡑를 말하는 것이다.

과거 각 시대마다 그리스도가 있었다. 구약시대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이었다. 그는 아브라함 시대의 살렘왕[평화의 왕, 의(義)의 왕]으로서, 희생을 통하여 참 생명에 이르는 길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그리스도였다.

 4,000여 년 전의 이 신비의 인물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와 신약성서의 「히브리서」에 조금 언급되어 있는 정도이지만, 멜기세덱은 구약시대의 그리스도로서 제사장이었다

. 신약시대의 예수는 그의 구원정신을 좇아 인류 구원의 제사장이 되었다. 보병궁 복음서에 대해 『보병궁복음서』 서양의 고대천문학(점성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태양계는 멀리 떨어진 또 다른 중심 태양의 주위를 회전하고 있으며, 그 일주(一周) 기간은 약 2만 6천 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태양이 도는 궤도를 황도대(黃道帶)라 부르는데, 이 황도대는 12궁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태양이 12궁의 한 자리를 지나가는 시간은 약 2,100년이 조금 넘는다.

이 시간의 마디가 천도섭리 측정의 한 시대가 된다. 6,000년 전 아담이 살던 시대는 태양이 금우궁(金牛宮) 시대에 들어갔을 때이며, 4,000여 년 전 아브라함이 살던 때는 백양궁(白羊宮) 시대이며, 로마제국의 건국 시기와 2,000여 년 전 예수가 탄생한 때는 쌍어궁(雙漁宮) 시대에 해당되며, 지금은 쌍어궁 시대를 마감하고 우리의 태양이 보병궁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대전환기라고 한다.(『보병궁의 성약』, 11~13쪽) 그러므로 『보병궁복음서』는 다가오는 새 시대의 복음서인 반면, 기존의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과거시대(금우궁, 쌍어궁 시대)의 복음서가 된다. 이 『보병궁복음서』는, 신약성서에 빠져 있는 예수의 구체적 생애와 그가 전하고자 한 근본진리의 말씀이 실려 있는 기독교 󰡐제3의 복음서󰡑이자 󰡐제3의 성경󰡑이다. 이 책은, 󰡒나는 영(靈)에 의하여 아카샤(Akasha)의 영내로 옮겨져 홀로 태양의 권내에 섰다.

 그 곳에서 나는 지혜와 오성(悟性)으로 통하는 문을 열 비밀의 용수철을 발견했다. 나는 태양의 권내를 지키는 24명의 케루빔과 세라핌을 보았다󰡓는 리바이 도우링 목사(1844~1911)의 고백과 같이, 쌍어궁과 보병궁의 수호령 케루빔과 세라핌인 라마사, 바카비엘, 아르케, 사그마킬을 직접 만나서, 천상 영계의 기록 방법인 아카샤라는 우주심(宇宙心)에 의해서만 전달되는 기록(아카식 레코드)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한다. 영지주의와 기독교 『보병궁복음서』 외에도 기독교의 우주관, 신관, 인간론 등에 대한 참 모습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또 다른 원천이 있다.

 그것이 바로 영지주의(Gnosticism)라고 불리는, 초기 기독교 당시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을 두고 정통파 기독교와 대립한 기독교의 또 다른 흐름이다. 영지주의(靈知主義)는 󰡐앎󰡑을 뜻하는 희랍어 그노시스(Gnosis)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영지는 단순히 지식이나 이성적인 지식이 아닌 경이로운 마법으로 빛나는 지식, 통찰을 지칭한다(『신비의 지식, 그노시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컬럼비아 대학의 일레인 페이젤스 교수는 영지의 비밀이란 곧 하느님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 초대 기독교 교부들에 의해 이단으로 몰린 영지주의는 CE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된다. 교부들은 영지주의 복음서를 사악한 교사(敎師)들에 의해 쓰여진 비정통적인 가르침으로 간주하여 이를 파기시켰다. 이와 더불어 초기 기독교 당시의 수많은 영지주의의 가르침들이 사라져버렸다. 그 결과 몇 편의 문서만을 정경(正經)으로 확정한 소위 기독교 정통파는, 고대 종교 문헌 전체 중 극히 일부만 후세에 물려주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따라서 초대 교부들이 남긴 문헌을 통해 정경이 성립되기 이전에 있었다고 하는 수많은 복음서들은 그 목록만이 알려져 있었을 뿐 그 구체적인 내용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라져버린 줄로만 알았던 영지주의 복음서가 지난 1945년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Nag Hammadi)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돌연 나타났다. 학자들은 영지주의 복음서에 나오는 문구들 중 상당수는 큐(Q)에서 따온 것으로 믿고 있는데, 이는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신약의 복음서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원래 마태․마가․누가복음은 󰡐말씀들(logia)󰡑이라고 하는 공통의 줄기에서 나왔다.

