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of the Night

소나무2006.06.21
조회28

'밤의 여왕'이 아니라 '나이트의 여왕'에 대한 얘기다 -_-;

 

언제나 내 문화생활은 정도를 걸었다. 볼링, 자전거, 골프, 노래...비록 스피드 멜로딕 메탈이라는 정신사나운 장르를 즐기긴 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술, 담배, 여자, 심지어 온라인 게임이나 당구같은 것조차 내 취미 목록에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번쯤은 일탈해보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어제 하루는 참담할 정도였지만...

 

Phase 1 : 롯데월드에서 헌팅

나름 한 얼굴한다는 친구와 둘이 롯데월드를 갔다. 남자 둘이 롯데월드를 왜 갔을까? 둘이 온 여자그룹을 찾아 놀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왜이리도 짝이 안 맞는지...3명이거나 그 이상이거나 둘이어서 딱이다 싶을때는 중국 또는 일본인 이었다 -_-;; 그리고 유별나게 쌀쌀맞은 태도로 나를 좌절시킨 외국어대학교 독어과 아가씨 4인방에게는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_-;;

 

Phase 2 : 술집..

그래..술집에도 둘씩 놀러오는 여자들은 많다. 하지만 어제는 뭔가 이상했다. 내 친구가 '정말 순박하게 생겼다' 고 평한 여자분은 갑자기 담배를 꺼내어 피기 시작했다 -_-; 물론 난 비흡연자이며 양성평등을 주장하기에 '여자가 담배를 피워서' 싫은 건 아니었다..하지만 뭔가 우리보다 힘이 쎄 보였다...그게 진정한 이유였다.

 

Phase 3 : 나이트

원래 계획은 파릇한 분위기의 '클럽'을 가고자 했으나 도저히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술집에서 먹은 술기운인지 만사 귀찮았다 -_- 그냥 나이트 갔다. 꼬마신랑...잊지 않겠다 -_-;; 굉장히 소극적이었다. 물론 기본 시키고 팁으로 만원밖에 안 준 나도 잘한건 없지만 유도 국가대표같은 누나들만 모셔오니 순간 맥주가 아깝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_-;; 비위좋은 친구는 그래도 나름 잘 놀고 있었으나 1시쯤 되자 상대는 집에 가 버렸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귀만 멍멍하고...춤 추자니 힘들고 -_- 그래서 꼬마신랑...또 불렀다. 이번에 제대로 안 데려오면 갈랍니다 라며 말도 안되는 협박을 -_-;

 

이번엔 정말 제.대.로 모셔왔다. 175 키에 가슴까지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 어깨끈만 있는 검은 탑을 두겹 겹쳐 입은 모습은 조신해보이기까지 했다.(하나만 걸쳤다면 안 그랬을지도) 게다가 얼굴도 이뻤다...옆에 앉았다. 사실은 내쪽으로 쓰러졌다.

 

 팔에 닿는 살의 감촉이라니 ㅠ.ㅠ 찹쌀떡 겉에 밀가루 바른듯한(?) 감동적인 감촉이었다...그런데 이 아가씨 날 보고 웃기만 하고 말이 없다 -_-; 맥주잔 내미니 생글거리며 도리도리 하고 있다. 뭐지? 혹시 장애우?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 아니나 다를까 캘리포니아에서 잠깐 놀러왔단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서로의 나이와 장래희망을 얘기했다. 의사가 꿈이며 버클리 의대를 가려고 마음 먹고 있단다...문제는 그 아가씨의 영어는 내겐 너무 빨랐고 무조건 입을 가리고 말했다.

 

I can't hear you. please don't cover your mouth (입좀 막지 마봐 -_- 뭐라는지 모르겠어)를 30번쯤...

what?(뭐?) 10번쯤...Again plz(한번만 더)는 8번쯤 했을꺼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가는 귀가 먹어서인지 -_- 거의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서로의 귀에 소리치듯이 말한 뒤 얘기를 하려 얼굴을 돌리면 바로 눈앞에 커다란 눈이 깜빡이고 있었다.

 

젠-_-장 숨이 잘 안쉬어질 정도였다..아가씨에게 말을 하기위해 귀에 얘기할때 내 입술을 간지럽히는 머리칼...ㅠ.ㅠ 게다가 재패니메이션 성우가 영어로 말하는 듯이 귀엽고 장난스러운 목소리였다. 약간 약에 취한 듯한 느릿한 템포에 입꼬리에는 장난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가 춤을 추자고 했다. 먼저 양해를 구했다. 난 춤에 정말 소질이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_-;;

 

그 아가씨는 휘청거리며 춤을 췄다. 두 팔 쫙 펴고 흔드는 단순한 춤이었지만 리듬을 정말 잘 탔다...꼭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 아가씨의 모든 부분이 그랬다. 얘기할때 쓰러지듯이 기대는 것도, 검은 생머리도 춤추는 몸짓도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내 친구는 급속도로 진도 나가는 내 모습을 황당한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춤출때 공대생 같은 녀석(나도 공대생이지만 -_-)이 자기 테이블로 오겠냐고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고 내가 통역을 했다 -_- 그 남자 새된 기분이었을꺼다...게다가 나같은 엉터리 통역사를 두었으니

공대생 : (자기 테이블 가리키며)우리 테이블로 오실래요?

아가씨 : what?

나 : (공대생에게)뭐라고요?

공대생 : (너 말구 -_-;;)암것도 아니에요

나 : (아가씨에게)Nothing. don't care about it...(암것도 아님..무시해요)

아가씨 : OK~^^

그녀는 헤헤거리며 또 춤췄다.

공대생 : -_-++++

 

아가씨는 같이 온 친구를 데리고 우리 테이블로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_-;; 난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었다. 문제는 이 아가씨가 헤헤거리며 여기저기 끌려다닌다는 점이엇다...룸이란 룸은 다 끌려들어갔지만 말이 안통해서인지 이내 나왔다.사실 어제 그곳에 그 아가씨보다 괜찮은 사람은 없었다고 단언 할 수 있다.

 

 

 

새벽 2시 30분. 우리 테이블은 한시간째 비어있었다. 웨이터녀석 돈 안주면 부킹 안해주는거야 당연하지만...요란한 음악과 불빛의 사막에서 고사하고 있는 늑대 두마리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고학력의 나이트 퀸이 아닐까?' 돈 많고 맘에 들면 한국어로 얘기하고 맘에 안 들면 영어로 얘기해서 띠어내왔는데 내가 어줍잖게 알아들으니 어쩔 수 없이 놀아준 걸까?...'

그제서야 난 그 아가씨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걸 떠올렸다. 술김에 들은것도 같은데...

 

2시 40분. 난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난 그저 내가 진짜 얘기를 한 것인지 그녀의 '작업용' 소설을 들은 것인지 궁금했다.

내가 한명의 사람과 진실한 대화를 나눈것인지 완전한 허구에 빠진것인지가 알고 싶었다.

 난 복도를 지나가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귓속말을 하며 깔깔댔다.종종걸음으로 도망치는 아가씨를 보며 난 친구를 불렀다. "가자".

 

나는 친구와 나이트에서 걸어나왔다. 새벽에는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이트에서 나오니 새벽의 길거리는 유난히도 조용했다.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희미해지자 내 머릿속의 집착도 희미해졌다. 그 아가씨가 캘리포니아에 사는 의대 희망생이던 그저 나이트를 더 재밌게 즐기려던 나이트의 여왕이던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