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아티스트나 성공한 기업가의 뒤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든든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는 조언자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 중 한 명일 수도 있고, 절친한 동료일 수도 있다. 선생님일 수도 있고, 만화책 혹은 위인전집일 수도 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을 세계적 수준의 유명인으로 끌어올린 멘토의 사례를 소개한다.
링컨 대통령 : 책 속의 지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인물로 대통령 권좌에까지 오른 미국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링컨의 멘토는 아버지도 동생도 직장동료도 아닌 책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한 권 선물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늘 달고 살았던 링컨 대통령은 일곱 살 때 가계가 파산한 뒤로 어머니 사망과 본인의 사업 파산, 주 의회 선거 낙선 또 사업 파산, 약혼녀 사망, 하원의원 낙선, 상원의원 낙선 등 매번 패배를 맛보았지만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로 쉰 하나에 미국 제 16대 대통령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조차도 졸업 못한 링컨은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책을 빌려와 읽을 정도로 책 속에 담긴 지혜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한다. 평생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지혜를 얻은 때문일까? 그는 다음과 같은 명언들을 남겨 후대에 깊은 교훈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해지려고 결심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타인의 나쁜 점을 말한다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상대방의 좋은 점을 말하라. 그리하면 자신도 남도 이롭게 되리라.” “거짓은 잠깐은 통할 수 있지만 영원히 통할 수 없다.”
고시바 마사토시 : 담임 선생님
일본의 천체물리학자로 ‘신비의 미립자’로 불리는 중성미자의 존재를 입증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
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던 고시바 마사토시. 그의 멘토는 바로 물리학에 심취하도록 도와준 아인슈타인이 펴낸 책 와 이 책을 건네준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1926년 지극히 평범한, 군인 집안에서 출생한 고시바 박사. 중학교 1학년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오른팔을 못 쓰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와 같이 늠름한 육군 장교가 되겠다는 꿈도,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또 다른 꿈도 모두 한 줌의 재로 변하던 순간이었는데….
그런 그에게 담임선생님이 라는 책을 건네주었고 한동안 병원에 묶여 있어야 했던 고시바 박사는 틈틈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동안 미처 몰랐던 물리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고시바 박사는 결국 장애자임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에 대한 커다란 사랑으로 도쿄대학 물리학과에 당당히 입학할 수 있었고 장학금까지 지급 받으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는 도쿄대학 교수, 도쿄대학 소립자물리국제연구센터 소장을 역임하며 니시나상, 아사히상, 일본정부 문화장, 일본학술원 학술상, 후지와라상, 울프상 등을 모두 휩쓴 뒤에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이라는 멍에를 짊어질 인생의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결국 담임선생님이 건네준 한 권의 책이 고시바 박사를 물리학자로 이끌어주었음은 물론 험난한 인생을 개척해나갈 수 있도 록 힘이 되어준 멘토였던 것이다.
모차르트 : 아버지, 고흐 : 동생
4살 때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해 5세 때 소곡(小曲)을 작곡하는 등 천부적인 재능을 선보였던 모차르트(Mozart, Wolfgang Amadeus). 세계적인 음악가인 그의 멘토는 가족, 그 중에서도 아버지였다.
아들에게서 하늘이 내린 재능을 발견한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이러한 모차르트의 재능을 궁정에 알리기 위해 여행 대장정에 올랐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6살이 되던 해 뮌헨, 빈 등에 가서 연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고 7∼10살까지는 서유럽을 일주하며 슈베르트, 바흐 등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 다.
그래서였을까? 8살 때 파리에 머물면서 바이올린소나타를, 런던에 머물면서 최초의 교향곡, 제1번 En장조를 작곡했고 결국 아버지의 홍보 덕분으로 10대 소년으로 오페라 작곡 의뢰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1780년대 초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빈에 둥지를 틀었고 1782년에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였다. 그래서였을까? 이즘에 작곡한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들이 고전파시대의 전형적인 작품이 되는 등 작품 세계는 한층 무르익었으나 빈의 청중들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경제적인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결국 인생의 멘토였던 아버지 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위기가 닥쳤고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36살이라는 짧은 인생을 불꽃 같이 살다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해바라기’ ‘감자 먹는 사람들’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멘토도 가족, 그 중에서도 4살 아래 동생인 테오였다. 1853년 목회자 가정에서 6남매 중에 맏이로 태어났던 고흐는 한가지 일에 빠지면 잘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성향을 타고 난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위의 편지글에서 알 수 있듯 고흐가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동생 테오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분이었다. 테오는 고흐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칠백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족과의 불화, 인생의 괴로움, 작품에 대한 의구심 등 여러 이유들로 방황하는 고흐의 영혼을 잡아주며 올곧은 화가의 길을 안내하였는데….
