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급박한 일이기에 부족하나마 이렇게 글 올립니다. 지난 25일 헌법 재판소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허용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에 위배된다면서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인해 현재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삶의 희망마저일어가고 있습니다. 안마업은 대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으로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특수교사나 목사 등 안마업에 종사하지 않는 시각장애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현재 전국 13개 맹학교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의 재활과 자립을 목적으로 촉각이 남달리 발달한 시각장애인들의 특성을 활용하여 안마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고등부 3년동안 안마를 배웠고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 하기 싫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시각장애인들은 비록 앞은 보이지 않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떳떳이 일하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부심에 위로를 받으며 열심히 생활해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입니까? 직업선택의 자유라니요? 안마업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유일한 삶의 끈입니다. 배부른 선택의 자유가 저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현재 다음의 주소에서 이번 결정에 반대하고자 전국적인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디 도와주세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세요.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 저희에게 큰 힘이 됩니다. http://web.kbuwel.or.kr/win/
다음은 저의 모교인 서울 맹학교 이영미 선생님의 글입니다.
시각장애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양심으로 호소
오늘날 우리 사회에 무슨 사제지간이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시각장애학생을 가르치는 맹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특별한 사제지간으로 학생들이 졸업 후 교사들에 대해 더 고마워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교육한다고 하면 생산이 없는 일을 하고, 무조건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지만 맹학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졸업 후에 자신의 힘으로 벌어서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다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의 보람이었습니다.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안마만 가르쳤겠습니까? 시각장애인들이 전화교환원도 할 수 있고, 피아노 조율도 할 수 있고, 정안인들보다 더 실력도 뛰어나기도 하기에 가르쳤지만 정안인들과 경쟁에서 밀려나서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나마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보직종인 안마만 정안인들과 경쟁을 하지 않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힘든 안마지만 살길은 이 길 밖에 없기에 죽기 살기로 공부했습니다. 안마는 단순히 몸을 주무르는 유사 마사지들과는 근본적으로 배우는 것이 다릅니다. 그냥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혈자리를 익히고, 일일이 손끝으로 만져가면서 선생님의 몸을 실험용으로 해서 배웁니다. 어려운 동양의학 용어들을 머리 터져라 반복해서 학습하고, 모형들을 만져가면서, 또 선생님들 자신이 실험도구가 되어서 몸으로 배우다 보니 교사와 제자와의 관계는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몸으로 배우기를 3년 하고, 현장에 나간 제자들이 자신의 손가락이 아파가면서, 관절이 망가져가면서 번 돈으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고 밥이라도 산다고 하면서 찾아옵니다. 이런 제자들을 보면서 고맙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밥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애틋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안마해서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쓰는 제자는 한명도 없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대견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 가족들을 위해 자신이 보탬이 된다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육의 효과가 이렇게 가족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크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선배들 이야기를 하면서 열심히 배우라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육체적 장애가 마음의 장애, 정신적 장애가 될 수는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5월 25일 청천벽력과는 같은 안마사 자격증을 시각장애인에게만 주는 것이 위헌이라고 하는 헌재의 말도 안되는 판결이 있고부터 제자들은 살 의욕을 잃은 듯 합니다. 제자들이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살길을 잃었는데, 살고 싶은데, 그 방법을 찾아 달라”고 울부짖는데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줄 수 없고, 위로조차 할 수 없는 이 교사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자식이 죽어가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나, 제자들이 힘센 사람들이 내 목을 조이고 있으니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나 다를 게 뭐있겠습니까?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라도 제자를 살리는 일에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만 있다면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생존권을 찾으려고 졸업한 제자들이 다리 난간에 올라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고, 한강으로 몸을 던지는 제자들을 볼 때 함께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다칠까봐 잘못될까봐 그 표현을 다 못하고 자제할 수밖에 없는 제 입장이 한탄스럽습니다. 앞으로 제자들에게 당당하게 육체의 장애를 극복하고 살라고 어떻게 말할 것이며, 어떻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들이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도 못하겠고,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이 힘들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남을 도우면서 살 수도 있다는걸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집니다.
도와주십시오. 시각장애제자들이 우리나라는 약자에게 힘이 되어주는 나라이기에 조국애를 가질 수 있도록,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빼앗지는 말아주십시오. 시각장애제자들이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숨통을 틀어 막지는 말도록 해주십시오.
