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는 16년만에 다시 유럽으로 돌아왔다.FIFA본부가 위치한 스위스에서 제5회대회가 열리기로 한 것이다.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많은 유럽국가들은 전쟁으로 실의에 빠져있었지만 축구의 인기는 유럽에서도 여전했다. 이번대회도 어김없이 본선진출을 향한 지역예선전이 펼쳐졌다.관례대로 전대회 우승국 우루과이와 개최국 스위스는 지역예선없이 바로 월드컵본선무대에 진출하게 됐다.
제5회대회는 월드컵대회가 명실상부 세계축구의 최강을 가리는 대회로 더욱 더 발전됐다.지역예선의 모습도 어느정도 갖춰줬고 역대최고인 45개국이 참가신청을 했다.각대륙별로도 축구연맹이 신설되는등 축구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대 전환기가 바로 스위스대회부터이다. 지역예선은 유럽이 총 27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1개의 본선진출국을 가려냈고 남미는 전대회 우승국 우루과이를 포함해 2장,북중미가 1장,그리고 지난 38년 네덜란드령동인도에 이어 아시아에게도 1장의 티켓이 주어졌는데 이 티켓은 바로 우리나라가 거머쥐었다. 본선진출국 중에는 패전국 서독도 포함되 있었다.전쟁으로 인해 동서로 나뉘어진 아픔속에 16년만에 월드컵에 독일이라는 이름대신 서독으로 출전한 것이다.이밖에도 영국4개협회 중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사상 첫 월드컵 동반출전을 기록했고 터키가 처녀출전했다.남미와 북중미에서는 월드컵 단골손님 브라질과 멕시코가 출전했고 아시아에서는 해방된지 6년이 체 되지않았던 한국이 아시아국가로는 2번째로 대회에 참가했다.
한편 이번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는 바로 헝가리였다.헝가리는 1950년대초반 황금기에 돌입했다.우수선수 육성중심의 클럽들이 대거 생겨나면서 이들 클럽간 경기를 치루면서 헝가리축구가 세계축구의 중심이 되어갔다. 사령탑인 보지크를 축으로 공격진의 치보르와 브다이 뛰어난 헤딩으로 황금의 머리라는 별명을 가진 코시스와 강렬한 슛과 뛰어난 기술로 왼발의 마술사라 불리며 유럽역대 최고득점을 올린(A매치 84경기 83골) 헝가리 축구의 전설적인 영웅 페렌츠 푸스카스등이 헝가리가 키워낸 재목들이였다. 헝가리축구가 얼마나 강했는가하면 1953년 잉글랜드 웜블리에서 당시 홈팀인 잉글랜드를 6:3으로 대파했는데 잉글랜드는 웜블리에서 당한 첫 패배였으나 상대팀에게 6골을 내준건 1881년 스코틀랜드전이후 72년만의 일이였다.잉글랜드 축구는 이 패배로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이경기를 중계하던 BBC의 한 아나운서는 헝가리의 화려한 기술에 입을 다물지 못하며 헝가리안 랩소디라고 칭찬했을 정도였다.
제5회스위스대회는 총 16개국이 참가.4개팀씩 1개조로 총 4개조로나뉘어 조1,2위가 8강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 채택됐다.하지만 한가지 특이한 점은 1차리그에서 풀리그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각조의 4개국은 조직위원회 투표에 따라 각각 시드 배정된 2개팀과 그외의 2개팀으로나뉘어져 강한 두팀과 약한 두팀끼리는 대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팀으로 분류된 국가는 총 8개국으로 1조의 브라질과 프랑스,2조의 헝가리와 터키,3조의 우루과이와 오스트리아,4조의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였다. 제5회스위스월드컵 조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헝가리와 한국의 경기는 별 의미가 없었다.아시아의 작은나라 한국은 경기하루 전날이 되서야 배를 타고 스위스에 도착했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이다.그나마 2진은 경기당일 도착했다.이에 반해 1950년부터 4년간 무패를 기록.유럽무대를 평정하며 이번대회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헝가리는 한국을 그저 연습용상대로 여겼다. 첫출전한 한국은 너무나 강한 상대와 첫경기에서 맞붙게 됐다.초반 10분간은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역시 세계축구와의 격차는 컸다.경기전날 도착하며 시차적응도 체 되지않은 문제점도 있었지만 9:0으로 참패한 것이다.헝가리는 약체 한국을 맞아 여유있게 첫승을 올렸고 한국은 여정을 풀 여유도 없이 다음 터키전을 준비해야 했다.이경기 스코어차는 월드컵 역대 최고스코어차로 아직도 기록되고 있다.