 이 󰡐말씀들󰡑은 처음에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도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그 일부가 훗날 복음서들로 고정되고 나머지는 사라져버렸다. 학자들은 복음서의 뿌리가 된 이 󰡐말씀들󰡑을 출처 혹은 자료를 뜻하는 독일어 쾰레(Quelle)의 머릿글자에서 따와 큐(Q)라고 불렀다. 복음서의 편집자들은 이 󰡐말씀들󰡑을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배열하여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신의 가면Ⅲ : 서양 신화』). 영지주의 복음서에도 신약의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동일하게 나오며, 신약의 내용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양자간의 차이점은 놀라울 정도이다. 첫 번째로 신약의 복음서를 믿는 정통파 기독교인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는 영원한 심연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이를 부인한다. 그들은 자신을 깨닫는 것이 곧 하느님을 깨닫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자아(自我)와 하느님의 신성(神性)은 동일하다고 믿는다. 이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아트만과 브라만의 합일을 방불케 하는 가르침이다

 

. 두 번째로 영지주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와는 달리 죄와 회개가 아니라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와 비슷한 교리를 설하고 또 깨달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즉, 영지주의자들은 동양의 구루와 비슷한 예수의 이미지를 상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정통파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생각하기에, 예수 또한 인간과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을 가진 존재로 믿는다. 그러나 영지주의 복음서에서는 예수 또한 인간들과 같은 근원에서 왔다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세 번째로 기독교인은 구약의 야웨를 사랑의 하느님으로 생각하는 반면, 영지주의자들은 전쟁을 좋아하며 살육을 즐기는 구약의 신이야말로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계를 만든 악마로 본다. 네 번째로 영지주의에서는 윤회를 인정하며 또한 위대한 어머니(태모)에 대한 숭배를 이야기한다.(『성서 밖의 예수』)

위와 같은 영지주의의 가르침은 『우파니샤드』 같은 힌두 철학에서도 발견되지만, 많은 학자들은 특히 영지주의와 불교와의 관련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불교학자였던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 1928~1979)는 불교도들과 남부 인도의 도마 기독교인―전승에 의하면 예수의 쌍둥이 동생이자 사도였던 도마는 예수가 못 박힌 후 인도로 건너가서 전도활동을 하였다고 한다―들과의 접촉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로마제국에서 영지주의가 꽃 피웠을 당시(CE 80~200), 인도에서도 대승불교가 개화하고 있었으며 그 때는 인도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무역로가 한창 번성할 시기와 일치한다고 한다(『신의 가면Ⅲ : 서양 신화』).

 심지어는 이집트의 치유능력을 가진 현자들(therapeuti)도 불교로부터 근원했거나 아니면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최초의 문명은 고대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놓고 볼 때, 우리는 예수가 인도에서 구도생활을 했다는 『보병궁복음서』의 내용을 단순히 허구로만 간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많은 학자들은 영지주의를 1~3세기에 출현한 기독교 내부의 이단으로만 치부하지만, 영지주의를 단순히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지식은 신령스런 근원에서 흘러나온 인식이기 때문에, 단순한 믿음이나 이성적인 지식보다 우월할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 또한 동방의 모든 고대 종교들 중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지주의를 연구한 독일의 전문가들은 󰡒엄밀히 말해서 기독교적 영지는 기독교 내부에 존재하는 이단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 이전에 존재했던 또는 기독교와 원초적으로 이질적인 것이며, 그 본질에 있어 계속 이질적인 것으로 머물 사유와 기독교와의 만남의 결과이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 그리고 비교(秘敎)의 신봉자들은 이 영지주의를 󰡐모든 종교의 원천에 존재하는 인간의 종교적 심성의 뿌리󰡑로까지 보고 있다(『신비의 지식, 그노시즘』).