사제지간의 정이 매말라가는 현실에서 그나마 존재하고 있는 따뜻한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는 맹학교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힘이 될 수 있는 모든 분들께 호소합니다. 권력을 가진 분들은 권력으로, 힘이 있으신 분들은 힘으로, 무엇이 되었던 능력이 있으신 분들은 그 능력으로 도와주시기를 호소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안마사의 글을 올립니다.
제가 안마를 하며 산지도 벌써 강산이 두번 바뀌고도 3 년이나 지난 기나긴 세월이군요
그동안 제 손가락으로 뇌졸중으로 식물인간이된 동생의 가족과 저의 가족 도합 10 명의 식구를 먹여 살렸습니다.
가족이 많다보니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삶이었기에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한 직장에서 편히 일하지못하고 시술소마다 다니면서 안마사가 쉬는 공백에 일을 하거나 새로 안마사가 들어오기전까지 일을하는 임시직으로 안마를 하는 한편 힘든 안마를 하다가 골병이든 안마사들을 주물러주는 그야말로 안마사의 안마사 노릇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일터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다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돈이 많아서 택시를 타고 다니면 편했겠지만 한 푼이 아쉬운 저에게는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답니다.
비가 쏟아지는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또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충청도쪽으로 일하러 갈때는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서울에서 일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는데 한번은 3 일동안 일을 해서 돈을 좀 벌어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다가 그만 소매치기를 당해서 빈털털이가 되어 허탈한 마음으로 온적도 있었습니다.
그날은 가족들앞에서 평소보다 더많이 떠들고 웃어대며 제 슬픈마음을 감췄습니다.
한번은 이런적도 있었습니다.
일을 하러 지방으로 가다가 처음 가보는 길이라서 차도와 인도를 분간하지못하고 가다가 달려오던 승용차에 부딛혀 병원에 실려가보니 무릎에 미세한 금이 갔다면서 다 낳을때까지 입원하라고 하는데 일주일만에 퇴원해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일하러 갔습니다.
편히 병원에 누워 있을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무척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5 월 25 일 시각장애인만이 안마를 할수 있다는 법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은다음부터 몸의 고단함보다 100배나 힘든 삶을 살고 있답니다.
헌재의 판결 이후부터는 시술소들이 거의 영업을 하지않고 시위를 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직장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안마사들이 일을 못하니 저를 불러서 안마를 안받으니 저에게는 돈줄이 끊어진것이기도 하고요.
저에게 안마를 받으시던 단골손님들도 더듬거리며 안마하는 제가 부담스럽다고 하시면서 이제 비장애인에게 받으시겠다며 저와의 거래를 끊으시니 저는 그야말로 막막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제 계획은 낮에는 시위를 하고 밤에는 일을 할 생각이었지만 일이 없어서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쏘다니다 밤늦게 집에 들어갑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일하고 오는줄 아실테니까요
부모님이 제가 일이 없어 밤거리를 소다닌다는것을 아시게 되기까지 저는 계속 밤거리를 거닐다가 늦게 들어갈 생각입니다.
그렇게라도해서 부모님이 하루라도 마음편히 주무시게 해드리고싶답니다
저는 몸은 고단했어도 헌재판결 이전이 훨씬 행복했습니다. 다시 저에게 일하는 기쁨을 주세요.
저는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도 한번도 남을 원망하거나 어려운것을 국가나 사회의 탓으로 돌리며 불평해본적이 없었습니다.
6 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서 제손으로 번돈을 헌금도하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와 성가대에서 봉사하면서 안마사가 되게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제 주변의 분들은 앞을 못보는데 뭐가 그렇게 좋아서 항상 웃느냐고 하실만큼 행복하게 살았었는데 한순간에 행복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시각 장애인 분들에게 힘을 주세요.
이 글은 그 역시 시각장애인으로서 그 괴로움을 더 잘 알고있는
최수연이라는 누나가 클럽에 남긴글입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
참 긴 글이 지만 끝까지 읽어주시고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너무 급박한 일이기에 부족하나마 이렇게 글 올립니다.
지난 25일 헌법 재판소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허용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에 위배된다면서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인해 현재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삶의 희망마저일어가고 있습니다.
