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그를 주제로한 소설과 드라마

강민구200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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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종영을 한지 한참이나 되어서 이글을 올리게 된다. 애초에 이순신 드라마가 방영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노무현 대통령과 연계하여 이순신을 깍아 내린다느니, 박정희대통령이 이순신을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느니하는 정치적 해석또한 많아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때론 도가 지나쳐 싸움까지 진행되기 까지했다.

 

그래서 내가 더욱 이순신이란 인물에 대하여 궁금해 했고 소설과 드라마에 대한 비평도 하고 싶어지는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이순신장군이라하면 일반사람들에게 충성스러운 민족의 영웅으로 나라를 구한 명장이라고 평해지고 있다. 이러한 그에 대한 평가는 때론 신격화되어져 민화나 민담에 전해지는데 분란의 시작은 이것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사회적으로 신격화된 이순신장군은 그 시작이야 조선시대이겠지만 지금 논하고자하며 의미가 있는것은 일본에서 시작된 그의 영웅담으로 그 한가운데에는 임진왜란에 참전해 한산도대첩에서 패한 와키자카라 할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 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일 몇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순신에 대한 평이 이러했으며 이것은 수차례 TV 다큐멘터리에서도 방영되었으며 그 후손또한 이순신을 흠모하고 있으며 현충사를 방문하기도 했다고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비추어 보면 일본이 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 해군을 창설할때 그 정신적 지주로서 충무공이 된것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것도 아니다.

 

일본해군의 정신적 지주 충무공이라 할수 있는것은은 일본의 해군장교양성과정에서 충무공에 대한 교육을 한다고 하며 유명한 도고제독의 언급에서도 유추해 낼수 있다.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 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끌어 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러시아와 정(丁)자진으로서 무찌른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는 러일전쟁 승전기념 파티에서 언급한 이 말에서 보여지듯 이순신을 신 그이상으로 보고있는것이다. 여기서 그가 취했던 진형또한 이순신의 전술에서 왔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에서의 신격화는 일본장교로 임관했던 박정희 전대통령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있다. 서울 광화문 정면에 이순신의 동상이 있고, 개발독재시대(?) 충무공 탄신일이 되면 방영되었던 그의 한편짜리 영화. 내가 어릴때 충무공탄신일에 그 TV에서 나오는 것을 본것이 어렴풋이 기억이난다.

 

하지만 이러한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시대를 거듭하면서 재평가 되기시작한다. 신격화되었던 이순신은 그가 명장은 명장이나 신은 아니며 한명의 인간으로서 평가한다. 혹자 들은 이것을 이순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며 매우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않기도 한다.

 

나 역시 기억하는것은 학창시절 국사를 배우며 선생님께서는 이순신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가 훌륭한 명장인것은 분명하나 신은 아니며, 원균또한 뛰어난 인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치졸하고 탐욕에만 눈이 먼 장군만은 아니다."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국사 선생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였던것이 독재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의미하는것인지, 역사자체에 대한 날카로운 이견인지는 그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분명 국사선생님께서는 책에만 서술된 역사를 가르킨것이 아니라 충분히 생각해보고 다양한 시각을 가져야한다는 사실을 나 또는 우리에게 가르켜 준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침을 튀기며까지 말씀하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되면서 부터 내가 줄곧 다니는 밀리터리사이트에서는 이 드라마가 이순신을 매장시키고 우매한 현재의 정권이 가진 무식의 극치를 보여주는것이라하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과연 이 드라마가 그렇게 까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우매한 정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드라마가 방영이 되면서 나는 이광수씨가 쓴 '이순신'과 김훈이쓴 '칼의 노래'를 읽어보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았다. 이광수의 소설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인물로서 거북선이 나타나 함포사격을하는 순간까지 흥분한 군중을 빌려 화려하고 세세하게 묘사하였다. 마치 이순신이 거북선을 처음 고안해낸듯이...

