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10시 아침근무 중이다. 토요일이라 11시까지 잘 수 있는데, 이런 황금 같은 시간에 근무를 스는 게 많이 억울하다. 근무명령서를 어떻게 짜는 건지. 제발 근무스는 시간 고려해서 짜 주었으면 한다.”(5월27일)
“3번초 가장 피곤한 근무다.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어정쩡함과 앞으로 자봐야 얼마나 자겠는가 하는 피로감이 겹치는 근무다. 사수는 경계 시작한지 5분도 안 지났는데 잘려고 한다. 저럴 때 표정은 자라같다. 잠탱이다.…”(5월28일)
지난 6월5일 오후 1시5분께 전북 임실군 육군 35보병사단 한 부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용찬(21) 일병의 수첩 메모 가운데 일부이다.
군당국은 조 일병이 자신의 전투화 끈을 풀어 부대 안 소나무에 걸어놓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목을 매 숨졌다고 8일 밝혔다. 군당국은 “당일 오전 11시께 선임병에 대한 비방글을 메모한 수첩을 조 일병이 잃어버렸는데, 수첩을 습득한 한 선임병이 부대원들에게 이를 알렸고, 이아무개 중위와 선임병 3명의 폭언 등으로 평소 부대생활을 힘들어 한 조 일병이 이를 두려워 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족들은 “평소 명랑하고 책임감이 강한 조 일병이 자살한 것은 군 간부의 고의적 횡포와 선임병들의 집단 따돌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들은 “군 관계자가 그런 복무환경이면 졸병시절에는 누구나 자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군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죽음의 원인을 조 일병의 군대 부적응으로 몰았고 장례식(6월7일)을 서둘러 치르게 하는 등 사건 축소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2004년 3월 충남대 교육학과를 입학한 조 일병은 지난해 12월8일 군에 입대했다. 같은 과 친구 박선주(21)씨는 “3월에 휴가나왔을 때만 해도 항상 웃고 밝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조 일병 주변에서는 욕설, 폭언 등 힘든 부대 복무여건이 조 일병의 활발한 성격을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족들은 “함께 내무반을 썼다는 동료가 사건 후 ‘조 일병이 처음에는 밝은 성격이었는데, 두달동안 병원에 입원한 뒤 돌아와 보니까 많이 변하고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같은 부대 신아무개 일병은 “평소 밝은 동료였는데 그럴 줄 몰랐고 정말 황당하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조 일병이 낮에는 사역, 밤에는 행정 일처리, 불침번 등으로 하루에 2~3시간만 자는 등 잠을 제대로 못자고 고통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어머니 임아무개(42)씨는 “지난 3월에는 100일 휴가를 나왔는데 양쪽 엄지 발가락이 휘어져 있었다”며 “키가 커(182㎝) 신발을 280㎜를 신어야 하는데도 따돌림 때문에 교체해 주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조 일병이 숨지기 이틀 전인 지난 3일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임씨는 “아들이 ‘엄마 내발이 다 망가졌어. 물집이 다 터지고 피가 나. 나 지금 며칠동안 피똥싸고 있어’라고 말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들은 “군당국이 3일장을 치르는 등 협조를 해줘야 수사결과도 잘 나오고, 그래야 보상 등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며 조기 종결을 유도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또“군에서 지금까지 조 일병이 수첩에 남긴 유서 2장과 메모 2장만 복사해줬다”며 “6일 중간 수사결과 브리핑 때 자료들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나중에 준다며 건네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군부대 쪽은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수사를 축소할 수 있느냐”며 “육본까지 참여한 최종 수사 결과는 한달 뒤쯤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유공자 등록과 국가배상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군부대 쪽은 “유족의 법적 대응에 법무참모가 자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은 유족에게 위로금 500만원과 장례비용을 지급한다.
아래는 조 일병이 영어단어 공부를 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조 일병에게 사 준 수첩에 적힌 유서 내용이다.
사랑하는 어머니께
어머니, 하루에도 열두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는 일마다 사고를 내는 제 자신이 한심했고 사고 때문에 누군가 상처 받는 게 가슴 아팠어요. 그리고 제게 돌아오는 욕설과 모욕이 가장 참기 힘드네요.
어머니, 아니 엄마! 나 엄마 진짜진짜 사랑하고 효도하고 그러면서 살고 싶었는데 더는 정말 더는 버틸 자신도 용기도 희망도 없어요. 매일매일 사고 치는 나를 보면서 나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운지 몰라요. 선임병들의 언어적 정신적 폭행도 이젠 버틸 수 없구요.
엄마 사랑하는 우리 엄마 엄마보다 먼저 가면 불효자식인거 아는데 이럴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엄마를 사랑하는 엄마가 되어서 제 죄값 다 치를게요. 이젠 시간이 다 되었어요. 안녕, 엄마!
슬픈 이야기...
