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부터 축구협회가 설립되고 월드컵도 1930년부터 개최되었지만 지금의 축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신문이나 TV같은 정보매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계2차대전을 겪는등 보통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즐기기는 불안요소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야인시대에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든 이가 있었느니 그가 바로 펠레입니다.
58년 스웨덴 월드컵에 해성처럼 등장한 펠레는 브라질에 3차례 월드컵 우승을 안겨주었습니다.
A매치 통산 92경기 77골이라는 기록도 놀랍지만 개인통산 1363경기 1281골이라는 대기록에 '진정한 축구의 신이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60년대를 쥐고 흔들었던 브라질의 펠레도 시간 앞에서는 점점 고개를 숙이고 맙니다.
크루이프와 바켄바워 세계를 양분하다
70년대에 들어오면서 다음 황제자리를 놓고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가 선봉에 나섭니다.
현대축구의 모체가 되고있는 토탈싸커로 무장을 하고 그 중심에 크루이프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약스와 바로셀로나 같은 프로팀에서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이미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끄는 네덜란드는 74년 독일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올라갑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바로 독일.
독일에는 또 한명의 명 수비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프란츠 바켄바워입니다.
독일 감독은 크루이프만 막으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 아래 바켄바워에게 크루이프를 그림자처럼 쫒아다니며 막으라고 지시합니다.
하지만 크루이프는 왠일인지 풀백으로 자리을 옮겨 플레이 하기 시작합니다. 바켄바워는 어쩔수 없이 상대편 진영 깊숙히 들어가 수비수 크루이프를 그림자처럼 쫒아다닙니다. 수비수를 수비하는 재밌는 장면이 연출됐죠. 독일 감독의 수를 미리 읽은 네덜란드 감독의 기발한 작전이었습니다. 전원수비 전원공격이라는 토탈싸커에 걸맞게 크루이프는 위협적으로 공격에도 가담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2 - 1 독일의 승리. 승자는 바켄바워였습니다.
카이저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바켄바워는 그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수비수로서 큰 명성을 떨쳤습니다. A매치 103경기를 출전했고, 3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해 1710분을 뛰며 5골을 넣은 진정한 독일의 카이저였습니다.
최고의 공격수와 최고의 수비수가 함께했던 70년대는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80년대로 흘러갑니다.
마라도나 왕좌에 오르다
80년대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등장하자 세계는 다시한번 떠들썩해집니다.
16세의 나이로 대표팀에 입성한 마라도나는 A매치 대뷔전에서 골까지 터트리며 새로운 축구천재의 등장을 알렸습니다.
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와 맞붙게됩니다.
포클랜드 전쟁으로 두 국가는 서로 앙숙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다시한번 총칼없는 전쟁을 시작합니다.
후반 6분 높이 뜬 공을 처리하기 위해 잉글랜드 골키퍼가 뛰어나왔습니다.
조그마한 체구의 마라도나도 함께 뛰어올랐죠. 누구라도 덩치큰 골키퍼가 공을 잡을 것이라고 짐작할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선수가 부딛치는 순간 공은 골대로 들어갔습니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마라도나가 손으로 공을 쳤다고 항의했지만 주심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경기는 계속됩니다.
5분뒤 마라도나가 공을 몰고 뛰기시작합니다. 하프라인에서 시작된 그의 질주는 한명을 제치고 두명을 제치며 앞으로 전진합니다. 현란한 발동작과 빠른 스피드로 5명의 수비수를 제치며 골문앞으로 돌진한 그는 골키퍼마저 잠재우며 추가골을 성공시킵니다.
결과는 2 - 1 아르헨티나의 승리. 마라도나는 경기후 인터뷰에서
"마라도나의 머리를 맞았으며 또한 신의 손이기도 했다."말을 하며 신의 손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포클랜드전쟁으로 앙숙이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 사건을 통쾌함으로 받아들이며 마라도나는 영웅이 됩니다.
마라도나는 결승전에서 서독마저 꺽으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립니다.
80년대 컬러TV의 보급과 의학의 발달로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나오면서 마라도나의 말년은 의외로 초라했습니다.
세기를 초월한 축구영웅들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푸른 잔디위에서 11명의 선수가 공을 몰고 골대로 진격한다.
거친 태클을 뛰어넘고 달리고 달려 골대 안에 골이 들어가는 순간
영웅이 탄생한다.
