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자란 실력 탓이든 불공정한 심판 탓이든 경기는 지고 말았다. 온국민이 염원했던 16강 진출은 끝내 좌절됐다. 독일에 원정응원을 온 한국의 축구팬들은 붉은 응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누구는 집으로 돌아갔고, 또 누구는 여행을 계속했다.
과연 이들은 ‘독일 월드컵 원정응원’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실컷 소리치며 응원하다가 패배의 아쉬움만 간직한 채 독일의 하노버를 떠났을까.
23일 하노버의 한국-스위스 경기장 밖에서 붉은 옷의 한국 축구팬 수 십명을 잇따라 만났다. 축구팬들에게 축구가 중요하지만, 반드시 축구가 독일에 원정 온 한국 축구팀에게 전부는 아니었다. 축구 이외에 ‘뭔가’를 찾고자 했던 많은 축구팬들은 실제로 뭔가를 찾은 듯 뿌듯해했다.
그럼, 그 뭔가는 무엇일까. 축구팬들이 축구 이외에 추구했던 그 무엇은 정체성ㆍ사랑ㆍ경험ㆍ조국애ㆍ주목받기 등이었다. 패배한 경기를 응원한 데 따른 상실감을 채우고도 남을 그 무언가에 많은 사람들은 만족스러워했다.
쾰른에서 온 아무 에리히(24ㆍAmu Ehrlich)는 한국-스위스전의 옥외응원장 앞에서 펜으로 낙서처럼 뭔가 어지럽게 쓰여져 있는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라고 밝힌 에리히는 “쾰른ㆍ베를린ㆍ라이프찌히ㆍ프랑크푸르트ㆍ함부르크ㆍ도르트문트 등에 사는 친구들에게서 한 문장씩 한국 승리를 염원하는 글을 적게 해 가져왔다”며 몇 가지 글귀를 보여줬다.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 이외에는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에리히씨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한국인으로도 인정 받는 것에 기뻐했다. 한독(韓獨)가정에서 자란 에리히의 월드컵 응원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마야(Mayaㆍ23ㆍ대학생)는 서툰 한국말로 “나는 스위스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거 엄마 북”이라면서 길거리와 경기장에서 북을 치며 ‘대~한민국’을 하루 종일 외쳐댔다.
마야의 어머니는 한국 사람, 아버지는 스위스 사람으로, 마야는 혼열이다. ‘Be the reds’ 문구가 선명한 붉은 티에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마야는 스위스 축구팬들이 가득한 하노버의 번화가인 크뢰프케(Kroepke)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한국과 스위스를 모두 응원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마야는 “나는 한국 팬”이라고 일축했다. 마야는 ‘엄마의 나라’를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김신영(20ㆍ대학생)씨와 브라질 교민인 이소영(21ㆍ대학생)씨는 2004년 한국에 잠시 들어와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어학당을 다니면서 마야를 알게 됐다가, 이번에 독일에서 마야를 만났다. 김씨와 이씨는 마야를 만난 것이 행복하고, 자신과 핏줄이 같은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응원하니까 행복하다고 했다. 마야 등 세 친구에게 중요한 단어는 ‘한국’과 ‘친구’, 그 다음에 ‘축구’였을 것이다.
한국의 모대학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박수영(28)씨는 스위스인 남자 친구 다니엘 마클러(23)씨 앞에서는 “나는 한국을 응원한다”고 했지만, 그에게 한국-스위스전의 결과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1년 4개월 전쯤 캐나다 유학시절에 만나 사귀어온 이들 한국-스위스 커플은 하노버 원정응원을 핑계 삼아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것 만으로도 무척 행복해 보였다. 서로를 왜 좋아하게 됐느냐고 묻자 박씨는 “(다니엘이)착하고 잘생겼다”고 했고, 다니엘은 “사랑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들에게는 월드컵 축구의 승패보다 사랑이 훨씬 중요했다.
구사무엘(25ㆍ회사원), 조혜련(20ㆍ인하대3년), 구다니엘(24ㆍ인하대3년), 이준호(24ㆍ연세대4년)씨는 한국의 전통의상을 구해 입고 오려다가 모자만 쓰고 왔다. 전체 의상을 빌려 의관을 갖추려 했으나 옷을 빌리는 데 돈이 많이 들어 하는 수 없이 임금ㆍ문관ㆍ사또ㆍ기생을 각각 상징하는 모자만 가져왔다는 것이다.
구다니엘씨는 “월드컵 때마다 자기 나라 전통의상을 입고 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아저씨를 봤다”며 “앞으로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찾아가 한국의 전통의상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필리핀 마닐라에 살고 있는 이범로(19)ㆍ중범(16) 형제는 단 둘이 독일에 왔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두 사람이 하노버 시내의 한 간이식당에서 한국산 컵라면을 먹고 있길 게 말을 걸었더니 보호자 없이 단 둘이 여행 중이라고 했다.
