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KGB를 찾아라

권경미200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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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또다시 셜록 흠즈 시리즈에 푹 빠져, 세상에 추리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다고 굳게 믿으며 '생활의 추리화'를 실천하는 바, 미스터리한 사건이 하나 터졌으니 홈즈에게서 배운 추리실력을 바탕으로 나의 명예를 걸고 꼭 범인을 찾고 말겠노라.

여기서 나의 추리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해줄 왓슨 박사가 필요하나 주변에 그렇게 한가한 인물이 없는 관계로 나의 손과 머리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바, 하나도 빼놓지 말고 정확하게 옮겨적도록 해 주게나.

자, 이제 시작해볼까.

 

여보게 왓슨, 자네에게 이 미스터리한 사건을 먼저 이야기 해 주겠네. 사건은 이러하다네. 만만찮은 가격으로 인해 가끔 한두병씩 사다모은 수입맥주와 리큐르, 와인이 꽤 모였을 무렵, 난 큰맘먹고 KGB레몬 캔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시원한 리큐르가 주는 기쁨을 떠올리며 냉장고의 문을 열었지만... 없었다네. 사라져 버린 것일세.

불현듯 나쁜 예감이 들어 베란다로 나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분리수거 통에 처참하게 찌그러진 모습으로 운명을 다한채 누워있는 캔이 보였네.

"홈즈, 자네는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나?"

왓슨, 이것은 단순한 가정사(?)일세.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나의 명예와 가엾은 KGB를 위해 꼭 범인을 밝혀내고야 말겠네.

자, 그럼 이제 시작하겠네.

먼저 나는 가족들을 상대로 집요한 심문에 들어갔으나 하나같이 범행 사실을 부인하였다네. 캔이 없어지기까지의 기간중 집을 방문한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것으로 보아 분명 내부인의 소행임이 확실하네.

그럼 가족들을 살펴보겠네.

첫번째로 아빠. 술을 좋아하시지만 리큐르는 좋아하지 않으시네. 내가 냉장고에 넣어둔 와인은 몇달째 거들떠도 보시지 않으시는 분이라네. 하지만 다른 가족들도 나의 와인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네.

아빠가 늦게 들어와 캔을 발견하고 마셨을 가능성은 어떤가?

하지만 리큐르같지 않은 너무 예쁜 캔은 그것이 음료수라고 착각할수도 있고, 음료수는 전혀 마시지 않는 아빠가 그것을 리큐르라고 단정짓고 마셨을까? 물론 캔에 씌어져 있긴 하지만 그렇게 작은 글자를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네.그리고 나이가 많은 아저씨가 KGB같은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진 리큐르를 알고 있었을 거라곤 절대 생각지 않네. 따라서 아빠는 캔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네.

하지만 의혹을 떨쳐버릴수 없는 것은, 캔이 찌그러진채 버려져 있었다는 것이네. 손아귀 힘이 센 아빠 말고는 다들 캔을 그냥 버리기 때문이라네.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이 지난후 토고전이 있었을때 아빠는 내방에 들어와 진열된 맥주더미를 보더니 응원하며 마셔야겠다고 말씀하셨네. 아빠는 그때 내 맥주의 존재를 처음 보셨다고 하시더군.

그러면 가끔 지나다니면서도 내 맥주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술에 관심이 없으시단 말도 되는것이지.

그리고 언니가 있다네. 언니는 KGB를 알고, 처음 내가 맥주를 모으던 시점부터 내 맥주를 훤히 꿰뚫고 있었으며 가끔 내 맥주를 몹시 탐내기도 했었다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도 내가 맥주를 한병 건네기도 했다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맥주였고 언니는 리큐르 종류는 좋아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쉽게 꺼내 마실 생각을 하는 것은 물론 언니일 것이네. 다른 가족들은 자신의 음료가 아니면 손을 대지 않겠지만 언니는 그렇지 않았다네. 그리고 가끔 맥주를 사다가 한병씩 밤에 마시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네.

또, 엄마가 있네. 원래부터 음료수나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당연히 KGB가 무엇인지도 모르실 엄마는 범행의 가능성이 가장 적지만 그래도 쉽게 범인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라네. 원래 가장 알리바이가 확실한 사람이 범인일 경우도 몹시 많으니까 말일세. 왓슨, 나는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생이 있다네.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간 동생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지만 고백하건대 얼마전 몹시 더웠던 밤, 내가 부추겨서 사이좋게 KGB화이트그라피 병을 반씩 나눠마신 일이 있었다네. 그녀석은 술같지 않고 맛있다고 말했다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나를 통해 맥주나 와인을 한모금씩 맛본 일이 있고, 이미 KGB를 맛본 이상, 캔을 본 순간 동일한 리큐르임을 몰랐을 리가 없네.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특별 유도심문을 해보았지.

'○아, KGB중에서 흰색이 맛있어, 빨간색이 맛있어?'

'나 흰색은 먹어본적 없는데'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하는 녀석의 눈빛은 단호했다네. 우리가 함께 마셨던 것은 빨간색, 화이트그라피였고 없어진 캔은 흰색, 레몬이었다네.

이후에도 또다시 불시에 유도심문을 시도하였으나 대답엔 변함이 없었다네.

그리고 녀석의 성격을 보았을때 제아무리 누나가 맛을 보여 준 리큐르라 할지라도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채 리큐르를 꺼내 마실 위인은 아니라네. 그리고 음료수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이미 마셔보았고 색깔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KGB병과 같은 캔이라는 것을 모를만큼 둔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네.

지금도 순진한 얼굴을 하고 학원가방을 울러메고 아이스크림을 빨며 학원으로 향하는 녀석을 보았을때, 놈이 범인이라고는 상상도 할수 없다네.

그렇다면 의외의 인물, 엄마일까? 동기가 모호하긴 하지만 그럴수도 있다네. 단순히 호기심에 의해 마실수도 있으니 말일세.

사건을 종합해 보세. 쓰레기 분리수거 함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은 또다른 사실을 나타낸다네.

언니라면 분리수거에 관심이 없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을 가능성이 크네. 하지만 아빠라면 분리수거를 철저히 할것이고, 캔이 찌그러져 있었다는 것 또한 충분히 의심케 한다네.

하지만 냉장고 안의 리큐르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일 인물은 단연 언니라네. 다른 가족들은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고, 따라서 꺼내 볼 생각조차 않을 것이기 때문일세.

자, 그럼 범인은 누구일까?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보았을때 나는 범인은 ○○일 것이라 생각하네. 하지만 우리 가족의 명예를 위해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네.

그렇다면 왓슨, 자네는 과연 누가 범인이라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