1954년6월20일 제네바 샤르밀레스 스타디움 관중:3000 터키(1승1패) 7(4-0)0 한국(2패)
8.마마트 수아트(터키)전반 10분,전반 30분
11.쿠쿠칸돈 레프테르(터키)전반 24분
10.사르귄 부르한(터키)전반 37분,후반 19분,후반 25분
7.케스킨 에롤(터키)후반 31분
한국은 터키와의 2차전을 위해 제네바로 이동했다.한국팀은 헝가리전에서대패로 일부멤버를 교체.전열을 새롭게 정비했으나 결과는 7:0 또다시 대패였다.부르한에게 헤트트릭을 허용했고 수아트에 2골을 내주며 무너졌다.한국은 세계축구의 높은 벽을 새삼 느낄수 밖에 없었다. 경기후 숙소로 돌아온 한국팀은 스위스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에 놀랐다.숙소에는 전쟁으로 페허가 된 가난한 나라 한국을 위해 초코릿과 점퍼,양복 등의 위문품이 가득했던 것이다. 한국선수단의 희망은 결승전을 보고 가는 것이였지만 머물수 있는 경비가 부족했다.관중 입장료의 일정액을 출전국에게 분배하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그후 스위스 월드컵조직위원회는 한국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배당금 8천달러를 받아가라는 독촉장을 보냈지만 이미 한국팀은 떠난 뒤였다.
플레이오프 1954년6월23일 취리히 하드투름 스타디움 관중:18000 서독(1승1패) 7(3-1)2 터키(1승1패)
15.오트머 발터(서독)전반 7분
20.한스 쉐퍼(서독)전반 12분,후반 34분
4.무스타파 에르톤(터키)전반 21분
13.막스 몰록(서독)전반 30분,후반 15분,후반 32분
16.프리츠 발터(서독)후반 17분
11.쿠쿠칸돈 레프테르(터키)후반 37분
나란히 1승1패씩을 마크.승점2점을 얻은 서독과 터키가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났다.현재같으면 골득실차를 따져 터키(+4)가 서독(-2)가 올라가는 상황이였지만 당시에는 골득실차가 적용되지 않았다. 서독은 헝가리전에서 뛰지 않았던 주력선수 대부분이 출전.터키를 7:2로 대파했다.터키는 이상하게도 주력선수였던 수아트와 부르한 등을 경기에 투입하지 않았다.결국 대패를 자초한 것이다. 서독은 이 승리로 조2위로 8강에 합류했다.
2조최종순위
1.헝가리 2승0무0패 17득점 3실점 +14 승점 4
2.서독 2승0무1패 14득점 11실점 +3 승점 4
3.터키 1승0무2패 10득점 11실점 -1 승점 2
4.한국 0승0무2패 0득점 16실점 -16 승점 0
헝가리,서독 8강진출!
월드컵 정신을 보여준 훈훈한 사진 두장
'승자독식'의 냉혹한 그라운드 세계에 두 장의 사진이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사진의 주인공들이 한국과 토고 선수들이라 더욱 남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첫번째 사진은 전반전 토고 선수의 태클에 걸려 넘어진 한국의 이을용 선수를 토고 선수가 주물러 주고 있는 장면. 이을용 선수도 오른쪽 발을 토고 선수에게 맡긴 채 편안하게 마사지(?)를 받고 있다. 마사지 하는 모습이 마치 근육경련(일명 '쥐')을 풀어주는 것 같다. 옆에 있는 조재진(19번)도 토고 선수의 호의를 물리칠 수 없는 듯 바라보고 있다.
두번째 사진은 한국-토고전 종료 뒤 그라운드에서 쓸쓸히 축구화 끈을 풀고 있던 토고의 쿠바자 선수에게 이영표가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쿠바자는 전반전 30분쯤 선취골을 넣은 선수. 토고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첫 골을 넣어 첫 승리의 감격을 잠시나마 토고 국민들에게 안겨주었던 선수. 그만큼 한국에 역전패 당한 것이 가슴 아팠을터. 독일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을 가득 메운 채 승리에 열광하고 있는 한국의 응원단들의 함성에 토고 선수들은 풀죽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이영표의 따뜻한 위로의 손이 쿠바자의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관객들이 스포츠의 매력에 빠져 드는 것은 환상적인 경기기술이나 짜릿한 승리의 기쁨때문만은 아니다. 가슴 뻐근하게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따뜻한 인간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주최측의 실수로 인해서 두번째 울리는 애국가에 겹쳐지던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고, 에스코트하던 아이들이 서둘러 떠나는 모습과 붙잡으려고 머뭇거리던 토고선수들의 작은 소요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울리던 토고의 국가, 아름다운 멜로디였다. 웅장한 애국가와는 또 다른 우아한 맛이 있었다.