안마업은 대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으로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특수교사나 목사 등 안마업에 종사하지 않는 시각장애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현재 전국 13개 맹학교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의 재활과 자립을 목적으로 촉각이 남달리 발달한 시각장애인들의 특성을 활용하여 안마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고등부 3년동안 안마를 배웠고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 하기 싫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시각장애인들은 비록 앞은 보이지 않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떳떳이 일하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부심에 위로를 받으며 열심히 생활해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입니까? 직업선택의 자유라니요? 안마업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유일한 삶의 끈입니다. 배부른 선택의 자유가 저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현재 다음의 주소에서 이번 결정에 반대하고자 전국적인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디 도와주세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세요.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 저희에게 큰 힘이 됩니다.
http://web.kbuwel.or.kr/win/
다음은 저의 모교인 서울 맹학교 이영미 선생님의 글입니다.
시각장애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양심으로 호소
오늘날 우리 사회에 무슨 사제지간이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시각장애학생을 가르치는 맹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특별한 사제지간으로 학생들이 졸업 후 교사들에 대해 더 고마워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교육한다고 하면 생산이 없는 일을 하고, 무조건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지만 맹학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졸업 후에 자신의 힘으로 벌어서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다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의 보람이었습니다.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안마만 가르쳤겠습니까? 시각장애인들이 전화교환원도 할 수 있고, 피아노 조율도 할 수 있고, 정안인들보다 더 실력도 뛰어나기도 하기에 가르쳤지만 정안인들과 경쟁에서 밀려나서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나마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보직종인 안마만 정안인들과 경쟁을 하지 않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힘든 안마지만 살길은 이 길 밖에 없기에 죽기 살기로 공부했습니다. 안마는 단순히 몸을 주무르는 유사 마사지들과는 근본적으로 배우는 것이 다릅니다. 그냥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혈자리를 익히고, 일일이 손끝으로 만져가면서 선생님의 몸을 실험용으로 해서 배웁니다. 어려운 동양의학 용어들을 머리 터져라 반복해서 학습하고, 모형들을 만져가면서, 또 선생님들 자신이 실험도구가 되어서 몸으로 배우다 보니 교사와 제자와의 관계는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몸으로 배우기를 3년 하고, 현장에 나간 제자들이 자신의 손가락이 아파가면서, 관절이 망가져가면서 번 돈으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고 밥이라도 산다고 하면서 찾아옵니다. 이런 제자들을 보면서 고맙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밥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애틋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안마해서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쓰는 제자는 한명도 없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대견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 가족들을 위해 자신이 보탬이 된다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육의 효과가 이렇게 가족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크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선배들 이야기를 하면서 열심히 배우라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육체적 장애가 마음의 장애, 정신적 장애가 될 수는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5월 25일 청천벽력과는 같은 안마사 자격증을 시각장애인에게만 주는 것이 위헌이라고 하는 헌재의 말도 안되는 판결이 있고부터 제자들은 살 의욕을 잃은 듯 합니다. 제자들이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살길을 잃었는데, 살고 싶은데, 그 방법을 찾아 달라”고 울부짖는데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줄 수 없고, 위로조차 할 수 없는 이 교사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자식이 죽어가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나, 제자들이 힘센 사람들이 내 목을 조이고 있으니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나 다를 게 뭐있겠습니까?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라도 제자를 살리는 일에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만 있다면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생존권을 찾으려고 졸업한 제자들이 다리 난간에 올라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고, 한강으로 몸을 던지는 제자들을 볼 때 함께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다칠까봐 잘못될까봐 그 표현을 다 못하고 자제할 수밖에 없는 제 입장이 한탄스럽습니다. 앞으로 제자들에게 당당하게 육체의 장애를 극복하고 살라고 어떻게 말할 것이며, 어떻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들이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도 못하겠고,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이 힘들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남을 도우면서 살 수도 있다는걸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집니다.
도와주십시오. 시각장애제자들이 우리나라는 약자에게 힘이 되어주는 나라이기에 조국애를 가질 수 있도록,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빼앗지는 말아주십시오. 시각장애제자들이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숨통을 틀어 막지는 말도록 해주십시오.