 

하지만 거북선은 고려말때부터 '귀선'이라는 형태로 존재했던 전술적 가치가 높은 배로써 존재하였으며 이것이 발전하여 조선 태조때에 거북선이라 실제 불리는 배를 건조하기도 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운용했던것에 대해선 분명 그가 능력이 있는 장수로서 볼수 있으나 그가 마치 거북선을 고안해낸것으로 생각한다면 크나큰 실수이다. 물론 나 역시 적어도 그 국사선생님의 가르침이 없기전까지는 이순신이 만든 배로서 기억하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광수씨의 소설 이순신에서는 신격화된 이순신이 면면에서 보여지며 만약 이순신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 본다면 이순신은 마치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신으로까지 평가될만한 인물로 볼 것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는 이광수의 그것과는 다르게 임진왜란의 전체적인 내용은 배제되어있고 이순신의 내면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난중일기에서 보여지는 몸이 편치않아 공무를 보지않고 식은땀을 흘리는것을 소설속에 등장시켰고, 선조가 보내준 면사포(죄를 사하여줌)를 등장시켜 선조와의 갈등도 묘사하고 있다. 이순신은 신이 아니었으며 보통사람과 같이 가슴아파하고 몸져눕기도 하며 남성이라면 가질법한 편안한 여성의 품속을 속으로 그리는 모습을 묘사하기도한다. 이 소설에서 이순신은 신이아니라 인간으로 보여지며 전투에서는 치밀한 이순신이 되어진다. 하지만 이 소설도 나같이 군사들의 전술적움직임을 흥미롭게 여기는 이에게는 그 부분이 미흡한 소설이라고 말할 것이다.

 

안타깝께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인 소설 '칼의 노래'과 '불멸'중 불멸은 읽어 보지 못했다. 책의 양도 많거니와 나의 처지가 그렇게 여유롭지 않아 차마 읽어보진 못해 그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못할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 '불멸...'은 내가 본바도 있고 여러 평들도 있으니 몇마디 해 보고자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장 궁금한것은 이 드라마가 과연 현정권의 무능력함과 박정희 전대통령에대한 깍아내리기 까지 갈수 있는가이다. 과연?

 

이 드라마는 처음의 기획이 어찌되었는지 준비가 부족했다고 볼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소설 '불멸'에서 설정이 되어있다고 하는데 유년기때부터 이순신, 류성룡, 원균은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벗이었는가. 이러한 소설적 픽션을 차치하고라도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고증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질타를 받아왔으며 그다지 더 논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드라마속에서의 활쏘기는 국궁(우리의 전통활쏘기)이 아니라 양궁과 흡사한 경우등 많은 고증실패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 쉽게 접할수 있을 것이며 각 소설에 대한 잘못된 역사적 사실은 수없이 지적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실패는 드라마나 소설에 대한 현실감은 떨어지게 만든다. 아마도 이쯤에서 소설 자체가 가진 한계를 언급해야할 시점인가 싶다. 소설은 그 정의에서 보여지듯이 현실에서 있을법한 것을 꾸며낸 이야기이지 역사적 사실만을 기록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독자 혹은 시청자들이 주지해야할 사실은 이점과 함께 이것으로 역사를 배우지 말라는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는 허구일뿐이며 실존했던 인물이나 사실에 대한 관심정도로만 접근하고 역사를 배우려거든 논문을 보거나 그것이 딱딱하다면 시중에 나와 접하기 쉽게 서술한 책들을 살펴보길 권한다. 드라마나 소설에게 역사서와 같은 역할을 맡기려 한다면 그같은 우매함이 또 있을까.

 

더불어 언급해야 할것이 정치적 해석이다. 원균 용장론을 필두로한 드라마와 소설이던가? 과연 그 드라마와 소설을 본 사람들은 이순신과 원균 그리고 선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앞서 언급했지만 먼저 소설과 드라마로서 당대의 인물들을 평가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며 바보같은 행동이다. 하지만 그들 인물에 대한 이미지는 남을것인데 그 인물에 대한 이미지로서 판단해보자. 정치적으로 해석 가능한가? 원균이 이순신보다 용맹하며 뛰어난 장수인가? 아마도 소설과 드라마를 제대로 본 사람들이라면 역시 이순신은 위대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될것이다. 그 어느 매체도 이순신과 원균그 둘을 그릴진데 이순신을 원균보다 못한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으며 각자의 가치관에 맞게 영웅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다음에 원균이 있고 선조가있다.

 

어느 누구도 이순신만한 인물을 존경못할 인물, 그 이름 세자가 부끄러운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세계사에 굵직하게 새겨진 이름 '충무공 이순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드라마와 관련해서 정치적으로 어디까지 해석할까. 원균 용장론이 박정희대통령의 생각과 배치되어서 정치적으로 해석가능한가? 아니면, 드라마나 소설의 고증실패가 현정권의 무능력 탓인가? 드라마를 방영한 방송국의 사장이 현정권이 들어서면서 바뀌어서? 도대체 무엇을 보고 정치적으로 연결시킬수 있는지 궁금하다.

 

2005. 10. 2. 오후 5시 50분경 초안작성.

2005. 10. 3. 새벽 0시 35분경 일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