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트메이커들의 홀로서기

gme200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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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트메이커들의 홀로서기

재밌는 사실은 힙합 프로듀서들의 비트들이 그 비트를 제작한 본인의 스타일에 의해서 그 나름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게 됨에 따라, 어느새 유명 프로듀서들은 씬 내에서 거물급 뮤지션들 못지 않은 지명도와 인기를 얻게 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프로듀서들은 그 스스로가 독립된 아티스트로써 자신의 역량을 대중들에게 과시하고픈 욕구가 생겨났다.
그에 따라 몇몇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이런 그들의 소원이 현실적인 움직임으로 진행되어 간다.

1992년 Dr. Dre는 힙합 음악사의 기념비적인 앨범 [Chronic]을 발매한다.

[칼럼] 비트메이커들의 홀로서기
[칼럼] 비트메이커들의 홀로서기이 앨범은 여러 면에 걸쳐서 후대의 힙합씬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N.W.A.의 "Fuck Y'all"의 태도에서 보다 한층 더 과격하게 마약, 폭력 그리고 섹스를 미화시키며 갱스터 멘탈리티의 전형을 제시했다. 또, 동시에 90년대 힙합의 절반을 갱스터랩으로 점철시키며 Dr. Dre는 힙합계 대부의 위치에 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 앨범의 더욱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혁신이라고도 볼만한 G-Funk라는 음악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G-Funk는 이제 힙합 음악의 비트(혹은 사운드)가 종전의 헤게모니였던 엠씨의 랩을 압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뒤이어 나타난 수많은 래퍼들의 앨범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Dr. Dre 의 참여만 있으면 성공하거나 혹은 Dre의 참여가 없어도 그를 추종하면서 그와 유사한 사운드로 많은 이들이 성공을 거둔 지난 역사를 통해 재차 확인된다.


이는 어떻게보면 "Dr. Dre"라는 비트 메이커의 사운드가 지닌 브랜드로써의 가치가 가지는 영향력이 얼마나 거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물론 [Chronic]은 랩 앨범이지만 [Chronic]의 뒤를 잇는 Snoop Doggy Dogg(스눕 도기 독)의 [Doggystyle]의 대힛트는 단순한 이미지나 랩퍼로써의 역량을 넘어서 "Produced By Dr. Dre"라는 문구에서 비롯되는 Dr. Dre표 G-Funk 사운드에 대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에서 그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의 음악 산업은 거대 레이블들이 지배하는 상품 산업으로써의 분위기가 대세였고 언더그라운드라고도 불리우는 인디씬은 아직까지는 주류씬에 대항하기에 그 힘이 다소 모자란 상태였다. 그래서 많은 비트메이커들은 또 다른 엠씨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올드 스쿨의 DJ와 MC의 결합에서 이제는 비트메이커와 MC의 결합으로 그 모양새가 진화해서 음악씬에 재등장한 것이다.
시대는 아직까지 "목소리"를 필요로 했고 그런 대중들의 요구에 대한 프로듀서들의 부응이 이런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DJ Premier(디제이 프리미어)와 Guru의 Gangstarr(갱 스타), Pete Rock(핏 록) & CL Smooth(씨엘 스무드), Show Biz(쇼 비즈) & AG(메이 지), Timbaland(팀바랜드) & Magoo(마구) 등등이 이런 형태의 대표적 그룹들이라 할만한데 각 팀의 비트메이커들은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한 앨범에서 그룹의 이름으로 활약하다가 점차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에도 참여하면서 자신의 사운드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동시에 자신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늘려가며 실력을 쌓아간다.



[칼럼] 비트메이커들의 홀로서기
그렇다고 프로듀서들이 꼭 독립된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위해 간판으로 세울 엠씨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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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비트메이커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넘치는 끼를 발산하기 위해 직접 프로듀싱과 랩을 동시에 맡아가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랩 음반을 발매한 뮤지션들도 적지 않은데 이들은 다름아닌 Dr. Dre의 공식을 채택하고 있다. Puff Daddy(퍼프 대디)(지금의 Diddy)나 Jermaine Dupri(저메인 듀프리), Madd Rapper(매드 래퍼), a.k.a. D-Dot 등이 솔로 랩뮤지션으로도 앨범을 발매하고 자신이 그 앨범의 전반적인 사운드를 프로듀싱하는 비트메이커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자신의 랩 스킬에서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 타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하며 얻은 인맥을 통해 수많은 랩 게스트들을 초빙하여 앨범을 랩스타들의 경연장으로 활용한다. 그러면서 막상 자신은 한두개의 Verse로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확인시킨후 전체적인 사운드의 통제에 더 신경쓰는데 앨범이 마무리되면 청자에게 "이런 대작을 이렇게 잘 조율한게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더 확실하게 어필한다.


이는 랩스킬이 뛰어난 비트메이커/래퍼의 앨범에도 마찬가지로 확인되는데 대게 이런 멀티플레이어들은 자신의 랩 스킬의 우수함을 어필함과 동시에("내가 곡만 잘만드는 줄 알았지?"식의) 각 곡의 비트 메이킹과 앨범 전체를 조율하는 뮤지션으로써의 우월함도 함께 부각시킨다.


이게 바로 그들이 정상으로 등극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이겠지만 뮤지션으로서의 그들의 자아는 프로듀서와 래퍼의 중간쯤에 위치한 다소 모호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움직임도 비트메이커들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해본다.

그들이 바라는 최종적인 지향점인 "비트메이커로서의 완벽한 홀로서기"는 이런 방식들을 통해 점점 그들의 영향력을 늘리고, 인지도를 강화한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다음편에서는 프로듀서들의 앨범을 직접 살펴보고 그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그들이 뮤지션으로서 진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칼럼] 비트메이커들의 홀로서기예동현 | yeahd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