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밝히고 복 짓는 곳입니다. 마음 공부를 통해서 지혜를 얻어 마음의 자유를 누리고 복 짓는 삶으로 복락이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정신수양(定, 養性, 마음을 맑히는 공부), 사리연구(慧, 見性, 마음을 밝히는 공부), 작업취사(戒, 率性, 마 음을 바루는 공부) 세가지 마음 공부를 통해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고자 합니다.
또한 네가지 은혜(천지님 은혜, 부모님 은혜, 동포님 은혜, 법률님 은혜)를 깨달아 보은하는 것이 곧 불공이 되며 복을 장만하는 길이 되어 복락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제 생각에는 가장 쉽고, 넓고, 깊은 그리고 진보된 종교라고 봅니다.
쉽다-일상생활 속에서 진리와의 하나됨, 깨달음을 구하고 안전한 인격완성을 추구합니다. 교리구조와 내용이 이보다 더 쉬울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으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 분들의 판단 기준은 아마도 서양 종교의 그 것에 집착되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넓다 - 원불교에만 진리가 있고 다른 종교는 모두 열등하다는 식의 주장은 발붙일 수 없는 곳이 원불교입 니다. 원불교 또한 진리표현의 한 노력이며 진리구현의 또 다른 운동입니다. 진리에 근거한 건전한 종교들, 사람들과 낙원건설을 위해 땀흘리며 손잡고 나아갈 뿐입니다. 원불교라는 것이 또 다른 인간의 굴레가 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깊다-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신앙 수행을 통해 들어가다 보면 원불교에서 제시하는 완전한 인격완성, 진리 에 대한 깨달음의 궁극적 목표가 대단히 심오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보적이다-다른 종교를 편하하려는 표현은 아니고 다만 88년의 역사를 가진 젊은 종교이기 때문에 그리고 종교사상적으로 원용회통하며 모든 종교의 장점들을 수용해내고 있기 때문에 진보적이라는 말을 사용했습 니다
인격체, 신격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누구를' 믿는다는 말보다는 '무엇을' 믿는다는 말이 맞겠지요.
【원리편6장】말씀하시기를「사람도 보지 못한 사람을 이름으로만 있다고 일러 주면 허허해서 알기가 어려우나 사진으로 보여 주면 더 절실히 알게 되는 것 같이 대종사께서는 일원상으로 진리 그 당체의 사진을 직접 보여 주셨으므로 학인들이 그 지경을 더우잡기가 훨씬 편리하게 되었나니라. 일원상은 곧 진리 전체의 사진이니,이 진리의 사진으로써 연구의 대상을 삼고 정성을 쌓으면 누구나 참 진리 자리를 쉽게 터득할지라,대종사께서 "과거 회상은 일여래 천보살 시대였으나 앞으로는 천여래 만보살이 출현하리라"하셨나니라.」
【경의편40장】객이 묻기를「귀교는 무신입니까,유신입니까.」 답하시기를「우리는 어디에 따로 계시는 인격적 신은 인정하지 아니하나,우주를 관통하여 두루 있는 신령한 진리는 이을 인정하나니,우리의 마음을 단련하여 우주의 그 진리를 이용하며 그 위력을 얻자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니라.」 또 묻기를「귀교는 유심입니까,유물입니까.」 답하시기를「물심일여으로 보나니, 우주만유의 본체는 물과 심이 둘이 아닌 동일체이나 운용하는 데 있어서는 심이 체가 되고 물이 용이 되나니라.」
원불교에서 믿고 닮아나가는 이 우주의 진리를 모양새로 표현한 것입니다. 말로 이를 때는 '한 둥그런 모양'이라는 뜻으로 '일원상(一圓相)'이라고 하며,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 '법신불 일원상(法身佛一圓相)'이라고도 합니다. 궁극적 진리를 표상했다고 보면 되겠지요.