그렇게 시합은 시작되었다.
월드컵 사상 원정경기 첫승을 향한 한국선수들과 월드컵 첫 출전 첫승리를 향한 토고선수들의 긴장감과 치열한 몸싸움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전에 그들 축구협회와 선수들 그리고 감독간의 불화로 인해서, 연습 한번 제대로 못한 선수들 치고는 스피디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공격을 보여주더니 결국 선취골을 뽑았다. 그들의 골 세레모니는 전쟁에 나가서 승리한 후 추는 토고의 춤이라고 했다.
치열한 몸싸움 중간 중간 보여준 선수들 간의 작은 몸 짓은, 현대의 戰場 인 스포츠의 또 다른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가와 민족의 우월함을 뽐내는 수단으로서 이용되어지는 비인간적인 도구가아니라, 이것이 인간과 인간이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친구가 될수 있는 인간적인 소통의 장이라는 것이다. 비록 서로를 밀고 당기고 쓰러뜨리던 치열함 속에서 손을 내밀고 어깨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속에서, 스포츠의 기본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싸우면서 정이 들었던 어린시절의 친구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적수로서 친구로서 인정하게 된다. 늘 답습되는 진정한 남자들간의 우정을 다루는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시합을 지켜보면서 그것을 다시 한번 느낄수 있었다.
아마 우리가 유럽의 전통적인 강호들 같은 강팀이었다면, 어쩌면, 우리가 토고선수를 위로하는 모습은 단순한 강자의 배려라고 볼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것과는 다른 한국선수들을 보았다. 가난하고 힘이 없었던 시절 부터, 현격히 떨어지는 실력으로 늘 패배했던 우리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그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그들을 격려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도 많은 네티즌이 이제는 토고를 응원하겠다고 하는 걸 것이다.
월드컵출전 첫 경기 치고는 너무 잘 싸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것이 우리가 그들에게서 승리했기 때문에 여유롭게 해주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첫 경기 치고는 너무나 잘 싸웠다. 아마 그들이 제대로 연습했다면, 승부는 어떻게 됐을 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도, 지난 월드컵에서 홈어드밴티지를 얻고 심판을 매수해서 4강 신화를 이룩했다며 손가락질 하는 거만한 유럽인들의 매서운 시선 속에서 정말 충분히 잘 싸웠다고 칭찬하고 싶다.
난 우리의 월드컵 역사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 속에서, 친구를 만들어 나가는 한국인이 자랑스럽다. 지난 월드컵에서 한국전에 참전국 중의 하나이자 우리의 첫 56년 월드컵에서 강한 적수가 되어주었던 터키를 형제의 국가로 발견했으며, 희동구 감독님의 나라 네덜란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토고선수들을 향해서 아낌없는 응원을 쏟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으로 인해서 우리는 호주를 조금 더 친숙하게 느낄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는 이렇게 친구를 만들어나가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56년 첫 출전한 한국팀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스위스와 우리는 승부를 겨뤄야 하지만, 정말 멋있는 승부를 펼쳐 줄것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2002년 독일팀을 잘 보살펴주었던 한국을 위해서 이제 2006년 독일을 찾아준 한국팀을 잘 접대하겠다던 한국팀 숙소의 호텔매니저의 우정어린 코멘트가 생각이 난다.
이것이 스포츠이다. 단지,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이 하는 것만이 아닌, 바로 이것이 스포츠이다.
56년 월드컵의 한국과 2006년 월드컵의 토고
http://cafe.naver.com/woldsoccer.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65
월드컵는 16년만에 다시 유럽으로 돌아왔다.FIFA본부가 위치한 스위스에서 제5회대회가 열리기로 한 것이다.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많은 유럽국가들은 전쟁으로 실의에 빠져있었지만 축구의 인기는 유럽에서도 여전했다. 이번대회도 어김없이 본선진출을 향한 지역예선전이 펼쳐졌다.관례대로 전대회 우승국 우루과이와 개최국 스위스는 지역예선없이 바로 월드컵본선무대에 진출하게 됐다.