둘 다 한국 기준으로 미성년자여서 “부모님 허락은 받고 왔느냐”고 물었다. 두 형제는 “부모님이 보내줘서 왔다”고 했다. 형 범로군이 미국의 한 대학에 입학허가서를 받고는 졸업여행 삼아 동생과 함께 한국 축구를 응원하러 필리핀에서 독일까지 온 것이다.
“지난 2002년에는 한국에 있지 않아서 (거리 응원전을)보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여기 왔는데,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과 응원을 하게 되다니… 정말 재밌어요”라고 했다. 형제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해다. 잠은 기차역에서 잤고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 컵라면을 시켰다는 범로ㆍ중범 형제에게 “이것 가지고 배가 차겠느냐”면서 김밥 2줄을 사주고 헤어졌다.
곽태근(43ㆍ경기도 일산)씨는 아들 희동(11ㆍ낙민초등4년)군과 조카 최종현(13ㆍ공덕초등6년)군이 독일의 거리에서 붉은 옷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늘 궁금해 했다. 그가 두 어린이를 독일까지 데려온 목적은 이들의 가슴에 뭔가 뜨거운 것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곽씨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되었다. 언제 외국의 거리에서 국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불러보겠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분명하게 정체성을 가졌을 것이다”고 뿌듯해했다.
하노버 대학에서 유학중인 오상호(30ㆍ법학 박사과정)씨는 하노버 도심에 설치된 한국 홍보관에서 일하면서 “독일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잘 설명해줘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며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유학 중에 월드컵을 보러 온 김옥경(24)는 머리에 ‘(한국-스위스전 경기장)티켓구함’이라는 문구의 종이를 머리에 꽂고 다니면서 “한국은 일을 위해 살지만, 유럽 사람들은 휴가를 위해 일하는 것 같다”며 “여유럽게 사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독일 월드컵은 원정응원이며 ‘문화탐방’이다.
누군가 ‘산불조심 정선(강원도 정선군)’이라고 커다랗게 쓰여진 깃발을 들고 하노버 길거리에 나타났다. 뚱딴지같이 산불이라니?. 주인공은 대구에 사는 김민수(36)씨이다. 남들은 모두 붉은 색 티셔츠를 입었는데 유독 그만 파란색 옷을 입었다. 그저 독특한 컨셉으로 한번 튀고 싶었다고 한다.
23일 한국-스위스전에서 한국팀이 비록 졌지만, 2006 월드컵의 독일 현지에서 길거리 응원을 펼친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뭔가를 얻어 행복한 마음으로 이번 월드컵을 마무리할 것이다.
졌지만 우린 행복했다
우리의 모자란 실력 탓이든 불공정한 심판 탓이든 경기는 지고 말았다. 온국민이 염원했던 16강 진출은 끝내 좌절됐다. 독일에 원정응원을 온 한국의 축구팬들은 붉은 응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누구는 집으로 돌아갔고, 또 누구는 여행을 계속했다.
과연 이들은 ‘독일 월드컵 원정응원’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실컷 소리치며 응원하다가 패배의 아쉬움만 간직한 채 독일의 하노버를 떠났을까.
23일 하노버의 한국-스위스 경기장 밖에서 붉은 옷의 한국 축구팬 수 십명을 잇따라 만났다. 축구팬들에게 축구가 중요하지만, 반드시 축구가 독일에 원정 온 한국 축구팀에게 전부는 아니었다. 축구 이외에 ‘뭔가’를 찾고자 했던 많은 축구팬들은 실제로 뭔가를 찾은 듯 뿌듯해했다.
그럼, 그 뭔가는 무엇일까. 축구팬들이 축구 이외에 추구했던 그 무엇은 정체성ㆍ사랑ㆍ경험ㆍ조국애ㆍ주목받기 등이었다. 패배한 경기를 응원한 데 따른 상실감을 채우고도 남을 그 무언가에 많은 사람들은 만족스러워했다.
쾰른에서 온 아무 에리히(24ㆍAmu Ehrlich)는 한국-스위스전의 옥외응원장 앞에서 펜으로 낙서처럼 뭔가 어지럽게 쓰여져 있는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라고 밝힌 에리히는 “쾰른ㆍ베를린ㆍ라이프찌히ㆍ프랑크푸르트ㆍ함부르크ㆍ도르트문트 등에 사는 친구들에게서 한 문장씩 한국 승리를 염원하는 글을 적게 해 가져왔다”며 몇 가지 글귀를 보여줬다.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 이외에는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에리히씨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한국인으로도 인정 받는 것에 기뻐했다. 한독(韓獨)가정에서 자란 에리히의 월드컵 응원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마야(Mayaㆍ23ㆍ대학생)는 서툰 한국말로 “나는 스위스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거 엄마 북”이라면서 길거리와 경기장에서 북을 치며 ‘대~한민국’을 하루 종일 외쳐댔다.