원불교 창시자인 대종사님의 언행록인 대종경 교의품 3장에 수록된 말씀입니다. 광전(光田)이 여쭙기를「일원상과 인간과의 관계가 어떠하오니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네가 큰 진리를 물었도다. 우리 회상에서 일원상을 모시는 것은 과거 불가에서 불상을 모시는 것과 같으나,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形體)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광대무량하여 능히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하였나니, 곧 천지 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入定處)라, 유가에서는 이를 일러 태극(太極) 혹은무극(無極)이라 하고, 선가에서는 이를 일러 자연 혹은 도라 하고, 불가에서는 이를 일러 청정 법신불이라 하였으나,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바로서 비록 어떠한 방면 어떠한 길을 통한다 할지라도 최후 구경에 들어가서는 다이 일원의 진리에 돌아가나니, 만일 종교라 이름하여 이러한 진리에 근원을 세운 바가 없다면 그것은 곧 사도(邪道)라, 그러므로 우리 회상에서는 이 일원상의 진리로써 우리의 현실 생활과 연락시키는 표준을 삼았으며, 또는 신앙과 수행의 두 문을 밝히었나니라.」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을 쉽게 풀어보면 '그럴 듯 한데 사실은 아닌 것'쯤 될까요?
남들을 위해서 희생한다고 하면서 소수 집단의 배만 불린다. 헌금을 강조하면서 그 헌금을 헛되이 써버린다. 절제와 규범을 강조하면서 스스로는 도덕적 해이와 일탈을 일삼는다. 건전한 사회규범에 반한다. 상식을 너무나 벗어난다. ...뭐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없는 길을 제시한다든지...
원불교가 사이비가 아닌가 궁금하시다면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직접 관찰하고 체험해봐야 할 것 같네요. 물론 시간 낭비를 줄이시려면 믿어볼 만한 종교라는 제 말씀을 한 번 믿어보시는 것도 좋구요.
【교의품3장】광전(光田)이 여쭙기를「일원상과 인간과의 관계가 어떠하오니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네가 큰 진리를 물었도다. 우리 회상에서 일원상을 모시는 것은 과거 불가에서 불상을 모시는 것과 같으나,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形體)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광대 무량하여 능히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하였나니, 곧 천지 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入定處)라, 유가에서는 이를 일러 태극(太極) 혹은 무극(無極)이라 하고, 선가에서는 이를 일러 자연 혹은 도라 하고, 불가에서는 이를 일러 청정 법신불이라 하였으나,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바로서 비록 어떠한 방면 어떠한 길을 통한다 할지라도 최후 구경에 들어가서는 다이 일원의 진리에 돌아가나니, 만일 종교라 이름하여 이러한 진리에 근원을 세운 바가 없다면 그것은 곧 사도(邪道)라, 그러므로 우리 회상에서는 이 일원상의 진리로써 우리의 현실 생활과 연락시키는 표준을 삼았으며, 또는 신앙과 수행의 두 문을 밝히었나니라.」
교화사업을 주로 전개하는 교당은 국내에 506개, 해외 11개국에 46개, 복지관, 어린이집, 교육기관, 문화기관, 단체등 기관이 190개가 있습니다.
원불교의 수행법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다양합니다. 마음의 자유와 완전한 인격완성을 목적하는 우리 원불교는 마음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보면 되는 데, 그 마음공부에는 세 가지가 있지요. 마음을 고요히 가라 앉히고 맑히는 정신수양(精神修養), 지혜를 밝히는 사리연구(事理硏究), 몸과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는 작업취사(作業取捨)가 그 것입니다.
각각의 과목들을 보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정신수양을 위해서는 좌선과 염불을 하며, 사리연구를 위해서는 경전·강연·회화·의두·성리·정기일기를 하며, 작업취를 위해서는 상시일기·주의·조행 등의 가목이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정신수양를 하고 낮에는 자신과 공익을 위해 보은노력하며 밤에는 참회반성하는 일과를 지킵니다. 그리고 일정기간을 정해서 전문적인 자기 충전의 시간, 정기훈련을 합니다.
