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 - 1 이럴 줄 알았으면 양말이라도 신고 나올 걸 그랬다.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헐거운 슬리퍼를 신은 불쌍한 발은 발가락 끝까지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 모양세를 내려다 보니 다 낡은 겨울 파카로 스며드는 찬기가 조금 전보다 더욱 시리게 느껴져 P.K는 허리를 동그랗게 구부리고 종종 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그런다고 슬리퍼를 신은 발로 얼마나 빨리 걷겠냐만은 가만히 살을 애일듯한 이 추위를 견뎌내는 것보다야 낫지 않느냐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역시. "오지게 춥네." 웅얼거리는 입새로 하얀 입김과 함께 춥다는 말이 절로 입밖으로 튀어 나온다. 벌써 2월이건만 봄이 라는 녀석은 아직 꼬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 드륵 미닫이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손님이 들어왔는데도 관심없다는 듯 TV에 열중해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P.K는 그리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자연스레 라면 두봉지를 주워들고 자신의 슬리퍼 만큼이나 낡은 계산대 위에 그것을 올려 놓았다. 주머니를 뒤적 거리며 꺼낸 동전을 계산대 위에 내려놓자 차르르- 하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그제야 돌아본 주인할아버지는 얼마인지 세어보지도 않고 한 줌에 집어 노란 바구니에 담아 넣는다. 요전번에 복덕방 김아저씨께서 금고하나 장만하라고 그리 말씀을 드렸지만 무슨 고집인지 여전히 노란 바구니가 금고를 대신하고 있었다. 금고하나 사는 게 뭐 그리 아까운지.... 하기사 주인할아버지라면 그럴분이지 싶어 이내 할아버지를 향한 생각들을 접었다. 무엇보다 남의 일에 그리 신경쓰는 P.K가 아니었기에 그저 라면두봉지만 들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 나오려 했다. "50원 부족한디." "........" 등 위에서 들려온 할아버지의 말씀에 가던 길을 멈추고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50원은 고사하고 10원도 없었다. "지금 없는데요..." "요번 방세랑 같이 내면 되것네." "..........네." '쫌생이..' 기가 찰 노릇이다. 고작 50원가지고.... 그 돈 다 짊어지고 죽을 거냐고 따져대고 싶었지만 어쨌거나 돈을 모자라게 낸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P.K는 한숨만 내쉴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이달 25일에는 방세를 내야 하는 날이었다. 망할 50원때문에 골치 아픈 일을 떠올려버린 P.K는 슬리퍼를 퍽퍽 쳐가며 다시 추위를 뚫고 집으로 걸어 올라갔다. 물론 웅얼거리듯 짧은 욕설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기분이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처음 라면을 사러 나올때부터 그랬다. 지금 역시 갑자기 욱-하고 올라오는 불만들이 목구멍 끝까지 찼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팍! 터트릴만한 성격이 되지 못했다. 그저 들릴 듯 말듯 짧은 욕설을 웅얼거릴뿐. 게다가 욕설이라고 해봐야. 짜증나. 이씨. 정도이니 보는 사람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 모습이 뭔가 P.K의 겉모습과 상당히 달라서 매치가 되지 않는 듯도 했다. 겉만 보기엔 넘칠만큼 싸늘해 보이는 인상에 P.K였으니까. 매섭게 생긴건 아니었지만 딱부러지고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 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씨..." 추운것도 짜증나고, 돈이 없는 것도 짜증나고, 이 추위에 양말을 안 신고 맨발로 나와버린 자기 자신도 짜증났다. 배고픈것도 짜증났고 밥 대신 라면을 먹어야 하는 이 거지같은 상황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내 그런 짜증을 깊은 한숨을 내어 쉬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보려 애썼다. 이렇게 짜증을 낸다고해서 구질구질한 지금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P.K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괜한데 에너지 낭비하지 말자." 들릴 듯 말 듯 마인드 컨트롤을 하던 P.K 는 오래된 빌라들이 모여있는. 정확히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보이자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짜증나는 것 중에 하나였던 추위를 이젠 덜어낼 수 있는 것때문에 P.K는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듯 했다. 단순하다고 해야할지 세상 참 편하게 산다고 해야할지... 다른 사람들은 낡아서 재개발해야한다고들 하지만 P.K의 생각은 좀 달랐다. 엘리베이터도 없이 5층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것만 빼면 난방이 생각보다 잘되는 자신의 집이 좋았던것이다. 없는 돈으로 서울로 유학을 와 처음으로 혼자 살게된 곳이었고 2년이란 타지 생활에 정줄곳 없던 P.K에게는 집이라는 곳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고향집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소중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얼른 라면을 끓여서 먹고 그동안 미뤄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들을 하며 마지막 계단에 올라섰다. 기분좋게 헐렁한 츄리닝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며 열쇠를 찾았다. 