 학자들은 이를 기독교 내부에 나타난 영지주의와 구별하여 원영지주의(Proto-Gnosticism)라고 한다. 세르쥬 위탱에 따르면, 이 영지주의가 가진 종교성은 근대적인 몇몇 열망, 예컨대 이성주의나 이신론(理神論) 등과도 밀접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은 지중해 세계와 유럽에 사회적, 정치적인 위기 때마다 끊임없이 다시 대두되곤 하였다고 한다.

 르네 게농은 특히 모든 종교에서 영지, 즉 󰡒완전한 인식에 의한 인간의 형이상학적인 해방의 개념이 나타난다󰡓고 말한다.(『신비의 지식, 그노시즘』) 간단히 결론만을 이야기하면 영지주의는 일면 기독교의 잃어버린 역사에 빛을 비춰주기도 하지만, 인류 태고적에 나타난 모든 종교의 뿌리였던 신교(神敎)의 가르침과 모든 인류를 만사지(萬事知)의 완전한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 제3의 초종교의 가르침과도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돌아오라, 그대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 3:2)

 회개하라. 아아, 이스라엘이여, 개심하라. 그대의 왕을 맞을 준비를 하라.(『보병궁의 성약』 62:16)

2천년 전에 요한이 외친 이 광야의 음성은 사실 오늘의 우리들에게 더욱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회개(죄의 껍질을 벗는 것-정신개조)와 심판, 천국건설의 복음은 인간구원이라는 기독교의 대이상을 향한 󰡐인간관, 세계관, 신관, 우주관󰡑의 초석이 되는 핵심내용이다.

 

 위 구절에서 󰡐회개하라󰡑는 말을 히브리어로는 󰡐테슈바흐(teshuvah)󰡑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첫째로 󰡐되돌아오다(return)󰡑, 둘째로 󰡐대답하다(answer)󰡑, 셋째로는 󰡐회개하다(repent)󰡑는 뜻이 그것이다. 지금 기독교 교회와 성당의 모든 교의(敎義)는 이 중 세 번째 의미인 󰡐회개하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테슈바흐의 핵심적인 영혼구원의 참 뜻은 󰡐돌아오다󰡑라는 의미에 있다. 이는 동양의 인간관이나 모든 기성종교의 구원관에 비추어 볼 때 가장 기본적인 상식에 속하는 내용이다

 

. 왜 그러할까? 오쇼(Osho)의 말과 같이, 󰡐회개하라󰡑는 말을 하면 깊은 저주를 내뱉는 것 같으며 상대방에게 죄인인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그러나 󰡐돌아오라󰡑고 하면 거기에는 죄나 저주라는 관념은 전혀 없다. 단지 그대가 생명의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으니 이제 그만 놀고 돌아오라는, 사랑으로 가득 찬 구원의 음성만이 들릴 뿐이다.

󰡒돌아오라, 그대여! 이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을 조용히 명상해 보라. 이제까지 인간을 타락한 사탄의 유물로 취급해 온 질책과 저주의 관념이 송두리째 뽑히게 됨을 알 수 있다

. 예수가 결코 회개하라는 뜻으로만 테슈바흐를 사용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동서고금의 성자들의 영적 구원에 대한 메시지나 동양의 정신세계를 조금만 이해해도 능히 깨우칠 수 있으리라. 󰡒신에게 돌아가는 것이 신에게 대답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오쇼는, 또 󰡒만일 󰡐회개하라󰡑는 말을 󰡐돌아오라󰡑로 바꾼다면 모든 교회와 성당이 사라지게 된다

.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제까지 회개하라는 말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Words like fire, 120~126쪽)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자신의 온전함을 되찾는 영원한 구도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현실은 고통의 탁한 숨소리가 멎을 날 없는 인간 계발의 머나먼 도정(道程)의 무대이며, 신(진리)의 나라[天國]로 승화되어야 하는 성숙의 운명을 안고 있다. 에덴(기쁨)의 낙원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공존한다.

 이 말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보다 깊은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의 마음[一心]과 생명 속에는 생명의 본체(생명나무)와 상대성(선악과)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에덴의 설화는, 선악과를 따먹고 일심의 분열과 그 긴장 속에서 생명의 성숙과 영생을 향해 달려가는 운명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려 주고 있다.

 기독교 복음의 주제는 전체적으로 󰡐창조(탄생)-타락(자기성장과정)-구원(보편적 세계구원, 창조의 완성)󰡑이라는 삼단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개벽이다(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