【서품19장】대종사 또 말씀하시기를「과거 불가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혹경전을 가르치며, 혹은 화두(話頭)를 들고 좌선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염불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주문을 가르치며, 혹은 불공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그 가르치는 본의가 모든 경전을 가르쳐서는 불교에 대한 교리나 제도나 역사를 알리기 위함이요, 화두를 들려서 좌선을 시키는 것은 경전으로 가르치기도 어렵고 말고 가르치기도 어려운 현묘한 진리를 깨치게 함이요, 염불과 주문을 읽게 하는 것은 번거한 세상에 사는 사람이 애착 탐착이 많아서 정도(正道)에 들기가 어려운 고로 처음 불문에 오고 보면 번거한 정신을 통일 시키기 위하여 가르치는 법이요, 불공법은 신자의 소원 성취와 불사(佛事)에 도움울 얻기 위하여 가르치나니, 신자에 있어서는 이 과목을 한 사람이 다 배워야 할 것인데 이 과목 중에서 한 과목이나 혹은 두 과목을 가지고 거기에 집착하여 편벽된 수행 길로써 서로 파당을 지어 신자의 신앙과 수행에 장애가 되었으므로, 우리는 이 모든 과목을 통일하여 선종의 많은 화두와 교종의 모든 경전을 단련하여, 번거한 화두와 번거한 경전은 다 놓아 버리고 그 중에 제일 강령과 요지을 밝힌 화두와 경전으로 일과 이치에 연구력 얻는 과목을 정하고, 염불·좌선·주문을 단련하여 정신 통일하는 수양 과목을 정하고, 모든 계율과 과보 받는 내역과 사은의 도를 단련하여 세간 생활에 적절한 작업 취사의 과목을 정하고, 모든 신자로 하여금 이 삼대 과목을 병진하게 하였으니, 연구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이무애(理無碍) 사무애(事無碍) 하는 연구력을 얻게 하며, 수양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사물에 끌리지 않는 수양력을 얻게 하며, 취사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불의와 정의를 분석하고 실행하는 데 취사력을 얻게 하여, 이 삼대력(三大力)으로써 일상 생활에 불공하는 자료을 삼아 모든 서원을 달성하는 원동력을 삼게 하면 교리가 자연 통일될 것이요 신자의 수행도 또한 원만하게 될 것이니라.」
불교적 진리를 공유하고 기본적인 사상의 토대를 함께 한다는 면에서는 당연히 불교입니다. 그러나 기본 교리와 제도, 교단, 교조, 교전(경전)등 내용적인 면을 보면 전통적인 불교를 혁신한 생활화, 대중화, 시대화한 새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종교라는 면에서는 민족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종교의 교지도 통합 활용한다'는 입장과 현대사회에 맞는 교리와 미래지향적 교리 등은 독자적인 세계 종교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경의편39장】시자 사뢰기를「우리 회상을 과거 회상의 한 종파로 아는 이가 있나이다.」 말씀하시기를「과거 부처님께서 바라문의 교리를 인순(因循)하신 점이 있고,예수께서 구약(舊約)을 연원하시었으되,불교나 기독교를 과거의 한 종파라 하지는 않나니라.」 또 사뢰기를「과거 교법과 우리 교법과의 관계는 어떠하나이까.」 말씀하시기를「주로 창조하시고,혹 혁신,혹 인용(因用) 하셨나니라.」
불치병이 낫고 갑자기 큰 행운이 찾아오고 모든 고통이 일시에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깊은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삶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며 마음과 몸을 진리에 맞게 사용할 줄 알게 되어 생활 전반이 안정되고 지혜로와 지며 바르게 전개되어 결국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마음공부로 자유를 맛보게 되며 복을 짓는 방법을 알게 되어 심신간에 복락이 넉넉한 살림살이를 하게 됩니다.
저는 원불교가 처음입니다.