고흐는 화가가 되기 전 미술품을 판매하는 가게 점원으로, 어학교사로, 서점점원으로, 아버지와 같은 성직자로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런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누차 제안을 했는데 늘 시큰둥할 뿐이었다. 결국 수년이 지난 이십대 후반에서야 동생 테오의 조언대로 붓을 들기 시작했는데, 그림을 그리니 정말 행복하다는 편지를 동생에게 보낼 정도로 그림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한다.
고흐는 늘 가난했다. 먹고살기 위해 붓을 들어야 할 처지였던 것. 그런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돈은 걱정말고 그림을 그리라며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주었다고. 이에 따라 생활비 걱정 없이 마음놓고 그림을 그렸던 고흐. 불행히도 7년 정도 그림 그리는 작업에 푹 빠져있던 그는 35세 무렵부터 정신병 증세를 보이고 말았다.
고갱과 다툰 후 면도날로 자기 귀를 잘라 버린 것. 그 후에도 정신병 발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했던 고흐에게 테오는 본인이 살고있는 파리로 돌아와 같이 살자고 권유, 권총자살을 하기까지 형을 보살폈다. 결국 37년이라는 짧은 생을 고흐가 마감할 때까지 동생 테오는 고흐가 화가의 길을 올곧게 걸어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인생의 스승이자, 후원자였던 것이다.
빌 게이츠 : 영업의 달인 스티브 발머
세계적인 소프트웨어공급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이사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빌 게이츠. 그의 멘토는 늘 뒤에서 조용히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바로 현재 영업·지원 담당 및 사장으로 재직 중인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를 꼽을 수 있다.
13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PC를 접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던 빌 게이츠는 지난 1975년 하버드대학을 2학년 때 중퇴하고서는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크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깃발을 올리고 만다. 곧이어 BASIC 등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컴퓨터 언어프로그램들을 잇달아 출시해낸다.
컴퓨터 기술에 관한 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했던 빌 게이츠도 아킬레스건은 있었다. 바로 영업. 결국 하버드 대학시절 같이 기숙사 생활을 했던 스티브 발머에게 도와줄 것을 간청했고 이에 1980년 28번째 사원으로 스티브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입사하기에 이른다. 평범한 스위스계 고졸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스티브 발머는 영업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22년 동안 대단한 성과들을 이룩해냈음은 물론 30년 동안 빌 게이츠의 멘토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어왔다.
“스티브 덕분에 나는 기술적인 일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는 빌 게이츠의 말대로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는데 있어 등대 역할을 했던 든든한 멘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멘토가 위인을 낳는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아티스트나 성공한 기업가의 뒤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든든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는 조언자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 중 한 명일 수도 있고, 절친한 동료일 수도 있다. 선생님일 수도 있고, 만화책 혹은 위인전집일 수도 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을 세계적 수준의 유명인으로 끌어올린 멘토의 사례를 소개한다.
링컨 대통령 : 책 속의 지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인물로 대통령 권좌에까지 오른 미국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링컨의 멘토는 아버지도 동생도 직장동료도 아닌 책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한 권 선물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늘 달고 살았던 링컨 대통령은 일곱 살 때 가계가 파산한 뒤로 어머니 사망과 본인의 사업 파산, 주 의회 선거 낙선 또 사업 파산, 약혼녀 사망, 하원의원 낙선, 상원의원 낙선 등 매번 패배를 맛보았지만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로 쉰 하나에 미국 제 16대 대통령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조차도 졸업 못한 링컨은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책을 빌려와 읽을 정도로 책 속에 담긴 지혜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한다. 평생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지혜를 얻은 때문일까? 그는 다음과 같은 명언들을 남겨 후대에 깊은 교훈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해지려고 결심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타인의 나쁜 점을 말한다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상대방의 좋은 점을 말하라. 그리하면 자신도 남도 이롭게 되리라.”
“거짓은 잠깐은 통할 수 있지만 영원히 통할 수 없다.”
고시바 마사토시 : 담임 선생님
일본의 천체물리학자로 ‘신비의 미립자’로 불리는 중성미자의 존재를 입증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
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던 고시바 마사토시. 그의 멘토는 바로 물리학에 심취하도록 도와준 아인슈타인이 펴낸 책 와 이 책을 건네준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1926년 지극히 평범한, 군인 집안에서 출생한 고시바 박사. 중학교 1학년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오른팔을 못 쓰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와 같이 늠름한 육군 장교가 되겠다는 꿈도,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또 다른 꿈도 모두 한 줌의 재로 변하던 순간이었는데….