두손을 높이 들고 환호하고 있는 모두가 영웅이다.
시간이 흐르면 노장은 사라지고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당신이 만들어낸 6월의 함성을...
세기를 초월한 축구영웅들
초대 황제 펠레
60년대는 펠레의 등장으로 축구가 힘차게 도약하는 시기입니다.
19세기부터 축구협회가 설립되고 월드컵도 1930년부터 개최되었지만 지금의 축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신문이나 TV같은 정보매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계2차대전을 겪는등 보통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즐기기는 불안요소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야인시대에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든 이가 있었느니 그가 바로 펠레입니다.
58년 스웨덴 월드컵에 해성처럼 등장한 펠레는 브라질에 3차례 월드컵 우승을 안겨주었습니다.
A매치 통산 92경기 77골이라는 기록도 놀랍지만 개인통산 1363경기 1281골이라는 대기록에 '진정한 축구의 신이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60년대를 쥐고 흔들었던 브라질의 펠레도 시간 앞에서는 점점 고개를 숙이고 맙니다.
크루이프와 바켄바워 세계를 양분하다
70년대에 들어오면서 다음 황제자리를 놓고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가 선봉에 나섭니다.
현대축구의 모체가 되고있는 토탈싸커로 무장을 하고 그 중심에 크루이프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약스와 바로셀로나 같은 프로팀에서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이미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끄는 네덜란드는 74년 독일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올라갑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바로 독일.
독일에는 또 한명의 명 수비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프란츠 바켄바워입니다.
독일 감독은 크루이프만 막으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 아래 바켄바워에게 크루이프를 그림자처럼 쫒아다니며 막으라고 지시합니다.
하지만 크루이프는 왠일인지 풀백으로 자리을 옮겨 플레이 하기 시작합니다. 바켄바워는 어쩔수 없이 상대편 진영 깊숙히 들어가 수비수 크루이프를 그림자처럼 쫒아다닙니다. 수비수를 수비하는 재밌는 장면이 연출됐죠. 독일 감독의 수를 미리 읽은 네덜란드 감독의 기발한 작전이었습니다. 전원수비 전원공격이라는 토탈싸커에 걸맞게 크루이프는 위협적으로 공격에도 가담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2 - 1 독일의 승리. 승자는 바켄바워였습니다.
카이저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바켄바워는 그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수비수로서 큰 명성을 떨쳤습니다. A매치 103경기를 출전했고, 3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해 1710분을 뛰며 5골을 넣은 진정한 독일의 카이저였습니다.
최고의 공격수와 최고의 수비수가 함께했던 70년대는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80년대로 흘러갑니다.
마라도나 왕좌에 오르다
80년대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등장하자 세계는 다시한번 떠들썩해집니다.
16세의 나이로 대표팀에 입성한 마라도나는 A매치 대뷔전에서 골까지 터트리며 새로운 축구천재의 등장을 알렸습니다.
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와 맞붙게됩니다.
포클랜드 전쟁으로 두 국가는 서로 앙숙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다시한번 총칼없는 전쟁을 시작합니다.
후반 6분 높이 뜬 공을 처리하기 위해 잉글랜드 골키퍼가 뛰어나왔습니다.
조그마한 체구의 마라도나도 함께 뛰어올랐죠. 누구라도 덩치큰 골키퍼가 공을 잡을 것이라고 짐작할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선수가 부딛치는 순간 공은 골대로 들어갔습니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마라도나가 손으로 공을 쳤다고 항의했지만 주심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경기는 계속됩니다.
5분뒤 마라도나가 공을 몰고 뛰기시작합니다. 하프라인에서 시작된 그의 질주는 한명을 제치고 두명을 제치며 앞으로 전진합니다. 현란한 발동작과 빠른 스피드로 5명의 수비수를 제치며 골문앞으로 돌진한 그는 골키퍼마저 잠재우며 추가골을 성공시킵니다.
결과는 2 - 1 아르헨티나의 승리. 마라도나는 경기후 인터뷰에서
"마라도나의 머리를 맞았으며 또한 신의 손이기도 했다."말을 하며 신의 손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포클랜드전쟁으로 앙숙이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 사건을 통쾌함으로 받아들이며 마라도나는 영웅이 됩니다.
마라도나는 결승전에서 서독마저 꺽으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립니다.
80년대 컬러TV의 보급과 의학의 발달로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나오면서 마라도나의 말년은 의외로 초라했습니다.