마음 밝히고 복 짓는 곳입니다. 마음 공부를 통해서 지혜를 얻어 마음의 자유를 누리고 복 짓는 삶으로 복락이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정신수양(定, 養性, 마음을 맑히는 공부), 사리연구(慧, 見性, 마음을 밝히는 공부), 작업취사(戒, 率性, 마 음을 바루는 공부) 세가지 마음 공부를 통해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고자 합니다.
또한 네가지 은혜(천지님 은혜, 부모님 은혜, 동포님 은혜, 법률님 은혜)를 깨달아 보은하는 것이 곧 불공이 되며 복을 장만하는 길이 되어 복락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제 생각에는 가장 쉽고, 넓고, 깊은 그리고 진보된 종교라고 봅니다.
쉽다-일상생활 속에서 진리와의 하나됨, 깨달음을 구하고 안전한 인격완성을 추구합니다. 교리구조와 내용이 이보다 더 쉬울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으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 분들의 판단 기준은 아마도 서양 종교의 그 것에 집착되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넓다 - 원불교에만 진리가 있고 다른 종교는 모두 열등하다는 식의 주장은 발붙일 수 없는 곳이 원불교입 니다. 원불교 또한 진리표현의 한 노력이며 진리구현의 또 다른 운동입니다. 진리에 근거한 건전한 종교들, 사람들과 낙원건설을 위해 땀흘리며 손잡고 나아갈 뿐입니다. 원불교라는 것이 또 다른 인간의 굴레가 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깊다-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신앙 수행을 통해 들어가다 보면 원불교에서 제시하는 완전한 인격완성, 진리 에 대한 깨달음의 궁극적 목표가 대단히 심오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보적이다-다른 종교를 편하하려는 표현은 아니고 다만 88년의 역사를 가진 젊은 종교이기 때문에 그리고 종교사상적으로 원용회통하며 모든 종교의 장점들을 수용해내고 있기 때문에 진보적이라는 말을 사용했습 니다
인격체, 신격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누구를' 믿는다는 말보다는 '무엇을' 믿는다는 말이 맞겠지요.
【원리편6장】말씀하시기를「사람도 보지 못한 사람을 이름으로만 있다고 일러 주면 허허해서 알기가 어려우나 사진으로 보여 주면 더 절실히 알게 되는 것 같이 대종사께서는 일원상으로 진리 그 당체의 사진을 직접 보여 주셨으므로 학인들이 그 지경을 더우잡기가 훨씬 편리하게 되었나니라. 일원상은 곧 진리 전체의 사진이니,이 진리의 사진으로써 연구의 대상을 삼고 정성을 쌓으면 누구나 참 진리 자리를 쉽게 터득할지라,대종사께서 "과거 회상은 일여래 천보살 시대였으나 앞으로는 천여래 만보살이 출현하리라"하셨나니라.」
【경의편40장】객이 묻기를「귀교는 무신입니까,유신입니까.」 답하시기를「우리는 어디에 따로 계시는 인격적 신은 인정하지 아니하나,우주를 관통하여 두루 있는 신령한 진리는 이을 인정하나니,우리의 마음을 단련하여 우주의 그 진리를 이용하며 그 위력을 얻자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니라.」 또 묻기를「귀교는 유심입니까,유물입니까.」 답하시기를「물심일여으로 보나니, 우주만유의 본체는 물과 심이 둘이 아닌 동일체이나 운용하는 데 있어서는 심이 체가 되고 물이 용이 되나니라.」
원불교에서 믿고 닮아나가는 이 우주의 진리를 모양새로 표현한 것입니다. 말로 이를 때는 '한 둥그런 모양'이라는 뜻으로 '일원상(一圓相)'이라고 하며,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 '법신불 일원상(法身佛一圓相)'이라고도 합니다. 궁극적 진리를 표상했다고 보면 되겠지요.