그런 그에게 담임선생님이 라는 책을 건네주었고 한동안 병원에 묶여 있어야 했던 고시바 박사는 틈틈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동안 미처 몰랐던 물리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고시바 박사는 결국 장애자임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에 대한 커다란 사랑으로 도쿄대학 물리학과에 당당히 입학할 수 있었고 장학금까지 지급 받으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는 도쿄대학 교수, 도쿄대학 소립자물리국제연구센터 소장을 역임하며 니시나상, 아사히상, 일본정부 문화장, 일본학술원 학술상,
후지와라상, 울프상 등을 모두 휩쓴 뒤에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이라는 멍에를 짊어질 인생의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결국 담임선생님이 건네준 한 권의 책이 고시바 박사를 물리학자로 이끌어주었음은 물론 험난한 인생을 개척해나갈 수 있도
록 힘이 되어준 멘토였던 것이다.
모차르트 : 아버지, 고흐 : 동생
4살 때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해 5세 때 소곡(小曲)을 작곡하는 등 천부적인 재능을 선보였던 모차르트(Mozart, Wolfgang Amadeus). 세계적인 음악가인 그의 멘토는 가족, 그 중에서도 아버지였다.
아들에게서 하늘이 내린 재능을 발견한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이러한 모차르트의 재능을 궁정에 알리기 위해 여행 대장정에 올랐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6살이 되던 해 뮌헨, 빈 등에 가서 연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고 7∼10살까지는 서유럽을 일주하며 슈베르트, 바흐 등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
다.
그래서였을까? 8살 때 파리에 머물면서 바이올린소나타를, 런던에 머물면서 최초의 교향곡, 제1번 En장조를 작곡했고 결국 아버지의 홍보 덕분으로 10대 소년으로 오페라 작곡 의뢰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1780년대 초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빈에 둥지를 틀었고 1782년에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였다. 그래서였을까? 이즘에 작곡한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들이 고전파시대의 전형적인 작품이 되는 등 작품 세계는 한층 무르익었으나 빈의 청중들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경제적인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결국 인생의 멘토였던 아버지 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위기가 닥쳤고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36살이라는 짧은 인생을 불꽃 같이 살다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해바라기’ ‘감자 먹는 사람들’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멘토도 가족, 그 중에서도 4살 아래 동생인 테오였다. 1853년 목회자 가정에서 6남매 중에 맏이로 태어났던 고흐는 한가지 일에 빠지면 잘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성향을 타고 난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위의 편지글에서 알 수 있듯 고흐가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동생 테오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분이었다. 테오는 고흐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칠백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족과의 불화, 인생의 괴로움, 작품에 대한 의구심 등 여러 이유들로 방황하는 고흐의 영혼을 잡아주며 올곧은 화가의 길을 안내하였는데….
고흐는 화가가 되기 전 미술품을 판매하는 가게 점원으로, 어학교사로, 서점점원으로, 아버지와 같은 성직자로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런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누차 제안을 했는데 늘 시큰둥할 뿐이었다. 결국 수년이 지난 이십대 후반에서야 동생 테오의 조언대로 붓을 들기 시작했는데, 그림을 그리니 정말 행복하다는 편지를 동생에게 보낼 정도로 그림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한다.
고흐는 늘 가난했다. 먹고살기 위해 붓을 들어야 할 처지였던 것. 그런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돈은 걱정말고 그림을 그리라며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주었다고. 이에 따라 생활비 걱정 없이 마음놓고 그림을 그렸던 고흐. 불행히도 7년 정도 그림 그리는 작업에 푹 빠져있던 그는 35세 무렵부터 정신병 증세를 보이고 말았다.
고갱과 다툰 후 면도날로 자기 귀를 잘라 버린 것. 그 후에도 정신병 발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했던 고흐에게 테오는 본인이 살고있는 파리로 돌아와 같이 살자고 권유, 권총자살을 하기까지 형을 보살폈다. 결국 37년이라는 짧은 생을 고흐가 마감할 때까지 동생 테오는 고흐가 화가의 길을 올곧게 걸어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인생의 스승이자, 후원자였던 것이다.
빌 게이츠 : 영업의 달인 스티브 발머
세계적인 소프트웨어공급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이사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빌 게이츠. 그의 멘토는 늘 뒤에서 조용히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바로 현재 영업·지원 담당 및 사장으로 재직 중인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를 꼽을 수 있다.
13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PC를 접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던 빌 게이츠는 지난 1975년 하버드대학을 2학년 때 중퇴하고서는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크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깃발을 올리고 만다. 곧이어 BASIC 등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컴퓨터 언어프로그램들을 잇달아 출시해낸다.
컴퓨터 기술에 관한 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했던 빌 게이츠도 아킬레스건은 있었다. 바로 영업. 결국 하버드 대학시절 같이 기숙사 생활을 했던 스티브 발머에게 도와줄 것을 간청했고 이에 1980년 28번째 사원으로 스티브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입사하기에 이른다. 평범한 스위스계 고졸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스티브 발머는 영업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22년 동안 대단한 성과들을 이룩해냈음은 물론 30년 동안 빌 게이츠의 멘토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어왔다.
“스티브 덕분에 나는 기술적인 일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는 빌 게이츠의 말대로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는데 있어 등대 역할을 했던 든든한 멘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