제5회대회는 월드컵대회가 명실상부 세계축구의 최강을 가리는 대회로 더욱 더 발전됐다.지역예선의 모습도 어느정도 갖춰줬고 역대최고인 45개국이 참가신청을 했다.각대륙별로도 축구연맹이 신설되는등 축구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대 전환기가 바로 스위스대회부터이다. 지역예선은 유럽이 총 27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1개의 본선진출국을 가려냈고 남미는 전대회 우승국 우루과이를 포함해 2장,북중미가 1장,그리고 지난 38년 네덜란드령동인도에 이어 아시아에게도 1장의 티켓이 주어졌는데 이 티켓은 바로 우리나라가 거머쥐었다. 본선진출국 중에는 패전국 서독도 포함되 있었다.전쟁으로 인해 동서로 나뉘어진 아픔속에 16년만에 월드컵에 독일이라는 이름대신 서독으로 출전한 것이다.이밖에도 영국4개협회 중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사상 첫 월드컵 동반출전을 기록했고 터키가 처녀출전했다.남미와 북중미에서는 월드컵 단골손님 브라질과 멕시코가 출전했고 아시아에서는 해방된지 6년이 체 되지않았던 한국이 아시아국가로는 2번째로 대회에 참가했다.
한편 이번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는 바로 헝가리였다.헝가리는 1950년대초반 황금기에 돌입했다.우수선수 육성중심의 클럽들이 대거 생겨나면서 이들 클럽간 경기를 치루면서 헝가리축구가 세계축구의 중심이 되어갔다. 사령탑인 보지크를 축으로 공격진의 치보르와 브다이 뛰어난 헤딩으로 황금의 머리라는 별명을 가진 코시스와 강렬한 슛과 뛰어난 기술로 왼발의 마술사라 불리며 유럽역대 최고득점을 올린(A매치 84경기 83골) 헝가리 축구의 전설적인 영웅 페렌츠 푸스카스등이 헝가리가 키워낸 재목들이였다. 헝가리축구가 얼마나 강했는가하면 1953년 잉글랜드 웜블리에서 당시 홈팀인 잉글랜드를 6:3으로 대파했는데 잉글랜드는 웜블리에서 당한 첫 패배였으나 상대팀에게 6골을 내준건 1881년 스코틀랜드전이후 72년만의 일이였다.잉글랜드 축구는 이 패배로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이경기를 중계하던 BBC의 한 아나운서는 헝가리의 화려한 기술에 입을 다물지 못하며 헝가리안 랩소디라고 칭찬했을 정도였다.
제5회스위스대회는 총 16개국이 참가.4개팀씩 1개조로 총 4개조로나뉘어 조1,2위가 8강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 채택됐다.하지만 한가지 특이한 점은 1차리그에서 풀리그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각조의 4개국은 조직위원회 투표에 따라 각각 시드 배정된 2개팀과 그외의 2개팀으로나뉘어져 강한 두팀과 약한 두팀끼리는 대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팀으로 분류된 국가는 총 8개국으로 1조의 브라질과 프랑스,2조의 헝가리와 터키,3조의 우루과이와 오스트리아,4조의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였다. 제5회스위스월드컵 조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1조:브라질,프랑스,멕시코,유고슬라비아
2조:헝가리,터키,한국,서독
3조:우루과이,오스트리아,스코틀랜드,체코슬로바키아
4조:잉글랜드,이탈리아,스위스,벨기에
1954년6월17일 취리히 하드투름 스타디움 관중:18000 헝가리(1승) 9(4-0)0 한국(1패)
10.페렝크 푸스카스(헝가리)전반 12분,후반 44분
4.미할리 란토스(헝가리)전반 18분
8.산도르 콕시스(헝가리)전반 24분,전반 36분,후반 5분
11.졸탄 치보르(헝가리)후반 14분
19.페테르 팔로타스(헝가리)후반 30분,후반 38분
헝가리와 한국의 경기는 별 의미가 없었다.아시아의 작은나라 한국은 경기하루 전날이 되서야 배를 타고 스위스에 도착했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이다.그나마 2진은 경기당일 도착했다.이에 반해 1950년부터 4년간 무패를 기록.유럽무대를 평정하며 이번대회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헝가리는 한국을 그저 연습용상대로 여겼다. 첫출전한 한국은 너무나 강한 상대와 첫경기에서 맞붙게 됐다.초반 10분간은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역시 세계축구와의 격차는 컸다.경기전날 도착하며 시차적응도 체 되지않은 문제점도 있었지만 9:0으로 참패한 것이다.헝가리는 약체 한국을 맞아 여유있게 첫승을 올렸고 한국은 여정을 풀 여유도 없이 다음 터키전을 준비해야 했다.이경기 스코어차는 월드컵 역대 최고스코어차로 아직도 기록되고 있다.