원불교 창시자인 대종사님의 언행록인 대종경 교의품 3장에 수록된 말씀입니다. 광전(光田)이 여쭙기를「일원상과 인간과의 관계가 어떠하오니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네가 큰 진리를 물었도다. 우리 회상에서 일원상을 모시는 것은 과거 불가에서 불상을 모시는 것과 같으나,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形體)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광대무량하여 능히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하였나니, 곧 천지 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入定處)라, 유가에서는 이를 일러 태극(太極) 혹은무극(無極)이라 하고, 선가에서는 이를 일러 자연 혹은 도라 하고, 불가에서는 이를 일러 청정 법신불이라 하였으나,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바로서 비록 어떠한 방면 어떠한 길을 통한다 할지라도 최후 구경에 들어가서는 다이 일원의 진리에 돌아가나니, 만일 종교라 이름하여 이러한 진리에 근원을 세운 바가 없다면 그것은 곧 사도(邪道)라, 그러므로 우리 회상에서는 이 일원상의 진리로써 우리의 현실 생활과 연락시키는 표준을 삼았으며, 또는 신앙과 수행의 두 문을 밝히었나니라.」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을 쉽게 풀어보면 '그럴 듯 한데 사실은 아닌 것'쯤 될까요?
남들을 위해서 희생한다고 하면서 소수 집단의 배만 불린다. 헌금을 강조하면서 그 헌금을 헛되이 써버린다. 절제와 규범을 강조하면서 스스로는 도덕적 해이와 일탈을 일삼는다. 건전한 사회규범에 반한다. 상식을 너무나 벗어난다. ...뭐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없는 길을 제시한다든지...
원불교가 사이비가 아닌가 궁금하시다면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직접 관찰하고 체험해봐야 할 것 같네요. 물론 시간 낭비를 줄이시려면 믿어볼 만한 종교라는 제 말씀을 한 번 믿어보시는 것도 좋구요.
【교의품3장】광전(光田)이 여쭙기를「일원상과 인간과의 관계가 어떠하오니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네가 큰 진리를 물었도다. 우리 회상에서 일원상을 모시는 것은 과거 불가에서 불상을 모시는 것과 같으나,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形體)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광대 무량하여 능히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하였나니, 곧 천지 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入定處)라, 유가에서는 이를 일러 태극(太極) 혹은 무극(無極)이라 하고, 선가에서는 이를 일러 자연 혹은 도라 하고, 불가에서는 이를 일러 청정 법신불이라 하였으나,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바로서 비록 어떠한 방면 어떠한 길을 통한다 할지라도 최후 구경에 들어가서는 다이 일원의 진리에 돌아가나니, 만일 종교라 이름하여 이러한 진리에 근원을 세운 바가 없다면 그것은 곧 사도(邪道)라, 그러므로 우리 회상에서는 이 일원상의 진리로써 우리의 현실 생활과 연락시키는 표준을 삼았으며, 또는 신앙과 수행의 두 문을 밝히었나니라.」
교화사업을 주로 전개하는 교당은 국내에 506개, 해외 11개국에 46개, 복지관, 어린이집, 교육기관, 문화기관, 단체등 기관이 190개가 있습니다.
원불교의 수행법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다양합니다. 마음의 자유와 완전한 인격완성을 목적하는 우리 원불교는 마음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보면 되는 데, 그 마음공부에는 세 가지가 있지요. 마음을 고요히 가라 앉히고 맑히는 정신수양(精神修養), 지혜를 밝히는 사리연구(事理硏究), 몸과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는 작업취사(作業取捨)가 그 것입니다.
각각의 과목들을 보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정신수양을 위해서는 좌선과 염불을 하며, 사리연구를 위해서는 경전·강연·회화·의두·성리·정기일기를 하며, 작업취를 위해서는 상시일기·주의·조행 등의 가목이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정신수양를 하고 낮에는 자신과 공익을 위해 보은노력하며 밤에는 참회반성하는 일과를 지킵니다. 그리고 일정기간을 정해서 전문적인 자기 충전의 시간, 정기훈련을 합니다.
