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버린 남자.

배주희2006.06.09
조회80
 

누군가와 헤어지는 게 처음도 아닌데,

헤어진다는 건 여전히

머리카락부터 귓볼..그리고 손톱 발톱까지

저려오는 듯 아프고, 감당하기 힘이 듭니다.

 

뭐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요?

어느 날 이 사이에 낀

커다란 고춧가루라도 목격한 걸까요?

갈비집에 들어갔다가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갈비탕만 한 그릇씩 먹고 나왔던 게

궁색하게 느껴졌던 걸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별의 이유는

늘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소한 실망이,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미묘한 감정이,

이별을 불러왔던 것 같아요.

 

어젯밤엔 답답해서 친한 여자 후배를 불러내

한 잔 했습니다.

 

"나,유미한테 차였다.."

 

이 한 마디에 고맙게도

남자친구랑 춘천가기로 한 약속까지 깨고

나와 주었더군요.

 

"그러니까, 선배, 그 아저씨 같은 안경 좀

 바꾸라고 했잖아요"

 

순간, 농담처럼 건넨 그녀의 대답이

이별의 이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저보고 렌즈를 착용하면 안 되겠냐고

자주 그랬었거든요.

안경 쓴 남자에게 상처받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에야 드는 건..뭘까요?

만약 안경 때문도 아니라면,

그 일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한 번은 외국인이 영어로

어느 소극장 가는 길을 물었는데

제가 대답을 못했거든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데,

그녀가 멋지게 대답을 해 주더군요.

외국인이 간 후,

그녀가 절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었는데...

그때 그녀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게 아닐까요?

 

어쩌면 그녀의 마음엔 제 안경보다

더 두꺼운 돋보기안경이 씌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실제의 저보다 확대되어 보이다가,

어느 날, 그 안경을 벗게 되면서

제 실체를 정확하게 보게 되고..

그래서 실망해서 떠나버린 건지도..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방안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그녀의 흔적뿐입니다.

머리맡엔 아침잠 많은 나를 위해서 선물해준

목청 큰 알람시계가 놓여있고..

그리고 저건 나중에 첫 출근하게 되는 날,

근사하게 매고 가라고 사 준 땡땡이 넥타이.

 

또렷하게 보인다는 게 이렇게

잔인하게 느껴진 적이 없습니다.

 

안경을 벗어 쓰레기통에 버려버렸습니다.

 

그녀가 제 마음에서 희미해지는 날,

새 안경을 맞추러 가게 될 것 같아요.

지금은 이렇게 흐릿한 세상이 더 편안합니다.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이별할 때마다

심장에도 굳은살이 베기면 좋겠다고,

다음 이별을 할 땐 조금 더 무디게,

조금 덜 아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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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영 스윗뮤직박스.#사랑이 ,,사랑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