아직도 "으~ 춥다. 추워."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던 P.K가 막 열쇠를 열쇠구멍에 아귀를 맞춰 넣었을 때 였다. "난 진라면이 더 좋던데.." "!!!!!!!!!!" 등 뒤에서 인기척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P.K는 그대로 동작을 멈춰야 했다. 어쩌면 숨 쉬는 것도 잊었을 지 몰랐다. "뭐, 니가 끓여주는 건 다 맛있지만" ".........." 아무 말도 못한 채 서 있는 P.K에게 다가온 사람은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P.K에게는 고통인 듯 기분 좋게 호선을 그렸던 입가를 시작으로 얼굴이 차츰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P.K의 반응을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재영은 피식 웃기까지 한다. "춥다. 들어가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P.K의 시선에 여전히 빨갛게 얼어있는 자신의 발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양말을 신고 나왔어야 했는데....라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에 양말이라니..... 하지만 마치 얼어버릴 듯한 추위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떨리게 했고 발은 동상이 걸린 듯 차가움에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얼음!!'을 외친 뒤 누군가의 '땡!'을 기다리는 그 순간이 떠오를 만큼 P.K의 몸은 얼음 그 자체였다. '진정하자. 생각을 하는거야. 그래..생각을..' 잠시 호흡을 고르는 사이 바로 P.K의 옆까지 다가온 재영은 열쇠를 꼭 쥐고 있어 안그래도 하얀 손이 더욱 하얗게 변해버린 P.K의 손에 자신의 손을 덧얹었다. - 움찔. P.K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것을 재영도 모르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다만 삐걱이며 열리는 문 사이로 이 집의 주인인 P.K가 아니라 불청객 최재영이 먼저 들어갔을 뿐. 멍하니 재영이 하는 냥을 지켜보던 P.K는 발가락을 향해 있던 시선을 들어 재영의 손이 닿았던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런 그의 눈에 정말 최재영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집인냥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하아..." 왠지 추위가 달아나버린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춥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입김이 세어 나왔던 입에서는 뜨겁디 뜨거운 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 열기는 다름 아닌 최재영이 잡았던 손에서 부터 시작해서 온 몸을 타고 삽시간에 전염시키고 있었다. '뜨거워...' 겨울은 순식간에 봄을 밀쳐내고 여름을 맞이했다. 2년전 그때처럼. * * * * * * * 2002년에 시작. 2006년 현재 진행형. 지금은 중간보고 중. P.K - 작성자. 피망
P.K - 1
이럴 줄 알았으면 양말이라도 신고 나올 걸 그랬다.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헐거운 슬리퍼를 신은 불쌍한 발은
발가락 끝까지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 모양세를 내려다 보니 다 낡은 겨울 파카로 스며드는 찬기가
조금 전보다 더욱 시리게 느껴져 P.K는 허리를 동그랗게 구부리고
종종 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그런다고 슬리퍼를 신은 발로 얼마나 빨리 걷겠냐만은
가만히 살을 애일듯한 이 추위를 견뎌내는 것보다야 낫지 않느냐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역시.
"오지게 춥네."
웅얼거리는 입새로 하얀 입김과 함께 춥다는 말이 절로 입밖으로
튀어 나온다.
벌써 2월이건만 봄이 라는 녀석은 아직 꼬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 드륵
미닫이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손님이 들어왔는데도 관심없다는 듯 TV에 열중해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P.K는 그리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자연스레 라면 두봉지를 주워들고 자신의 슬리퍼 만큼이나 낡은
계산대 위에 그것을 올려 놓았다.
주머니를 뒤적 거리며 꺼낸 동전을 계산대 위에 내려놓자
차르르- 하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그제야 돌아본 주인할아버지는 얼마인지 세어보지도
않고 한 줌에 집어 노란 바구니에 담아 넣는다.
요전번에 복덕방 김아저씨께서 금고하나 장만하라고 그리 말씀을
드렸지만 무슨 고집인지 여전히 노란 바구니가 금고를 대신하고
있었다. 금고하나 사는 게 뭐 그리 아까운지....
하기사 주인할아버지라면 그럴분이지 싶어 이내 할아버지를 향한
생각들을 접었다.
무엇보다 남의 일에 그리 신경쓰는 P.K가 아니었기에 그저
라면두봉지만 들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 나오려 했다.
"50원 부족한디."
"........"
등 위에서 들려온 할아버지의 말씀에 가던 길을 멈추고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50원은 고사하고 10원도 없었다.
"지금 없는데요..."
"요번 방세랑 같이 내면 되것네."
"..........네."
'쫌생이..'
기가 찰 노릇이다.
고작 50원가지고....
그 돈 다 짊어지고 죽을 거냐고 따져대고 싶었지만 어쨌거나
돈을 모자라게 낸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P.K는 한숨만 내쉴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이달 25일에는 방세를 내야 하는 날이었다.