【서품19장】대종사 또 말씀하시기를「과거 불가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혹경전을 가르치며, 혹은 화두(話頭)를 들고 좌선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염불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주문을 가르치며, 혹은 불공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그 가르치는 본의가 모든 경전을 가르쳐서는 불교에 대한 교리나 제도나 역사를 알리기 위함이요, 화두를 들려서 좌선을 시키는 것은 경전으로 가르치기도 어렵고 말고 가르치기도 어려운 현묘한 진리를 깨치게 함이요, 염불과 주문을 읽게 하는 것은 번거한 세상에 사는 사람이 애착 탐착이 많아서 정도(正道)에 들기가 어려운 고로 처음 불문에 오고 보면 번거한 정신을 통일 시키기 위하여 가르치는 법이요, 불공법은 신자의 소원 성취와 불사(佛事)에 도움울 얻기 위하여 가르치나니, 신자에 있어서는 이 과목을 한 사람이 다 배워야 할 것인데 이 과목 중에서 한 과목이나 혹은 두 과목을 가지고 거기에 집착하여 편벽된 수행 길로써 서로 파당을 지어 신자의 신앙과 수행에 장애가 되었으므로, 우리는 이 모든 과목을 통일하여 선종의 많은 화두와 교종의 모든 경전을 단련하여, 번거한 화두와 번거한 경전은 다 놓아 버리고 그 중에 제일 강령과 요지을 밝힌 화두와 경전으로 일과 이치에 연구력 얻는 과목을 정하고, 염불·좌선·주문을 단련하여 정신 통일하는 수양 과목을 정하고, 모든 계율과 과보 받는 내역과 사은의 도를 단련하여 세간 생활에 적절한 작업 취사의 과목을 정하고, 모든 신자로 하여금 이 삼대 과목을 병진하게 하였으니, 연구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이무애(理無碍) 사무애(事無碍) 하는 연구력을 얻게 하며, 수양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사물에 끌리지 않는 수양력을 얻게 하며, 취사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불의와 정의를 분석하고 실행하는 데 취사력을 얻게 하여, 이 삼대력(三大力)으로써 일상 생활에 불공하는 자료을 삼아 모든 서원을 달성하는 원동력을 삼게 하면 교리가 자연 통일될 것이요 신자의 수행도 또한 원만하게 될 것이니라.」
불교적 진리를 공유하고 기본적인 사상의 토대를 함께 한다는 면에서는 당연히 불교입니다. 그러나 기본 교리와 제도, 교단, 교조, 교전(경전)등 내용적인 면을 보면 전통적인 불교를 혁신한 생활화, 대중화, 시대화한 새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종교라는 면에서는 민족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종교의 교지도 통합 활용한다'는 입장과 현대사회에 맞는 교리와 미래지향적 교리 등은 독자적인 세계 종교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경의편39장】시자 사뢰기를「우리 회상을 과거 회상의 한 종파로 아는 이가 있나이다.」 말씀하시기를「과거 부처님께서 바라문의 교리를 인순(因循)하신 점이 있고,예수께서 구약(舊約)을 연원하시었으되,불교나 기독교를 과거의 한 종파라 하지는 않나니라.」 또 사뢰기를「과거 교법과 우리 교법과의 관계는 어떠하나이까.」 말씀하시기를「주로 창조하시고,혹 혁신,혹 인용(因用) 하셨나니라.」
불치병이 낫고 갑자기 큰 행운이 찾아오고 모든 고통이 일시에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깊은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삶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며 마음과 몸을 진리에 맞게 사용할 줄 알게 되어 생활 전반이 안정되고 지혜로와 지며 바르게 전개되어 결국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마음공부로 자유를 맛보게 되며 복을 짓는 방법을 알게 되어 심신간에 복락이 넉넉한 살림살이를 하게 됩니다.
출처:http://www.wonbusan.or.kr/ 원불교부산교당홈페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