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성과 인류의 성찰 넘어서 존재의 진화는' 정의 -> 대립 -> 초월[확대정의]Thesis Antithesis Synthesis 의 변증법적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거의 한세기도 전에 초월적 지성을 갈망한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비록 그 피아니스트는 메피스토적인 퍼포먼스로 악마적 전율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Vladimir Horowitz 같지는 않았다.그는 피아니스트적인 퍼포먼스보다는 파우스트적인 맹목적인 지식의 열망으로 보다 초월적 성찰을 얻어냈다 그의 열망은 지식으로 그 지식은 본질에 대한 성찰을 통해섬광같은 직관력을 얻어낸다.. 지금 현대의 주가 되고 있는 모더니즘은 Anti에 의한 사조이다그것은 너무나 만연해 있고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만들어 간다마치 매트릭스의 복제인간 스미스 요원들 처럼... 하지만 모더니즘이 만연하기도 한세기도 전에 초월론을 꿈꾼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고도프스키가 있었다. 그는 Poly[다성] Uber[상위] Meta[초월]의 지성으로 두개 이상의 선율이 연주되는 Polyponic[다성음악] 대조적인 상이한 리듬이 대립한 Polyrhythm[복리듬] 대조적 다이나믹[음압의 강약이 변화되는 형태]이 흐르는 Polydynamic[복다이나믹]에 근거하여 음악을 썻다 그가 만든 곡들은 주로 피아노 곡들이었지만 피아노안에서 새로움 즉 초월의 진화를 꿈꿧다그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그를 24시간이상 피아노에 앉아 있게했다고 전해진다[좀 과장일지도?]어쨋든 그 갈망에 대한 열정이 천재적이라고 불리는 초월적 지성을 가지게 했다는 것은의심할여지가 없는 사실일 것이다[사실 도대체 천재가 어디있는지 의문이다 그것은 열망에 의해 만들어 질 뿐인데 이런 감정적인 어휘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의 지성이 자아낸 것들 중 가장 백미는단연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 BWV 1001을 피아노로완전 편곡한 작품이다..사실 편곡보다는 완전 작곡으로도볼수 있을 정도의 전혀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보수적인 피아스트나 작곡가로부터 맹렬하게 비판을받아왔다..참고로 글렌굴드의 비판은 바흐는 성전이기에 이 곡을범접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는 식이었다...(이건 참으로 멍청한 짓임이 분명하다 바흐는 인간일뿐...진화에 반하는 학자연하는 보수적임은 전혀 필요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고도프스키의 바흐는 그의 열망이 이뤄낸 성찰들이 가장 농밀하게 집적된 정수로써낭만적인 감정적이고 자기과시적이고 상투적인 음표들이나 난무하는 부조니나 스토코프스키의 바흐 편곡작품들 보다 학구적이며 큰 음악적 쾌감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것은 레코딩보다는 라이브로..청자보다는 연주자에게 보다 큰 존재로 다가온다... 그래서난 오늘도 평면적인 손가락으로 입체적인 그의 음표에 손을 덴다그래야만 나의 진화에 대한 번뇌는 그치고 번뇌가 아니라 초월을향해 장엄하게 숨을 죽인다 그래서 말인데 그가 이룩한 성취에 대한 심취와 찬사는 그만두고 재즈의 트리키한 선법들이 입체적인 클래식과 진지하게조우하게 된다면 새로움이 자아나게 될것을 직감한다 모든 것은 열망에 의해 자아내짐을 깨닫는 동시에.... ...p... ps.약간은 아이러닉하게도 누구보다 파우스트에 가까운 고도프스키의 별명은 힌두의 3신중 하나 Brahma였다 아니면 어울리나?
Leupold "Beyond the sprial" Godowsky
'인간의 지성과 인류의 성찰 넘어서 존재의 진화는'
정의 -> 대립 -> 초월[확대정의]
Thesis Antithesis Synthesis 의 변증법적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거의 한세기도 전에 초월적 지성을 갈망한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비록 그 피아니스트는 메피스토적인 퍼포먼스로 악마적 전율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Vladimir Horowitz 같지는 않았다.
그는 피아니스트적인 퍼포먼스보다는 파우스트적인 맹목적인
지식의 열망으로 보다 초월적 성찰을 얻어냈다
그의 열망은 지식으로
그 지식은 본질에 대한 성찰을 통해
섬광같은 직관력을 얻어낸다..
지금 현대의 주가 되고 있는 모더니즘은 Anti에 의한 사조이다
그것은 너무나 만연해 있고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만들어 간다
마치 매트릭스의 복제인간 스미스 요원들 처럼...
하지만 모더니즘이 만연하기도 한세기도 전에 초월론을 꿈꾼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고도프스키가 있었다.
그는 Poly[다성] Uber[상위] Meta[초월]의 지성으로
두개 이상의 선율이 연주되는 Polyponic[다성음악]
대조적인 상이한 리듬이 대립한 Polyrhythm[복리듬]
대조적 다이나믹[음압의 강약이 변화되는 형태]이 흐르는
Polydynamic[복다이나믹]에 근거하여 음악을 썻다
그가 만든 곡들은 주로 피아노 곡들이었지만
피아노안에서 새로움 즉 초월의 진화를 꿈꿧다
그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그를 24시간이상 피아노에 앉아 있게
했다고 전해진다[좀 과장일지도?]어쨋든 그 갈망에 대한
열정이 천재적이라고 불리는 초월적 지성을 가지게 했다는 것은
의심할여지가 없는 사실일 것이다
[사실 도대체 천재가 어디있는지 의문이다 그것은 열망에 의해 만들어 질 뿐인데 이런 감정적인 어휘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의 지성이 자아낸 것들 중 가장 백미는
단연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 BWV 1001을 피아노로
완전 편곡한 작품이다..사실 편곡보다는 완전 작곡으로도
볼수 있을 정도의 전혀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보수적인 피아스트나 작곡가로부터 맹렬하게 비판을
받아왔다..참고로 글렌굴드의 비판은 바흐는 성전이기에 이 곡을
범접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는 식이었다...
(이건 참으로 멍청한 짓임이 분명하다 바흐는 인간일뿐...진화에
반하는 학자연하는 보수적임은 전혀 필요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고도프스키의 바흐는
그의 열망이 이뤄낸 성찰들이 가장 농밀하게 집적된 정수로써
낭만적인 감정적이고 자기과시적이고 상투적인 음표들이나 난무하는 부조니나 스토코프스키의 바흐 편곡작품들 보다 학구적이며 큰 음악적 쾌감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것은 레코딩보다는 라이브로..
청자보다는 연주자에게 보다 큰 존재로 다가온다...
그래서
난 오늘도 평면적인 손가락으로 입체적인 그의 음표에 손을 덴다
그래야만 나의 진화에 대한 번뇌는 그치고 번뇌가 아니라 초월을
향해 장엄하게 숨을 죽인다
그래서 말인데 그가 이룩한 성취에 대한 심취와 찬사는 그만두고
재즈의 트리키한 선법들이 입체적인 클래식과 진지하게
조우하게 된다면 새로움이 자아나게 될것을 직감한다
모든 것은 열망에 의해 자아내짐을 깨닫는 동시에....
...p...
ps.약간은 아이러닉하게도 누구보다 파우스트에 가까운
고도프스키의 별명은 힌두의 3신중 하나 Brahma였다
아니면 어울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