“8시~10시 아침근무 중이다. 토요일이라 11시까지 잘 수 있는데, 이런 황금 같은 시간에 근무를 스는 게 많이 억울하다. 근무명령서를 어떻게 짜는 건지. 제발 근무스는 시간 고려해서 짜 주었으면 한다.”(5월27일)
“3번초 가장 피곤한 근무다.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어정쩡함과 앞으로 자봐야 얼마나 자겠는가 하는 피로감이 겹치는 근무다. 사수는 경계 시작한지 5분도 안 지났는데 잘려고 한다. 저럴 때 표정은 자라같다. 잠탱이다.…”(5월28일)
지난 6월5일 오후 1시5분께 전북 임실군 육군 35보병사단 한 부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용찬(21) 일병의 수첩 메모 가운데 일부이다.
군당국은 조 일병이 자신의 전투화 끈을 풀어 부대 안 소나무에 걸어놓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목을 매 숨졌다고 8일 밝혔다. 군당국은 “당일 오전 11시께 선임병에 대한 비방글을 메모한 수첩을 조 일병이 잃어버렸는데, 수첩을 습득한 한 선임병이 부대원들에게 이를 알렸고, 이아무개 중위와 선임병 3명의 폭언 등으로 평소 부대생활을 힘들어 한 조 일병이 이를 두려워 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족들은 “평소 명랑하고 책임감이 강한 조 일병이 자살한 것은 군 간부의 고의적 횡포와 선임병들의 집단 따돌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들은 “군 관계자가 그런 복무환경이면 졸병시절에는 누구나 자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군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죽음의 원인을 조 일병의 군대 부적응으로 몰았고 장례식(6월7일)을 서둘러 치르게 하는 등 사건 축소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2004년 3월 충남대 교육학과를 입학한 조 일병은 지난해 12월8일 군에 입대했다. 같은 과 친구 박선주(21)씨는 “3월에 휴가나왔을 때만 해도 항상 웃고 밝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조 일병 주변에서는 욕설, 폭언 등 힘든 부대 복무여건이 조 일병의 활발한 성격을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족들은 “함께 내무반을 썼다는 동료가 사건 후 ‘조 일병이 처음에는 밝은 성격이었는데, 두달동안 병원에 입원한 뒤 돌아와 보니까 많이 변하고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같은 부대 신아무개 일병은 “평소 밝은 동료였는데 그럴 줄 몰랐고 정말 황당하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조 일병이 낮에는 사역, 밤에는 행정 일처리, 불침번 등으로 하루에 2~3시간만 자는 등 잠을 제대로 못자고 고통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어머니 임아무개(42)씨는 “지난 3월에는 100일 휴가를 나왔는데 양쪽 엄지 발가락이 휘어져 있었다”며 “키가 커(182㎝) 신발을 280㎜를 신어야 하는데도 따돌림 때문에 교체해 주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조 일병이 숨지기 이틀 전인 지난 3일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임씨는 “아들이 ‘엄마 내발이 다 망가졌어. 물집이 다 터지고 피가 나. 나 지금 며칠동안 피똥싸고 있어’라고 말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들은 “군당국이 3일장을 치르는 등 협조를 해줘야 수사결과도 잘 나오고, 그래야 보상 등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며 조기 종결을 유도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또“군에서 지금까지 조 일병이 수첩에 남긴 유서 2장과 메모 2장만 복사해줬다”며 “6일 중간 수사결과 브리핑 때 자료들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나중에 준다며 건네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군부대 쪽은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수사를 축소할 수 있느냐”며 “육본까지 참여한 최종 수사 결과는 한달 뒤쯤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유공자 등록과 국가배상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군부대 쪽은 “유족의 법적 대응에 법무참모가 자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은 유족에게 위로금 500만원과 장례비용을 지급한다.
아래는 조 일병이 영어단어 공부를 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조 일병에게 사 준 수첩에 적힌 유서 내용이다.
사랑하는 어머니께
어머니, 하루에도 열두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는 일마다 사고를 내는 제 자신이 한심했고 사고 때문에 누군가 상처 받는 게 가슴 아팠어요. 그리고 제게 돌아오는 욕설과 모욕이 가장 참기 힘드네요.
어머니, 아니 엄마! 나 엄마 진짜진짜 사랑하고 효도하고 그러면서 살고 싶었는데 더는 정말 더는 버틸 자신도 용기도 희망도 없어요. 매일매일 사고 치는 나를 보면서 나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운지 몰라요. 선임병들의 언어적 정신적 폭행도 이젠 버틸 수 없구요.
엄마 사랑하는 우리 엄마 엄마보다 먼저 가면 불효자식인거 아는데 이럴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엄마를 사랑하는 엄마가 되어서 제 죄값 다 치를게요. 이젠 시간이 다 되었어요. 안녕, 엄마!
슬픈일입니다....한 어머니...아버지의 소중한 아들이....
이렇듯...어이없는 일로...또 한명의 젊은이가...목숨을 잃게되어..
그저...안타깝기만..할뿐입니다...이런일은....군 자체의 문제만이
아닌...우리...모두의 잘못일 거라 생각합니다....다시는...이런..
헛된...죽음이...반복되질.. 않길 바랄 뿐입니다....제발....
삼가 고인의 명복을...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