도핑테스트결과 코카인 양성반응과 에페드린 양성반응으로 출장금지를 받았고, 코카인 중독상태에서 기자들에게 공기총을 난사하기도 했습니다.
역시 최고의 자리란 얻기보다 지키는것이 더 어려운 법인가 봅니다.
90년대는 춘추전국시대
마라도나 이후 축구계는 많은 스타들이 등장합니다.
인터넷의 등장과 신문, 잡지등이 활발히 유통되면서 정보가 넘쳐흐르며 많은 스타를 생산해냈습니다.
펠레 이후 주춤했던 브라질에선 호마리우가 선봉에 섰습니다.
카테나치오란 빗장수비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선 로베르트 밧죠가 브라질과 맞섰죠.
94년 미국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붙은 두 팀은 0 - 0 무승부로 승부차기에서 운명을 결정짓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마지막킥커로 밧죠가 나왔습니다. 공을 차분히 내려놓고 마음을 가다듬고 찬 그의 마지막 슛은 하늘 높이 올라가 버렸습니다. 밧죠는 고개를 떨구고 브라질의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전차군단 독일에선 게르만의 혼을 이어받은 위르겐 클린스만,
오렌지군단 네덜란드의 데니스 베르캄프,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엘런 시어러,
마라도나의 후예 아르헨티나에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앞장서
그라운드를 달렸지만 왕좌에 오르기엔 2%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솔밭처럼 갈라진 천하,
팽팽한 긴장감 속에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대륙의 지존을 가린다. 지단 vs 호나우두
90년대 안개속의 정국에서 한줄기 빛이 피어올랐으니 그가 바로 호나우두입니다.
호나우두는 펠레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등장합니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 호나우두가 이끄는 브라질은 우승후보 0순위였고 당연히 그가 브라질의 5번째 우승을 이끌어 줄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당시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은 솔밭처럼 갈라진 천하에서 한뼘의 땅을 가진 기사에 불과했습니다.
프랑스가 이전 월드컵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준적이 없었기 때문에 과소평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브라질과 프랑스는 결승에서 운명의 한판승부를 가집니다.
호나우두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지단이 결승전에서 2골을 내리 뽑으며 3 - 0으로 우승컵을 차지합니다.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는 유로2000, 컨페드레이션스컵등 굵직굵직한 주요대회를 연패하며 아트싸커라는 이름으로 왕좌에 오릅니다.
지단이 승승장구를 할때 호나우두는 부상으로 신음중이었습니다.
인터밀란에서 무릎부상을 당한 그는 2년동안 재활치료에만 몰두하며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질 뻔했습니다.
부상에서 회복된 호나우두는 역시 호나우두였습니다. 스페인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후에 그의 활약은 더욱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4년이 흐른뒤 지단과 호나우두는 다시한번 맞붙게 됩니다.
2002년 한국/일본월드컵에서 지단은 왕좌를 지키기위해,
호나우두는 왕좌를 빼앗기위해 우승에 도전합니다.
지단은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하고 맙니다.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닌 지단이 의지를 불태우며 경기에 나섰지만 결과는 무득점 무승으로 조예선 탈락. 한때 무패행진을 하며 최고의 자리를 지키던 프랑스였기에 조예선 탈락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반면, 완전히 부활한 호나우두는 결승전에서 2골을 몰아넣으며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끕니다. 8골로 대회득점왕까지 차지한 호나우두는 그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유럽과 남미라는 대륙의 명예를 걸고 싸웠던 호나우두와 지단,
신기하게도 두 선수의 환희와 좌절이 절묘하게 교차되면서
2000년대를 이끌고 나아갑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과연!
지단과 호나우두의 나이도 어느덧 서른을 훌쩍넘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2000년대를 주름잡았던 잉글랜드의 베컴이나 포르투칼의 피구도 은퇴를 생각해야할 나이입니다.
지금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있는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와 브라질의 호나우디뉴가 지단과 호나우두를 이은 대륙간 대결 2차전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젊은 피로 무장하고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민 웨인 루니와 리오넬 메시도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은 그래서 더욱 기대되는 대회입니다.
과연 누가 우리를 끝까지 열광하게 만들까요?
정답은 축구공만 알고 있습니다.
푸른 잔디 위를 휘젓고 다니는 축구공에 빠져봅시다!
2006.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