사제지간의 정이 매말라가는 현실에서 그나마 존재하고 있는 따뜻한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는 맹학교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힘이 될 수 있는 모든 분들께 호소합니다. 권력을 가진 분들은 권력으로, 힘이 있으신 분들은 힘으로, 무엇이 되었던 능력이 있으신 분들은 그 능력으로 도와주시기를 호소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안마사의 글을 올립니다.
제가 안마를 하며 산지도 벌써 강산이 두번 바뀌고도 3 년이나 지난 기나긴 세월이군요
그동안 제 손가락으로 뇌졸중으로 식물인간이된 동생의 가족과 저의 가족 도합 10 명의 식구를 먹여 살렸습니다.
가족이 많다보니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삶이었기에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한 직장에서 편히 일하지못하고 시술소마다 다니면서 안마사가 쉬는 공백에 일을 하거나 새로 안마사가 들어오기전까지 일을하는 임시직으로 안마를 하는 한편 힘든 안마를 하다가 골병이든 안마사들을 주물러주는 그야말로 안마사의 안마사 노릇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일터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다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돈이 많아서 택시를 타고 다니면 편했겠지만 한 푼이 아쉬운 저에게는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답니다.
비가 쏟아지는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또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충청도쪽으로 일하러 갈때는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서울에서 일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는데 한번은 3 일동안 일을 해서 돈을 좀 벌어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다가 그만 소매치기를 당해서 빈털털이가 되어 허탈한 마음으로 온적도 있었습니다.
그날은 가족들앞에서 평소보다 더많이 떠들고 웃어대며 제 슬픈마음을 감췄습니다.
한번은 이런적도 있었습니다.
일을 하러 지방으로 가다가 처음 가보는 길이라서 차도와 인도를 분간하지못하고 가다가 달려오던 승용차에 부딛혀 병원에 실려가보니 무릎에 미세한 금이 갔다면서 다 낳을때까지 입원하라고 하는데 일주일만에 퇴원해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일하러 갔습니다.
편히 병원에 누워 있을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무척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5 월 25 일 시각장애인만이 안마를 할수 있다는 법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은다음부터 몸의 고단함보다 100배나 힘든 삶을 살고 있답니다.
헌재의 판결 이후부터는 시술소들이 거의 영업을 하지않고 시위를 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직장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안마사들이 일을 못하니 저를 불러서 안마를 안받으니 저에게는 돈줄이 끊어진것이기도 하고요.
저에게 안마를 받으시던 단골손님들도 더듬거리며 안마하는 제가 부담스럽다고 하시면서 이제 비장애인에게 받으시겠다며 저와의 거래를 끊으시니 저는 그야말로 막막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제 계획은 낮에는 시위를 하고 밤에는 일을 할 생각이었지만 일이 없어서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쏘다니다 밤늦게 집에 들어갑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일하고 오는줄 아실테니까요
부모님이 제가 일이 없어 밤거리를 소다닌다는것을 아시게 되기까지 저는 계속 밤거리를 거닐다가 늦게 들어갈 생각입니다.
그렇게라도해서 부모님이 하루라도 마음편히 주무시게 해드리고싶답니다
저는 몸은 고단했어도 헌재판결 이전이 훨씬 행복했습니다. 다시 저에게 일하는 기쁨을 주세요.
저는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도 한번도 남을 원망하거나 어려운것을 국가나 사회의 탓으로 돌리며 불평해본적이 없었습니다.
6 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서 제손으로 번돈을 헌금도하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와 성가대에서 봉사하면서 안마사가 되게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제 주변의 분들은 앞을 못보는데 뭐가 그렇게 좋아서 항상 웃느냐고 하실만큼 행복하게 살았었는데 한순간에 행복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제 평생의 꿈이 치료실을 갖는것이었는데 이제는 그 꿈을 접어야겠습니다.
제 꿈은 쉽게 접을수 있으나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어느분이 속시원한 답을 주세요.
지금 저는 가족들때문에 죽을수도 살수도 없습니다.
며칠전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사시던 시각장애인 한분이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저도 혼자라면 그분처럼 자살이라도 하겠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여러분 저를 도와주세요 저에게 일터를 찾아주세요
평생을 우직하게 안마만 하면서 살아왔던 저입니다.
저에게 안마를 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