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이강섭200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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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을 떠나기 전, 마지막까지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ㅜ.ㅜ)

 

 

정확히 만 6년이었다.

핸드폰을 처음 구입했을 때가 2000년,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신문광고에 등장한 5,000원짜리 단말기를 손에 쥐었다. 나름대로

7가지 LED 색상에 스피커폰, n-top 등의 서비스를 탑재해 개성과

경쟁력을 지닌 제품이었다.

 

사실 이 정도로 오래 쓸지는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언제쯤 바꿔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지만, 그러나 하나둘 친구들이

단말기를 바꾸던 그 순간에도 나는 의연히 저 단말기를 손에 들고

다녔다. 당시만 해도 'LG꺼는 고장 잘 난다, 싸구려다' 란 인식이

팽배했으나 나는 보란듯이 여지껏 잘 써왔다. 이따금 길을 걷다

떨어뜨려도, 때론 기숙사 2층 침대에서 떨어뜨려도, 심지어 실수로

물을 묻히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녀석은 끄떡없었다. 한때

폴더형 제품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점차 첨단제품들이 쏟아져

바꿀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허나 여전히 배터리 오래가고(4~5일)

고장없고 통화품질도 좋은 녀석을 포기하기엔 이미 정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앞에 녀석도 황혼을 맞이하나보다.

군에 입대한 2004년, 나는 장기정지(2년) 서비스를 신청하였다.

어차피 휴가나올 때 잠깐씩 사용해야 했으니 단말기와 기타 부속품

일체는 집에 잘 모셔두었다. 하지만 이미 녀석은 나사 하나가 풀려

접촉이 불안한 상황에 이르렀고 액정의 처리속도가 현저히 저하돼

있었다. 휴가 중 며칠간 사용하며 나는 녀석의 한계를 느끼게 됐고

아쉽지만 전역을 앞둔 지금 내 오랜 동반자와 이별을 고하고 있다.

 

보상기변이라 기존의 단말기와 부속품을 전해줘야 했다. 나는

방 한 구석, 먼지묻은 단말기 케이스를 꺼내 먼지를 털고 처음

내게 안겼던 그 모습 그대로 차곡차곡 담았다. 그리고 그대로

대리점에 건네주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다소 놀라시며 참 오래

쓰셨다는 말을 했다. 어떻게 박스까지 그대로 가지고 있었냐며

웃었다. 나도 씨익 웃었다. 그게 내가 이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초라하지 않고 멋있게, 그렇게 보내주고 싶었다.

 

한때 LG전자에 전화를 해 이렇게 오래 단말기 쓰는 사람에게

뭐 안해주냐는둥, TV CF광고에 날 기용하라는둥의 제안을 할거라

농담삼아 얘기했었다. 암튼 다 지난 일. 나는 이제 새 단말기를

집에 들여놔 충전 중에 있다. 이제 이 녀석과의 추억은 마음에

잘 간직하고 새로운 녀석과 또다른 정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