1954년6월20일 제네바 샤르밀레스 스타디움 관중:3000 터키(1승1패) 7(4-0)0 한국(2패)
8.마마트 수아트(터키)전반 10분,전반 30분
11.쿠쿠칸돈 레프테르(터키)전반 24분
10.사르귄 부르한(터키)전반 37분,후반 19분,후반 25분
7.케스킨 에롤(터키)후반 31분
한국은 터키와의 2차전을 위해 제네바로 이동했다.한국팀은 헝가리전에서대패로 일부멤버를 교체.전열을 새롭게 정비했으나 결과는 7:0 또다시 대패였다.부르한에게 헤트트릭을 허용했고 수아트에 2골을 내주며 무너졌다.한국은 세계축구의 높은 벽을 새삼 느낄수 밖에 없었다. 경기후 숙소로 돌아온 한국팀은 스위스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에 놀랐다.숙소에는 전쟁으로 페허가 된 가난한 나라 한국을 위해 초코릿과 점퍼,양복 등의 위문품이 가득했던 것이다. 한국선수단의 희망은 결승전을 보고 가는 것이였지만 머물수 있는 경비가 부족했다.관중 입장료의 일정액을 출전국에게 분배하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그후 스위스 월드컵조직위원회는 한국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배당금 8천달러를 받아가라는 독촉장을 보냈지만 이미 한국팀은 떠난 뒤였다.
플레이오프 1954년6월23일 취리히 하드투름 스타디움 관중:18000 서독(1승1패) 7(3-1)2 터키(1승1패)
15.오트머 발터(서독)전반 7분
20.한스 쉐퍼(서독)전반 12분,후반 34분
4.무스타파 에르톤(터키)전반 21분
13.막스 몰록(서독)전반 30분,후반 15분,후반 32분
16.프리츠 발터(서독)후반 17분
11.쿠쿠칸돈 레프테르(터키)후반 37분
나란히 1승1패씩을 마크.승점2점을 얻은 서독과 터키가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났다.현재같으면 골득실차를 따져 터키(+4)가 서독(-2)가 올라가는 상황이였지만 당시에는 골득실차가 적용되지 않았다. 서독은 헝가리전에서 뛰지 않았던 주력선수 대부분이 출전.터키를 7:2로 대파했다.터키는 이상하게도 주력선수였던 수아트와 부르한 등을 경기에 투입하지 않았다.결국 대패를 자초한 것이다. 서독은 이 승리로 조2위로 8강에 합류했다.
2조최종순위
1.헝가리 2승0무0패 17득점 3실점 +14 승점 4
2.서독 2승0무1패 14득점 11실점 +3 승점 4
3.터키 1승0무2패 10득점 11실점 -1 승점 2
4.한국 0승0무2패 0득점 16실점 -16 승점 0
헝가리,서독 8강진출!
월드컵 정신을 보여준 훈훈한 사진 두장
'승자독식'의 냉혹한 그라운드 세계에 두 장의 사진이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사진의 주인공들이 한국과 토고 선수들이라 더욱 남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첫번째 사진은 전반전 토고 선수의 태클에 걸려 넘어진 한국의 이을용 선수를 토고 선수가 주물러 주고 있는 장면. 이을용 선수도 오른쪽 발을 토고 선수에게 맡긴 채 편안하게 마사지(?)를 받고 있다. 마사지 하는 모습이 마치 근육경련(일명 '쥐')을 풀어주는 것 같다. 옆에 있는 조재진(19번)도 토고 선수의 호의를 물리칠 수 없는 듯 바라보고 있다.
두번째 사진은 한국-토고전 종료 뒤 그라운드에서 쓸쓸히 축구화 끈을 풀고 있던 토고의 쿠바자 선수에게 이영표가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쿠바자는 전반전 30분쯤 선취골을 넣은 선수. 토고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첫 골을 넣어 첫 승리의 감격을 잠시나마 토고 국민들에게 안겨주었던 선수. 그만큼 한국에 역전패 당한 것이 가슴 아팠을터. 독일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을 가득 메운 채 승리에 열광하고 있는 한국의 응원단들의 함성에 토고 선수들은 풀죽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이영표의 따뜻한 위로의 손이 쿠바자의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관객들이 스포츠의 매력에 빠져 드는 것은 환상적인 경기기술이나 짜릿한 승리의 기쁨때문만은 아니다. 가슴 뻐근하게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따뜻한 인간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노컷뉴스 이기범 기자 hope@cbs.co.kr
http://http://sports.chosun.com/news/news.htm?name=/news/sports/200606/20060609/66i18802.htm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가 간략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스포츠 조선의 기사
토고선수들 그들은 우리의 월드컵 도전 역사를 알고는 있을까?