마야의 어머니는 한국 사람, 아버지는 스위스 사람으로, 마야는 혼열이다. ‘Be the reds’ 문구가 선명한 붉은 티에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마야는 스위스 축구팬들이 가득한 하노버의 번화가인 크뢰프케(Kroepke)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한국과 스위스를 모두 응원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마야는 “나는 한국 팬”이라고 일축했다. 마야는 ‘엄마의 나라’를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김신영(20ㆍ대학생)씨와 브라질 교민인 이소영(21ㆍ대학생)씨는 2004년 한국에 잠시 들어와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어학당을 다니면서 마야를 알게 됐다가, 이번에 독일에서 마야를 만났다. 김씨와 이씨는 마야를 만난 것이 행복하고, 자신과 핏줄이 같은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응원하니까 행복하다고 했다. 마야 등 세 친구에게 중요한 단어는 ‘한국’과 ‘친구’, 그 다음에 ‘축구’였을 것이다.
한국의 모대학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박수영(28)씨는 스위스인 남자 친구 다니엘 마클러(23)씨 앞에서는 “나는 한국을 응원한다”고 했지만, 그에게 한국-스위스전의 결과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1년 4개월 전쯤 캐나다 유학시절에 만나 사귀어온 이들 한국-스위스 커플은 하노버 원정응원을 핑계 삼아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것 만으로도 무척 행복해 보였다. 서로를 왜 좋아하게 됐느냐고 묻자 박씨는 “(다니엘이)착하고 잘생겼다”고 했고, 다니엘은 “사랑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들에게는 월드컵 축구의 승패보다 사랑이 훨씬 중요했다.
구사무엘(25ㆍ회사원), 조혜련(20ㆍ인하대3년), 구다니엘(24ㆍ인하대3년), 이준호(24ㆍ연세대4년)씨는 한국의 전통의상을 구해 입고 오려다가 모자만 쓰고 왔다. 전체 의상을 빌려 의관을 갖추려 했으나 옷을 빌리는 데 돈이 많이 들어 하는 수 없이 임금ㆍ문관ㆍ사또ㆍ기생을 각각 상징하는 모자만 가져왔다는 것이다.
구다니엘씨는 “월드컵 때마다 자기 나라 전통의상을 입고 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아저씨를 봤다”며 “앞으로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찾아가 한국의 전통의상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필리핀 마닐라에 살고 있는 이범로(19)ㆍ중범(16) 형제는 단 둘이 독일에 왔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두 사람이 하노버 시내의 한 간이식당에서 한국산 컵라면을 먹고 있길 게 말을 걸었더니 보호자 없이 단 둘이 여행 중이라고 했다.
둘 다 한국 기준으로 미성년자여서 “부모님 허락은 받고 왔느냐”고 물었다. 두 형제는 “부모님이 보내줘서 왔다”고 했다. 형 범로군이 미국의 한 대학에 입학허가서를 받고는 졸업여행 삼아 동생과 함께 한국 축구를 응원하러 필리핀에서 독일까지 온 것이다.
“지난 2002년에는 한국에 있지 않아서 (거리 응원전을)보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여기 왔는데,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과 응원을 하게 되다니… 정말 재밌어요”라고 했다. 형제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해다. 잠은 기차역에서 잤고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 컵라면을 시켰다는 범로ㆍ중범 형제에게 “이것 가지고 배가 차겠느냐”면서 김밥 2줄을 사주고 헤어졌다.
곽태근(43ㆍ경기도 일산)씨는 아들 희동(11ㆍ낙민초등4년)군과 조카 최종현(13ㆍ공덕초등6년)군이 독일의 거리에서 붉은 옷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늘 궁금해 했다. 그가 두 어린이를 독일까지 데려온 목적은 이들의 가슴에 뭔가 뜨거운 것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곽씨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되었다. 언제 외국의 거리에서 국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불러보겠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분명하게 정체성을 가졌을 것이다”고 뿌듯해했다.
하노버 대학에서 유학중인 오상호(30ㆍ법학 박사과정)씨는 하노버 도심에 설치된 한국 홍보관에서 일하면서 “독일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잘 설명해줘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며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유학 중에 월드컵을 보러 온 김옥경(24)는 머리에 ‘(한국-스위스전 경기장)티켓구함’이라는 문구의 종이를 머리에 꽂고 다니면서 “한국은 일을 위해 살지만, 유럽 사람들은 휴가를 위해 일하는 것 같다”며 “여유럽게 사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독일 월드컵은 원정응원이며 ‘문화탐방’이다.
누군가 ‘산불조심 정선(강원도 정선군)’이라고 커다랗게 쓰여진 깃발을 들고 하노버 길거리에 나타났다. 뚱딴지같이 산불이라니?. 주인공은 대구에 사는 김민수(36)씨이다. 남들은 모두 붉은 색 티셔츠를 입었는데 유독 그만 파란색 옷을 입었다. 그저 독특한 컨셉으로 한번 튀고 싶었다고 한다.
23일 한국-스위스전에서 한국팀이 비록 졌지만, 2006 월드컵의 독일 현지에서 길거리 응원을 펼친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뭔가를 얻어 행복한 마음으로 이번 월드컵을 마무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