망할 50원때문에 골치 아픈 일을 떠올려버린 P.K는 슬리퍼를
퍽퍽 쳐가며 다시 추위를 뚫고 집으로 걸어 올라갔다.
물론 웅얼거리듯 짧은 욕설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기분이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처음 라면을 사러 나올때부터 그랬다.
지금 역시 갑자기 욱-하고 올라오는 불만들이 목구멍 끝까지
찼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팍! 터트릴만한 성격이 되지 못했다.
그저 들릴 듯 말듯 짧은 욕설을 웅얼거릴뿐.
게다가 욕설이라고 해봐야.
짜증나. 이씨. 정도이니 보는 사람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 모습이 뭔가 P.K의 겉모습과 상당히 달라서 매치가 되지
않는 듯도 했다.
겉만 보기엔 넘칠만큼 싸늘해 보이는 인상에 P.K였으니까.
매섭게 생긴건 아니었지만 딱부러지고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
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씨..."
추운것도 짜증나고, 돈이 없는 것도 짜증나고, 이 추위에 양말을
안 신고 맨발로 나와버린 자기 자신도 짜증났다.
배고픈것도 짜증났고 밥 대신 라면을 먹어야 하는 이 거지같은
상황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내 그런 짜증을 깊은 한숨을 내어 쉬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보려 애썼다. 이렇게 짜증을 낸다고해서 구질구질한 지금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P.K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괜한데 에너지 낭비하지 말자."
들릴 듯 말 듯 마인드 컨트롤을 하던 P.K 는 오래된 빌라들이
모여있는. 정확히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보이자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짜증나는 것 중에 하나였던 추위를 이젠 덜어낼 수 있는 것때문에
P.K는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듯 했다.
단순하다고 해야할지 세상 참 편하게 산다고 해야할지...
다른 사람들은 낡아서 재개발해야한다고들 하지만 P.K의 생각은
좀 달랐다. 엘리베이터도 없이 5층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것만
빼면 난방이 생각보다 잘되는 자신의 집이 좋았던것이다.
없는 돈으로 서울로 유학을 와 처음으로 혼자 살게된 곳이었고
2년이란 타지 생활에 정줄곳 없던 P.K에게는 집이라는 곳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고향집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소중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얼른 라면을 끓여서 먹고 그동안 미뤄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들을 하며 마지막 계단에 올라섰다.
기분좋게 헐렁한 츄리닝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며 열쇠를 찾았다.
아직도 "으~ 춥다. 추워."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던 P.K가 막
열쇠를 열쇠구멍에 아귀를 맞춰 넣었을 때 였다.
"난 진라면이 더 좋던데.."
"!!!!!!!!!!"
등 뒤에서 인기척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P.K는 그대로 동작을
멈춰야 했다. 어쩌면 숨 쉬는 것도 잊었을 지 몰랐다.
"뭐, 니가 끓여주는 건 다 맛있지만"
".........."
아무 말도 못한 채 서 있는 P.K에게 다가온 사람은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P.K에게는
고통인 듯 기분 좋게 호선을 그렸던 입가를 시작으로 얼굴이
차츰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P.K의 반응을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재영은
피식 웃기까지 한다.
"춥다. 들어가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P.K의 시선에 여전히 빨갛게 얼어있는
자신의 발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양말을 신고 나왔어야 했는데....라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에 양말이라니.....
하지만 마치 얼어버릴 듯한 추위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떨리게 했고 발은 동상이 걸린 듯 차가움에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얼음!!'을 외친 뒤 누군가의 '땡!'을 기다리는 그 순간이
떠오를 만큼 P.K의 몸은 얼음 그 자체였다.
'진정하자. 생각을 하는거야. 그래..생각을..'
잠시 호흡을 고르는 사이 바로 P.K의 옆까지 다가온 재영은
열쇠를 꼭 쥐고 있어 안그래도 하얀 손이 더욱 하얗게 변해버린
P.K의 손에 자신의 손을 덧얹었다.
- 움찔.
P.K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것을 재영도 모르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다만 삐걱이며 열리는 문 사이로 이 집의 주인인
P.K가 아니라 불청객 최재영이 먼저 들어갔을 뿐.
멍하니 재영이 하는 냥을 지켜보던 P.K는 발가락을 향해 있던
시선을 들어 재영의 손이 닿았던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런 그의 눈에 정말 최재영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집인냥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하아..."
왠지 추위가 달아나버린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춥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입김이 세어 나왔던 입에서는 뜨겁디 뜨거운 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 열기는 다름 아닌 최재영이 잡았던 손에서 부터 시작해서
온 몸을 타고 삽시간에 전염시키고 있었다.
'뜨거워...'
겨울은 순식간에 봄을 밀쳐내고 여름을 맞이했다.
2년전 그때처럼.
* * * * * * *
2002년에 시작.
2006년 현재 진행형.
지금은 중간보고 중.
P.K - 작성자. 피망