아마 우리 선수들은 그들을 위로했다기 보다는 그들을 십분 아니 백분 이해했을 것이다.
경기시작 부터, 나는 그들의 슬픈 눈이 마음에 걸렸다.
주최측의 실수로 인해서 두번째 울리는 애국가에 겹쳐지던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고, 에스코트하던 아이들이 서둘러 떠나는 모습과 붙잡으려고 머뭇거리던 토고선수들의 작은 소요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울리던 토고의 국가, 아름다운 멜로디였다. 웅장한 애국가와는 또 다른 우아한 맛이 있었다.
그렇게 시합은 시작되었다.
월드컵 사상 원정경기 첫승을 향한 한국선수들과 월드컵 첫 출전 첫승리를 향한 토고선수들의 긴장감과 치열한 몸싸움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전에 그들 축구협회와 선수들 그리고 감독간의 불화로 인해서, 연습 한번 제대로 못한 선수들 치고는 스피디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공격을 보여주더니 결국 선취골을 뽑았다. 그들의 골 세레모니는 전쟁에 나가서 승리한 후 추는 토고의 춤이라고 했다.
치열한 몸싸움 중간 중간 보여준 선수들 간의 작은 몸 짓은, 현대의 戰場 인 스포츠의 또 다른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가와 민족의 우월함을 뽐내는 수단으로서 이용되어지는 비인간적인 도구가아니라, 이것이 인간과 인간이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친구가 될수 있는 인간적인 소통의 장이라는 것이다. 비록 서로를 밀고 당기고 쓰러뜨리던 치열함 속에서 손을 내밀고 어깨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속에서, 스포츠의 기본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싸우면서 정이 들었던 어린시절의 친구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적수로서 친구로서 인정하게 된다. 늘 답습되는 진정한 남자들간의 우정을 다루는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시합을 지켜보면서 그것을 다시 한번 느낄수 있었다.
아마 우리가 유럽의 전통적인 강호들 같은 강팀이었다면, 어쩌면, 우리가 토고선수를 위로하는 모습은 단순한 강자의 배려라고 볼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것과는 다른 한국선수들을 보았다. 가난하고 힘이 없었던 시절 부터, 현격히 떨어지는 실력으로 늘 패배했던 우리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그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그들을 격려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도 많은 네티즌이 이제는 토고를 응원하겠다고 하는 걸 것이다.
월드컵출전 첫 경기 치고는 너무 잘 싸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것이 우리가 그들에게서 승리했기 때문에 여유롭게 해주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첫 경기 치고는 너무나 잘 싸웠다. 아마 그들이 제대로 연습했다면, 승부는 어떻게 됐을 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도, 지난 월드컵에서 홈어드밴티지를 얻고 심판을 매수해서 4강 신화를 이룩했다며 손가락질 하는 거만한 유럽인들의 매서운 시선 속에서 정말 충분히 잘 싸웠다고 칭찬하고 싶다.
난 우리의 월드컵 역사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 속에서, 친구를 만들어 나가는 한국인이 자랑스럽다. 지난 월드컵에서 한국전에 참전국 중의 하나이자 우리의 첫 56년 월드컵에서 강한 적수가 되어주었던 터키를 형제의 국가로 발견했으며, 희동구 감독님의 나라 네덜란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토고선수들을 향해서 아낌없는 응원을 쏟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으로 인해서 우리는 호주를 조금 더 친숙하게 느낄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는 이렇게 친구를 만들어나가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56년 첫 출전한 한국팀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스위스와 우리는 승부를 겨뤄야 하지만, 정말 멋있는 승부를 펼쳐 줄것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2002년 독일팀을 잘 보살펴주었던 한국을 위해서 이제 2006년 독일을 찾아준 한국팀을 잘 접대하겠다던 한국팀 숙소의 호텔매니저의 우정어린 코멘트가 생각이 난다.
이것이 스포츠이다. 단지,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이 하는 것만이 아닌, 바로 이것이 스포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